한국민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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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들의 우려처럼 <한국민중사>는 꽤나 거창하고도 문제 있는 이름이었다. 특히 '민중'이라는 단어를 불편하게 여기던 높으신 분들과 공안검사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당시 악명높던 공안검사 김원치는 이를 트집 잡아 필화 사건을 일으켰고, 1987년 2월 풀빛출판사 간부들이 대거 검찰에 연행되었다. 대표 나병식은 물론 발행인 홍석, 영업부장 조기환, 경리 최금숙, 편집부원 송찬경, 영업부원 이상돈, 심지어 전 편집부장(...) 박인배까지 끌려왔다.
검찰은 책의 제목을 문제 삼았는데 이유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불순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검찰은 '민중'이라는 단어가 '인민대중'의 준말이니 빨갱이스러운 말이라고 여겼으며 현대를 다룬 2권은 아주 '새빨간' 책으로 인식했다.[6] 나병식은 검사와 타협하여 집필자들을 확인하지 말자고 제안했다.[7] 결국 나병식은 구속되고 김명인 편집부장이 불구속되는 선에서 수사는 종료됐다.
이후 치러진 재판은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검찰은 <한국민중사>의 사상적 불순함에 대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변호인[8]들은 사학과 원로까지 증인으로 불러들이며 책을 옹호했다. 책 내용 중 총 33개가 문제가 되었는데, '역사의 주체는 생산대중' 등 18개 부분은 무죄로, 신식민사회 주장 등 나머지 15개 부분은 유죄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리하여 나병식은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지만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한국민중사>는 8만여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하며 이 중 5만여 부는 현대편인 2권이었다.
1990년에 항소가 기각되어 완전 무죄까진 가지 못했지만 현대사의 재조명을 위한 투쟁은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이성광의 <민중의 역사>,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의 <바로보는 우리역사>, 한국역사연구회의 <한국현대사>, 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의 <한국현대사 이야기주머니> 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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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백범 김구 연구의 권위자다.
[2] 현재는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3] 80년대 운동권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다.
[4]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70년대 운동권의 중심 인물이었다. 이후 풀빛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사회과학 도서를 출판하고 있었다.
[5] 이후 그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한국현대사(1990)>를 썼고 <함께보는 한국근현대사> 집필에도 참여하였다.
[6] 당시 2권에서는 5.16 군사정변와 12.12 군사반란을 쿠데타로, 5.18 민주화운동을 민중항쟁으로 기술했다. 이는 당시 정권과 공안당국의 기준에서는 나자빠질 만한 것이었다. 2년 전에 나온 강만길 교수의 <한국현대사>조차 1970년대까지 썼다.
[7] 실제로 <한국민중사>의 저자는 앞에 나온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한국민중사연구회'라는 가상의 단체로 되어 있다.
[8] 한승헌, 조영래, 박원순 등의 인권변호사들이 이 책을 변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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