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4

정태연 지금은 사법부의 시간…음모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 교수신문

지금은 사법부의 시간…음모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 교수신문

지금은 사법부의 시간…음모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정태연
승인 2025.02.12
정태연의 한국사회 마음 읽기⑪


법을 집행하는 기관을 편향된 논리로 매도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자기중심적인 특성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보통 음모론은 전체 사회의 이익이나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개인이나 집단의 이득과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것이다.

혼돈과 반목의 블랙홀이 작금의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는 이 추운 계절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제1항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이 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의 의지를 반영해서 법으로 통치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자가 법치를 하는 국가라는 뜻이다. 이런 내용이 헌법의 가장 첫머리에 나온 것은 그만큼 민주공화국이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2024년 연말부터 2025년 새해 벽두까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박한 역사적 사건을 목도해 왔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구속, 탄핵 심판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 와중에 극단주의자들이 이성의 끈을 놓은 채 광기에 가까운 감정에 사로잡혀 날뛰고, 적지 않은 일반인과 정치인까지도 이들에게 동조하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정쟁(政爭)의 폭주 기관차가 뿜어내는 광란의 화염과 죽음의 연기는 이미 우리의 삶과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다.

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길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이 어지러운 시간을 바로잡아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방법은 많지 않아 보인다. 감정에 매몰되어 냉정을 잃은 사람들에게 논리·합리·객관에 기초한 대화를 기대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지금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아마도 법뿐이다. 법치를 통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제자리에 정위치 시키는 것, 그것이 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온전히 사법부의 시간이어야 한다.

법치를 뒤흔드는 반동 세력 중의 하나가 음모론을 조장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파급력이 큰 사건을 특정 집단이나 권력자들이 공모해서 의도적으로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객관적 증거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다들 알고 있는 내용도 진실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이들의 주장이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이유는 자기도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을 퍼뜨려 사회의 분열과 갈등만 부추기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사법부가 응보의 정의를 실현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법치를 구현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판핵심판 4차 변론’에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왜 음모론이 발생하는가?

그럼 왜 음모론이 발생하는가? 한편으로 어떤 사건이든 그 사건의 최종적인 원인을 규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사건은 알카에다가 하이재킹과 자살 테러로 일으킨 사건이다. 그럼 알카에다가 왜 이 사건을 일으켰을까? 미국을 적대시해서 보복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지만, 미국의 어떤 세력과 공모해서 그랬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공모가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데도 원래 있는 것을 아직 못 밝혔거나 숨기고 있다고 반격하면, 후자의 주장이 틀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음모론자들은 9·11 테러를 일으킨 집단이 심지어 알카에다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발표하지만, 사실은 알카에다로 위장한 조직이 저지른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조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21%는 UFO가 뉴멕시코주에 추락한 것을 정부가 은폐했다고 믿고, 31%는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고 믿고, 51%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개인이 아닌 집단 모의에 따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의 문제

마찬가지로 부정선거에 대한 음모론자들은 그 증거가 있지만 나오지 않았을 뿐 어떤 배후 세력이 조작했다고 맹신한다. 그럼 절대적인 사실은 무엇인가? 절대적인 사실을 규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점은 서로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9·11 테러의 원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한 신뢰, 부정선거에 대한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의 발표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사건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다. 이처럼 신뢰는 사회가 제대로 소통하고 작동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요건이다. 이러한 신뢰가 없는 곳에는 의심과 단절, 대립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음모론자들은 탄핵 심판 관련 헌법재판소의 공정성을 뒤흔들고자 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입장과 다른 일부 재판관을 이념적으로 매도하고 그들의 판결에 미리부터 딴죽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이고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정 재판관의 이념이 편향되어 그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자기와 같은 이념을 가진 재판관들도 이념적으로 편향될 수 있어 그들도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본인과 이념이 다른 사람은 편향되고, 본인이나 본인과 이념이 같은 사람은 공정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가.

법 집행 기관을 매도하는 행위의 이면

이들이 비일관적이면서 편향된 논리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을 매도하는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중심적인 특성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보통 음모론은 전체 사회의 이익이나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개인이나 집단의 보호와 이득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음모론자들은 겉으로는 공정이나 정의, 국민을 입에 올리지만 실상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한 그들의 섬뜩한 적대심과 무자비한 폭력이 그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공격성은 사회 전체를 위하는 사람의 행동과는 전적으로 배치된다.

어떤 사회든 그 사회가 구성원 전체를 위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해 놓은 규범을 모두가 지켜야 한다. 그러한 규범 중의 하나가 법이고, 법의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 사법부다. 기본적으로 사법부의 존재 의의는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응보의 정의다. 사법부가 응보의 정의를 실현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법치를 구현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민주공화국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를 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24),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심리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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