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집단주의, 그 다층 구조에 대하여
정태연
승인 2024.09.10
정태연의 한국사회 마음 읽기⑦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집단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맥락에 맞지 않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체육계가 겪는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는 요원할 뿐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체육계가 시끌시끌하다.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안○○ 선수가 배드민턴 협회의 불공정한 관행과 제도를 폭로했다. 그 선수가 제기한 쟁점은 협회를 위해 선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 서열 관계 속에서 후배에 대한 선배의 부당한 착취다. 이에 관련된 인사들의 갑론을박과 함께 문제의 진단과 후속 조치 마련으로 체육계가 어수선하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선임을 두고 축구협회가 보인 행태에 대해서도 축구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분노하고 있다. 개인의 의사를 무시한 협회의 독선적인 의사결정, 특정인에게만 특혜를 주는 식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일 처리는 급기야 국회 청문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협회의 부조리한 처사를 폭로한 특정 개인에 대하여 비밀 준수의 규정을 어겼다는 명분으로 고발하겠다고 겁박까지 한 협회다.
집단적 서열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의 조직은 거의 전적으로 지위가 높은 권력자의 의지대로 조직이 움직인다.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조직이 갖는 여러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집단주의 문화다. 흔히 집단주의를 개인주의와 대별해서 ‘집단 공동의 목표와 이득을 개인의 그것보다 우선시하는 문화’라고 개념화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전체를 위해서라면 각 개인에게 자기의 사적인 선호·목표·이득을 어느 정도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요구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우리가 집단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혼자서는 성취할 수 없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개인의 선호나 이득을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집단 구성원들이 자기의 개인적 목표와 이익만 위해서 행동한다면, 그 집단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다. 법이나 도덕이 공공선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약하는 본질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어떤 집단이든 개인의 자유에 일정 수준 한계를 둘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위의 두 체육 단체처럼 불합리한 집단주의 문화의 조직은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고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조차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종종 집단의 우월한 지위와 힘을 악용해서 개인이 순종하게 만든다. 강력한 처벌을 기반으로 개인이 규정과 규칙, 법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이것은 조직의 고위층이 구성원을 다루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집단의 이러한 요구와는 별개로, 구성원들은 여전히 자기의 사적 욕구를 충족하고 개인적 이득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법을 어기거나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래서 집단은 구성원들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이해시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강압적으로 억누르기만 하면, 그들의 불만은 클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두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불만이 큰 이유도 불합리한 집단주의 문화에 있다.
지위로 줄을 세우는 ‘집단적 서열주의’
우리 사회의 조직이 갖는 또 다른 특징으로 집단적 서열주의를 들 수 있다. 이것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조직의 문화 속에서 그 구성원 모두를 주로 지위를 중심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 구조는 매우 탄탄해서 외부의 웬만한 반동 세력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위에 따른 권력 거리가 매우 커서 지위가 낮은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의 권력과 지배, 요구에 도전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다.
집단적 서열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의 조직은 거의 전적으로 지위가 높은 권력자의 의지대로 조직이 움직인다. 나머지 구성원들은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 보면서 그의 입맛에 맞게 처신한다. 이것이 그들이 취하는 처세술의 기본이다. 그러면서 집단적 서열주의에 반기를 드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합심해서 가차 없이 응징한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카르텔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에는 소위 시스템이 없고, 권력자가 누구냐에 따라 조직의 운명이 결정된다. 위에서 언급한 축구협회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인맥과 연줄로 엮인 ‘관계주의’
한국의 조직 문화가 갖는 또 다른 특징을 관계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관계주의는 자기와 친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집단을 형성해서 그 집단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집단주의는 개인적 친밀성과 무관하게 집단 전체의 차원을 중시하는 것이라면, 관계주의는 집단 내 구성원들 간의 사적 친밀성 차원을 중요한 요인으로 여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집단주의와 관계주의는 중첩되는 점이 있으면서도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주어진 집단 속에서도 자기와 친밀한 사람을 중심으로 또 다른 하위집단을 만든다. 그러면서 하위집단의 구성원끼리는 ‘우리’라는 연대 의식 속에서 정과 의리로 강한 유대감을 구축한다. 관계 중심의 집단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런 집단은 우리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 시켜주기 때문에 외로움에서 벗어나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친밀한 집단의 사람들이 다양한 도움과 지지를 해준다.
이와는 달리, 우리 중심의 집단은 사회적이고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부정적인 점도 많다. 공적인 일은 상대방과의 친밀성과 무관하게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우리끼리 모여서 만든 집단의 구성원끼리는 청탁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의리 없는 사람으로 비난한다. 실제로 대부분 조직에서 인맥과 연줄로 엮인 사람들은 사회적 정의보다는 관계적 의리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공정성의 핵심, 일관성이 사라지는 순간
관계주의 문화가 우세한 조직에서는 공적인 일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다루기보다는 사적인 관계에 따라 불합리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크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불공정하고 억울하다고 여기는 사건이나 사태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공정성의 한 핵심인 일관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해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개인주의는 무조건 좋고 집단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의 전형이라고 하는 미국의 소득 양극화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심각하다. 집단주의의 전형이라고 하는 일본은 미국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소득 양극화는 훨씬 덜 심각하다. 큰 틀에서 집단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맥락에 맞지 않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우리 사회가 극복하지 못한다면, 체육계가 겪는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는 요원할 뿐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를 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24),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심리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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