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9

문경준 - 위와 같이 [제국의 위안부> 삭제 부분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과 참상을 왜곡한다.... | Facebook

(3) 문경준 - 위와 같이 <제국의 위안부> 삭제 부분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과 참상을 왜곡한다.... | Facebook

문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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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제국의 위안부> 삭제 부분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과 참상을 왜곡한다. 엄연히 존재했던 일본의 전쟁범죄를 이상야릇하게 해석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것을 학문적 의견으로 평가했고, 이에 따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15년의 삭제 결정을 취소하게 됐다. - 기사 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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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국뽕의 한계다.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왜곡이란다. 
자기가 지금껏 알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자기가 지금껏 금과옥조로 여기던 왜곡된 정보랑 비교하니 왜곡으로 보일 밖에.
이게 바로 이 나라 (한일 근대)역사인식에 정대협과 윤미향이 끼친 해악의 결과물이다.
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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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제국의 위안부> 삭제 부분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과 참상을 왜곡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것을 학문적 의견으로 평가했고, 이에 따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15년의 삭제 결정을 취소하게 됐다.



ohmynews.com
'제국의 위안부' 34곳 삭제 취소... 어떤 내용 있었나?
[김종성의 히,스토리] 대법원은 학문적 의견으로 평가했지만...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 왜곡했다는 비판 많아

프리미엄 김종성의 '히, 스토리' ㅣ 898화
'제국의 위안부' 34곳 삭제 취소... 어떤 내용 있었나?
[김종성의 히,스토리] 대법원은 학문적 의견으로 평가했지만...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 왜곡했다는 비판 많아

민족·국제
김종성(qqqkim2000)

25.07.17 

▲2024년 4월 12일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소감을 밝히는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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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의 34곳을 삭제하도록 한 법원의 결정이 10년 만에 취소됐다. 지난 15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는 2015년 2월 17일 이 책에 대해 내린 '34곳 삭제 가처분 결정'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2023년 10월 26일 이 책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취소 결정은 이 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문제를 하층민 문제와 연결한다. 2013년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발행된 이 책 초판 112쪽은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경제활동이 가능한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 속의 일이다"라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국가폭력보다는 하층민 가정의 문제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삭제된 부분, 어떤 내용이었나

34곳 삭제 가처분 결정에 따라 2015년 6월 16일 나온 제2판(34곳 삭제판)은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 속의 일이다" 부분을 동그마리 28개를 사용해 "○○○ ○○○○" 식으로 처리했다.

20세기 중반의 한국인들이 미국을 '외국'의 의미로 사용하는 일이 흔했듯이, 과거 일본에서는 당(唐)나라가 그와 비슷한 뜻으로 활용될 때가 많았다. 박 교수는 말 그대로 하면 '당나라로 간 사람'인 가라유키(唐行き)에서 위안부의 원형을 찾는다.

그는 가라유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일본에서는 근대 초기부터 어린 소녀들을 유괴하다시피 데려가 외국으로 팔아넘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라고 한 뒤 "그들은 현해탄을 넘어 한국과 중국 각지에 만들어진 공창-국가의 허가를 받은 매춘시설-로 팔려 나갔고, 동남아시아와 인도로까지 떠돌았다"라고 설명한다. 그런 뒤 초판 32쪽에서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삭제판에서 사라졌다.

박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도 가라유키상의 고통과 등치시킨다. 초판 33쪽은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삭제판에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부분이 동그라미로 처리됐다.

그는 위와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위안부 제도는 공창 제도'였다고 정리한다. 초판 291쪽은 "조선인 위안부란 '이렇게 해서 조선이나 중국의 여성들이 일본의 공창제도의 최하층에 편입되었고, 아시아 태평양전쟁기에 위안소의 최대 공급'이 되면서 생긴 존재였다"라고 말한다. 삭제판에서는 "아시아 태평양전쟁기에"의 앞부분이 동그라미로 처리됐다.

박 교수는 공창 시스템에 편입된 위안부들이 군대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일본 국가권력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는 점, 있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여서 개인의 범죄로 볼 수밖에 없고, 그런 한 국가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215쪽)이라는 말을 한다. 삭제판은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 부분을 동그라미로 처리했다.

그는 일본정부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한다. [?] 초판 191쪽은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자체를 국가와 군이 지시하지 않은 이상(일본군의 공식 규율이 강간이나 무상노동, 폭행을 제어하는 입장이었던 이상) 강제연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 국가에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삭제판은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자체를 국가와 군이 지시하지 않은 이상"을 동그라미로 처리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이었던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은 1993년 8월 4일의 이른바 '고노담화'에서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위안부들이 피해자 신분이기보다는 협력자 위치였다는 시각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초판 31쪽은 "위안부들은 그렇게 국가와 남성에 의한 피해자인 동시에 국가에 의해 애국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이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피해자 대 가해자'였다는 점을 부정한다.[??]  초판 67쪽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인 관계"라는 말을 한다. 이 부분도 삭제판에서 사라졌다.

그의 논리 구조에서는 위안부들이 전쟁 피해자가 아니라 전쟁 수행자다.[??] 
"이들이 전쟁범인 즉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 이유는 이들이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99쪽)라고 주장한다. "전쟁범인 즉" 이하 부분은 삭제판에서 사라졌다.

초판 294쪽에는 "그들이 그렇게 전쟁터에까지 함께 가게 된 건 똑같이 일본제국의 구성원, 낭자군으로 불리는 준군인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낭자군이라고 불렸던 것은 그녀들이 국가의 세력을 확장하는 군대의 보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소녀상의 한계 거론한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위안부> 제2판의 표지뿌리와이파리

위안부들이 낭자군, 준군인, 군대 보조자 역할을 통해 침략전쟁을 수행했다는 게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다. 이 두 부분도 삭제판에서 사라졌다.

그는 위안부들이 그런 역할에 대해 긍지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61쪽, 삭제 부분)라고 말한다.

그는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힘을 불어넣는 존재였다고 역설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머나먼 전쟁터에서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초판 65쪽)이었다는 말을 한다. "정신적" 이하는 삭제 부분이다. 이런 기조 위에서 그는 위안부의 고통을 이렇게 재해석한다.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위안을 매춘으로만 생각했고 우리는 강간으로만 이해했지만,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은 가혹한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이들은 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초판 120쪽에 나오는 위 문단에서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는 2015년에 삭제됐다가 이번에 복구됐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위안부 제도의 본질을 평화의소녀상이 감추고 있다고 고발한다. 초판 205쪽은 "실제 조선인 위안부는 국가를 위해서 동원되었고 일본군과 함께 전쟁에 이기고자 그들을 보살피고 사기를 진작한 이들이기도 했다"라며 
"대사관 앞 소녀상은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은폐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도 삭제됐다.

그는 소녀상의 한계를 거론한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207쪽)라고 애석해한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 부분도 삭제됐다.

위와 같이 <제국의 위안부> 삭제 부분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과 참상을 왜곡한다. 엄연히 존재했던 일본의 전쟁범죄를 이상야릇하게 해석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것을 학문적 의견으로 평가했고, 이에 따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15년의 삭제 결정을 취소하게 됐다.
#위안부 #제국의위안부 #박유하 #소녀상 #군대성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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