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

손민석 -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수준이 너무 낮다. )

손민석 - 본디 백낙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분단체제론이고 뭐고 수준이 너무 낮다. 가령 분단체제론의 경우에는 그... | Facebook


본디 백낙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분단체제론이고 뭐고 수준이 너무 낮다. 가령 분단체제론의 경우에는 그 자신조차 분단체제가 무엇인지를 규정하지를 못한다. 담론의 주창자 본인조차 정의하지도 못하는 개념을 남발하고 다니는 거다. 학자로서의 함량 미달이다. 더 황당한 일은 그게 뭐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는 불교식의 사유방식이라며 진리가 무엇인지는 논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를 논하는 방식으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소리를 해댔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말하기 싫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 본인이 어떻게 아는가?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 판별할 권리를 누가 누구에게 부여했다는 말인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원용하여 이런저런 설명을 시도하지만 실제 월러스틴은 백낙청이 자신의 분단체제론을 설파했을 때 시큰둥했다. 월러스틴이 보기에 한반도의 '사유'를 경유해 진선미의 재통일을 구현하겠다는 백낙청의 주장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뒤 어느 순간부터 백낙청은 월러스틴을 언급하는 걸 점차 줄여왔다.
분단체제론이 제기하는 분단효과를 제대로 논증하려면 '근대국가'가 본래 지니고 있는, 홉스적 의미에서의 대외적 무정부 상태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근대국가'론'이 전제된 상태에서 그것과 구별되는 분단체제 특유의 '효과'를 논증해야 한다. 하지만 백낙청은 서로 다른 사회구성체를 지닌 남북을 뭉뜽그려서 '체제'라는, 그 나름의 재생산 기제를 지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한다.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예컨대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북조선의 관료적 시장경제와 어떻게 연결시켜 파악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동학과 그 속에서의 국민경제의 동학, 그리고 근대국가의 대립을 매개로 한 타국과의 얽힘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가야 되는데 다 섞어서 설명한다. 분석이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그래놓고 맨날 사회과학자들이 자기 논의에 관심없다고 한탄만 한다. 왜 없겠는가. 애초에 될 그게 아니니까 안 하는거다.
개념적인 분석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로 진리가 무언가 있고 부정을 통해 거기에 도달하겠다는 식의 주장은, 그저 자신의 위치를 바꾸지 않겠다는 아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이 왜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창비에서의 영향력 외에는 달리 설명할 게 없다. 그런데.. 그나마 그의 학술세계를 나름 이해하게 된 게 로런스 연구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 로런스를 갖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구나, 자기 나름대로 근대세계에 관한 분석을 로런스라는 소설가의 사유를 매개로 하여 해볼 만큼 해봤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한 적개심이 많이 누그러졌었다. 그래, 뭐 어떤 맥락에서 나온 얘기들인지는 알겠고.. 자기 나름대로 정당화하거나 체계화하는 건 못하겠어서 다른 사람들 갖다 쓰고 담론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건 알겠는데.. 이런 '낭비'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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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에 관해 네프콘에 올린 연재글은 다음과 같다. 모두 모아보니 생각보다 양이 꽤 된다. 마지막 4부 "그것은 A가 아닙니까?"를 2월 3일 월요일에 올리려고 한다. 유토피아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가라타니의 '사회주의의 과학'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나는 정말 재밌다. 벌써 소책자 한 권 분량의 책이 나왔는데 계속 반복해서 수정하여 좀더 괜찮은 원고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여기에 문학비평까지 들어가면 정말 좋을텐데,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한 가라타니의 입장을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헤겔의 문예론에 대한 비판적 전유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예론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면 루카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요즘 계속해서 문예비평들을 읽고 있다. 그래봐야 백낙청, 김현, 루카치, 바흐친 등의 일부 비평가들에 한정되어 있지만..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보려고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정말 재밌다. 비평, 문학 등에 관한 글들은 브런치에 정리해서 올려볼 생각이다. 매주 수요일에는 도서관에 가서 문학만 보는 날로 정했다. 가라타니 열심히 비판해봐야지. 재밌다~ 옛날에 했어야 하는 작업을 이제야 시작하는구나.
가끔 백낙청tv를 유튜브로 보는데 말이 너무 느리셔. 진짜.. 2배속으로 해야 겨우 들을만하지, 원래 속도로 하면 속터져서 죽을 것 같다. 백낙청 선생도 말씀이 느리신데 나오시는 게스트 분들도 연배가 있으셔서 그런지 속터질 정도로 말씀들이 다 느리시다. 명짧은 사람은 다 못 듣고 가것슈..
백낙청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H.로런스>를 2주째 읽고 있다. 진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약간 당황스러울 지경인데 그렇게 막 엄청나게 난해하거나 어려운 책도 아닌데 너무 오래 걸리고 있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가라타니 고진도 그렇고 백낙청도 그렇고 다들 '종교성'에 무언가 굉장히 집착하는데 그런 게 잘 이해가 안돼서 어떻게 파악해야 좋을지 생각해보려고 그런거였다. 넓게 보면 벤야민, 아감벤 등의 메시아주의도 종교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이 종교성에 대한 어떤 집착이랄까, 강조랄까 그런 게 왜 나타나는지를 좀더 잘 파악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책이 안 읽히는지.. 그리고 덧붙여서 로런스에 관한 백낙청의 해석 자체는 굉장히 재밌는데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시리즈들은 솔직히.. 창비가 없었으면 백낙청 글을 누가 읽었을까 싶은 게 좀 있다.. 문예비평을 이렇게 해도 되는건지.. 전문명역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다만 나같은 사람들이 백낙청의 문학비평집을 굳이 찾아 읽었을까. 차라리 별 내용도 없는 신형철 책이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나는 「머리없는국가(가제)」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체계를 "의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근대 자본제 사회 내에서 의지들이 끊임없이 산출되고 대립하며 보편화되는 어떤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근대 사회 내부에서 공동체적 의지와 개인적 의지의 '합치'가 불가능하다면, 문학이라든지 학술활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문예비평을 요즘 다시 점검하게 되는 건 그런 맥락이다. 책을 낼 때가 되니 새로 공부할 게 생겨서 재밌다랄까. 뒤늦게 지킹엔 논쟁이나 루카치, 바흐친 등을 막 읽어대고 있다. 게걸스럽게 섭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구 우겨넣고 있다. 문예비평론 이거 영 재미가 없었는데 갑자기 맛들려서 백낙청 책부터 시작해서 문지하고 창비의 문예지 계속 뒤적거리고 있다. 루카치도 오랜만에 펴놓고 읽기 시작했고 바흐친도 다시 보는 중이다. 오랜만에 미메시스도 다시 읽고.. 예전에는 참.. 와닿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걸 왜 그렇게 열심히 읽었나 몰라. 남들이 다 그 얘기하니까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우겨넣었던 글들이 뒤늦게 소화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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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자본 이전의 세계> 같은 책은 왜 썼나요? 라고 묻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왜 썼냐면, 한국 학계에서 마르크스는 유령과 같은 존재이기에 나는 그 유령을 현실로 끄집어내고 싶었다.. 라고 답한다. 내가 얼마 전에도 '연세학파'에 속한 어떤 분하고 이걸로 조금 다퉜는데.. 내 기준에서 한국사 연구자 중에서 "마르크스 역사학"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다들 이 얘기를 들으면 화를 낸다. 사회경제사 하시는 분도 있고 사상사 하시는 분도 있고 막 어쩌고 하면서 열을 낸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도대체 마르크스의 뭘 읽었고 어떠한 역사이론을 갖고 연구를 한다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화두가 있는가? 아니, 하다 못해 그분들이 자본주의 너머의 무언가를 지향하기는 하는가? 한국 학계에서의 마르크스의 위치란 기묘하기 이를 데 없어서 마르크스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받고 싶다고 하면 10이면 10 다 뜯어말린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걸 하게 두지를 않는다. 정신나간 미친놈이라는 소리, 여러번 들었다.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마르크스를 한대?" 언급 자체를 안 한다.
근데 자기네들이 마르크스적인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 다들 화를 낸다. 한국학계가 진짜 기괴하다. 좌파 이론이 어떻고 이런 얘기를 막 해대는데 정작 마르크스 공부해요, 라고 하면 아.. 하고 정적이 나온다. 진짜다. 알튀세르, 발리바르 연구한다는 사람들하고 얘기해보라. 이 사람들도 자기네가 "마르크스주의적인 좌파"의 범주에 속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마르크스하고 자기네하고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말 안 하겠지만 유명한 누구한테 내가 "왜 마르크스, 엥겔스의 글을 직접 읽지 않고 알튀세르/발리바르가 말한 마르크스, 엥겔스만 읽어요?"라고 물어봤는데 자기는 "프랑스철학" 연구자이지, 마르크스 연구자가 아니라서 읽을 필요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걸 안 읽으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겠다는건지 나는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알튀세르/발리바르의 주장을 검증을 해야 되지 않나? 정말 이해가 안된다. 내가 그 사람들의 마르크스 이해는 좀 이상하다, 고 말했더니 내가 훈고학을 한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자기는 읽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하더라. 대화가 안된다. 의미도 없다. 다들 이런 식이다.
마르크스 좀 읽었어요, 라고 하는 사람들도 보면 옛날에 저기 수유너머 이런 곳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나 <정치경제학비판요강>을 모여서 그냥 좀 읽은 정도다. 그걸 무슨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론틀을 세우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읽고 아이디어 얻고..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하나의 '화두'로써 다루는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을 내가 왜 잡고 있어야 하는가. 김용섭, 강만길 등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 대한 해석, 돕-스위지 논쟁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나 해석의 근간에는 박현채나 이런 사람들의 사회주의론이 나름대로 자리하고 있다.
이분들한테는 민족, 근대, 사회주의 등의 화두가 있다. 뛰어넘어야 할 현실이 있고 비판해야 할 대상이 있었으며 지키고 수복해야 할 이념이 있었다. 김용섭 제자들은 계속 김용섭 선생의 연구는 마르크스주의를 뛰어넘은거고.. 이런 얘기만 하는데 이분의 화두가 무엇인지, 역사이론으로 그것을 체계화해서 제시를 해야 된다. 자본주의 맹아론 같은 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고.. 자본주의 맹아가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맹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우리 나름의 규정도 있고 그것의 지양에 대한 사유도 존재할 것 아닌가. 김용섭, 강만길, 박현채, 백낙청 등의 1970~80년대 글에는 그게 있다. 그게 있다니까. 우리에게는 없는 그게 있다. 민족경제론을 마르크스 경제학이 아니라고 하는데, 아니라니까. 그 근간에는 자본주의적 세계시장과 제국주의의 필연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고 민족해방을 통한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붕괴라는 전망이 시사되어 있다. 세계혁명으로서의 민족혁명이라는 그 전망이 있었다.
내 질문은,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냐는거다. 이론서가 없다는 건 그런 게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계속 무언가 실증을 하고 젠더가 어떻고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파편화되는 느낌이다. 나는 그런 게 별 재미가 없다. 사유를 사유로서, 리버럴하게, 근본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돈은 안되겠지. 상품성은 없겠지. 근데 해야 된다. 내가 진짜 속된 말로 "존나" 싫어하는데 가라타니 고진을 계속 읽게 되는 건 이 사람은 정말 리버럴하게 사유한다. 서경식 선생도 안 좋아하거든? 근데 읽게 된다. 진짜 리버럴하게, 그 식민주의 비판이라는 걸 제대로 사유한다. 그 화두를 잡고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게 있다. 그런 게 사상이고 사유다. <자본 이전의 세계>는 내 입장에서는 부족하지만 그런 걸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결과물이다. 임금농노제라는 걸, 노동을 매개로 한 인간의 의지의 반영이라는 걸 제대로 한번 해보자. 우리도 우리가 보편이라는 걸 제시하는 그런 사유, 사상을 한번 제대로 해보자.
비웃어도 좋고 광인이라 욕해도 좋고 뭘해도 좋은데 그런 걸 좀 보여주면서 했으면 좋겠다. 절망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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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1980년대의 민중적 민족주의가 대단히 체계적인 이론체계라 본다. 민족주의를 매개로 '총체성'을 담지하고 있는 이론체계랄까. 백낙청, 강만길, 박현채 등의 민족문학, 분단사학, 민족경제론 더 나아가 민중신학 등의 여러 이론들이 서로 느슨한 형태로 연결되며 하나의 이론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것들을 총괄해서 하나의 이론체계로 종합하는 작업을 하는 게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지성사적 차원에서 민족주의적 총체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종합하는 것. 박정희의 근대화에 대항하는 민중적 민족주의의 특질을 체계화하고 그것의 열화 버전으로 현대의 한국 민주당을 설명하는 작업을 해야 된다. 뉴라이트와 한국민주당의 대립은 '민중적 민족주의'의 자기분해 과정에서, 특히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부정되어 사라진 그 빈 공간을 메우는과정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의 정치적 대립을 지성사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민중적 민족주의'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당대의 근대화를 19~20세기의 식민지적 근대화와의 비교 속에서 파악하며 '민족적 주체'를 세우고자 했던 그 이론체계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우리의 근대를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좌파 이론이 한국 민주당과 제대로 분화되지 못한 근거도 여기서 찾아져야 된다.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신해줬으면 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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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세미나를 준비중인데 아무래도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해서 팔자에도 없는 문학비평론들을 마구 뒤져보고 있다. 재미 있기는 정말 재밌다. 아, 이때 뭘 좀 알았으면 더 많이 논해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오랜만에 책장 깊숙한 곳에 있던 백낙청, 김현 등의 비평집들을 꺼내서 다시 보고 있는데 시간가는줄 모르겠다. 글쓰고 공부한다는 건 시간의 밀도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참 어려운 일 같다. 어떨 때는 1시간이 6시간 같기도 하지만 또 다른 때에는 6시간이 1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맘대로 이걸 조절할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아직도 프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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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주장을 최대한 선해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건 공부하는 사람의 기초 중의 기초인데 내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조차도 타인의 주장을 속된 말로 지좆대로, 지꼴리는대로 이해한다는 점이었다.
백낙청만 해도 그렇다. 어떤 이들은 나한테 백낙청을 왜 읽냐고 묻는데, 좀 정확하게 비판하고 싶어서 그렇다. 이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백낙청은 단순히 민족주의에 의거해서 근대를 '완성'시키자고 통일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국가연합체'의 형성을 주장한다는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통일을 주장한다. 근대지양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백낙청에게 가해지는 비판들을 보면 대부분 변죽만 울린다. 무슨 북조선의 헌법과 한국의 헌법이 원리적으로 다른데 둘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해 생각이 없다는 윤평중 식의 비판에서부터 통일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최장집의 평화론까지 대부분 "통일"이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아무런 말이나 하고 있다. 모두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백낙청의 주장에 별 관심이 없어서 내용적으로 별 차이도 없으면서 '통일'이라는 단어에만 꽂혀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이 인간이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녹음기와 별 차이가 없으니.. 나는 예전에는 학자들이 왜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지 잘 이해가 안됐다. 나는 같은 얘기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재미가 없잖나. 했던 얘기를 또 뭐하러 하나? 그런데 그렇게 해야 된다. 내 얘기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반복해서, 이렇게도 설명해보고 저렇게도 설명해보고 해야 된다.
백낙청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이 반복되는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예전에 내놓았고 자기 나름대로는 민족주의적 문제와 거리를 두면서 통일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는데 그런 걸 짚어주며 섬세하게 비판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백낙청이 민족주의적이라고 비난하고 치워버리기 바쁘다. 백낙청 자체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그의 캐치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를 통해 근대를 극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섬세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근대주의 비판, 식민주의 비판 등도 비슷하다. 내 강의를 들어본 적도 없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시작하지도 않은 강의를 두고 "서구중심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이라 비난하는 걸 봤잖나. 그런거다. 근대주의, 식민주의 등을 비판하는 건 중요한 주제일 수 있는데, 비판에는 상대의 주장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전제되어야 한다. 항상 충실하게 읽고 섬세하게 비판해주고 싶다. 학자들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에 나같은 잡문쓰는 인간이라도 그런 걸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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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가 날아갔다고 하여 손놓고 있을 수가 없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서둘러 프랑스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다. 여행기를 작정하고 써보는 건 또 처음이라 참고할만한 자료로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우연찮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 시이모님께서 워낙에 유홍준을 열성적으로 좋아하신다. 내게 하도 그렇게 글을 써야 된다고 말씀하시니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사실 유홍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백낙청, 유홍준, 신영복, 황지우 등등.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뽐내는 그 미감이랄까, 이런 게 나로서는 도통 와닿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서예나 이런 것에 대한 이들의 평가는, 내게는 어딘지 과장된 것처럼 느껴져서 도무지 담백한 맛이 없다랄까. 예컨대 유홍준이 반복해서 말하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의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이라는 게 꼭 그리 알아야만 보이는 것이라면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할까 싶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무래도 그들만큼의 어떤 미감이나 미적인 부분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보니 생긴 열등감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시이모님을 모시고 들린 어느 숙박시설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배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차 한 잔 마시며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다가 아뿔사,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게 되었다. 순식간에 책 한 권을 독파해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답사했던 강진 쪽의 내용이라 더 몰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랬던가. 이런 맥락이 있었나. 글을 읽으며 되짚어보는 게 꽤나 재밌었다. 어떻게 쓰면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할까. 참고문헌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괜히 경원시하지 말고 남들이 많이 읽는거라면 빨리빨리 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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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한 논의들을 뒤늦게 따라가다보니 조영일이 쓴 비평서들도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내 관심분야가 아니라 미뤄뒀던 책들을 빌려와서 읽는데 논의가 설다. 내지르는 기세는 좋은데 백낙청의 비평서를 몇개 읽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백낙청이 상대를 해줄 것 같지 않다. 내가 약간 "이해가 안된다"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렇게 비판하면 상대의 입장에서는 받아치기도 쉽지 않다. 하나하나 다 교정해줘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서 비판을 할 때는, 굉장히 섬세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다 받아주고 최대한 선해를 해줘야 된다. 상대를 위한 것도 있지만, 아니, 사실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된다. 민족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으로, 라는 조영일의 캐치프레이즈 자체는 이해가 된다. 민족문학이 곧 세계문학이라는 백낙청 그룹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서도 괜찮다고 생각되는데.. 문제는 그가 근거로 드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 또는 괴테의 세계문학에 대한 해석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백낙청이 이미 섬세하게 다룬 적이 있다. 이미 예전에 행한 반비판이 있는데 똑같은 비판을 계속 가하고 있는 셈. 좀더 창비그룹의 논의를 섬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람의 인정욕구라는 게 참 안타깝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안병직 교수의 인터뷰 글을 몇개 읽었는데 아, 이분은 참 진짜 불쌍하다면 불쌍하다. 사람이 40년 가까이 똑같은 얘기, 했던 얘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다가 죽는 삶이라니.. 본인은 자기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는데 옆에서 보면 40년 전과 하고 있는 주장이 달라진 게 없어서 도대체 40여년 동안 이분의 학술세계에 어떤 질적 전환이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여러모로 참.. 그리고 자신이 공부했던 걸 백낙청 선생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 어떤 인정욕구, 백낙청의 남북관계론을 자기 입장에 맞게 수정했으면 하는 어떤 욕구가 많이 보이는데 여러모로.. 백낙청 선생은 또 자기 논리가 사회과학자들한테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서러워하고 그러니.. 참 여러모로 안타깝다. 그 엇나간 인정욕구가.. 나도 나이 들어서 40년 뒤에도 지금 한 얘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면서 왜 인정 못받았냐고 광광대고 있을까봐 두렵네..
가라타니 고진에 관해 네프콘에 올린 연재글은 다음과 같다. 모두 모아보니 생각보다 양이 꽤 된다. 마지막 4부 "그것은 A가 아닙니까?"를 2월 3일 월요일에 올리려고 한다. 유토피아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가라타니의 '사회주의의 과학'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나는 정말 재밌다. 벌써 소책자 한 권 분량의 책이 나왔는데 계속 반복해서 수정하여 좀더 괜찮은 원고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여기에 문학비평까지 들어가면 정말 좋을텐데,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한 가라타니의 입장을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헤겔의 문예론에 대한 비판적 전유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예론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면 루카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요즘 계속해서 문예비평들을 읽고 있다. 그래봐야 백낙청, 김현, 루카치, 바흐친 등의 일부 비평가들에 한정되어 있지만..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보려고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정말 재밌다. 비평, 문학 등에 관한 글들은 브런치에 정리해서 올려볼 생각이다. 매주 수요일에는 도서관에 가서 문학만 보는 날로 정했다. 가라타니 열심히 비판해봐야지. 재밌다~ 옛날에 했어야 하는 작업을 이제야 시작하는구나.
가끔 백낙청tv를 유튜브로 보는데 말이 너무 느리셔. 진짜.. 2배속으로 해야 겨우 들을만하지, 원래 속도로 하면 속터져서 죽을 것 같다. 백낙청 선생도 말씀이 느리신데 나오시는 게스트 분들도 연배가 있으셔서 그런지 속터질 정도로 말씀들이 다 느리시다. 명짧은 사람은 다 못 듣고 가것슈..
백낙청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H.로런스>를 2주째 읽고 있다. 진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약간 당황스러울 지경인데 그렇게 막 엄청나게 난해하거나 어려운 책도 아닌데 너무 오래 걸리고 있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가라타니 고진도 그렇고 백낙청도 그렇고 다들 '종교성'에 무언가 굉장히 집착하는데 그런 게 잘 이해가 안돼서 어떻게 파악해야 좋을지 생각해보려고 그런거였다. 넓게 보면 벤야민, 아감벤 등의 메시아주의도 종교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이 종교성에 대한 어떤 집착이랄까, 강조랄까 그런 게 왜 나타나는지를 좀더 잘 파악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책이 안 읽히는지.. 그리고 덧붙여서 로런스에 관한 백낙청의 해석 자체는 굉장히 재밌는데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시리즈들은 솔직히.. 창비가 없었으면 백낙청 글을 누가 읽었을까 싶은 게 좀 있다.. 문예비평을 이렇게 해도 되는건지.. 전문명역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다만 나같은 사람들이 백낙청의 문학비평집을 굳이 찾아 읽었을까. 차라리 별 내용도 없는 신형철 책이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End of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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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없는국가(가제)」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체계를 "의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근대 자본제 사회 내에서 의지들이 끊임없이 산출되고 대립하며 보편화되는 어떤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근대 사회 내부에서 공동체적 의지와 개인적 의지의 '합치'가 불가능하다면, 문학이라든지 학술활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문예비평을 요즘 다시 점검하게 되는 건 그런 맥락이다. 책을 낼 때가 되니 새로 공부할 게 생겨서 재밌다랄까. 뒤늦게 지킹엔 논쟁이나 루카치, 바흐친 등을 막 읽어대고 있다. 게걸스럽게 섭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구 우겨넣고 있다. 문예비평론 이거 영 재미가 없었는데 갑자기 맛들려서 백낙청 책부터 시작해서 문지하고 창비의 문예지 계속 뒤적거리고 있다. 루카치도 오랜만에 펴놓고 읽기 시작했고 바흐친도 다시 보는 중이다. 오랜만에 미메시스도 다시 읽고.. 예전에는 참.. 와닿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걸 왜 그렇게 열심히 읽었나 몰라. 남들이 다 그 얘기하니까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우겨넣었던 글들이 뒤늦게 소화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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