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지은이)한겨레출판2024-03-11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국방/군사학 주간 18위|
Sales Point : 231

책소개
미국은 왜 베트남전쟁에 개입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안보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한국은 왜 베트남으로 전투부대를 보냈을까? 미국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시작된 베트남전쟁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을 거부했음에도, 왜 한국 정부는 파병을 결정했을까? 우리에게 기억되는 베트남전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005년 <한국전쟁>으로 주목받았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가 베트남전쟁을 일괄하는 신간을 내놓았다. 국내외 관련 도서와 논문은 물론 외교문서까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10여 년간의 조사 끝에 이 책을 내놓았다.
1964년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처음으로 파병한 이래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32만이 넘는 한국군이 베트남으로 갔다. 그들 가운데 5천 여 명은 전사했으며, 1만 명 이상은 전후에 고엽제로 고통 받았다.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죽었다.
베트남전쟁 파병은 최초이자 최대의 해외 파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전쟁 특수에 가려 파병 전사들과 민간인 학살 문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또 하나의 전쟁, 베트남전쟁이 한국과 세계에 남긴 발자국을 살펴본다.
목차
여는 글 _파병 50돌, 전쟁의 의미를 묻다
1부 그들은 왜 베트남으로 갔는가
·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선택? |파병의 진짜 이유
· 한반도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전쟁 |북한의 도발
· 파병군은 박정희에게 ‘알라딘의 램프’였나 |한국과 미국의 동상이몽
·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 |미국이 늪에 빠진 이유
· 토끼가 죽기를 기다리기만 한 미국 |중국 개입의 트라우마
2부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전쟁
· 도미노 이론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북베트남과 중국의 갈등
· 이데올로기는 눈을 가렸다 |남베트남 대통령의 최후
· 그들은 왜 베트콩이 됐는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분열
· 죽은 자와 죽인 자의 이야기 |민간인 학살
· 그것은 미친 살인의 축제였다 |1968년 밀라이 학살
3부 병사들의 기록
· 지옥의 정글에서 우리를 구출해다오 |군의 붕괴
· 노동 계층의 전쟁 |참전 미군들은 누구인가
· 한국군은 개·돼지인가 |미군이 한국군을 대하는 방식
· “잘 싸우지만 지나치게 잔인하다” |초기 한국군의 명암
· “돈과 백 있는 사람들은 다 빠졌다” |누가 베트남에 갔는가
4부 미국은 베트남에서 어떻게 패배했는가
· 북베트남의 어뢰 공격은 없었다 |통킹만 사건의 진실
· 베트콩을 격퇴하고도 패닉에 빠지다 |구정공세와 반전 운동
·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닉슨 철군 정책의 이면
· 평화를 위한 폭격? |한국전쟁의 빗나간 교훈
· 새로운 시대의 디딤돌 |미국의 반전 운동
5부 한강의 기적과 감춰진 진실
·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전 국민적 동원
· 쏟아지는 외화와 신흥 재벌기업 |전쟁 특수
· 죽음의 전선에서 번 돈은 어디로 |파월 군인과 노동자에 대한 보상
· 미국, 박정희의 뒤통수를 치다 |닉슨 독트린
6부 미군 철수 이후의 세계
· 미군이 없어도 남는다? |1972년 한국의 베트남전쟁
· 돈이 장병들의 목숨보다 중요했나 |정부의 미련과 안케패스 전투
· 암흑을 향해 가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닉슨 독트린이 부른 위기
· ‘제2의 한국전쟁’ 풍문의 진위 |남베트남 패망과 한반도
7부 기억되는 것과 기억되지 않는 것
· 1970년대를 말하다 |전쟁 특수, 땅 투기, 통기타
· 베트남 파병 장병이 평양에 나타나다 |포로와 실종자
· 지킬 가치가 있는 정부인가 |남베트남 패망의 교훈
· 그리하여, 다시 이라크로 |반쪽의 기억
닫는 글 _끝나지 않은 베트남전쟁
참고문헌
연표
지도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몇 해 전 중동에서 온 전문가들 앞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P. 40 처음 미국이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했을 때 한국 정부의 결정은 한·미 동맹에 대한 고려와 주한미군 감축 또는 베트남으로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정부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이 더 많은 한국군을 시급하게 원하고 있는 만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받는 ... 더보기
P. 84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베트남전쟁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철수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이 명분도 없는 전쟁에 개입하여 잘못된 전략으로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둘째,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부도덕한 문제로 인해 세계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에 맞서... 더보기
P. 122-123 전쟁에 나가 무엇인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에게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무엇.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던 시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 더보기
P. 179 구정공세를 TV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동네 청년, 옆집 총각, 친척 조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구정공세 시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시민들은 더 이상 늪 속에 젊은이들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반전 운동은 더 힘을 받았고, 깊숙한 개입을 결정한 지도자들은 이제 무대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더보기
P. 218 징병제의 강화와 주민등록제도의 본격적 실행을 통해 사회적 동원과 통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1월 1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뜬금없이 ‘제2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물질적인 ‘제1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그에 걸맞은 정신적 측면에서 ‘제2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정신면의 후진성’... 더보기
P. 264-265 한국군은 또한 막바지가 되어서야 철수를 했기 때문에 철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 베트콩들도 휴전을 앞두고 총공세를 펼쳤다. 휴전이 되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남베트남 정부와 베트콩 사이의 격전에 한국군이 끼어있었던 것이다. (…) 더 이상 한국군이 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를 막는 ‘알라딘의 램프’는 아니었지만, 전쟁 특수나 미국의 원조를 통해 한국군의 현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알라딘의 램프’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던 것인가? 베트남 전선에서 한국군이 고전하는 동안 전쟁 특수와 관련된 소식은 끊임없이 한국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청룡부대 철수 계획 이후 육군 사단의 철수 계획은 1972년 6월에서 12월로, 그리고 다시 그다음 해로 계속 연기됐다. 접기
P. 319~320 인간은 바보다. 금방 망각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늪에 빠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은 민주주의와 투명성, 그리고 공정성이라는 교훈을 한국 사회에 주었다. 민주화는 이룩했지만, 지금 한국은 그 셋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담화에서 지적한 것처럼‘부질없이 앉아서 갑론을박만 하고 시간을 허송’하고 있다. ‘정부와 군과 또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힘을 하나로 뭉쳐 총력으로 대결’하기 위해서 베트남전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지키고 싶은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안보다. 접기
P. 324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베트남전쟁의 모습은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가? 아쉽게도 베트남전쟁의 본질과 한국 군인들이 실제로 겪었던 상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못하다. (…)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바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의 내용과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은 그 반쪽만이 기억되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전체가 아닌 사건의 일부분에 대한 기억은 그 사건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접기
처음 미국이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했을 때 한국 정부의 결정은 한미동맹에 대한 고려와 주한미군 감축 또는 베트남으로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정부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이 더 많은 한국군을 시급하게 원하고 있는 만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1966년 초 브라운 각서는 그 대표적인 예였다. 브라운 각서는 한국 전투부대 파병의 대가로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뿐만 아니라 경제 원조를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는 브라운 각서를 한국 정부에 대한 마지막 보상으로 생각했던 반면, 한국은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신호로 생각했다. 접기
한국 정부가 요구한 것은 단지 돈만은 아니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 조항을 넣어줄 것, 주한미군의 주둔군 지위 협정을 맺어줄 것,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을 중지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이는 1953년 정전협정 후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미국에 요구했던 숙원 사업이었다.
존슨 행정부의 대답은 자동 개입 조항은 불가, 주둔군 지위 협정은 필리핀 수준으로 가능, 주한미군 감축 시 한국 정부에 산전 협의 가능이었다. 한국 정부로서는 더 이상의 양보를 받아낼 수 없는 것을 인지하고, 미국의 대한 원조를 더 보상받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정부가 꺼낸 카드는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수출 물량을 늘려주는 것이었다. 접기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태균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정책연구단장
(전)역사비평 주간
최근작 : <[큰글자도서] 베트남 전쟁>,<베트남 전쟁>,<대륙과 메가아시아> … 총 5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전쟁>에 이은 박태균의 또 하나의 역작!
미국은 왜 베트남전쟁에 개입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안보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한국은 왜 베트남으로 전투부대를 보냈을까? 미국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시작된 베트남전쟁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을 거부했음에도, 왜 한국 정부는 파병을 결정했을까? 우리에게 기억되는 베트남전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005년 <한국전쟁>으로 주목받았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가 베트남전쟁을 일괄하는 신간을 내놓았다. 국내외 관련 도서와 논문은 물론 외교문서까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10여 년간의 조사 끝에 이 책을 내놓았다.
1964년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처음으로 파병한 이래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32만이 넘는 한국군이 베트남으로 갔다. 그들 가운데 5천 여 명은 전사했으며, 1만 명 이상은 전후에 고엽제로 고통 받았다.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죽었다. 베트남전쟁 파병은 최초이자 최대의 해외 파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전쟁 특수에 가려 파병 전사들과 민간인 학살 문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또 하나의 전쟁, 베트남전쟁이 한국과 세계에 남긴 발자국을 살펴본다.
파병 50돌, 전쟁을 생각하다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그들은 왜 베트남으로 갔는가’에서는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이유를 살펴본다. 한국의 역사교과서에는 베트남 남북 사이의 이념 갈등, 공산주의의 확산을 파병 원인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1961년 5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한국의 군부와 그 대표자인 박정희가 정권 승인을 받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한국군 파병을 먼저 제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서는 한국군 파병의 진실과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전쟁의 모습을 비교해본다.
‘제2부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는 베트남의 내부 상황과 서로 죽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던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도 주목한다. 미국은 베트남 내부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적이 북베트남인지 혹은 베트콩인지, 아니면 베트콩을 지지하는 남베트남의 사람들인지. 명분 없이 시작한 전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무고한 사람들만 죽어갔다.
‘제3부 병사들의 기록’에서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당시 참전 군인들의 출신 성분과 징병 과정 등을 파헤친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막으면 국가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 혹은 적절한 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가는 그들에게 싸워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군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따가운 시선뿐이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군인들의 전후의 삶도 함께 살펴본다.
‘제4부 미국은 베트남에서 어떻게 패배하는가’에서는 미군의 철수 과정을 살펴본다. 통킹만으로 본격화된 전쟁은 3년이 되지 않아 반전 운동의 벽에 부딪힌다. 결정적 계기는 1968년의 구정공세였다. 전쟁에 지친 것은 군인들뿐이 아니었다. 베트콩은 남베트남 사람들의 인심이 점차 멀어지자 고민 끝에 총공세를 펼쳤으나 결과는 대패였다. 구정공세의 결과가 베트콩의 의도와 반대로 미군의 승리를 가져왔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구정공세를 계기로 반전운동이 더욱 확산되었다. 결국 닉슨은 베트남에서 미군의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5부 한강의 기적과 감춰진 진실’에는 죽음을 넘나드는 전선에서 한국군과 한국 기술자들의 삶을 담았다. 전쟁 특수로 안정적 집권이 가능해진 박정희는 곧 유신을 선포하며 독재를 굳건히 한다. 또한 전쟁 특수로 수혜 받은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가 시작됐다. 1970년대 한국은 베트남 파병 한국군과 기술자들로 갑작스레 풍요로워진 시대였지만 동시에 자유와 권리가 가장 제한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제6부 미군 철수 이후의 세계’에서는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흔들린 후 미국의 그늘 아래 있던 주변부 국가들의 변화를 살펴본다. 닉슨 독트린은 베트남전쟁으로 파탄이 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트남에 파병한 동맹국에는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타이, 필리핀은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독재를 겪어야만 했다. 베트남전쟁은 한국과 세계를 흔들어놓았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변화는 어떻게 기억될까?
‘제7부 기억되는 것과 기억되지 않는 것’에서는 전쟁포로와 실종자 문제, 참전 군인과 베트남 피해자에 대한 보상, 이를 둘러싼 역사 인식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베트남전쟁을 다룬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살펴보면 우리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베트남전쟁의 모습은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그리고 있지 못하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은 반쪽만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반쪽의 기억이 2003년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는 데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역사는 기억과의 싸움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베트남전쟁은 미국인들에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참패와 경제적.정신적 공황을 안겨주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전술로 싸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인한 전쟁 특수만을 강조할 뿐,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또 베트남 참전 병사들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참전 병사들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가해자였지만, 한편으로 전후에 고엽제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시달려야 했던 전쟁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참전 군인들은 어느 곳에서도 주역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피해자로 보상받지도 못했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다. 왜곡.은폐된 사실이 특정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기억이 “특정 방향으로 남아” 있어 현재 한국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에 대해 전쟁 특수만을 강조해왔다. 참전 이유와 군인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외면되어 왔다. 마치 일본이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일본이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한국정쟁에 대해 전쟁 특수만을 강조해 서술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셋째,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를 밝혀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함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베트남전쟁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한국에는 “지나간 역사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성찰하는 시민사회”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줄 의무가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민간인 학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참전 병사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로 남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이러한 노력이 있다면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역사를 바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접기
이 상품을 구입하신 분들이 다음 상품도 구입하셨습니다.
더보기
평점
분포
9.2
베트남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고 세계사와 한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입문서. 10여 년간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한 데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서술하고 있기에 신뢰가 간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잘 이루어진 역사서다.
바스티안 2024-02-20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부자를 만드는 풍수명당)읽어보십시오 ♡☆○여름철에 자미원88
이준호88 2025-06-23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와 이에 동참한 한국 정부의 판단을 상세히 보여준다. 전쟁 중 희생 당하고 고엽제로 고통받은 군인들은 아직도 보상받지 못했고,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비극은 참담하다.
에셔 2024-08-01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1)
전체 (3)
리뷰쓰기
공감순

[리뷰] 베트남 전쟁 - 재정의되어야 할 기억
베트남 전쟁은 1955년부터 시작되어 1975년까지 장장 20 년간 이어진 대규모 전쟁이었다. 한국은 전쟁 기간 중 1964년 한국군 파병을 시작하여 1973년 철수할 때까지 총 4차례에 걸쳐 32만 5천여명을 파병했고 이 가운데 5천여명이 전사했다.
이 책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고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는 기간을 주요 시기로 다룬다. 이를 통해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국내외 전개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주한미군의 규모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에 대응하는 안보력 약화를 막기 위한 것, 한∙미 동맹에 대한 고려, 미국의 주한미군 및 한국군 감축 정책에 대한 대응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 도덕적 측면을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세계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공헌한다는 것이다(P28).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국내는 반대 시위로 시끄러웠다. 주한 미 대사관은 이 시위로 한국 정부의 전복 가능성을 생각할 정도였고 중국이 핵 실험에 성공하면서 한층 더 위기는 고조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과 삼각 동맹을 형성하고 여기에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다면 자신들을 심히 위협할 거라 예측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수장이 바뀌며(케네디->존슨) 한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냉전과 안보 위기, 한미동맹에 대한 정치, 군사적 이익이 아니었다면 파병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렇게 총 9년에 걸쳐 이루어진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베트남 파병 시기 동안 한국 경제는 국민총생산 연 평균 8퍼센트 이상의 가파른 성장을 기록했다. 전쟁 특수와 이를 통한 경제성장과 산업화는 박정희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 무렵 징병제가 강화되었고, 주민등록법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이는 국가주의가 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군 감축을 위한 한국군의 현대화(무기 생산)가 이루어지면서 중공업 육성이 가능해져 한국의 산업 구조는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 공업 중심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베트남을 통해 서구의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유입되어 장발이 유행했으며, 미니스커트가 등장했다. 트로트의 인기를 밀어 제치고 통기타 음악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미국과 일본의 전자제품이 유입되었다. 중산층이 생겼으며, 한강 이남의 개발로 부동산 투기가 시작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를 무너지게 했다. 전쟁비 지출이 급증하면서 달러는 더 이상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전쟁 반대 분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수정주의가 판을 치며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반전과 수정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태동한 것이다. 미국에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한 아메리카를 외치게 되었고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들어선 후 극우적인 역사 인식을 내비치면서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이루어졌다.
미국은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쟁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전술로 싸운 전쟁으로 기억한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이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경제 발전을 이룬 것처럼 한국도 베트남전쟁을 통해 이룬 경제적 발전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는 동원했던 군인들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았고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을 감행한 일에 대해서 정부는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낼 수 있었던 동력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참전 군인들의 문제였다. 참전 군인들의 존재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의 어떠한 연구 성과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베트남에서조차 위령비와 증오비를 제외하고는 한국군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렵다(P339). 둘째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꿈으로써 한국은 다르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 사회는 범죄 행위를 미화하고 숨기는 일본의 극우 세력들과는 다르다. 한국은 지나간 역사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성찰하는 시민사회를 갖고 있다(P340).
오늘날에도 한국은 견고한 한미동맹을 내세우며 자유주의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안보 강화는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베트남 전쟁의 한국군 참전의 역사를 보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이 많다고 느꼈다.
- 접기
거리의화가 2023-07-22 공감(24) 댓글(4)
Thanks to
공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쟁의 그림자
전쟁사라고 하면 보통 전황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그 전쟁을 분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사 책에는 전쟁 당사자 양쪽이 어디에 진영을 두었고 어느 방향으로 진격하고 후퇴했으며, 어디에서 승리했고 어디에서 패배했는지 표시한 지도들이 가득 실려 있다. 양쪽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으며 그 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어떤 전략이, 어떤 전투가 승패를 판가름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 박태균 교수의 저서 『베트남 전쟁』에서 주목하는 것은 베트남 전쟁의 전황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게 만들고 지속되게 한 국내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베트남 전쟁이 이후의 역사에 남긴 의미다.
저자는 왜 베트남 전쟁의 진행 과정보다는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역사의 큰 흐름과 베트남 전쟁이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을까?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역사적 기억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남아 있어, 그 외의 중요한 기억들이 잊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역사적 기억은 베트남 전쟁 특수가 한국의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는 영광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실린 베트남 전쟁 관련 서술에서 전쟁 특수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전쟁 특수로 기억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실패한 전쟁으로 기억한다. 잘못된 결정으로 시작해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전술로 싸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 이 두 역사적 기억의 간극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찾는 것은 우리가 놓친 중요한 기억들이다.
저자는 우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될 당시의 미국과 한국의 국내외 정황을 살펴보면서, 미국이 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한국이 왜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는지 각자의 동기를 분석한다. 그런 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지지부진한 공격과 미군과 한국군 내의 불평등, 참혹한 민간인 학살, 전쟁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보상 등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를 살펴본 뒤, 베트남 전쟁이 이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참전자의 증언부터 관련 연구서, 논문부터 미국과 한국의 정부 문서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했고, 미국과 한국,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공과를 밝히고 있기에 이 책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베트남 전쟁 자체를 넘어서서 베트남 전쟁이 있게 한 역사적 흐름과 베트남 전쟁이 역사에 남긴 영향을 살펴보기에, 독자들은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와 그 전후 시기의 한국사와 세계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베트남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다.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부터 사실은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사건이었는데 더 큰 군사적 충돌로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고 파병했다고 하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과연 그 목적을 이루었을까? 조목조목 짚어본 뒤 저자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이다. 미국은 베트남 내의 정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 중에도 잘못된 전술을 펼쳤기에 그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제대로 된 전공은 세우지도 못하고 철수했고, 한국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어내려 철수를 미루다가 애꿎은 군인들만 희생시켰다. 양국에서 부유층, 고위층은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하길 회피해 사회적으로 그보다 낮은 계층에 있던 사람들이 베트남으로 향하게 되었다. 고엽제 후유증과 PTSD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북베트남군의 포로가 되었는데도 한국군 중에는 포로가 한 명도 없고 실종자는 모두 탈영자들이라며 한국 정부가 외면했기에 고국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까지 있다. 사회 한편에는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런데도 전쟁 당시부터 반전 여론이 거셌으며 베트남 전쟁을 하기로 한 미국 정부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대통령들이 인정한 미국과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이러한 전쟁의 그림자들은 가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의 수고와 희생, 그로 인해 얻은 국익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조국과 가족들에게 헌신했다. 그들만을 가해자라고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전쟁의 가해자로 만든 것은 국가라고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한국 정부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게 했기에, 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참전자들에 대한 보상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고.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 정부의 결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그곳에 갔던 모든 사람들은 애국자이며, 그들이 나라를 위해 한 노력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이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해 국가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주국방을 추구해야 한다고만 특별 담화에서 입장을 밝히고, 참전 군인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에 힘쓰지 않았다. 저자가 바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를 직시해 전쟁 특수에만 주목하는 반쪽짜리 기억을 온전한 역사적 기억으로 바꾸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이 저지른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국민이 지키고 싶은 정부가 되는 것이 곧 안보라고 말한다. 또다시 냉전 논리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지 않고, 국민을 지켜주고 국민에게 신뢰를 주어 국민 스스로가 지키고 싶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 접기
바스티안 2024-02-20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베트남 전쟁과 한국의 관계를 한 권 고르라면...
베트남 전쟁과 우리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의 참전 이유-미국의 요구에 의한 참전일 거라는 대중 상식과는 반대로 한국이 참전을 먼저 제안한 이유가 새롭다. 그리고 참전의 결과로 발생한 안보 불안, 민간인 학살 문제, 국내 정치 영향, 그리고 경제 이득이라는 관점의 성찰까지를 짚어 낸다. 또 미국의 참전 이유,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 등 국제 역학까지 잘 서술되어 있다. 저자의 집필 목적처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전환을 위한 입문서로 최적이다.
파란-말 2023-10-05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