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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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이러다 일본에 또 당한다

선우정 사회부장
입력 : 2018.02.07


일본은 자신의 능력을 한국에 불리한 쪽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은 일본에 당한 줄도 모르고 당할 수 있다


선우정 사회부장


지난달 외교부에서 이상한 인사(人事)가 있었다. 이상덕 주(駐)싱가포르 대사가 갑자기 대사직을 그만두고 돌아온 것이다. 후임도 없다. 상대국이 있기 때문에 대사를 이렇게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대사로 가기 전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으로 일했다. 그때 그에게 부여된 일이 '위안부 합의' 실무 협의였다.

열두 번 협의했다. 일본에선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나섰다. 이하라 국장이 9번, 후임 이시카네 국장이 3번 맡았다. 이하라의 전임 국장이자 대표적 한국통 외교관인 스기야마 외무성 심의관도 후원했다. 지금 이하라 국장은 제네바 국제기관 일본정부대표부 대사, 이시카네 국장은 캐나다 대사다. 스기야마 심의관은 일본 외교관 최고위직인 외무성 사무차관에 올랐다가 트럼프 정권 출범에 맞춰 미국 대사로 갔다.


국장급 협의와 더불어 고위급 협의도 8번 열렸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야치 국가안전보장국장을 내세웠다. 외무성 사무차관을 지낸 아베 총리의 최측근 실력자다. 한국에선 주일 대사 출신 이병기 국정원장이 나섰다. 야치 국장은 지금도 요직을 지키면서 일본 안보에 가장 중요한 북한 핵·미사일과 한반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병기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를 대통령에게 상납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상덕 국장의 후임으로 '위안부 합의' 후속 일을 맡은 정병원 동북아국장은 여성에 대한 저녁 자리 발언이 문제가 돼 물러났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장관은 가차 없이 그를 날렸다. 지금 외교부 내에서 동북아국과 일본 전문가의 위상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사실 이번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에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문의 책임을 지고 조세영 동북아국장이 외교부를 떠난 일이 있다.


2015년 4월14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양국의 외교·국방당국이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열렸다. 회의 시작 전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 국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철균 국방부 국제정책차장, 왼쪽은 스즈키 아쓰오 일본 방위성 방위정책국 차장. /조선일보 DB
이렇게 비교하면 반론이 나온다. '인사의 차이야말로 한국이 손해를 보는 합의를 했다는 증거가 아니냐'는 얘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손해를 봤다고 해도 경험 있는 외교관을 날리는 것으로 나라는 또 다른 손실을 본다. 정권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결과를 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부당하다. 국가 간 협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한국의 이상덕·정병원 국장과 달리 일본의 스기야마·이하라·이시카네 국장은 동북아 안보 무대로 돌아와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을 대할 것이다. 반론대로 한국이 대일(對日) 관계에서 늘 손해를 본다면 이런 차이 때문에 늘 손해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잊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말 조선은 청년들을 수신사·신사유람단 등의 이름으로 일본에 보낸 일이 있다. '개화파'라 부르는 세력이 시대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였다. '친일파'로 싸잡아 부르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구한말 친일파와는 질이 달랐다. 하지만 조선은 정세가 변할 때마다 이들을 차례차례 버렸다. 김홍집·홍영식·어윤중은 비참하게 죽었고 유길준·서재필은 나라를 떠났다. 충신들이었다.

일본이라고 당시 모든 국면에서 성공한 게 아니다. 임오군란·갑신정변·아관파천은 일본에 '외교 참사'에 가까웠지만 인재를 버리지 않았다. 고무라나 하라처럼 가장 유능한 관료, 이노우에처럼 가장 강력한 정치가를 조선 공사(지금의 대사)로 배치했다. 훗날 외무상이 된 고무라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한국 강점(强占)을 주도했다. 하라는 총리로 성장했다. 세상을 보는 시야 차이가 인력 차이를 만들었고, 인력 차이가 역사의 차이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요직엔 일본 전문가가 없다. 일본의 참모습을 아는 인사는 신문기자 때 주일 특파원을 지낸 이낙연 총리가 유일하다는 말도 있다. 외교부의 이상한 인사처럼 '있는' 전문가도 내친다. 우리 정부는 일본을 미·중의 종속 변수로 여기는 듯하다. 중·러를 다루면 일본은 저절로 움직인다는 조선 조정의 세계관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다른 쪽에선 군국주의 일본이 한국을 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극단과 극단을 오가면서 실력은 키우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 한국을 삼킬 능력은 없다. 하지만 동북아의 외교 주역으로 강대국을 요리해 한반도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국에 유리한 쪽으로 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일본을 다뤄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 불리한 쪽으로 능력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한국은 일본에 또 당한다. 이번엔 당한 줄도 모르고 당할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6/20180206030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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