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

Du Hyeogn Cha우리의 대북정책을 되돌아보자 (2): 어디까지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적인가?



(2) Du Hyeogn Cha

Du Hyeogn Cha
2 April at 13:15 ·



우리의 대북정책을 되돌아보자 (2):
어디까지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적인가?

이미 이전 포스트를 통해 남북한 관계 역시 ‘국가 對 국가’ 관계의 구도를 적용하는 것이 안정적 공존이나 상호 적개심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것은 과연 상대방이 주장하는 어떤 의제까지를 수용하는 것이 문제의 원만한 해결, 특히 비핵화에 도움이 될까이다.

북한이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것은 ‘대북 적대시 정책’이 결국 북한 핵무장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 해법을 찾는 데에는 이 말의 어느 정도가 진실이고 선의인가를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될 수밖에 없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완전한 선의 혹은 악의로만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이건 한ㆍ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우리가 ‘동맹 파트너’이고 한국을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액면 그대로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동맹이 아닌, 60여 년 전에 전쟁을 치루고 국경을 마주대고 있는 상대방의 주장의 어디까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야 할까.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적대시 정책’의 해소는 ‘군사위협의 제거와 체제안전 보장’이다. 이 주장에는 결국 한국 혹은 한ㆍ미가 북한에 끊임없이 군사위협을 가하고 체제의 안전을 흔들어왔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과거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해도 항상 도발자에게는 ‘반격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기에 국가 간의 갈등은 다분히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위협인식과 미러 이미지의 결과이다.

그런데, 그것이 반격 강박관념인지 도발 의지인지를 우리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나. 상대 행위자의 일반적 정향과 그 동안의 경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수많은 사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래, 과거 군사독재기간 중에는 정권안보 때문에 조작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에도 지속된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행위는 도대체 어떤 의도의 발로로 해석해야 하나? 북한의 대북 군사위협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체제 안전의 보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 외형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불가침 약속을 한다면 외부로부터의 안전은 보장된다. 그런데,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내부적 모순은 또 그로 인한 체제불안을 과연 무엇으로 해소해줄까?

많은 전체주의 국가들이 내부 불만을 치환(置換)시키기 위해 국경 너머의 적(敵)을 필요로 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한 국가에서 권위주의적 정권이 탄생하면 국경전쟁이 빈발했던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진 북한은 과연 우리를 ‘민족’으로 공존하려 할까, 아니면 가장 만만한 국경너머의 악당 만들기 대상으로 삼을까. 누구도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완전한 선의의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북한의 행태를 극단적 선의론으로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미국이 잦은 약속 위반을 했다고 한다.

경수로 공급의 지원이나 미ㆍ북 수교 약속의 위반을 그 대표적 사례로 든다. 미안하지만, 1990년대 중반 북한까지도 연락사무소의 교환등과 같은 수교 前단계 조치를 그렇게 강력하게 요구한 적이 없다. 아니, 미국의 입장에서 그럼 강릉 잠수정 침투나 씨-아팩스 호 사건과 같은 호전적 정책을 자기 동맹국에 대해 구사하는 입장에서 덜컥 수교에 적극적이라면 오히려 우리가 ‘미국놈들’을 믿을 수 있었을까?

경수로 공급의 지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 미국은 민주적 정체를 특징으로 한다. 경수로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해도 공개적 입찰을 거쳐 투명하게 진행하여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처럼 정부가 일방 계약하기도 어렵다. 이 기간소요로 인한 것을 약속위반으로 손가락질 해대는 행위를 무엇으로 간주해야 하나? ‘약속위반’ 이야기 제대로 해 볼까? 북한이 기존 플루토늄 이외에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로 시도된다, 그리고 2002년 이를 고백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은 클린턴 행정부 시대로 북ㆍ미 관계가 꽤 좋았던 시기에 해당한다. 비교적 선의로 나오는 상대방의 약속위반에 대비해 더 큰 약속위반을 했다고 한들 이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러기에 북한 비핵화 해법의 출발은 북한이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이야기한 위협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게 헛소리이고 핑계이며 일방적 강박증인지, 아니면 일리 있는 이야기인지에 따라 해법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대승적 견지에서 북한의 주관적 우려도 일정부분 해소해주는 자세가 분명 필요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가장 비싼 값에” 비핵화를 사들일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한 번 상황을 보는 ‘내재적 접근’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각 자체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체화해 버린 ‘가치의 내면화’를 할 바에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

. 우리가 그 길을 택해야 하는가? 이념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걸 제대로, 다른 이들이 판단할 수 있게 투명성 있게 하라는 말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보이지 말고. 비핵화 문제에 대한 공론화에 있어 우리가 짚어보아야 할 두 번째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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