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2

150218 Jung-hwan Cheon - * 메모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딜레마 또는 동상이몽 0) 시초...

Jung-hwan Cheon - * 메모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딜레마 또는 동상이몽 0) 시초...

* 메모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딜레마 또는 동상이몽
0) 시초
문제가 시작된 최초에 <제국의 위안부>의 논리에는 동조 못하지만 박유하 선생에 대한 마녀사냥에 대해 반대한다 했다. 그런데,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을 내세워 책을 고소하는 바람에 문제는 전혀 다른 게 돼 버렸다. 고소와 판금 같은 법적 조치야말로 문제를 꼬이게 만들고 오히려 저자와 그 책에 대해 다른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1) 확장
2월 17일에 1심 법원이 ‘명예훼손’을 판단함으로써 이제 문제는 더 크게 확장된다.
이 책은 위태로운 (정치적) 한일관계 사이에서 소위 ‘금서’가 됐고, 앞으로도 한일 사이의 인식 차이나 갈등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박유하 선생이나 책이 애초의 ‘선의’와는 반대로, 한일 ‘화해’나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콘이나 도구가 되기는커녕 더 거리가 멀어졌다는 뜻이다.
2) 입체적 딜레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내가 문외한이라는 점과 저자와의 인연 때문에 냉정한 평가와 언사가 어렵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사태를 ‘객관적, 입체적으로’ 보고자 조금 노력해왔다.
(다면적인 문제들에 대한 선택적 판단은 각자의 몫이고, 사실관계에 틀린 것이 있다면 지적 바란다.)
결론은 ‘딜레마’다. <제국의 위안부> 및 박선생의 입장과 판금 조치 양자에 대해 다 반대해야 하는 곤혹이다. 양비론을 말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반대는 서로 다른 것과 비대칭적인 것을 향한다. 하나는 박유하라는 개인과 비물질적이며 관념적인 것이고, 후자는 법과 집단의 ‘현실’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매우 어렵고 미묘하다. 개인을 비판하거나 단죄하는 일은 더 높은 윤리를 요구하고, ‘법’이 끼어드는 순간 정신이나 ‘현실’조차 모두 찌그러지고 축약된다.(따로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3)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위안부’ 문제 때문에 ‘친일파’의 혐의를 쓴 박유하 선생이나 ‘뉴라이트’에서 신념을 갖고(?) 활동하는 이영훈 선생의 ‘학문’이나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그 논리의 문제는 별도) 그러나 그 ‘자유’는 기실 ‘역사’나 ‘현실’의 맥락에 비하면 허망한 것일지 모른다. 물론 그런 점 때문에 자유는 되레 큰 빛과 힘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인문학이 기생학문이 되고 ‘현실’과 ‘인간’을 거의 논하지 못하는 오늘날, 나는 오히려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다는 ‘학문의 책임, 표현의 책임’도 생각해본다. 우리는 ‘학문’과 ‘표현’이라 말할 때 어떤 무한한 가치중립적 시공간과 문자, 텍스트들을 가정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개 가상일 뿐이다. 심지어 ‘사실’조차 그럴 것이다. 이는 객관성과 가치문제에 기본에 속하는 것이다.
맥락을 사상한 ‘자유’는 공소하다. ‘샤를리앱도’를 포함한 일련의 ‘표현의 자유’ 문제의 교훈이 여기 있다 믿는다.
3-1) <제국의 위안부>의 역설
이는 아슬아슬한 논리적 줄타기를 하는 책이며, 결국 ‘사실’을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고 뵈지 않는다. 이게 <제국의 위안부>의 가장 큰 역설이다.
왜 이미지화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실이 있다는 걸 계몽적으로 밝히는 학술서가
오히려, 식민지 지배의 본질이나 국가 책임이라는 더 큰 ‘사실’을 희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이 점이 저자가 놓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용어 선택은 별도로 심각하다. 이 자체에 대한 문제는 이미 논의가 진행됐으므로 생략한다. 법정에서의 논란은 박유하 선생의 페북을 참조.)
그리고 일본어본은 얼마나 내용이 바뀌었는지 모르는데, 믿을만한 지인의 도움으로 그에 대한 다음의 서평을 소개한다. 정영환이라는 재일 소장 학자의 날카로운 평이다.

4) 책이 나오고 난 뒤에
<나눔의 집>의 행동(시위 등)과 고소가 무리한 것이며,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고소를 취하하게 만드려는 일부 노력이 있었다 들었다. 그리고 법원도 중재를 시도했다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양측은 묵은 감정과 이런저런 이해관계 하에서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나눔의 집>측에 성찰을 기대하기도 물론 어려운 일이다. 사실 어제 법원의 판단은 이에 비하면 덜 심각할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법적 결과’일 뿐인 것이다.
5) 제국의 관점과 식민지 서발턴
박유하 선생이 그간 식민지 문제나 위안부 할머니들 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많다는 점이 환기돼야 한다.
그는 ‘가처분심리최종준비서’에서 자신이 일본(우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타니 고진, 오에 겐자브로, 우에노 치즈코 등 일본의 과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진보지식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썼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일본의 과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진보지식인들”이 진정 식민지 서발턴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을까? 박선생이 중대한 오류나 한계를 노정하는 데가 바로 여기인 듯하다. 그가 ‘일본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점 또한 여기다.
박선생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 단지 서경식 같은 이나 이런저런 민족주의자 뿐 아니라, 허다한 여성주의자와 식민지 연구자, 그리고 자이니치들이 포함돼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타, 인신비판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박선생이 그간 일본 언론이나 학계에 대해 취한 태도와 할머니들에 대해 취한 태도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6) 동상이몽과 ‘한나 아렌트’
소식통들로부터 일본의 상황을 들으니 현재 일본 사회는 박유하 선생과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 민족주의와 그 역사 왜곡에 맞선, 수난 당하는 ‘양심’이나 ‘영웅’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그런 경향이 커 심각한 면이 있다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오래전부터 NHK는 박유하 선생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있고, <제국의 위안부> 일역판에 대한 일본의 서평들은 박선생을 ‘한국의 한나 아렌트’라 불렀다. 진보적이라는 <아사히>부터 그랬다.
종전 70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의 기념과 미래 한일관계의 동상이몽의 일본 측 소재로 박유하 선생과 <제국의 위안부>가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는 올곧게 ‘진실’을 향해 있다기보다, 한일의 서로 다른 맥락과 관계 사이에 힘겹게 ‘낑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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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이 상황에서 저도 딜레마에 빠져 있군요. 저는 개인적 관계보다는 아시다시피 서평회에서 받아읽은 책에 대하여 최초단계에서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한 책임을 지고 싶었을 뿐이죠. 말씀드렸다시피 구체적 한일관계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라는 존재와 국가주의의 관게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의했지요.
나머지 견해는 천샘과 비슷하구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느 한 편--주로 박유하를 공격하는 편에 싫은 소리를 하다가 바로 공격을 당해본 두어 차례의 경험이 좀 끔찍해집니다. 
재판으로 가는 것에 대한 반대와 이 책에 대한 옹호라는 전혀 다른 층위의 폭력적 겹침이랄까요. 몹시 우울한데, 도망갈 데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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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어떻든, 제가 박유하 선생 책에 대해 가장 비판한 대목은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는데, 그에 대해선 제 기억으론 이 논란이 발생한 이후 견해를 수정한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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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천정환 선생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며 그에 힘입어 게으른 저도 한마디 덧붙입니다. 박유하선생 스스로도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데 적지 않은 동요를 보이는 문제적 텍스트가 <제국의 위안부>인 듯하네요. 아마도 박유하 선생에게는 학자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어쩌면 자신의 동요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선 저도 공부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저는 현재 진행되는 마녀사냥에는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지금 더 힘겨운 시험대에 든 것은 박유하선생이 아니라 한국의 지식인사회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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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hwan Cheon 노혜경 예, 말씀대로 이 사태는 우리한테도 어떤 실존적(?) 선택(물론 아주 조그만) 을 요구했어요. 주로는 박선생님이 성실한 학자이고 말도 안 되는 무지막지한 공격까지 받는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저는 좀 비겁하거나 문제를 아주 정확히는 잘 모르는 편인데, 아무튼 앞으로도 딜레마는 깊고 운신의 폭은 좁은 듯해요. 박선생님도 어쩌면 비슷하리라 뵈는데요... 
김명인 네, 선생님 말씀대로 지식인 사회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많은데, 여유가 있으면 이에 대해 조금 더 관찰+묘사해보겠습니다. 평가는 어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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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종 " 왜 이미지화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실이 있다는 걸 계몽적으로 밝히는 학술서가 
오히려, 식민지 지배의 본질이나 국가 책임이라는 더 큰 ‘사실’을 희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 이부분이 제일 중요한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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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종 박유하교수가 체화했다는 일본지식인들은 그럼 공평무사하고 진보적이냐? 이것 또한 물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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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Soh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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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종 박교수가 배운 일본 지식인의 '이 문제에 대한 계몽' 속에서는 제국 일본의 책임을 형해화하는 교묘한 논리가 심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걸 가해자 일본의 맥락에서 말할 때와 우리의 입장에서 말할 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박유하교수는 간과했다. 어째튼 일본에서 영웅 대접에 8만권이라 팔렸다니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이해못하는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으로 가시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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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저역시 박선생이 성실한 학자라는 점과 말도 안되는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는다는 점이 마음에 몹시 걸립니다. 그런 한편, 박선생이 헤매고 있는 지점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어요. 저 역시 이쪽에 대해서는 워낙 과문한지라, 규범적으로밖에는 생각하기 어렵죠. 하지만 을사늑약부터 한일병탄을 거쳐 식민지배로 이어지는 식민시기에 대한, 소위 일본의 이른바 법적 정당성을 뒤집는 연구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법적 정당성이란 결국 게임규칙을 일본(제국)이 정한 위에서 가능한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부역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이루어지길 바라구요. 우리 내부의 부역자들--포주니 업자니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오랜 식민지배에는 우리 내부의 부역자가 실제 지배자들보다 더 머리아픈 존재가 되기도 하죠--에 대한 비판이 일본 지배의 정당성 인정으로 번역되는 이런 상황이, 독해의 문제인지 문장기술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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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종 불가능에 가까운 말씀이시네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정치권력도 그렇고 학문을 하는 절대 대다수 분들이라는 게 친일파의 후손들인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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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Park Samjong 거친 형식으로지만 박유하교수의 작업 중에 그런 단초가 있다고 저는 보구요. 그런 점이 이영훈 류와는 좀 다르게 보이죠. 물론 이또한, 예단없이 보기 위해선 제 공부가 깊어야 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다보니.... 여튼 선언적 단죄에 머믈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반대편에서 선언적 단죄를 당하는 대열에 저도 서 있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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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법적 책임이 없다, 라는 일본측 논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우회로를 찾던 박유하교수가 이런 논란을 겪으면서 자신의 프레임을 수정해가는 것을 보았다고 느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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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chan Baek 참 답답하다. 종북주의 같은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어서는 그 정도를 물러서지 않는 집단들이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매우 중도적이며 마치 화이트 칼라만이 이해할수 있다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한일간의 관계를 위해서라던가 학술적이라던가 하는 정말 더러운 변명의 여지만을 던지는 오래된 식민사관에 그저 치가 떨릴뿐이다 한국의 국적을 가지면서도 지배국의 역사관을 배경으로 썼다는 것이 무죄일까 그것이 과연 중도 적이며 학술적일까 침략국의 애도서가 되고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슬픈 역사적 결과이며 청산되지 못한 식민사관이 명백할 뿐이다 여전히 우리 교육과 역사관에 배인 친일적 식민사관이 곳곳에 잔재하고 획일적인 군국사관의 교육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강요하는 현실에서 일본에서 유학하고 영향받은 정체성없는 글이 내 무지로서는 결코 학문이니 어쩌니 하는 아류들의 말로 포장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본으로 인해 철도가 놓이고 신문물을 받아들일수 있었다는 역사 또한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는 애기들을 접하는 현실에서 글쎄다 당신의 조국과 당신의 역사를 다시 공부해 보시라 
역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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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백종찬 지배국의 역사관이라도 단정하시는 근거가 뭘까요? 저는 박유하 교수가 일본측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애쓴 흔적은 좀 보고 있으나, 일본의 역사관을 답습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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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chan Baek 18.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경제활동이 가능한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 속의 일이다.(112쪽)
19.위안부 중에 조선인 여성이 많았던 것은 식민지의 빈곤과 인신매매조직의 활성화 등 전체 사회구조의 결과이다.(112) 박유하 교수가 답변한 내용을 읽으면서 또 책에 서술한 문장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이 문장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 볼수 있겠으나 이 단면에
는 국가와 국가간의 식민지 상황이 아닌 식민지국안에서의 여성적입장이 나오게 됩니다. 또한 식민지의 빈곤, 인신매매의 조직화라는 변명아닌 즉 식민지국가에게 책임을 던지는 듯한 내용과 전체사회구조의 결과라는 모호한 범위의 내용으로 애기합니다. 물론 추후 박교수는 전체사회구조라는 내용이 그런 식민지상황과 책임에 대해서 애기한것으로 매우 충분했다는 태도를 취합니다만 이런 애매모호한 문장은 매우 많은 곳에서 발견되어 집니다. 즉 여성의 패미니즘적 입장에서 매춘과 위안부라는 경게선에서 어떠한 주장을 해나기위한 모순에 빠진다고 볼수있습니다. --일반 매춘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위안부>가 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1970년의 서울신문에서도 <처음에는 화류계 여성들이 갔다>고 분명히 쓰고 있습니다. 나눔의 집에 계시던 배춘희 할머니도 자신이 있던 집이 유곽이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반 매춘과 위안부는 함께 <가난과 남성 우월주의적 가부장제>가 만듭니다. 거기에 <국가주의(본서 33쪽 10줄)>가 개입할 때 <위안부>가 만들어집니다. 화류계여성이 많았으며 즉 조선안에 이미 매춘부가 많았으며 그 사람들이 위안부가 되었다. 그것은 가난과 + 남성우월주의 + 국가주의 로 위안부가 만들어진다라는 문장을 보면 마치 위안부를 가난, 남성우월주의 거기에 붙여진 국가주의라는 매우 위험한 공식을 만들어 냅니다. 즉 식민지였던 아니 일본이였던 지역의 일본여인들이 가난과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국가주의로 국가로부터 희생당했다 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과연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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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Eunkyu 강제 징집 위안부?
자원 부역 매춘부?
한국인 : 중국인 : 일본인 : 타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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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나눔의 집이 이제 남은게 뭘까요? 뭘더 공격받아야 할까요? 정신줄 나간 그들은 함께 내일 밥한끼 드리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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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한나 아렌트요? 참 한나 아렌트 아무데나 갖다 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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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 명확한 선악판단의 문제를 복합적 인식의 문제로 끌고들어가는 게 문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성폭력 범죄의 책임을 아웃소싱과 파견근로의 논리,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책임 등을 들어 회피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다만 그변명하는 사람이가해국이 아닌 피해국가에서 나와 황당할뿐이죠.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지에서의 한국인남성들의 폭력과 무책임에 대해 동일한 논리로 한국인 남성들의 책임없음을 옹호하는 글이 나오면 황당할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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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seok Lee 일본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는데 마치 그런 것처럼 왜곡하네요. 자본 제국주의 가부장제 파시즘의 구조하에서 일어난 일이고 행위자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자본가의 착취는 자본주의 구조속에서 일어나지만 반자본가 투쟁으로 자본가 개인에게도 책임을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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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천정환 선생님, 많이 배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글을 공유해도 될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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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Jung-hwan Cheon 감사합니다, 선생님. 재일조선인/디아스포라 인문독회 모임인 '헬로 스트레인저' 그룹방에도 초대 드렸는데요. 폐가 되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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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현 학문의 책임 와닿네요...
참으로 개탄할 일이로고, 지도층은 친일파 득세하고, 학문한다 하는 자들의 허영심에 히로이또 장학생들이 현학적인 문체로 곡학아세 …이 나라에서는 지극히 마땅한, 정의가 바로 서기 이리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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