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4

곽곽대원 | Facebook 위안부

(8) 곽곽대원 | Facebook:

3 Oc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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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 위안부 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징적인 이슈 화이팅이었다 부부는 아마 이 작가를 알지 않을까 한다 2007년 한국전시도 했단다 뉴저지에만 위안부 상이 2개나 된단다 스페니시 시장이 있는 도시는 위안부 상을 대대적인 행사로 시민 학생 표창도 하고 사회적 인권문제로 활용하는 것 같아 앞으로 위안부 상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운성이와 서경인 좋겠다 ㅎ 작가는 함께 점심을 원했지만 시간 탓에 맘속으로 느끼고 빨리 방을 구해야 했다 어제 전시 기획으로 피곤한 큐레이터 한선생은 정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도 나를 위해 숙소를 알아준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의 불찰 탓이다 당장 맨하탄 자리를 알아보려니 여기도 없고 풀러싱도 방이 없단다 게다가 맨하탄서 넘 멀다 한선생이 플러싱에 방을 예약하고 차를 이동하려는.. 중 이번 토요일 30년만에 만나는 뉴저지서 한의사하는 상우가 좋은 집을 잡았다 가격도 저렴, 이제 맨하탄 시내서 밤늦게 쌩쌩 다니는 뉴요커가 될 수 있다 난 여행을 감으로 다닌다 내 감을 스스로 존중하니 여행중 그때 그때 닥치는 상황을 즐기려는 못된 버릇이 있다 그 탓에 과거 베니스 비엔나레 보러갔다가 호텔을 못 구하고 세계 여행자 처럼 노숙 흉내를 내다 베니스역 앞에서 카메라가 든 가방 여권 일체를 도난 당했다 그래도 여전히 이 미련한 방식을 고수한다 ㅋ 추신= 작가는 뉴저지 근방 도서관 행정직 사서다 아내가 한국인, 작가 이름을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쳐서 보시길^^; Steve Cavallo Www. Stevecavall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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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Ju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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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에서는 필리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현대적으로 개작한 ‘위안부’ 문제 연극 <봉선화>를 성공시켰고, 2014년 7월에 미주 순회공연에 나섰다.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첫날 갑자기 나눔의 집 소속의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 등은 <봉선화>는 역사를 왜곡한 잘못된 연극이라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필리핀 ‘위안부’ 생활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던 할머니들이 기존에 필리핀에서 ‘위안부’ 생활을 경험하셨던 많은 할머니들이 남긴 수많은 증언 기록과 유물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그러자 우리의 글렌데일 공연을 후원해주기로 했던 <가주한미포럼>에서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갑자기 후원을 철회했다. 현재 정의연 비난에 동참하고 있는 김현정 씨가 당시 <가주한미포럼>의 사무국장이었다. 그로 인해 글렌데일 공연에 동포들의 관람이 다소 저조하기는 했지만, 이창엽 글렌데일시 자매도시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돕고, 미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미국 시민들이 관람하고 극찬해준 덕분에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 시카고 공연은 <시카고 중앙일보>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지만, 당시 뉴욕 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 등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도 <나눔의 집> 입장을 거들어 언론에서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바람에 뉴욕 공연에서는 관객동원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나눔의 집> 측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당시 세종문화회관 박인배 사장이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자고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인데 그런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위안부’ 관련 운동 전체에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우리는 대응을 자제하고 그런 비난과 어려움을 참고 감수하기로 하였다. 물론 그로 인한 금전적 손실과 고통은 적지 않았다. 그때가 바로 2013년 우리 연극을 명칭 후원했던 <나눔의 집> 측에서 독자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꽃신> 제작에 이미 2014년 연초부터 착수한 뒤였다. 2014년 하반기 윤복희 등 많은 배우가 재능기부로 출연했던 <꽃신>은 성공을 거뒀고 그로 인해 <나눔의 집>은 많은 후원금과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다. <꽃신>도 훌륭한 작품이긴 하지만 해외공연도 기획했던 <나눔의 집> 측에서는 악의적인 마타도어로 미리 경쟁작품을 제거하는 데 나섰고 그 선봉에 할머니들을 내세웠던 것으로 이해된다. 3. 그동안 기자회견을 통해 윤미향과 정의연을 비난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 JTBC와의 인터뷰에서 <나눔의 집> 문제도 ‘적당히 해라’라고 지적했으며 나눔의 집 운영자들이 무릎을 꿇고 사과했었다고 슬쩍 말을 흘렸지만, <나눔의 집> 운영자들은 그 점을 부인했다. 자신이 기거했었고 이후 계속 관련을 맺었던 <나눔의 집>의 문제, 즉, 내부직원 7명이 참다못해 검찰에 고발할 정도로 심각했던 회계부정을 그리 잘 알면서도 그녀는 왜 그 문제로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알았다면 그냥 ‘적당히 해 먹어라’라고 핀잔만 주고 말일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신문기사만 봐서 자세한 건 잘 모른다는 <정의연> 문제에는 그렇게 핏대를 올리며 기자회견을 했던 양반이 말이다. 4. 검찰도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미 2월에 고발이 들어간 <나눔의 집>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지 않고 있던 검찰은 5월 14일에 <사준모>라는 정체불명의 극우단체가 수구 언론들이 제기한 단순한 의혹만으로 <정의연>을 고발하자 5월 20일 <정의연> 사무실을 곧바로 압수수색 했다. 이 얼마나 편파적인 수사이며 진영논리에 입각한 수색이란 말인가? 5.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윤미향과 정의연을 비난했던 말 중에 상당수가 거짓말이었음도 이미 입증되었다. 자신이 받을 후원금을 못 받았다는 말도, 수요집회가 끝나고 밥을 사주지 않았다는 말도, 정의연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지 않았다는 말도 모두 당시의 송금자료와 당시 식사 자리나 증언 청취에 함께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은 그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을 생생히 밝혀주고 있다. 6. 이용수 할머니께선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공로가 지대하신 분이시지만, 이용수 할머니 등이 김복동 할머니가 윤미향에게 끌려다녔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윤미향 대표와 정의연이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따랐다고 해야 한다. 김복동 할머니께선 생전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으면 용서할 것이고 그에 따라 배상 얘기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하셔서 적어도 서울에서 기거하신 2003년 부터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여론을 주도하셨고 정의연도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김복동 할머니와는 조금 다른 입장이셨던 이용수 할머니도 결국 김복동 할머니의 설득력이 워낙 강해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7. <정의연>은 오래전부터 횡령이나 회계부정을 시도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예전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분명히 후원금을 전달받고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 적이 많아 <정의연>은 수십 년 전 영수증을 보존기한이 지났음에도 폐기처리를 못 하고 지금까지 보관해왔고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번처럼 증거로 제시해왔다. 언론이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그동안 <정의연>은 회계감사를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나 그동안 <정의연>은 정기적으로 꾸준히 정부 기관의 ‘회계감사(회계 확인)’를 받아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아 왔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회계처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거대한 종교단체가 뒷배로 있어 후원금 감사에 소홀했던 <나눔의 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었다. 또 1995년 무라야마 총리가 개인 자격으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고 <여성을 위한 아시아국민기금>이라는 민간위로금을 모금해 전달하겠다고 했고, 92년 심미자 등 16명의 할머니가 결성한 <무궁화 자매회>를 주축으로 96년에 그 사과와 보상금을 받아들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 간에서는 큰 분열이 있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도 정부 보상금도 아닌 그 위로금을 김복동 할머니 등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거부했고, 국민 대다수도 반대했다. 이후 정대협은 위로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신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해 국민들의 후원금을 전달해드렸고, 정부도 정대협의 노력에 호응해 일본의 위로금을 받지 않은 할머니들에게 지원책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미자 할머니 등 33명의 할머니는 2004년 <세계평화무궁화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정대협>을 “할머니들을 ...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며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일본의 사과의 배상을 받았으니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본다는 기존의 자신들 입장과는 모순되는 행동을 보이며 끊임없이 <정대협>을 공격해온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정대협>이 횡령이나 회계부정을 시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8. 2014년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내세운 <나눔의 집> 측의 세종문화회관 공격에는 일부 미국 한인사회 진보단체 인사도 사정을 잘 모르고 거들긴 했지만, 올해 <정의연> 공격에 나선 단체는 국내 극우성향의 단체들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그리고 미국의 수많은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중에서 과거 세종문화회관 공격에 가담했던 김현정 대표가 이끄는 <CARE(구 가주한미포럼)>밖에 없다. 그런 단체들이 어떤 단체들인지 살펴보자. 우선 최근 윤미향과 정의연을 맹비난하고 나선 양순임과 그녀가 대표로 있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 대해 살펴보면, 양순임은 1943년 자신이 8살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강제 징용피해 보상신청을 하면서 38살 때인 1973년부터 <태평양유족회>에 참여하여 일제 강제동원 군인, 군속, 노무자, 여자 근로정신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 한국인 피해자와 유가족이 피해보상을 받는 일에 나섰고, 1992년에는 직접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를 설립해 대표를 맡아 일하면서, 심미자 할머니의 <무궁화회>가 주도한 시위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한다. 이 <태평양전쟁 유족회>는 2010년 3월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을 만든 뒤 2011년 초까지 일본으로부터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보상금을 받아주겠다며 제삼자도 보상금 신청이 가능하다는 등으로 속여 3만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면서 총 15억여 원을 받아 가로챈 상습사기 혐의 등으로 양순임 대표, 장 모 씨, 임 모 씨 등 총 3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의 사무총장은 바로 양순임 대표의 아들 임 모 씨였다. 이때 해임된 양 대표는 “양 회장이 ‘장 씨의 꼬임에 넘어가’ 결과적으로 장 씨의 사기행각을 용이하게 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공동정범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받았고, 임 씨도 일부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장 씨는 사기 혐의로 징역 5년 4개월을 선고받았다. 단체구성원 상당수가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대표와 사무총장만 그 일과 관련이 없다는 판결이 나온 점은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이지만 현재로선 진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후 양순임은 2014년에 다시 대표(회장)직으로 복귀했다. 9. 그런데 이런 <태평양전쟁 유족회>에서 2005~6년경 2년간 사무총장직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최근 이용수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을 주선했다는 의심을 받는 최용상 <가자! 평화인권당> 대표다. 그는 <태평양전쟁 유족회>에서 양순임 대표와 갈등을 빚다가 2015년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라는 단체를 별도로 만들어 활동하면서 이 단체를 기반으로 2017년 <강제동원일제피해일본군위안부인권정당>이란 정당을 창당한 뒤, 2020년 이정희 대표가 이끄는 중도성향의 평화통일당 창당 준비위원회와 통합하여 <가자! 평화인권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심미자 할머니나 양순임 대표는 희생자들이 살아있을 때 배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정대협과 함께한 할머니들이나 나눔의 집 소속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중요하다고 본 입장과는 차이를 보이며 정의연과 대립각을 세워왔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최용상 대표는 사뭇 결이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새누리당 과거사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고 그가 창설한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는 2015년에 `일제강제징용 소송재판에 대한 중간설명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새누리당 여상규 국회의원이 축전을 보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올해 3월 29일 일본 극우 잡지 <週刊文春>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종료됐으며,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면서 ‘정의연이 위안부의 역사를 지우려 한다’ ‘수요집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4월 2일 <가자! 평화인권당> 발대식에서는 “앞으로 정대협(정의기억연대)과 윤미향 씨의 반미, 반일 운동을 강력히 저지함과 더불어,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을 탄압했던 범죄행위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그동안 강제징용피해자들을 우롱한 것을 강력히 규탄하고, 전국 23만 피해자들이 대여투쟁 및 정권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며 극우적인 선언을 발표했었다. 10. 이용수 할머니께선 기자회견에서 “엊그제까지도” <정대협>이 그런 줄 “몰랐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면 바로 “엊그제”에 그런 정보를 전해준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확실해진다. 이와 관련하여 곽혜경, 곽수연, 곽나연, 정나연 등 다수의 이름을 쓰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의 수양딸이 5월 14일 자 페이스북에서 “이 논란 당신이 만든 거야. 나 없을 때 당신이 엄마한테 접근해서 엄마에게 펌프시키고 청와대까지 댁 비례대표 만들어주라는 전화, 누구한테 시켰는지 기억이 안 나시나? 댁이 지금 윤미향 씨와 분열시킨 당사자면서 ... 이간질은 지가 다해놓고 어디서 아닌 척이야?”라고 쓴 것은 그 점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그녀가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문을 애초에 ‘시민모임’ 측에서 작성한 내용 중에 윤미향을 비난하는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새롭게 작성했다고 말한 점은 그녀가 윤미향과의 사이가 더 벌어지지 않게 하고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해 나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11. 윤미향을 공격하는 데 나선 극우단체 중에는 고발 전문단체인 <사법시험준비생 모임>과 시위 전문단체인 황경구의 <대한민국 애국순찰팀>, 주옥순의 <엄마부대>가 있다. 특히 황경구는 2차 기자회견장에서 무대 위에 올라가 이용수 할머니와 ‘수고하셨다’는 얘기를 나누고 마이크를 가지러 무대 위에 올라갈 정도로 그 기자회견에 깊이 관여했음이 드러났다. 기자회견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이 무대 위에 스스럼없이 올라갈 수는 없다. 12. 미국에 있는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중에서는 유독 <CARE(전 가주한미포럼>의 김현정 대표만이 윤미향을 비난하는 데 나섰다. 2014년 <나눔의 집> 측에서 세종문화회관을 공격할 때 가담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정의연>이 글렌데일 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한 공로를 가로챘다는 주장을 했는데, <정의연>을 비롯해서 어느 위안부 운동단체도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동참했다고 하지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공치사를 한 적이 없다. 왜냐면 그 소녀상 건립은 글렌데일 시 고위공무원으로 <글렌데일 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관>이자 <글렌데일 시 자매도시 위원회 위원장>인 이창엽 씨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김현정 대표는 현재 글렌데일시 중앙공원에 있는 소녀상 이전을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창엽 씨는 중앙공원 조경 개선공사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올 것이고, 시 정부도 그것을 위한 1,85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해놓은 상태이며 김현정 씨가 모금해서 시에 전달해도 시에서는 받아쓸 수가 없는데, 이해할 수 없는 모금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시 관계자에게서 그녀에게 모금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3. 윤미향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횡령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하나 같이 근거가 없다는 점이 이미 다 밝혀졌다. 안성 쉼터를 비싸게 산 게 아니냐는 점은 이미 그 쉼터를 짓고 팔았던 금호스틸하우스 김운근 대표가 공사비 내역을 상세히 공개했고 그 공법에 따른 건축표준단가를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지도 기자들에게 알려줬지만, 기자들은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기사를 써댔다. 안성 쉼터 기부액을 돌려줘야 하는 시기가 지난 입장에서 당시 주변에 수목장이 들어선다는 소문 때문에 집값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당시 주민들 의 수목장 건립 반대 현수막 사진과 당시의 지역신문 기사 등에서 확인된다. 윤미향 씨의 아버지가 안성쉼터 관리인으로 일했고 6년간 7,500만 원 즉 월 100만 원 정도의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으며, 그가 쉼터에는 기거하지 말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기거하도록 조치한 점을 보면 윤미향이 얼마나 평소에 논란의 소지를 없애려고 신경을 썼었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4월의 국세청 보고서에 20억이 누락된 점에 대해서는 정의연이 3월의 보고 때와 연말 결산서에서는 누락하지 않았고, 당시 정부 기관이 가상계좌를 통한 보조금 지급방식을 처음으로 채택함으로 인한 혼선임을 공익법인회계 전문 회계사인 삼화회계법인의 최호윤 회계사가 이미 밝혔다. 14. 그 밖에 윤미향의 주택자금 마련에 관해서는 필자도 이미 밝혔다시피 93년 남편과 돈을 합쳐 마련한 1500만 원의 전세자금에서 출발해서 95년 4500만 원에 빌라를 구입한 점은 윤미향이 자신의 모든 생활을 온종일 <정의연> 활동에 바쳤고, 남편이 94~97년 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딸은 교회 사택 즉 친정집에 맡겨졌기 때문에 생활비가 들 게 거의 없으므로 자신의 월급을 고스란히 모으고 남편의 이전 저축, 시가나 지인들의 도움, 집을 담보로 한 대출 등의 방법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이후 남편도 97년 출옥해 돈을 벌었고 99년에 그간의 저축과 친정집의 도움으로 7900만 원짜리 한국아파트를 샀다. 당시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주택마련 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다. 2012년 그녀는 지금의 수원 금곡의 LG아파트를 경매로 2억 2600만 원에 취득했고, 2013년에 기존의 한국아파트를 1억 8950만 원에 매각했다. 매각 후 그녀는 빌린 돈을 갚았고, 그동안 그녀의 월급은 2002년 150만 원에서 작년의 300만 원까지 계속해서 올랐다. 역시 남편의 수입과 합해 충분히 운용 가능한 금액이다. 15. 딸의 유학과 관련한 의혹 제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2017년 윤미향의 남편은 간첩죄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해 1억 9천만 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2018년 윤미향과 그의 딸 역시 손해배상을 받아, 윤미향 가족이 받은 배, 보상금은 모두 2억 7900만 원이다. 윤미향의 딸은 친정집 교회 사택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생활이었고, 교회 내에 음악 전문가들이 많아 비싼 레슨을 받을 필요도 없었으며, 미국 유학 입학금 및 처음 기숙사비까지 해서 1억 4천만 원 정도 들었다 해도 가족들이 받은 배, 보상금에서 1억 4천만원 정도가 남는다. 딸은 이후 장학금을 받아 학비가 더 이상 들지 않았고, 기숙사비와 생활비는 본인이 아르바이트로 벌어 다니고 있다. 남편도 계속 돈을 벌어왔다. 2016년 유학 얘기를 자꾸 하는데, 2016년에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 비학위 과정에 장학금을 받아 입학했고, 실제로 일리노이 대학에는 그런 장학제도가 있다. 무슨 의문점이 있단 말인가? 16. 사정이 이러한 데도 보수언론들은 <나눔의 집>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별로 보도하지 않으면서, <국민일보> 같은 경우는 <나눔의 집>에 대한 후원자들의 후원금 반환 소송 보도에서 <서울신문>과는 전혀 다르게 <나눔의 집> 이름은 쏙 빼고 “최근 정의연 등 단체에서 불거진 ‘부실 회계 의혹”에 대한 후원자들의 반발이라며 “정의연에 배신감”이라고 제목을 뽑으면서, 전혀 관련 없는 정의연만 부각시키는 소설을 써 댔다. <나눔의 집> 측에선 바로 이런 점을 노렸을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공한 측면이 있다. 17. 그러나 이제 <나눔의 집>의 후원금 사용 비리에 관해서는 상당 정도 알려졌다. <MBC>, <시사인>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들도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재명 경기도 지사도 <나눔의 집>에 대한 특별점검 결과 후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법률을 지키지 않은 다수의 사례를 확인했다. 직원들은 고 배춘희 할머니의 유산을 기부약정서 조작을 통해 가로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2016년 나눔의집 후원금은 약 17억이었지만, 법인에서 시설로 보낸 전입금은 2500만 원에 불과했고, 할머니들은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나들이나 외식비용은 0원이었으며 겨울에도 여름 신발을 신으셨고 심지어 10년전에는 영양실조까지 걸렸었다 한다. 나눔의집 법인 계좌에 후원금으로 쌓여 있는 보유금이 지난해 12월 기준 64억 3천만 원에 이르는데, 할머니들께서 살아계실 때 잘 모시라고 낸 후원금을 할머님들 사후에 지을 호텔식 요양원 건축기금으로 비축해놓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현 조계종 총무원장도 했다 한다. <나눔의 집> 이사회에서도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고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은 <나눔의 집> 재단이 아니라 시설 쪽의 사람이다.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관리소 직원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조계종 승려가 3분의 2를 차지하게 되어있는 이사회에 속한 이사들이다. 안신권과 김정숙은 그들의 결정대로 따른 것뿐이다. 몸통은 따로 있는데 꼬리만 자르는 격이다. 앞으로 이사들도 징계를 하겠다 하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건 그저 자체 징계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18. 그런데도 검찰은 2월에 접수된 이 <나눔의 집> 회계부정 고발사건에 대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나눔의 집> 문제는 정의연 논란에 묻혀 응당 받아야 할 국민들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나눔의 집> 사태는 철저하게 그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 알다시피 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을 지내던 시절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철저히 야합했고, 새누리당 안상수 의원 등과 교류하며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만들면서 명진 스님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동안 종교단체라는 이유로 <나눔의 집> 감사에 부실하게 임하며 비리를 눈감아줘 온 공무원들은 없는지? 기득권 세력, 정치인들 및 극우단체들과는 또 어떤 흑막과 거래가 있었는지 등등을 철저히 파헤쳐야 할 것이다.
Yoon-suhg Yahng's post
1. 이 글은 상당히 긴 글이다. 이 글은 <나눔의 집> 회계부정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들이 어떤 맥락으로 전개되어왔는지를 종합정리한 글이다. 이번 사태를 올바로 판단하고 그 배경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정독해보시기 바란다.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 입장이라며 윤미향 비난에 가담해온 많은 주장은 실제로는 관련한 역사적 맥락과 그 전후 배경 상황의 진실을 모르거나 도외시한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허무맹랑한 주장들임을 언급해둔다. <나눔의 집> 회계부정 사태는 지난 2월 나눔의 집 내부직원 7명이 김정숙 사무국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수원지검에 고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3월부터 <MBC>가 취재에 들어갔고, <시사인>에서도 4월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들은 취재에 나서지 않았고, 검찰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비리가 온 국민에게 드러나며 집중조명을 받게 된 데 위기를 느낀 <나눔의 집> 측에서는 일부 세력과 함께 대책을 강구했고, 그것이 정치적 노림수와 연결되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수구 언론들의 무차별 의혹 제기로부터 시작된 윤미향과 <정의연>에 대한 비난 공세의 강화였다고 판단된다. 거기에 극우단체와 기타 진보적인 언론들까지 가세한 것이다. 2. <나눔의 집> 측에서 <나눔의 집> 소속 할머니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필자가 바로 그 경험자다. 2013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에서는 필리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현대적으로 개작한 ‘위안부’ 문제 연극 <봉선화>를 성공시켰고, 2014년 7월에 미주 순회공연에 나섰다.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첫날 갑자기 나눔의 집 소속의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 등은 <봉선화>는 역사를 왜곡한 잘못된 연극이라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필리핀 ‘위안부’ 생활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던 할머니들이 기존에 필리핀에서 ‘위안부’ 생활을 경험하셨던 많은 할머니들이 남긴 수많은 증언 기록과 유물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그러자 우리의 글렌데일 공연을 후원해주기로 했던 <가주한미포럼>에서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갑자기 후원을 철회했다. 현재 정의연 비난에 동참하고 있는 김현정 씨가 당시 <가주한미포럼>의 사무국장이었다. 그로 인해 글렌데일 공연에 동포들의 관람이 다소 저조하기는 했지만, 이창엽 글렌데일시 자매도시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돕고, 미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미국 시민들이 관람하고 극찬해준 덕분에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 시카고 공연은 <시카고 중앙일보>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지만, 당시 뉴욕 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 등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도 <나눔의 집> 입장을 거들어 언론에서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바람에 뉴욕 공연에서는 관객동원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나눔의 집> 측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당시 세종문화회관 박인배 사장이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자고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인데 그런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위안부’ 관련 운동 전체에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우리는 대응을 자제하고 그런 비난과 어려움을 참고 감수하기로 하였다. 물론 그로 인한 금전적 손실과 고통은 적지 않았다. 그때가 바로 2013년 우리 연극을 명칭 후원했던 <나눔의 집> 측에서 독자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꽃신> 제작에 이미 2014년 연초부터 착수한 뒤였다. 2014년 하반기 윤복희 등 많은 배우가 재능기부로 출연했던 <꽃신>은 성공을 거뒀고 그로 인해 <나눔의 집>은 많은 후원금과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다. <꽃신>도 훌륭한 작품이긴 하지만 해외공연도 기획했던 <나눔의 집> 측에서는 악의적인 마타도어로 미리 경쟁작품을 제거하는 데 나섰고 그 선봉에 할머니들을 내세웠던 것으로 이해된다. 3. 그동안 기자회견을 통해 윤미향과 정의연을 비난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 JTBC와의 인터뷰에서 <나눔의 집> 문제도 ‘적당히 해라’라고 지적했으며 나눔의 집 운영자들이 무릎을 꿇고 사과했었다고 슬쩍 말을 흘렸지만, <나눔의 집> 운영자들은 그 점을 부인했다. 자신이 기거했었고 이후 계속 관련을 맺었던 <나눔의 집>의 문제, 즉, 내부직원 7명이 참다못해 검찰에 고발할 정도로 심각했던 회계부정을 그리 잘 알면서도 그녀는 왜 그 문제로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알았다면 그냥 ‘적당히 해 먹어라’라고 핀잔만 주고 말일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신문기사만 봐서 자세한 건 잘 모른다는 <정의연> 문제에는 그렇게 핏대를 올리며 기자회견을 했던 양반이 말이다. 4. 검찰도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미 2월에 고발이 들어간 <나눔의 집>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지 않고 있던 검찰은 5월 14일에 <사준모>라는 정체불명의 극우단체가 수구 언론들이 제기한 단순한 의혹만으로 <정의연>을 고발하자 5월 20일 <정의연> 사무실을 곧바로 압수수색 했다. 이 얼마나 편파적인 수사이며 진영논리에 입각한 수색이란 말인가? 5.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윤미향과 정의연을 비난했던 말 중에 상당수가 거짓말이었음도 이미 입증되었다. 자신이 받을 후원금을 못 받았다는 말도, 수요집회가 끝나고 밥을 사주지 않았다는 말도, 정의연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지 않았다는 말도 모두 당시의 송금자료와 당시 식사 자리나 증언 청취에 함께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은 그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을 생생히 밝혀주고 있다. 6. 이용수 할머니께선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공로가 지대하신 분이시지만, 이용수 할머니 등이 김복동 할머니가 윤미향에게 끌려다녔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윤미향 대표와 정의연이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따랐다고 해야 한다. 김복동 할머니께선 생전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으면 용서할 것이고 그에 따라 배상 얘기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하셔서 적어도 서울에서 기거하신 2003년 부터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여론을 주도하셨고 정의연도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김복동 할머니와는 조금 다른 입장이셨던 이용수 할머니도 결국 김복동 할머니의 설득력이 워낙 강해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7. <정의연>은 오래전부터 횡령이나 회계부정을 시도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예전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분명히 후원금을 전달받고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 적이 많아 <정의연>은 수십 년 전 영수증을 보존기한이 지났음에도 폐기처리를 못 하고 지금까지 보관해왔고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번처럼 증거로 제시해왔다. 언론이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그동안 <정의연>은 회계감사를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나 그동안 <정의연>은 정기적으로 꾸준히 정부 기관의 ‘회계감사(회계 확인)’를 받아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아 왔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회계처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거대한 종교단체가 뒷배로 있어 후원금 감사에 소홀했던 <나눔의 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었다. 또 1995년 무라야마 총리가 개인 자격으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고 <여성을 위한 아시아국민기금>이라는 민간위로금을 모금해 전달하겠다고 했고, 92년 심미자 등 16명의 할머니가 결성한 <무궁화 자매회>를 주축으로 96년에 그 사과와 보상금을 받아들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 간에서는 큰 분열이 있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도 정부 보상금도 아닌 그 위로금을 김복동 할머니 등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거부했고, 국민 대다수도 반대했다. 이후 정대협은 위로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신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해 국민들의 후원금을 전달해드렸고, 정부도 정대협의 노력에 호응해 일본의 위로금을 받지 않은 할머니들에게 지원책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미자 할머니 등 33명의 할머니는 2004년 <세계평화무궁화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정대협>을 “할머니들을 ...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며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일본의 사과의 배상을 받았으니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본다는 기존의 자신들 입장과는 모순되는 행동을 보이며 끊임없이 <정대협>을 공격해온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정대협>이 횡령이나 회계부정을 시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8. 2014년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내세운 <나눔의 집> 측의 세종문화회관 공격에는 일부 미국 한인사회 진보단체 인사도 사정을 잘 모르고 거들긴 했지만, 올해 <정의연> 공격에 나선 단체는 국내 극우성향의 단체들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그리고 미국의 수많은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중에서 과거 세종문화회관 공격에 가담했던 김현정 대표가 이끄는 <CARE(구 가주한미포럼)>밖에 없다. 그런 단체들이 어떤 단체들인지 살펴보자. 우선 최근 윤미향과 정의연을 맹비난하고 나선 양순임과 그녀가 대표로 있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 대해 살펴보면, 양순임은 1943년 자신이 8살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강제 징용피해 보상신청을 하면서 38살 때인 1973년부터 <태평양유족회>에 참여하여 일제 강제동원 군인, 군속, 노무자, 여자 근로정신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 한국인 피해자와 유가족이 피해보상을 받는 일에 나섰고, 1992년에는 직접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를 설립해 대표를 맡아 일하면서, 심미자 할머니의 <무궁화회>가 주도한 시위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한다. 이 <태평양전쟁 유족회>는 2010년 3월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을 만든 뒤 2011년 초까지 일본으로부터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보상금을 받아주겠다며 제삼자도 보상금 신청이 가능하다는 등으로 속여 3만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면서 총 15억여 원을 받아 가로챈 상습사기 혐의 등으로 양순임 대표, 장 모 씨, 임 모 씨 등 총 3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의 사무총장은 바로 양순임 대표의 아들 임 모 씨였다. 이때 해임된 양 대표는 “양 회장이 ‘장 씨의 꼬임에 넘어가’ 결과적으로 장 씨의 사기행각을 용이하게 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공동정범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받았고, 임 씨도 일부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장 씨는 사기 혐의로 징역 5년 4개월을 선고받았다. 단체구성원 상당수가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대표와 사무총장만 그 일과 관련이 없다는 판결이 나온 점은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이지만 현재로선 진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후 양순임은 2014년에 다시 대표(회장)직으로 복귀했다. 9. 그런데 이런 <태평양전쟁 유족회>에서 2005~6년경 2년간 사무총장직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최근 이용수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을 주선했다는 의심을 받는 최용상 <가자! 평화인권당> 대표다. 그는 <태평양전쟁 유족회>에서 양순임 대표와 갈등을 빚다가 2015년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라는 단체를 별도로 만들어 활동하면서 이 단체를 기반으로 2017년 <강제동원일제피해일본군위안부인권정당>이란 정당을 창당한 뒤, 2020년 이정희 대표가 이끄는 중도성향의 평화통일당 창당 준비위원회와 통합하여 <가자! 평화인권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심미자 할머니나 양순임 대표는 희생자들이 살아있을 때 배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정대협과 함께한 할머니들이나 나눔의 집 소속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중요하다고 본 입장과는 차이를 보이며 정의연과 대립각을 세워왔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최용상 대표는 사뭇 결이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새누리당 과거사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고 그가 창설한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는 2015년에 `일제강제징용 소송재판에 대한 중간설명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새누리당 여상규 국회의원이 축전을 보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올해 3월 29일 일본 극우 잡지 <週刊文春>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종료됐으며,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면서 ‘정의연이 위안부의 역사를 지우려 한다’ ‘수요집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4월 2일 <가자! 평화인권당> 발대식에서는 “앞으로 정대협(정의기억연대)과 윤미향 씨의 반미, 반일 운동을 강력히 저지함과 더불어,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을 탄압했던 범죄행위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그동안 강제징용피해자들을 우롱한 것을 강력히 규탄하고, 전국 23만 피해자들이 대여투쟁 및 정권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며 극우적인 선언을 발표했었다. 10. 이용수 할머니께선 기자회견에서 “엊그제까지도” <정대협>이 그런 줄 “몰랐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면 바로 “엊그제”에 그런 정보를 전해준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확실해진다. 이와 관련하여 곽혜경, 곽수연, 곽나연, 정나연 등 다수의 이름을 쓰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의 수양딸이 5월 14일 자 페이스북에서 “이 논란 당신이 만든 거야. 나 없을 때 당신이 엄마한테 접근해서 엄마에게 펌프시키고 청와대까지 댁 비례대표 만들어주라는 전화, 누구한테 시켰는지 기억이 안 나시나? 댁이 지금 윤미향 씨와 분열시킨 당사자면서 ... 이간질은 지가 다해놓고 어디서 아닌 척이야?”라고 쓴 것은 그 점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그녀가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문을 애초에 ‘시민모임’ 측에서 작성한 내용 중에 윤미향을 비난하는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새롭게 작성했다고 말한 점은 그녀가 윤미향과의 사이가 더 벌어지지 않게 하고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해 나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11. 윤미향을 공격하는 데 나선 극우단체 중에는 고발 전문단체인 <사법시험준비생 모임>과 시위 전문단체인 황경구의 <대한민국 애국순찰팀>, 주옥순의 <엄마부대>가 있다. 특히 황경구는 2차 기자회견장에서 무대 위에 올라가 이용수 할머니와 ‘수고하셨다’는 얘기를 나누고 마이크를 가지러 무대 위에 올라갈 정도로 그 기자회견에 깊이 관여했음이 드러났다. 기자회견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이 무대 위에 스스럼없이 올라갈 수는 없다. 12. 미국에 있는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중에서는 유독 <CARE(전 가주한미포럼>의 김현정 대표만이 윤미향을 비난하는 데 나섰다. 2014년 <나눔의 집> 측에서 세종문화회관을 공격할 때 가담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정의연>이 글렌데일 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한 공로를 가로챘다는 주장을 했는데, <정의연>을 비롯해서 어느 위안부 운동단체도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동참했다고 하지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공치사를 한 적이 없다. 왜냐면 그 소녀상 건립은 글렌데일 시 고위공무원으로 <글렌데일 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관>이자 <글렌데일 시 자매도시 위원회 위원장>인 이창엽 씨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김현정 대표는 현재 글렌데일시 중앙공원에 있는 소녀상 이전을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창엽 씨는 중앙공원 조경 개선공사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올 것이고, 시 정부도 그것을 위한 1,85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해놓은 상태이며 김현정 씨가 모금해서 시에 전달해도 시에서는 받아쓸 수가 없는데, 이해할 수 없는 모금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시 관계자에게서 그녀에게 모금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3. 윤미향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횡령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하나 같이 근거가 없다는 점이 이미 다 밝혀졌다. 안성 쉼터를 비싸게 산 게 아니냐는 점은 이미 그 쉼터를 짓고 팔았던 금호스틸하우스 김운근 대표가 공사비 내역을 상세히 공개했고 그 공법에 따른 건축표준단가를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지도 기자들에게 알려줬지만, 기자들은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기사를 써댔다. 안성 쉼터 기부액을 돌려줘야 하는 시기가 지난 입장에서 당시 주변에 수목장이 들어선다는 소문 때문에 집값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당시 주민들 의 수목장 건립 반대 현수막 사진과 당시의 지역신문 기사 등에서 확인된다. 윤미향 씨의 아버지가 안성쉼터 관리인으로 일했고 6년간 7,500만 원 즉 월 100만 원 정도의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으며, 그가 쉼터에는 기거하지 말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기거하도록 조치한 점을 보면 윤미향이 얼마나 평소에 논란의 소지를 없애려고 신경을 썼었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4월의 국세청 보고서에 20억이 누락된 점에 대해서는 정의연이 3월의 보고 때와 연말 결산서에서는 누락하지 않았고, 당시 정부 기관이 가상계좌를 통한 보조금 지급방식을 처음으로 채택함으로 인한 혼선임을 공익법인회계 전문 회계사인 삼화회계법인의 최호윤 회계사가 이미 밝혔다. 14. 그 밖에 윤미향의 주택자금 마련에 관해서는 필자도 이미 밝혔다시피 93년 남편과 돈을 합쳐 마련한 1500만 원의 전세자금에서 출발해서 95년 4500만 원에 빌라를 구입한 점은 윤미향이 자신의 모든 생활을 온종일 <정의연> 활동에 바쳤고, 남편이 94~97년 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딸은 교회 사택 즉 친정집에 맡겨졌기 때문에 생활비가 들 게 거의 없으므로 자신의 월급을 고스란히 모으고 남편의 이전 저축, 시가나 지인들의 도움, 집을 담보로 한 대출 등의 방법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이후 남편도 97년 출옥해 돈을 벌었고 99년에 그간의 저축과 친정집의 도움으로 7900만 원짜리 한국아파트를 샀다. 당시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주택마련 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다. 2012년 그녀는 지금의 수원 금곡의 LG아파트를 경매로 2억 2600만 원에 취득했고, 2013년에 기존의 한국아파트를 1억 8950만 원에 매각했다. 매각 후 그녀는 빌린 돈을 갚았고, 그동안 그녀의 월급은 2002년 150만 원에서 작년의 300만 원까지 계속해서 올랐다. 역시 남편의 수입과 합해 충분히 운용 가능한 금액이다. 15. 딸의 유학과 관련한 의혹 제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2017년 윤미향의 남편은 간첩죄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해 1억 9천만 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2018년 윤미향과 그의 딸 역시 손해배상을 받아, 윤미향 가족이 받은 배, 보상금은 모두 2억 7900만 원이다. 윤미향의 딸은 친정집 교회 사택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생활이었고, 교회 내에 음악 전문가들이 많아 비싼 레슨을 받을 필요도 없었으며, 미국 유학 입학금 및 처음 기숙사비까지 해서 1억 4천만 원 정도 들었다 해도 가족들이 받은 배, 보상금에서 1억 4천만원 정도가 남는다. 딸은 이후 장학금을 받아 학비가 더 이상 들지 않았고, 기숙사비와 생활비는 본인이 아르바이트로 벌어 다니고 있다. 남편도 계속 돈을 벌어왔다. 2016년 유학 얘기를 자꾸 하는데, 2016년에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 비학위 과정에 장학금을 받아 입학했고, 실제로 일리노이 대학에는 그런 장학제도가 있다. 무슨 의문점이 있단 말인가? 16. 사정이 이러한 데도 보수언론들은 <나눔의 집>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별로 보도하지 않으면서, <국민일보> 같은 경우는 <나눔의 집>에 대한 후원자들의 후원금 반환 소송 보도에서 <서울신문>과는 전혀 다르게 <나눔의 집> 이름은 쏙 빼고 “최근 정의연 등 단체에서 불거진 ‘부실 회계 의혹”에 대한 후원자들의 반발이라며 “정의연에 배신감”이라고 제목을 뽑으면서, 전혀 관련 없는 정의연만 부각시키는 소설을 써 댔다. <나눔의 집> 측에선 바로 이런 점을 노렸을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공한 측면이 있다. 17. 그러나 이제 <나눔의 집>의 후원금 사용 비리에 관해서는 상당 정도 알려졌다. <MBC>, <시사인>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들도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재명 경기도 지사도 <나눔의 집>에 대한 특별점검 결과 후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법률을 지키지 않은 다수의 사례를 확인했다. 직원들은 고 배춘희 할머니의 유산을 기부약정서 조작을 통해 가로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2016년 나눔의집 후원금은 약 17억이었지만, 법인에서 시설로 보낸 전입금은 2500만 원에 불과했고, 할머니들은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나들이나 외식비용은 0원이었으며 겨울에도 여름 신발을 신으셨고 심지어 10년전에는 영양실조까지 걸렸었다 한다. 나눔의집 법인 계좌에 후원금으로 쌓여 있는 보유금이 지난해 12월 기준 64억 3천만 원에 이르는데, 할머니들께서 살아계실 때 잘 모시라고 낸 후원금을 할머님들 사후에 지을 호텔식 요양원 건축기금으로 비축해놓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현 조계종 총무원장도 했다 한다. <나눔의 집> 이사회에서도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고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은 <나눔의 집> 재단이 아니라 시설 쪽의 사람이다.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관리소 직원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조계종 승려가 3분의 2를 차지하게 되어있는 이사회에 속한 이사들이다. 안신권과 김정숙은 그들의 결정대로 따른 것뿐이다. 몸통은 따로 있는데 꼬리만 자르는 격이다. 앞으로 이사들도 징계를 하겠다 하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건 그저 자체 징계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18. 그런데도 검찰은 2월에 접수된 이 <나눔의 집> 회계부정 고발사건에 대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나눔의 집> 문제는 정의연 논란에 묻혀 응당 받아야 할 국민들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나눔의 집> 사태는 철저하게 그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 알다시피 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을 지내던 시절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철저히 야합했고, 새누리당 안상수 의원 등과 교류하며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만들면서 명진 스님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동안 종교단체라는 이유로 <나눔의 집> 감사에 부실하게 임하며 비리를 눈감아줘 온 공무원들은 없는지? 기득권 세력, 정치인들 및 극우단체들과는 또 어떤 흑막과 거래가 있었는지 등등을 철저히 파헤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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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Nov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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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야하는 이유이다. 위안부 기림비 반대? 이자스민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들고 나오는 근거다. 국회에 위안부 기림비 설치안에 대해, 그녀는 "국회 차원에서 설치하기 보다, 광화문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민간 차원에서 세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발언 한 바 있다. 이 발언을 언론은 "이자스민 위안부 기림비 반대"로 축약했고, 여론은 그녀에게 친일파 낙인을 찍었다. 이자스민은 2012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위안부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기도 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학력위조?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생물학과 중퇴학력이고, 이를 그 어떤 서류에서도 달리 기술한 바 없다고 한다. 생물학과는 프리메디 과정에 속해 있는 과였고, 프리메디(Premedi)는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의예과라고 번역될 수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언론은 프리메디과정에 있는 생물학과 중퇴가 아니라 의대중퇴라고 보도한다. 그 보도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하지 않은 죄가 있을 뿐이다. 그 죄를 묻기 보단, 필리핀 이주민 여자가 금뱃지 단 죄를 묻고 있는 사람들, 마음껏 부풀렸다가 제멋대로 패대기치며, 여론의 입맛에 맞춰 춤춘 언론의 죄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Soojeong Mok's post
근래에 정의당에서 한 결정 중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자스민의 영입. 모름지기 진보정당이라면 척박한 험지에 뛰어들어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전선을 확대하고, 대중들의 인식이 아직 미치지 않은 지점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설득해 내야 한다. 혹자들은 왜 하필 새누리당 출신을 데리고 왔냐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어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한다고는 하나, 당시 소수진보 정당에겐 그를 포용할 만큼의 배포나 여력이 부족했다. 같은 상임위에 소속되었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동료의원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평가하며, 내면에 끓고 있는 진심과 열정, 몸에 밴 성실성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면, 이러한 과감한 영입은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와락 껴 앉는 두 여자의 사진. 아름답다. "정의당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정당입니다. 750만 재외동포들이 다른 나라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야 하듯이, 250만 이주민들 역시 차별받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심상정의 말이다. 이자스민을 향한 상하좌우로부터의 혐오의 말. 그 자체가 이 분이, 다시 한 번 이주민들을 대변하는 자리에 서야하는 이유이다. 위안부 기림비 반대? 이자스민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들고 나오는 근거다. 국회에 위안부 기림비 설치안에 대해, 그녀는 "국회 차원에서 설치하기 보다, 광화문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민간 차원에서 세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발언 한 바 있다. 이 발언을 언론은 "이자스민 위안부 기림비 반대"로 축약했고, 여론은 그녀에게 친일파 낙인을 찍었다. 이자스민은 2012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위안부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기도 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학력위조?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생물학과 중퇴학력이고, 이를 그 어떤 서류에서도 달리 기술한 바 없다고 한다. 생물학과는 프리메디 과정에 속해 있는 과였고, 프리메디(Premedi)는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의예과라고 번역될 수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언론은 프리메디과정에 있는 생물학과 중퇴가 아니라 의대중퇴라고 보도한다. 그 보도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하지 않은 죄가 있을 뿐이다. 그 죄를 묻기 보단, 필리핀 이주민 여자가 금뱃지 단 죄를 묻고 있는 사람들, 마음껏 부풀렸다가 제멋대로 패대기치며, 여론의 입맛에 맞춰 춤춘 언론의 죄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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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u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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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남 여인이 작업했고 위안부 일본의 반성처럼 한국도 베트남전서 벌인 만행을 반성해야 한단 뉴스가 끊임없다 사실 비엣남(54개 소수민족)은 민족의 남북통일이 아니고 월맹군(북)이 남을 점령한 것이다 하여 호치민 비싼 땅은 죄다 점령군 하노이 사람이 주인이고 정치 경제 건설 금융 모든게 하노이 사람들의 차지다 하노이 사람이 아닌 땅주인은 구 베트남서 암약했던 베트콩 게릴라에게 전리품으로 준 땅과 집이다 (통일후, 워낙 자본주의로 무장된 사이공 베트남을 못살았던 하노이 베트남이 이길 수 없겠단 생각을 한게다 자본 물결에 우리가 당하겠단 정확한 판단이다 하여 사이공 베트남 패전국 부역자 명분으로 사업가 지식인 공무원 교사 등등 100만명을 죽였다 이에 앉아서 죽기전 나가잔 100만명 보트피플 생김) 오늘날 패전국 구베트남 국민들은 여전히 취직에 차별을 받는다 구 베트남 국민은 일정 지위에 오르지 못한다 완전 현대판 노예다 베트남 뉴스는 연일 베트남이 기회의 땅이라고 떠든다 아니다 여긴 한국인이 투자매력을 느껴 부동산 투자하는 순간 한국사람들은 늪에 빠진다 단언컨대 베트남은 아직 아니다 부동산법도 정비되지 않았고 금융법도 마찬가지다 속지마라 외투법으로 투자해서 번 돈을 1년씩 못나가게 하는 완전 깡패국가다 일본이 하는 지하철 공사도 중단되듯이 늦어지는 이유가 권력 싸움때문이다 전 정권에게 먹인 현재 업체들의 특혜를 현 정권이 치면서 부패로 몰아간다 전 수상부터 줄줄이 부패로 깜방행이 진행되고 있다 현 호치민 시장도 부패 혐의로 미리 알고 외국으로 도망중이라 공석이다 롯데그룹이 투자해서 이번에 이곳에 온 신회장도 저간 내막을 모른단 말이 나온다 아마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온지도 모른다 한국의 여의도 개발 같은 투티엠 건설 프로젝트도 전 정권에 준 뒷돈이 공공자금에서 사라져서 다리 3,4개 지을 돈이 하세월이다 물론 워낙 좋은 입지라 개발이 되겠지만 시간이 하세월이란거다 롯데그룹 실무자들이 쉬쉬해서 신회장만 모를뿐이란 말이 슝슝하다 (롯데는 호치민시가 베트남의 경제허브로 개발 중인 투티엠 지구에 2021년까지 ‘에코스마트시티’를 건설할 예정이다. 약 10만여㎡ 규모 부지에 총 사업비 2조 원을 투입하여 백화점, 쇼핑몰, 시네마, 호텔, 오피스 등과 주거시설로 구성된 대규모 단지를 조성한다) 여긴 기회의 땅이 아니고 늪지대다 왜냐? 공무원 공안 부패가 너무 위부터 아래까지 심하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 해서 지난해 12월 비엣남에 왔더만 여기도 나라가 아니다
m.bluetoday.net
“김정은, 제2의 베트남을 노린다” 文 대통령, 태영호의 경고 새겨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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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Sep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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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교수의 초상과 운명 . 유석춘은 강남우파의 한 전형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혁인으로 영남출신이며 동아일보 정치부장이던 그를 박정희가 발탁하여 청와대와 유신정치의 도구노릇을 톡톡히 감당하고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 한 자이다. 이부영 몽양기념사업회 이사장 같은 분은 똑같이 서울문리대 출신이고 동아일보 기자출신이면서도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 투쟁하여 그를 비롯하여 수많은 동아투위, 조선투위의 해직기자들이 거리에 쫒겨나 고난의 삶을 살 때에 유혁인은 박정희에 충성하며 안락하고 긴 오욕스러운 삶을 살았다. 꽤 알려진 시인이자 교육학 교수였던 유안진도 그의 여동생이었으니 영남 보수인맥의 진골쪽으로 감지된다. . 이런 배경 속에 유석춘은 연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초고(졸)속으로 미국유학에서 학위를 마친 직후에 바로 모교의 사회학과 조교수로 1987년에 부임하여 지금까지 소위 뉴 라이트 계열의 인물로 때때로 자못 코믹하면서도 그릇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도 오직 뿌리깊은 우파적 당파성 하나로 전 자한당의 혁신위원장직도 감당하여 온 인물이다. 자질상 이 양반의 미국에서의 석, 박사 논문의 주제나 콘텐츠도 다소 의심스럽고 궁금하다. 때때로 이 자가 저질 코미디 수준에 가까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혀를 차게 만들곤 하였는데, 그러면서도 참 오랫동안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자리를 차고 있는 일도 머리가 갸우뚱해지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마도 이번 유석춘의 이른바 발전사회학 강의실에서의 '위안부'에 대한 '매춘부'망언 파동은 결코 우연한 산물이 아니고 그간에 오랫동안 뿌리를 가지고 나름 대한민국 우파의 내공을 쌓아온 그 필연적 결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번에 유석춘은 강의중단은 물론이고 그가 어려웠던 우리의 역사와 시대의 격랑과 험한 파고 속에서도 어렵사리 그 잔명을 질기게 이어오던 교수직도 그 운이 다하고 파면되어야만 하는 카이로스와 길로틴의 시간이 기다려지는 상황으로 생각된다. 미안한 말이지만 의로운 학자적 자질에는 너무도 미흡한 소인배의 안스러운 자업자득이다. . 그 반면에 이 인물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온 한 사람의 교수 출신이 우리 모두의 관심의 촛점과 폭풍의 눈이 되어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이다. 나는 조국 사태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었기에 반복되는 내용은 피하고 다른 차원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 장관 후보로서 기자들 앞에서나, 국회청문회 석상의 야차같이 물어뜯어대는 질문과 공격 속에서도 조국은 수미일관 처연할만큼이나 의연하였다. . 물론 나는 조국이나 그 어떤 인간에게도 결코 완벽한 인간됨은 기대하지 않는다. 헌법규범이나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오고 지향한 삶의 중심과 내용과 흐름의 진실함과 추구한 꿈과 가치의 진정성이 중요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얼마나 불완전하며 털면 먼지 나지 않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누구도 흠결없이 완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소위 고위직, 장관청문회라는 제도가 좋은 인물들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을지라도 그 자신 최소한도의 인간적 품위나 삶의 프리이버시나 인격을 중시하는 인물들로부터는 기피하거나 손사래를 칠만한 비인격적이며 잔인한 도구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서운 정쟁과 당파적 쟁투의, 필연적으로 서로 죽여야 사는 천박한 정치적 쟝글의 현실과 속성과 현장성이 있다고 파악된다. 관료, 참모형의 소심하고 안전하게 세상과 삶을 살아온 이들이야 적과 동지의 모순도 없는 입장과 처신에서 무난한 통과의례겠지만 어쩌면 상대적으로 신념깊고 중심이 강한 그릇이나 풍상 많은 큰 재목들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 조국은 그만하면 일찌기 인정받은 빼어난 두뇌와 학자적 자질로, 더구나 그가 이른바 PK출신과 유복한 금수저 환경으로 세속적 삶의 성공과 출세를 꿈꾸었다면 아마도 유석춘 급과는 차원이 다르게 빠르거나 화려했을 수도 있다. . 그의 조부의 민족애나 부친의 뜻있는 학교운영의 무거운 짐을 짊어졌던 것도 자랑스럽고 영예로운 혈통의 흐름이자 고귀한 카르마ㅡ업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청문회에서 길길이 '감히 비교불가'라고 날뛰던 장제원의 아버지 장성만이 창업한 학교법인은, 아닌게 아니라 비교불가능이니, 즉슨, 박정희 시대에 부산을 주름잡던 유신세력의 장본인이며 목사로 민정당 국회부의장을 지내며 권력과 교육사업을 혼탕으로 만든 인물의 산물과 유산이었으니, 이 디엔에이는 미안하지만 문제아인 그 아들네미 까지 가히 비교불가의 흑 앙시앙 레짐의 업장이로다. . 그러나 조국, 그는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법학도와 소장학자로 역사와 시대의 고뇌를 안으면서 사노맹 연루혐의로 영어생활과 고난의 청춘을 경험하고 우여곡절 긴 학자의 삶을 살았다. 비록 아쉬운 문제와 한계가 그의 막대한 부를 소유한 부인이나 비난이 되는 딸의 상층을 향한 집요한 행태의 가정적 환경이었지만 그가 지향한 사회적 불평등이나 약자, 사회정의에 그가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가울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그는 장관청문회 석상에서 고약한 의도로 던져진 사상적 정체성의 함정적인 질문 앞에서도 자신이 이른바 기득권을 지닌 강남좌파임을 인정하며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자임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기계적 유물론자"가 결코 아님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나는 이 차원의 조국의 태도와 내용과 진면목을 주목하고 높게 긍정하고 싶다. 우리의 분단구조와 이념의 황량하고 비극적인 박토를 조국은 천박한 정치현장에서 한 단계 높은 철학적 상태로 고양시켰다고 본다. 그것도 왕년의 무식하고 전투적인 체제의 이념적 맹견으로 승승장구 출세하여 오늘 무너졌던 구 박혜당의 총수로 부끄러움도 모르고 당수로 행세하고 있는 전 공안검사 황교안과의 수준과 존재의 차이는 얼마나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대극적이며 극명한 것인가. 같은 법이라도 사상과 법철학의 높은 차원에서 고민해온 학자와 오직 출세가도를 지향한 체제와 제도의 도구적 맹견, 살검과 활검의 차이와 차원이렸다. . 나는 비겁하게 피해가거나 우물거리는 태도 아닌 결연하고 분명한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피력하는 교수출신의 진보적 대한민국 법무부장관 후보가 있음을 참으로 반가워했다. 어쩌면 전 공산주의자 죽산 조봉암이 초대농림부장관으로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돤 이래, 수많은 세월이 흐른 이후, 비로소 세련되고 풍요한 강남좌파 출신의 그것도 막강한 적폐와 기득권의 실체와 상징인 검찰권력을 개혁, 수술하려는 일심으로 버티고 싸우는 법무장관 국무위원이 출현하였다. 그런 그를 온갖 보수와 극우의 맹수들과 승냥이들의 공격과 잔인하게 물어뜯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상황에서, 이제 조국의 정치적 생존문제는 그의 일신상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 앙시앙 레짐의 길로틴이, 이제는 너무도 국민 모두에게 생생히 닥아온 대한민국 모순과 기득권의 실체인 검찰권력을 개혁, 수술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위해 오랜동안 고민하고 내공을 쌓아 주도하는 장본인 조국장관에게 향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기까지 어렵게 달려오고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단계의 최대과제가 아닐 수 없다. . 아름답게 찾아온 이 땅의 벽공의 가을에 다시 촛불들의 기도와 승리로 우리가 과연 진정 웃을 수 있을 것인가. . . .
Choi Jaung's post
두 사람의 교수의 초상과 운명 . 유석춘은 강남우파의 한 전형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혁인으로 영남출신이며 동아일보 정치부장이던 그를 박정희가 발탁하여 청와대와 유신정치의 도구노릇을 톡톡히 감당하고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 한 자이다. 이부영 몽양기념사업회 이사장 같은 분은 똑같이 서울문리대 출신이고 동아일보 기자출신이면서도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 투쟁하여 그를 비롯하여 수많은 동아투위, 조선투위의 해직기자들이 거리에 쫒겨나 고난의 삶을 살 때에 유혁인은 박정희에 충성하며 안락하고 긴 오욕스러운 삶을 살았다. 꽤 알려진 시인이자 교육학 교수였던 유안진도 그의 여동생이었으니 영남 보수인맥의 진골쪽으로 감지된다. . 이런 배경 속에 유석춘은 연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초고(졸)속으로 미국유학에서 학위를 마친 직후에 바로 모교의 사회학과 조교수로 1987년에 부임하여 지금까지 소위 뉴 라이트 계열의 인물로 때때로 자못 코믹하면서도 그릇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도 오직 뿌리깊은 우파적 당파성 하나로 전 자한당의 혁신위원장직도 감당하여 온 인물이다. 자질상 이 양반의 미국에서의 석, 박사 논문의 주제나 콘텐츠도 다소 의심스럽고 궁금하다. 때때로 이 자가 저질 코미디 수준에 가까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혀를 차게 만들곤 하였는데, 그러면서도 참 오랫동안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자리를 차고 있는 일도 머리가 갸우뚱해지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마도 이번 유석춘의 이른바 발전사회학 강의실에서의 '위안부'에 대한 '매춘부'망언 파동은 결코 우연한 산물이 아니고 그간에 오랫동안 뿌리를 가지고 나름 대한민국 우파의 내공을 쌓아온 그 필연적 결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번에 유석춘은 강의중단은 물론이고 그가 어려웠던 우리의 역사와 시대의 격랑과 험한 파고 속에서도 어렵사리 그 잔명을 질기게 이어오던 교수직도 그 운이 다하고 파면되어야만 하는 카이로스와 길로틴의 시간이 기다려지는 상황으로 생각된다. 미안한 말이지만 의로운 학자적 자질에는 너무도 미흡한 소인배의 안스러운 자업자득이다. . 그 반면에 이 인물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온 한 사람의 교수 출신이 우리 모두의 관심의 촛점과 폭풍의 눈이 되어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이다. 나는 조국 사태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었기에 반복되는 내용은 피하고 다른 차원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 장관 후보로서 기자들 앞에서나, 국회청문회 석상의 야차같이 물어뜯어대는 질문과 공격 속에서도 조국은 수미일관 처연할만큼이나 의연하였다. . 물론 나는 조국이나 그 어떤 인간에게도 결코 완벽한 인간됨은 기대하지 않는다. 헌법규범이나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오고 지향한 삶의 중심과 내용과 흐름의 진실함과 추구한 꿈과 가치의 진정성이 중요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얼마나 불완전하며 털면 먼지 나지 않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누구도 흠결없이 완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소위 고위직, 장관청문회라는 제도가 좋은 인물들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을지라도 그 자신 최소한도의 인간적 품위나 삶의 프리이버시나 인격을 중시하는 인물들로부터는 기피하거나 손사래를 칠만한 비인격적이며 잔인한 도구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서운 정쟁과 당파적 쟁투의, 필연적으로 서로 죽여야 사는 천박한 정치적 쟝글의 현실과 속성과 현장성이 있다고 파악된다. 관료, 참모형의 소심하고 안전하게 세상과 삶을 살아온 이들이야 적과 동지의 모순도 없는 입장과 처신에서 무난한 통과의례겠지만 어쩌면 상대적으로 신념깊고 중심이 강한 그릇이나 풍상 많은 큰 재목들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 조국은 그만하면 일찌기 인정받은 빼어난 두뇌와 학자적 자질로, 더구나 그가 이른바 PK출신과 유복한 금수저 환경으로 세속적 삶의 성공과 출세를 꿈꾸었다면 아마도 유석춘 급과는 차원이 다르게 빠르거나 화려했을 수도 있다. . 그의 조부의 민족애나 부친의 뜻있는 학교운영의 무거운 짐을 짊어졌던 것도 자랑스럽고 영예로운 혈통의 흐름이자 고귀한 카르마ㅡ업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청문회에서 길길이 '감히 비교불가'라고 날뛰던 장제원의 아버지 장성만이 창업한 학교법인은, 아닌게 아니라 비교불가능이니, 즉슨, 박정희 시대에 부산을 주름잡던 유신세력의 장본인이며 목사로 민정당 국회부의장을 지내며 권력과 교육사업을 혼탕으로 만든 인물의 산물과 유산이었으니, 이 디엔에이는 미안하지만 문제아인 그 아들네미 까지 가히 비교불가의 흑 앙시앙 레짐의 업장이로다. . 그러나 조국, 그는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법학도와 소장학자로 역사와 시대의 고뇌를 안으면서 사노맹 연루혐의로 영어생활과 고난의 청춘을 경험하고 우여곡절 긴 학자의 삶을 살았다. 비록 아쉬운 문제와 한계가 그의 막대한 부를 소유한 부인이나 비난이 되는 딸의 상층을 향한 집요한 행태의 가정적 환경이었지만 그가 지향한 사회적 불평등이나 약자, 사회정의에 그가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가울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그는 장관청문회 석상에서 고약한 의도로 던져진 사상적 정체성의 함정적인 질문 앞에서도 자신이 이른바 기득권을 지닌 강남좌파임을 인정하며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자임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기계적 유물론자"가 결코 아님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나는 이 차원의 조국의 태도와 내용과 진면목을 주목하고 높게 긍정하고 싶다. 우리의 분단구조와 이념의 황량하고 비극적인 박토를 조국은 천박한 정치현장에서 한 단계 높은 철학적 상태로 고양시켰다고 본다. 그것도 왕년의 무식하고 전투적인 체제의 이념적 맹견으로 승승장구 출세하여 오늘 무너졌던 구 박혜당의 총수로 부끄러움도 모르고 당수로 행세하고 있는 전 공안검사 황교안과의 수준과 존재의 차이는 얼마나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대극적이며 극명한 것인가. 같은 법이라도 사상과 법철학의 높은 차원에서 고민해온 학자와 오직 출세가도를 지향한 체제와 제도의 도구적 맹견, 살검과 활검의 차이와 차원이렸다. . 나는 비겁하게 피해가거나 우물거리는 태도 아닌 결연하고 분명한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피력하는 교수출신의 진보적 대한민국 법무부장관 후보가 있음을 참으로 반가워했다. 어쩌면 전 공산주의자 죽산 조봉암이 초대농림부장관으로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돤 이래, 수많은 세월이 흐른 이후, 비로소 세련되고 풍요한 강남좌파 출신의 그것도 막강한 적폐와 기득권의 실체와 상징인 검찰권력을 개혁, 수술하려는 일심으로 버티고 싸우는 법무장관 국무위원이 출현하였다. 그런 그를 온갖 보수와 극우의 맹수들과 승냥이들의 공격과 잔인하게 물어뜯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상황에서, 이제 조국의 정치적 생존문제는 그의 일신상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 앙시앙 레짐의 길로틴이, 이제는 너무도 국민 모두에게 생생히 닥아온 대한민국 모순과 기득권의 실체인 검찰권력을 개혁, 수술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위해 오랜동안 고민하고 내공을 쌓아 주도하는 장본인 조국장관에게 향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기까지 어렵게 달려오고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단계의 최대과제가 아닐 수 없다. . 아름답게 찾아온 이 땅의 벽공의 가을에 다시 촛불들의 기도와 승리로 우리가 과연 진정 웃을 수 있을 것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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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Ju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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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정착시켰으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가 주도하여 만든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은 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국가보안법연구>를 비롯해 수십 권의 책을 썼습니다. 변호사로, 저자로, 강연자로, 때로는 사외이사로, 그리고 시장으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었으나 가족을 챙기지 않고 시민단체들에 기부했습니다. 65세인 그의 재산이라고는 수억 원에 달하는 부채뿐입니다. 곧 시장공관을 떠나야 하는 그의 유족들에게는 거처할 곳도 없습니다. 박원순이 살아온 일생을 흉내조차 못낼 자들이 그의 일생 전체를 능멸하는 걸 보자니, 어떤 나라 속담이 떠오릅니다. “상처 입은 사자가 죽으면 들쥐떼가 달려들어 그 상처를 물어뜯는다.”
Wooyong Chun's post
그는 1995년 전 재산인 집 두 채를 팔아 시민단체에 기부한 이후, 집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알렸고,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정착시켰으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가 주도하여 만든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은 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국가보안법연구>를 비롯해 수십 권의 책을 썼습니다. 변호사로, 저자로, 강연자로, 때로는 사외이사로, 그리고 시장으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었으나 가족을 챙기지 않고 시민단체들에 기부했습니다. 65세인 그의 재산이라고는 수억 원에 달하는 부채뿐입니다. 곧 시장공관을 떠나야 하는 그의 유족들에게는 거처할 곳도 없습니다. 박원순이 살아온 일생을 흉내조차 못낼 자들이 그의 일생 전체를 능멸하는 걸 보자니, 어떤 나라 속담이 떠오릅니다. “상처 입은 사자가 죽으면 들쥐떼가 달려들어 그 상처를 물어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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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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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한일간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해결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북핵을 빌미로 사드를 사라고 강요했습니다. 약점이 부지기수인 503호는 오바마의 강요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오바마는 미국 군산복합체 시다바리였을 뿐입니다. 저는 그 뒤 오바마를 개의 자식으로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오바마를 아직도 좋아하는 지식인들은 저 보고 과격하다고 합니다. 저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북한 체제를 혹독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김원봉 선생님을 북한으로 내 몰은 미국의 통치에 굉장한 반감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대머리를 쓰다듬은 미국에 혐오까지 생겼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선거로 뽑은 오바마조차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주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미국의 문화적 깊이를 느꼈습니다. 하워드 진에서 노암 촘스키까지 미국의 지성을 존경하였습니다. 저에게 의료 체계의 본질을 알게 한 학문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미국의 경제력과 함께 문화적 깊이와 지성과 학문의 역량을 높게 평가합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동전에서 선한 면을 악한 면과 함께 봅니다.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길 거부한 북한 체제를 제가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북한을 어쨌거나 마냥 나쁘게만 볼까요? 2018년 7월 3일, LA공항에 도착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을 때 감정이 묘하더군요.
송필경's post
미국과 나 약 2달 동안 쿠바에 대한 글을 페북에 많이 올렸습니다. 여러 페친께서 제 글에 많은 관심을 주셔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쿠바에 관심을 갖게 한 결정적인 동기는 쿠바의 의료제도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 의료제도 가운데 가장 앞섰다고 저는 봅니다. 1970년대 말 서클에서 의료제도를 공부하면서, 쿠바 의료제도를 미국 최고의 의과대학으로 꼽히는 존스 홉킨스 대학 예방의학 교실의 ‘빈센트 나바로’ 교수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저는 치과의사로서 35년간 일했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치과 의료가 발전하는 면도 많이 있지만, 상업적으로 왜곡되는 모습도 있어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보편적 의료를 확대하려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 속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지만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한 정책이라 저는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협회에서는 사생결단으로 반대하는 모습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쿠바 의료제도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마침 그 참에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제안으로 쿠바 혁명의 주요 흔적을 따라 여행을 했습니다. 20세기 중후반부터 세계 역사는 결국 미국하고 관계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우리(남북한), 베트남 그리고 쿠바 이 세 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은 제 지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제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한 제국주의 모습을 갖춘 나라입니다. 제국주의는 나쁜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선한 모습은 참으로 많습니다. 인류가 이룬 정치 체제 중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문화와 학문의 역량도 막강한 경제력에 걸 맞는 높은 수준이어서 우리가 따라 가지 않을 수 없는 모범이라고 봅니다. 실제 제가 밥벌이하기 위해 배운 치의학 지식은 모두 미국의 것이니까요. 저는 제 나름 이유로 17년간 베트남전쟁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또 다른 한 면인 전쟁을 즐기는 악한 제국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베트남전쟁에서 보인 악한 미국 모습의 글을 200자 원고지로 치면 10.000장 훨씬 이상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한 국가가 세계사에 의미 있는 체계 만든 가치를 설명하자면 세계사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쿠바가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해도 그들이 이룩한 선진 의료체계를 알려면 쿠바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쿠바의 역사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국하고 관계한 역사입니다. 그 역사를 설명하자면 미국의 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제 행태에 대해 반미, 좌파란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제 나이브한 생활이나 의식 내면을 본다면 저는 좌파적이거나 반미적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딱지를 제게 굳이 붙인다면 거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대학 때 겪은 1980년 광주항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의 악마 짓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광주에서 선혈이 낭자할 때 미국은 전두환을 응원하는 듯한 태도로 미 태평양 함대를 우리 남해에 보냈습니다. 이듬해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전두환을 제일 먼저 불러 대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전투기 35대를 팔았습니다. 그 뒤 저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직접 개입한 해방 직후부터 우리 역사를 펼쳐보았습니다. 저는 다음 역사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열단을 조직했고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낸 김원봉 선생님이 귀국하자마자 일본 순사 조무래기였던 노덕술에게 끌려갔습니다. 일본군에 두려움을 줬던 우리 광복군의 상징이셨던 김원봉 선생님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사흘간 고문당했다는 부분 말입니다. 일본이 가장 많은 현상금을 걸었던 기개 높은 김원봉 선생님은 일본군 조무래기 조선인에게 모멸을 당하시고 울부짖고 짖다가 북한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반공을 위해서라면 이런 조무래기에게 권력을 쥐어 주고 우리 민족 정서를 깡그리 무시한 해방후 점령군 미국의 처사를 제 의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노덕술의 후예가 바로 저는 김기춘이라고 봅니다. 유신에 충성하고 김영삼 부정선거에 봉사하고 박근혜 국정농단까지 권력을 건재하게 사용한 김기춘 말입니다. 저는 이게 지금까지 우리 정치에 뿌리내린 미국의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오바마는 우리 지식인이 아주 좋아한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제 딸아이도 오바마의 연설 솜씨를 아주 좋아하더군요. 저도 오바마가 멋쟁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바마가 퇴임 직전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에게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을 도와주기 위해 오바마는 어리버리한 503호에게 단돈 100억을 받고 한일간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해결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북핵을 빌미로 사드를 사라고 강요했습니다. 약점이 부지기수인 503호는 오바마의 강요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오바마는 미국 군산복합체 시다바리였을 뿐입니다. 저는 그 뒤 오바마를 개의 자식으로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오바마를 아직도 좋아하는 지식인들은 저 보고 과격하다고 합니다. 저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북한 체제를 혹독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김원봉 선생님을 북한으로 내 몰은 미국의 통치에 굉장한 반감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대머리를 쓰다듬은 미국에 혐오까지 생겼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선거로 뽑은 오바마조차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주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미국의 문화적 깊이를 느꼈습니다. 하워드 진에서 노암 촘스키까지 미국의 지성을 존경하였습니다. 저에게 의료 체계의 본질을 알게 한 학문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미국의 경제력과 함께 문화적 깊이와 지성과 학문의 역량을 높게 평가합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동전에서 선한 면을 악한 면과 함께 봅니다.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길 거부한 북한 체제를 제가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북한을 어쨌거나 마냥 나쁘게만 볼까요? 2018년 7월 3일, LA공항에 도착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을 때 감정이 묘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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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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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남이 뿔났다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대통령이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다"며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고, 그것이 애국"이라고 말했다"는 점 때문이다 비엣남 입장선 "자신과 싸워 한국경제가 살났고 정글서 민간인 학살까지 해가며 임무 수행한 것이 애국"이란 점에 자존심이 상했다 올해가 한베 교류 25주년이라 살짝 넘 갈 수 있는데 비엣남은 그냥 넘지 않고 대변인을 내세웠다 비엣남 경제 20프로를 먹여 살리는 삼성전자와 수 많은 한국 기업이 있고 비자없이 하루 2만 5천명이나 들어오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엣남이지만 자존심 건드리면 단교도 가능한게 이 나라다 중국보다 더 실용적이고 자존심도 세다 한국엔 비엣남 전문가가 없는가? 문대통령, 추념 원고는 도체 누가 쓴거얏! ※ 추신: 비엣남 국제 정치는 사방이 적으로 쌓인 중동의 이란만큼 능수능란하다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비엣남에게 국제 정치를 배워야 산다 비엣남은 1979년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한국전쟁같이 인해전술로 나온 중공군은 산악전을 이용한 비엣남의 게릴라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미국과의 전쟁서 얻은 경험과 무기도 있지만 치고 빠지는 이들의 실용적인 전투는 천년 이상의 오래된 역사가 숨어 있었다 (패전 충격에 쌓인 중국은 그 이후 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외교를 시작하며 한편으로 확전을 전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비엣남은 소련을 끌어들인다 소련은 중국이 전쟁을 확대하면 비엣남의 지원군으로 참전하겠단 순간 전쟁은 비엣남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비엣남 국제 정치가 먹힌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게 식민지 하에 벌어진 일을 사과하고 보상하라 하듯 열린 시각으로 비엣남에게 사과할 것은 하면서 해줄 것은 해줘야 한다 우리가 일본 만행을 잊지 않듯 이들도 우리의 만행을 절대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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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정부, 文대통령 '베트남전 참전용사 경의'에 반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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