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부인 (愛麻夫人)
영화
작품
1982년, 정인엽 감독이 연출하여 상영된 한국영화.
작품/영상창작 연도1982년발표 연도1982년시나리오 작가이문웅감독정인엽연출자정인엽촬영자이석기주요 등장인물안소영|임동진|하명중|하재영더보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애마부인」은 1982년, 정인엽 감독이 연출하여 상영된 한국영화이다. 1980년대 한국 ‘에로 영화’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전두환 정권기 우민화 정책인 3S정책의 결과물로 평가받아 왔으나, 최근 논자들에 따라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하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인정하는 여성 주체의 모습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키워드
1982년, 정인엽 감독이 연출하여 상영된 한국영화.
내용
이애마(안소영 분)는 사업 핑계로 외박을 일삼는 남편 현우(임동진 분)와의 관계에 염증을 느끼다가 남편이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도 외박을 한다. 순종적인 부인의 반항에 크게 화가 난 남편은 술을 마시다 옆자리 남자와 다툼을 벌이다가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다. 애마는 과실치사로 복역하고 있는 남편에게 2년째 매주 면회를 간다. 애마는 주위의 권고에도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다. 면회를 다니다가 미술학도 김동엽(하재영 분)을 만나 진실한 그의 태도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날 애마는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옛 애인 김문오(하명중 분)에게 강간에 가까운 불륜의 정사를 갖는다. 하지만 변태적인 김문오의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엽을 만나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자신의 처지에 혼란을 느낀 애마는 현우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현우는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한다.
애마는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에 매진하는데, 시골집에 있던 애마에게 동엽이 찾아와 자신의 프랑스 유학에 동행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약속한 그날 현우가 특사로 출감하고 애마는 동엽이 아니라 현우를 찾아간다.
제작 배경 및 상영 사항
1982년 2월 6일 서울극장에서 개봉하여 31만 5000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그해 한국영화 흥행에서 랭킹 1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애마부인 시리즈는 13편까지 제작되었고, 외전으로 「파리애마」와 「짚시애마」, 그 외 비디오와 IPTV 용으로도 다수의 영화가 나왔다. 아마도 한국영화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가진 '프랜차이즈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영화는 제작 신고에 수반하는 시나리오 검열 단계에서 그 퇴폐성으로 인해 전면 재검토 명령을 받았고, 이에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하여 겨우 검열을 통과하였다. 시나리오 검열 당시 '애마(愛馬) 부인'이라는 제목의 부적절성을 지적받아 제작사는 제목을 '애마(愛麻) 부인'으로 바꾸었다. 당시 정부는 이에 더해 이 영화의 제목을 한자로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1980년대 검열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자주 회자된다.
의의 및 평가
「애마부인」은 1980년대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며 우후죽순 격으로 양산된 일군의 영화, 소위 에로 영화라는 장르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인식된다. 또한 전두환 정권기의 우민화 정책, 소위 3S(Screen, Sex, Sports) 정책의 상징적인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게다가 전두환 정권 초 대표적 사회정책이었던 심야 통행 금지를 해제함으로써 비롯된 극장 심야 상영의 첫 사례이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나 정치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논자에 따라서는 이 영화가 가지는 가부장적인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인정하는 여성 주체의 태도를 높게 평가하며, 나아가 이 영화를 비롯한 당대 에로 영화들이 전두환 정권기의 정책 방향과 역행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단행본
『1982년도판 한국영화연감』(영화진흥공사, 1983)
논문
이윤종, 「역진의 정치성: 80년대 에로영화론」(『문화과학』 93, 문학과학사, 2018)
이현진, 「1980년대 성애영화 재평가를 위한 소고」(『현대영화연구』 10-2,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4)
「애마부인」(정인엽, 1982)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애마부인」 검열서류
김형석, 「에로티시즘의 대명사-〈애마부인〉 프랜차이즈 연대기(1)」(https://www.kmdb.or.kr/story/8/1348)
김형석, 「에로티시즘의 대명사-〈애마부인〉 프랜차이즈 연대기(2)」(https://www.kmdb.or.kr/story/8/1353)
검열 법제·행정 제도 언론 · 출판 · 예술 등의 분야에 대한 표현내용을 공권력에 의하여 검사, 열람하는 행정제도.
백상예술대상 영화 의례·행사 중앙그룹이 영화와 방송부문을 아우르는 대중문화의 질적 제고와 활성화를 목표로 주최하는 종합예술상.
접기/펼치기집필자
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애마부인
| 감독 | 정인엽 |
|---|---|
| 출연 | 안소영 |
| 개봉일 |
|
| 시간 | 102분 |
| 국가 | 대한민국 |
| 언어 | 한국어 |
"애마부인(愛麻夫人)"은 대한민국의 영화로, 조수비 작가의 원작 소설을 정인엽 감독이 영화화했다.
원래 제목은 '愛馬夫人'으로 하려 했으나, 제목이 저속하다하여 '愛麻夫人'으로 바꿨다.
1982년에 개봉한 이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서 이후 시리즈로 제작되었으며, 1982년에 서울에서 10만명 이상을 동원한 2편 중 한편이었다.
1996년에 13번째 시리즈가 개봉한 이후로 현재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있다.
줄거리
애마 오수비(안소영)는 권태로운 가정주부였으나, 남편 신현우(임동진)의 바람기 때문에 결국 맞바람을 피게 된다.
남편이 술집에서 폭행사건으로 과실치사에 연루되는 바람에 현우(임동진)는 8년형의 중형을 선고받는다.
오수비는 과실치사로 복역중인 남편 신현우를 2년째 매주 면회를 간다.
남편이 교도소에 가자, 애마는 자신의 딸을 놔두고 혼자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우연히 만난 남자 김동엽(하재영)하고 뜨거운 사랑에 빠져 함께 도예를 배우게 된다.
남편의 외도로 괴로웠던 수비는 주위의 권고에도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다.
면회를 다니다가 미술학도 김동엽을 만나 진실함을 느끼다, 어느날 수비는 같은 아파트의 옛 애인 김문오(하명중)를 만나 불륜의 정사를 갖는다.
하지만 변태적인 김문오의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엽을 만나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남편 현우는 이혼을 제기하는데 시골집에 있던 수비에게 동엽이 찾아와 프랑스로 떠날 것을 약속하게 되는 바람에, 그녀는 가정을 선택할 것인지, 자유를 선택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러다 약속한 그날 현우가 특사로 출감하게 되고 동엽에게로 떠나려 했던 수비는 부부의 굴레에 묶여 현우를 마중하고 현우는 수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출연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당시 전두환 정부의 정책인 3S의 일환으로 국민들을 정치 대신 섹스,스포츠 등으로 빠져들게 하여 신군부의 집권기간을 연장하는데 일조하였다.
외부 링크
2025년 '애마'가 노출한 1982년 '애마부인'
고경석 기자
입력 2025.08.25 04:30 26면
9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애마'. 넷플릭스 제공
‘애마부인’은 20세기 말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영화다. 극장용 영화로만 12편까지 제작됐고 해외 편인 ‘파리 애마’ ‘짚시 애마’, 유사품 ‘드라큐라 애마’ ‘애마와 변강쇠’ 등 총 20편이 넘게 극장에 걸렸다. 아무 관련 없는 홍콩 에로 영화에 ‘강시애마’라는 제목까지 붙은 걸 보면 ‘애마’라는 이름은 시대의 상징이자, 남성적 욕망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 김기영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정인엽 감독은 미국 연수 중 봤던 에로 영화에서 충격을 받고 돌아와 ‘애마부인’(1982)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을 타고 제작됐으나, 애마(愛馬)라는 제목이 정부 심의에 걸려 애마(愛麻)로 바뀌고 시나리오도 36개 장면 수정 지시를 받는 등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중은 ‘애마부인’에 열광했다. 영화관 매표소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다. 서울에서만 31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애마부인’ 1편을 소재로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한다. 제작자는 여배우를 착취하고 권력자들에게 성상납도 불사하며 부를 축적한다. 촬영 현장에서 신인 여배우의 인권은 무시된다. 1990년 개봉된 4편 포스터에 ‘여성영화평등’이란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쓰이는 등 여성주의 영화로 포장하려 애쓴 흔적이 있지만 영화 안과 밖에서 벌어진 착취와 차별 구조에 기생한 작품이란 점을 상기시킬 뿐이다. 드라마는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 드라마 ‘애마’에서 여배우들은 연대해 충무로의 남성 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제작 시스템을 폭로한다. 실제로도 1980년대 충무로의 후진적 악습을 깬 건 새로운 영화를 꿈꾸던 젊은 영화인들이었다. 그중엔 이전 세대에서 소외되고 배제됐던 여성 영화인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던 영화 중 상당수가 젊은 여성 제작자·프로듀서의 손을 거쳤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현재 우리 콘텐츠 산업이 귀 기울여야 할 대상도, 업계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 세대가 아닌 젊은 인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
==
박정미's post
박정미
oetprodsnS8tfum1681uha1909cclltc532c5u8tlgt146hla6lc5h019600 ·
싸앙년들이 나안년들이로구나
넷플릭스 <애마부인>을 정신 없이 보다가 저녁밥이 늦었다. 배곯고 일하다 해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밥상이 늦어지자 부루퉁 입을 꾹 내밀고 성질을 부렸다.
할 말이 없지, 뭐. 눈치 보며 초스피드로 콩나물을 무치고 아쉬운대로 계란말이를 해서 밥상에 올렸다. 그래도 들어갈 기미가 안보이던 남편의 입이 막걸리 한사발이 들어가자 쏘옥 들어갔다. 비로소 애마부인 때문에 냉기가 흐르던 집안이 온기를 되찾았다.
아아! 극단적 절망과 희망으로 찢겨 몸부림치던 우리푸른 젊음의 80년대. 권력의 야수적 발톱이 지배하던 어두운 밤과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아침의 망치소리가 교차하던 욕망의 80년대.
드라마 <애마부인>은 그 시대의 밤을 견디고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싸우는 두 당찬 여배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B급으로 버무린 솜씨가 그런대로 맛깔스러웠다.
언론탄압이 극심하던 그 때는 소문전성시대였다. 서울에서 발화된 온갖 소문이 전라도 시골구석 여중생이던 내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문어대가리 권력자와 꽃같은 여배우들의 야리꾸리한 이야기는 설마설마를 연발시키며 무섭게 뻗어나갔다. 드라마는 애마를 빌어 그 설마를 내달리게 하는데 내가 어떻게 홀딱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골의 80년대는 텔레비젼이 보편화되고 전화기가 이장집부터 먼저 가설되어 급격하게 도농간 격차를 줄이고 있었지만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전근대적 습속은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을 옥죄고 있었다.
그 시기 아침이 밝기도 전에 이장집 마이크방송이 삐빅거리며 아빠를 찾던 어느 날이 생각난다.
"장산양반, 장산양반은 전화가 왔으니 속히 이장집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장산양반, 장산양반은~~"
전화는 서울의 대기업에 근무하던 큰오빠에게서 온 것이었다. 이장집에 달려갔다온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말 한 마디 없이 행장을 꾸리더니 즉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러 광주로 출타하셨다.
그리고 한밤 중에 집에 돌아온 아빠는 큰오빠의 혼사를 다 파해버렸다고 선언하셨다. 사주단자까지 오가고 결혼날짜 의논이 한창이던 참이였지만 엄마는 한마디도 더 얹지 않고 받아들이셨다. 상대집안에서도 항의 전갈 하나 없이 없던 일이 되었다.
그만큼 밤을 꼴딱 새우고 고민하다 새벽에 전화를 걸어온 큰오빠의 전언은 이 결혼에 치명적인 무언가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내가 알듯모를듯 몇다리 건너 들은 파혼사유는 이랬다. "알고보니 싸앙년이었다더라".
당시 시골에서 여자의 혼삿길을 막을만큼 가장 큰 욕이 바로 '싸앙년'이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두 여주인공은 싸앙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긍하고 들어간다. 그 시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추구하던 모든 여성은 다 싸앙년이었다. 드라마는 그 싸앙년이 나안년이 되는 성장기다.
시골여자인 나는 싸앙년이 되지 않는 것이 최대의 행동방침이 되도록 내면화된 교육을 받고 길러졌다.
대학에 와서 혁명이니, 여성해방이니 글줄 꽤나 읽고 떠들어대기도 했지만 난 결국 싸앙년이 되는 것이 세상에서 젤 무서웠다.
욕망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극복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기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뒷전에 서는 것이 편한 시골여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싸앙년이 될 수 없었기에 결국 나안년이 되지 못한 것같다.
저녁밥 늦었다고 눈을 부라리는 남편 앞에 서면 대들기보다는 우선 고개를 조아리는 내가 무슨 싸앙년이고 나안년을 넘볼 수 있으랴!
드라마의 결말부분에서 애마부인의 원조인 안소영씨에게 마이크를 준 것은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픽션이라지만 이렇게 온전하게 한 시대를 증언하게 된 것은 안소영씨 도움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애마부인이야기는 안소영씨의 자전적 스토리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애마가 愛馬가 아닌 愛麻로 표기되어 극장에 내걸렸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고 실소했다.
이희늬씨의 도회적 아름다움과 신인여배우 방효린씨의 순박한 아름다움이 대조를 이루어 극을 이끌어가는 리듬도 좋았다.
이하늬씨의 틀을 깬 카리스마 연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신인 방효린씨의 표정연기도 참 신선하고 이뻤다.
곧고 맑은 이마밑에 시커먼 눈썹이 촌스러운데 그것이 들꽃같은 싱싱함으로 다가왔다.
우리딸도 눈썹이 시커매서 내 딸 보듯 방효린씨를 보았다. 나는 그렇게 못했지만 우리 딸은 싸앙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해본다.
(혹시 페북 검열지침에 걸릴까봐 핵심 두 단어의 철자표기를 한 음절 늘려서 썼다. 그래도 걸리면 어쩌나 ^^;)
==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