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 조성환



地中有山 | [서울에서] 16.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

[서울에서] 16.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리더십에세이外
혼돈나라 
|2019.03.10.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개벽’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발단은 한국의 근대사상사를 (개벽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작업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한국에서는 개벽을 슬로건으로 하는 몇 개의 자생종교가 탄생했다(물질개벽, 인심개벽, 정신개벽, 사회개벽 등). 동학을 비롯하여,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등이 그것이다.

이 한국종교들은 중국의 개벽 개념에 “새로운 문명을 연다”고 하는 사회운동적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여, 주자학이나 불교 등을 개벽하는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최근에 그 사상사적인 의미에 주목하여 개벽운동을 한국의 ‘토착적 근대’(기타지마 기신)나 ‘자각적 근대’(이병한)로 위치지우는 견해가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다.

동학연구자 박맹수가 2013년에 ‘개벽종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이래로『유라시아견문』의 저자 이병한은 동학을 ‘척사파’나 ‘개화파’에 대해 제3의 길을 선택한 ‘개벽파’로 명명하였다(2014년).

그리고 2018년에는 원불교학 연구자인 강성원이 이런 선행연구들을 바탕으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학문을 ‘개벽학’이라고 명명하였다.

개벽학이라는 개념은 조선후기의 사상사를 “실학에서 개벽학으로”의 전개로 파악하는 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촛불혁명 이후에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실제로 오랜 실천활동을 해온 시민운동가들 중에서 개벽에 주목하는 이들이 요즈음 늘어나고 있다. 35년 전에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썼다고 하는 인문운동가 이남곡은 개벽의 의미를 “자기 안에 있는 밝은 기운을 혁명적으로 신장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정의는 증산학에서 말하는 해원상생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리고 야마기시공동체 등에서 30여년 동안 공동체운동을 해 온 유상용은 개벽을 “자기 자리에서 세계를 보는 눈을 여는 것”이라고 하였다. 전자가 마음개벽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식개벽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일만세운동이나 촛불시민혁명을 동학농민개벽을 잇는 개벽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관점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현대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다음 단계로‘개벽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동학의 용어로 말하면 ‘다시 개벽’ 혹은 ‘개벽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0여년 동안의 서양 중독 끝에 마침내 자기 자리로 돌아오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이런 흐름을 살려서 앞으로의 한국학은 척사학이나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전환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미래공창신문》제38호, 2019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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