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8

알라딘: 식민지 트라우마 - 한국 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을 찾아서





알라딘: 식민지 트라우마 - 한국 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을 찾아서

식민지 트라우마 - 한국 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을 찾아서   
유선영 (지은이)푸른역사20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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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쪽


책소개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제 식민시기를 살아간 조선민족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학술 등 각 분야에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근대 문명의 충격과 제국주의의 힘에 휩쓸린 식민지민의 ‘감정’에 주목하여, 식민지배의 경험이란 본질적으로 트라우마, 외상의 경험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식민화를 문명화라 정당화하는 사태를 맞아 집단 불안과, 자신을 보호가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현되었다는 주장을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며 꼼꼼히 그려낸다.

식민지민의 트라우마는 근대성 그리고 식민지배의 두 가지 집단경험이 뒤섞인다. 저자는 식민지민의 트라우마를 역사화하기 위해 식민지민에게 가해진 외상들을 재구성해 식민지민의 민족주의는 사실 민족적 감정의 다른 이름이며 식민지민의 진정한 자아는 그의 말도, 행동도, 스타일도 아닌 감정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과 프란츠 파농의 비판을 수용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근대성과 문명 앞에서 스스로의 열등성을 충격적으로 자각한 이래 식민지민의 모욕과 수치심은 이민족과의 관계에서 분노, 공격성,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무력감을 야기했다. 민족모욕과 국치의 경험이 민족감정을 도발하고 민족감정은 다시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목표로 흘러갔다. 물질적 부를 향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향한, 학력과 명예를 향한 열망 역시 이러한 공격성의 표출이라 저자는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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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1장 민족모욕과 감정의 역사
세기말과 식민 지배기를 규정한 4가지 힘|역사를 추동하는 감정구조|민족모욕과 수치의 장기 역사|민족주의에 침습한 모욕감정과 ‘근대 트라우마’|모욕 받은 민족의 탈식민화

2장 ‘업수이 여김’과 분노 감정의 계몽
이민족의 모욕에 직면한 세기말|문명인의 ‘업수이 여김’이 촉발한 자기부정|분노공동체로서 민족이라는 감각

3장 문명의 트라우마, 민족의 스티그마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문명화 노선|물질문명의 경이를 실감하며 입문한 근대|자연정복의 의지를 결여한 민족이라는 스티그마|식민지민의 비교 콤플렉스|타자의 시선과 신체 이미지에 갇힌 식민지민

4장 모욕을 합리화하는 식민지 사회
일본 오리엔탈리즘의 간지奸智|경찰의 전지적全知的 감시망에 포획된 식민지 사회|문명화에 동원된 합법적 폭력|신체에 새긴 모욕과 처벌|식민지 군중의 저항, ‘콜레라 소요’

5장 식민지민이라는 저주
〈경찰범처벌령〉이 규정한 식민지민의 죄와 벌|문명화에서 소외된 식민지민의 흔들리는 자의식|‘조선인스러움’을 소환하는 호명, “요보”|저주의 주문 ‘배일排日 조선인’|불의와 모욕에 분노하는 식민지민의 거리 소요|풍속과 도덕의 규율 공간, 극장|식민지라는 ‘비참Les Miserables’의 공동체

6장 식민지민의 인정認定투쟁과 아메리카니즘
3·1만세운동 직후의 불온 정서|독립 역량을 가진 민족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미국에 보내는 구조 요청 신호, 제2차 독립운동|식민지민의 오판, ‘상상의 아메리카’

7장 동정과 연예의 민족주의
상호부조의 민족주의|식민지민의 불온한 동정열同情熱|연예를 매개로 한 동정의 민족화nationalization|온 겨레가 거든 ‘해삼위 학생연예단’ 전국순회공연|식민지 동정의 감정역학

8장 친일과 매판 협력의 존재양식
‘쫓겨 간 조선인’ 이등신민이 되다|오갈 데 없는 재만 조선인의 생존법|소수민족이자 일본국적자, 민족 갈등의 뇌관|친일의 얼굴, 얼궤이즈二鬼子|‘善良な 鮮人’ 혹은 ‘나쁜 선인鮮人’

9장 모욕과 폭력의 악순환
식민지민의 허위의식, 의사제국주의|‘일본의 개’ 간주, 구축운동 벌이기도|모욕 받은 자들의 폭력, 중국인 집단학살(과장, 왜곡된 오보가 불질러|평양선 갓난아기까지|서둘러 사죄, 구제금품 모금도|1,300여 명 검거 600여 명 기소)|식민지민의 민족주의, 히스테리 그리고 공격성

10장 폭력과 호환된 소비 그리고 나르시시즘
비교의 욕망에 사로잡힌 식민지민|근대성이라는 근원적 공포와 히스테리|혼란스러운 ‘근대 레시피’|타인의 시선에 과민한 식민지민의 인상학

에필로그-모욕 받은 민족의 감정구조

주석
찾아보기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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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외부자에게 한국은 조선Chosen이었고, 조선을 소개한 서구의 여행가, 학자, 관리들의 저작들에서는 '은자隱者의 나라the Hermit kingdom'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졌다.


P.40
“조선 사람끼리 싸우고 시기하며 강한 자가 약자를 압제하고 업수이 여기면서 외국 사람을 대하면 ‘병신들 같이 행신行身하는’ 까닭에 외국 사람이 조선을 업수이 여긴다.”
-문명인의 ‘업수이 여김’이 촉발한 자기부정
P.75
“제일 못나고 제일 가난하고 산천도 남만 못하고 시가市街도 남만 못하고, 가옥도 의복도, 음식도 남만 못하고 과학도, 발명도, 철학도 예술도 없고 일을 할 줄도 모르거니와 할 일도 없고 아마 이러케 불상한 백성은 다시 업슬 것”
-타자의 시선과 신체 이미지에 갇힌 식민지민
P.107
청결 여부 판정은 순전히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판단에 맡겨졌으므로 무조건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은 물론 없는 살림에 음식 접대, 뒷돈도 챙겨야 했다. 머리에 먼지가 앉았다고 몽둥이로 먼지 털듯이 실컷 두들기는 것을 경찰은 ‘청결한다’고 했고 이런 식으로 70대 노인도 ‘청결하고’ 부녀자도 두들겨 팼다.
-신체에 새긴 모욕과 처벌
P.140
요보 호명은 하등민이라는 낙인이었다. …… 요보는 일제가 지배하는 제국 안에서 정상인이 아니라는 낙인stigma이고 민족적 범주였다. 요보라는 호명은 개개인의 개성, 신분, 인격의 차이는 삭제되고 다만 ‘요보 조선인’으로, 즉 조선인이라는 민족범주로만 존재하게 하는 장치였다.
-‘조선인스러움’을 소환하는 호명, “요보”
P.188
“인도주의와 정의를 완전히 결여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동정하는 미국 의회의 일원이고 위대한 미국 인민의 대표들에게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두 눈에 피눈물을 머금고 감사를 표한다.”
-식민지민의 오판, ‘상상의 아메리카’
P.221
1920년대 민족주의는 동정-감정에 의해 추동되었고, 연예에 의해 매개되고 실감되었다. …… 무대와 관객은 구분되지 않았고 그들은 나라를 잃은 망국민이고 식민지민이었다. 이 일체감이야말로 식민지민이 향유한 가장 강력한 카타르시스이고 쾌락이었을 것이다.
-식민지민의 불온한 동정열
P.239
‘센료나 센징’은 중국과 일본,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서 이간질, 밀고, 정탐, 앞잡이, 친일매판 협력행위로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또 일본의 비호하에 유흥업, 마약류 취급, 인신매매와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자가 많았다.
-‘善良な 鮮人’ 혹은 ‘나쁜 선인鮮人’
P.266
패거리를 이룬 장정들이 핏물 떨어지는 곤봉을 든 채 앞에서 선도하고 그 뒤를 200~300명의 무리가 따르면서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중국인을 찾아 다녔다.
-평양선 갓난아기까지 살해
P.312
인텔리 여성 89명을 대상으로 ‘미래의 남성상’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고전으로는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햄릿, 톨스토이의 부활을, 현대작품으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 작품의 개요와 주인공 이름쯤은 알아야 하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감상할 귀, 야구?정구?럭비 경기규칙 정도는 알고있는 남성”이라 했다.
-타인의 시선에 과민한 식민지민의 인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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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7년 6월 29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유선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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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0년대 청소년기를 보내고, 1970년대 청년기를 보낸 세대로서 경험한 군사독재, 권위주의 공권력, 물질주의, 개발우선주의, 집단주의, 학력주의, 비교 콤플렉스, 국가폭력, 가부장주의, 자기주도성의 상실 등의 문제들에 민감하다. 그런 만큼 인간의 자기 통제력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이러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압력들에 대한 감수성이 연구의 동력이었다. 식민지 시기에 천착하는 것은 이 같은 한국 사회의 집합적 문제들에 대한 불편한 심사의 소산이다. 〈홑눈정체성의 역사〉, 〈편쌈 소멸의 문화사〉, 〈육체의 근대화: 아메리칸 모더니티의 육화〉, 〈근대적 대중의 형성과 문화의 전환〉 등 다수의 연구를 수행했다. 접기


최근작 : <식민지 트라우마>,<미디어와 한국현대사 : 사회적 소통과 감각의 문화사>,<지금, 여기, 여성적 삶과 문화>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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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과학 질주 시대, 학문과 인간이 던지는 질문>등 총 268종
대표분야 : 역사 7위 (브랜드 지수 386,69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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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민족감정’으로 꿰뚫어 본
식민사회 조선인의 민낯

“피식민지 민족은 힘의 격차가 불러온 폭력적 사태들에 직면해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나르시시즘의 보상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 감정, 정신의 상흔들이 민족의 심연에 그리고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 있다. 식민지 시기의 역사는 표면의 현실 역사와 심연의 역사를 동시에 바라볼 때 비록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전체의 윤곽선을 그려볼 수 있다.”


‘일제 36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한다. 당연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진 이들은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영웅과 위인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을 끌고, 흔적을 남기는 것은 이들의 몫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도와 조직 같은 유형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이 같은 주역과 서술방식?대상에만 주목해서는 역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미시사며 문화사 등에 눈길을 돌리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것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제 식민시기의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의 폭력과 억압 그리고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투쟁과 부역에만 주목해서는 식민지의 역사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사회적 불의와 민족차별 그리고 독립과 해방을 염원하는 민족주의 저항과 투쟁은 식민지 역사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모욕이라는 집단경험을 축으로 재구성한 식민지배의 상흔
그 시대를 살아간 조선민족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학술 등 각 분야에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혹 시쳇말로 “엽전은 안 돼” 하는 자조의 말 역시 식민지배의 잔재 아닐까.
지은이는 근대 문명의 충격과 제국주의의 힘에 휩쓸린 식민지민의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식민지배의 경험이란 본질적으로 트라우마, 외상外傷의 경험으로 보았다. 이민족에 의한 폭력과 모욕이 반복되는 과정에 자신의 전통과 문화, 정체성이 온통 부정당하는 정신적 외상을 집단적으로 겪었다고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 식민화를 문명화라 정당화하는 사태를 맞아 집단 불안과, 자신을 보호가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현되면서, 힘에 대한 열망, 비교에 집착하는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나르시시즘의 보상 욕망 등을, 다양한 자료를 섭렵해 꼼꼼히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인의 외모에 대한 열패감, 중국인에게 ‘이등신민’으로서 우월감을 과시하는 얼궤이즈二鬼子, ‘평양사건’에서 터져 나온 히스테리컬한 공격성, 속물주의에 가까운 서양문물 숭배 등 차마 마주 대하기 꺼려지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생생한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책에 담긴 식민지 풍경

다시 보는 민족주의의 실체
식민지민의 트라우마는 근대성 그리고 식민지배의 두 가지 집단경험이 뒤섞인다. 그러나 외상은 ‘역사’가 되지 못했다. 외상은 정신분석의 영역이지 증거, 기록, 실증의 역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식민지민의 트라우마를 역사화하기 위해 식민지민에게 가해진 외상들을 재구성해 식민지민의 민족주의는 사실 민족적 감정의 다른 이름이며 식민지민의 진정한 자아는 그의 말도, 행동도, 스타일도 아닌 감정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과 프란츠 파농의 비판을 수용했다. 그리하여 민족모욕과 국치의 경험이 민족감정을 도발하고 민족감정은 다시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목표로 흘러갔음을 보여준다.

‘업수이 여김’을 벗어나기 위한, 힘을 향한 욕망
식민지배는 2등, 3등의 하위민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민족적 위치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통제력 부재와 결여, 그로 인한 모욕과 수치, 불안이 가중될수록 힘에 대한 욕망도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는 서재필이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가며 한 고별연설에서 “나라를 도와 부강케 하고 용맹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앞으로 나아가 세계 만국에 동등 대접을 받고 다시는 외국 사람들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지 말지어다”한 데서 엿볼 수 있다.

폭력을 동반한 문명화 세례
공진회가 전시하고 있는 것은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이다. 1920년대 문화적 민족주의, 실력양성주의, 인격주의, 개조주의는 식민지민의 저주받은 죄의식과 공격성의 산물이다. 근대는 적들의 저주받은 문명이므로 공격해야 하지만 동시에 피할 길 없는 모욕과 수치에서 벗어나게 해 줄 근대였다.
그런가 하면 콜레라 예방을 위한 위생계몽도 민족차별의 경험을 더해 우발적인 콜레라 소요가 벌어지기도 했다. 의사도, 병원도 아닌 (위생)경찰이 주도하는 방역에서 빚어지는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들, 비위생이 공개리에 까발려지는 모욕과 수치, 방역관계자들의 천시와 협박, 경찰과 순사의 칼과 몽둥이에 의한 매질과 피범벅이 되어 유치장에 갇히고 격리된 채로의 죽음이 위생계몽의 실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정투쟁과 아메리카 짝사랑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모든 조선 사람들은 미국의원단을 천사단과 같이 알고 고대하는 중.” 1920년 중국을 거쳐 조선을 방문한 미국 의원단을 영접하기 위해 특파된 《매일신보》 기자 백대진이 미국의원단에게 전한 말이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등에 기대어 독립을 호소하려던 조선민중의 열망은 ‘자모慈母를 기다리는 유아幼兒의 마음과 애인을 고대하는 정인情人의 가슴’에 비견되었다. 이를 두고 일제 식민 당국은 이를 뇌미賴美사상이라 일축하기도 했다.

왜곡된 민족감정, 약자를 겨냥한 공격성
서구 열강의 근대성과 문명 앞에서 스스로의 열등성을 충격적으로 자각한 이래 식민지민의 모욕과 수치심은 이민족과의 관계에서 분노, 공격성,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무력감을 야기했다. 물질적 부를 향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향한, 학력과 명예를 향한 열망 역시 이러한 공격성의 표출이다. 100여 명의 애꿎은 중국인이 살해된 ‘평양사건’은 자기파괴적 공격성에 포획된 식민지민의 또 다른 집단불안 징후를 보여준다.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나르시시즘의 표출
식민체제는 민족차별과 서열구조에 의존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식민지민은 자기보호를 위해 방어기제로서 나르시시즘에 의존한다. 나르시시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근대성이다. 근대교육과 고등학력, 근대적 지식, 근대적 생활방식과 취향, 영어 등 외국어의 구사, 그리고 서구와 일본에서 수입된 상품의 소비이다. 이화여전을 중퇴하고 《개벽》 기자 등을 역임하며 1930년대 다수의 소설을 썼던 장덕조(1915~?)는 〈내 이상理想하는 스윗트홈〉이라는 글에서 “남편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가정, 햄 샌드위치를 만들며 피크닉 준비로 소란한 가정, 한강 상류에서 피크닉, 연애감정으로 한 결혼, 월급쟁이 남편, 가난하지만 (미국여배우들과 같은) 아름다운 웃음을 짓는 (자신의) 얼굴, 계란 하나와 버터 칠한 빵 한 조각이 진수성찬인 식탁, 명랑과 쾌활함’이 있는 가정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식민지 지식인이 꿈꾸던 근대였다. 접기


북플 bookple


읽고 싶어요 (12) 
읽고 있어요 (2) 
읽었어요 (8) 
마니아 




    


우리 사회 대부분의 문제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PTSD다.개인이건 집단이건 폭력에 장시간 노출이 된다면 뇌의 기질적 문제는 물론 집단 의식도 변화하게 된다.‘착하면 손해‘라거나 편법과 반칙을 융통성으로 치부하는 행태들이 대표적이다.심각한 건 이게 절대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데 있다.  
Ajna 2017-07-0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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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植民
어떤 나라가 국민을 본국 밖의 미개발 지역이나 본국과 정치적 종속 관계에 있는 나라로 이주, 정착하게 하여 토지의 이용 등 경제적 개발과 정치적 지배를 행하게 함.
-다음 한국어 사전-
참 폭력적이다.  
암탉 2017-07-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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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한 것들이 열등함을 폭력적으로 자각하게 된다는건 참 끔찍한 것이다.  
DUKENUKEM 2018-09-26 공감 (0) 댓글 (0)



    

도서기록장 천백이십팔번째.- 식민지 트라우마 





민족주의를 반성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지만 중국인 학살에 대한 접근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민족주의가 사흘에 걸쳐 119명의 무고한 중국인, 그것도 갓난아기와 서너 살짜리 유아, 임신한 부녀자와 노인까지 무차별적으로 돌로, 몽둥이로, 불로, 톱으로 공격하는 폭력, 살인, 학살로 분출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답해야 하는 것이다. (...) 냉소적 태도야말로 기나긴 변설로 내용의 공허를 폭로시키지도 않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남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외국의 영화잡지 등을 미리 보고 와서 신작 미국 영화에 대한 지식을 드러내기, 사회주의 사상이 유행하고 있으므로 소비적인 모던 보이보다는 진지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맑스 보이'로 보이게끔 화려하지 않은 복장하기, 영화잡지는 외국 것 외에는 휴대하지 말기, 우울하고 경멸할 줄 아는 '천학박식' 되기, 또 최근 등장한 토키 영화를 모르면 집에서 근신하는 것이 좋고 지식과 교양이 없다면 "무조건 경멸하는 것이 모토고 철학이고 전술임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사실 제가 약간 사디즘이 있어서 이런 피뿜는 내용 무척 즐겨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게 20년대의 일이고 결국 중국이 사회주의 정권이 되었죠. 지금 일부 어른들이 공산당이라고 중국 싫어하시는데, 예전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세상사란 참 뭐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천과 평양에 사는 중국인들에게도 가혹한 짓을 했다.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것이다. 만일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조상들이 했던 짓에 대해 대신 사과하자. 최소한 괜히 외국인들 모욕하는 창피한 짓은 안 하겠지. 레알 살인귀라고까지 불렸다 하니 망신 뻗치기 전에 외국인들과 싸우지 마라 국가 망신이다 ㅇㅇ. 뭐 동기는 이해하지만.

여기서 사회주의가 자꾸 나오는 것에 대한 설명. 1924년인가 25년에 치안유지법이란 유명한 악법이 만들어져서 국제변화(식민지 독립이나 공산주의 운동)를 기하는 일체의 운동이나 언설을 엄중히 금하게 된다. 그러나 이 법조차 내지와 식민지 조선에서 그 강도가 달리 적용된다. 당장 내지 일본에선 입법부터 일제 패망기까지 해당죄목으로 사형까지 언도받은 사례가 없는 반면, 조선에서는 각종 공산당 사건이나 농촌 관련 활동으로 사형선고 내지는 장기간 투옥되는 일도 허다했다. 일단 식민지 조선인 중 상당수가 치안유지법 전과자(...)이니 말 다했다. 참고로 크리스천도 여기 해당된다.














일상의 각 현장에서
1. 근대화되지 못한
2. 식민지인이란 멍에
란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던 한국인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열패감, 피해자 의식은 한국적 근대화를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막 복잡한 학술논문마냥 대량의 정보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통일된 주제의식 아래 전개되는 내용이 참 읽기 평이하고 재밌다.



페친이 추천해줘서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을 대체 왜 추천해주시나 했는데 완전 내 입맛이네 ㅋㅋㅋ 요샌 가급적 내 입맛이 아닌 책을 읽으려 하지만 이 책도 스트레스를 푸는 데 나쁘진 않겠다 싶어 계속 읽으려 한다. 덕분에 다시 냉정한 나로 돌아가 빌려준 돈도 다시 받았다. 돈 없고 빽 없고 여자인 내가 현재 사회적 약자이며 약자인 척 코스프레하는 인간들은 질색이다 ㅇㅇ

그런데 나는 식민지 때 유독 열등감을 느껴, 아내와 자식을 패며 화풀이했다는 구절은 공감을 못하겠다. 예전에도 지 아내를 상전이나 중국에 바쳐놓고, 전쟁에 패배하면 아내 버리고 도망가놓고, 상황이 나아지면 정조를 잃었다고 아내를 죽이거나 버리는 놈들 많았다. 딱히 일제강점기 때만이 아니라 한남이 원래 그런 인간들이다 ㅇㅇ 단지 일제강점기가 워낙 데카르챠라서 못난 인간들이 못난 본성을 더 많이 자주 터뜨렸을 뿐이지. 당장 삼국시대에도 아이 못 낳는다고 중전을 내치는 모습 꽤 나오는데, 특히 신라 중기가 심하긴 하지만 어쨌든 딱히 조선만 남아 선호 사상을 주장한 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물론 이것도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는 맥락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항상 생각하는 게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주는가 이다. 말장난 같지만, 가령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기준이 개인마다 다르고 개인의 상황마다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그래서 국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령 나는 친일파 행위를 했거나 우파 일본인의 작품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포사건 같이 접촉하자마자 우리나라를 천하게 보고 함부로 죽인 일본의 태도를 보면 정말 화가 난다. 개인의 사상이 사회를 안 좋게 변화시킨다면, 선한 사람들이 모여 그를 막고 올바른 생각을 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도 한도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개를 키우기 싫어하는 사람이 단체 내부에 존재한다 치자.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단체가 토론을 하는 장소에 개를 키우자 건의하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 않자 화를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소소하긴 해도 이기적이고 품위없는 행동이다. 이에 대한 사회의 풍부한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딱히 상대적 박탈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라를 선진국에 뺏기는 건 우리 예상보다 더 서러운 일이다.

내가 사실 제일 싫어하는 한국인이 서재필이다. 이 사람은 사실 지가 부모 덕에 그만큼 올라온 줄도 모르고 죄없는 김부식(삼국사기 쓴 사람은 한 사람만이 아니다)을 함부로 까댄다. 더불어 우리 민족이 무식하다고 욕하는데, 바로 앞에서 양놈들이 쳐들어와 다짜고짜 때리는데 '맞는 놈이 무식하다' 이러면 분노하지 않겠냐 ㅋㅋㅋ 난 솔직히 갑오개혁 내용은 좋다고 보지만, 민중들이 왜 닥치는 대로 갑오개혁 주도한 자들을 죽였는지 서재필 보고 이해했다. 그래서 계몽인의 선민의식 말인데 ㅇㅇ... 몰락해가던 운동권 잔당들이랑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가르쳐도 깨우치지 않는다며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걸 보면 타자와의 거리가 어찌 형성되는지 느끼게 되더라. 관념 혹은 기술의 선점이 타자로부터의 우위로 도식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진짜 배운 사람이라면 그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부터 다질 수 있을텐데 말이다. 사회운동 하는 애들은 자신의 지적 체득에 스스로 경도되거나(도취), 혹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쳤던 경험을 보편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머무르는(게으름) 행위는 절대 지양해야 하겠다. 지양 못하면 결국 그것이 힙스터 정치.

그리고 웹소설 쓰시는 페친분의 친절한 설명 전문.
갑신정변후 일본갔다가 일본에서 인기좋은 김옥균이랑 수틀려서 나머지 미국감->
박영효 : 그래도 내가 조선의 부마인데 망명객 대우 이런거 없냐
서재필 : ㅅ발 그런게 어딨어 나가서 일이나 해 형
서광범(서재필 친척형인지 아저씬지) : 난 몸도 약하고 집안일도 잘 못하는데
서재필 : 그럼 버리고 간다 무능한 조선놈아 ㅃㅃㅇ
(박영효는 다시 일본가서 김옥균이랑 투닥거리며 지내고 서광범은 미국에서 골골대다 폐병걸림)
(김옥균은 깝치다가 암살당함)
(그러고 서재필 혼자 잘돼서 막노동으로 대학졸업하고 10년지남)
유길준 : 그나마 조선정치에 뭔가 도움될만한 인재가 서재필정도일텐데
윤치호 : 근데 내가 미국유학갔다왔다고 전하가 맨날 나보고 미구긴이냬...
(서재필 오는사이 갑오대신들 다 맞아죽음)
서재필 : ㅅ발 조선? 조선말? 그딴거 모름 다 잊어버림^^ 난 미구긴 P.제이손이라네~
윤치호 : 후...그래도 쓸데없는 친목질안하고 뭔가 똑똑하게 추진할만한 사람이...서재필뿐....후.....(이마짚)

우리나라가 서양의술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 일단 보균자라는 게 뭔질 모르면 멀쩡한 사람을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 게다가 병원 가던 중 발병해서 사망하면 상황이 더 최악으로 되고. 설명만 잘 했음 해결되었을 텐데 일본놈들이 했던 짓을 보면 설명을 잘 했을리 만무하고.

여담: 매일신보 백대진이라고 해서 순간 기자 백명이 몰려와서 뻗치기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역시 이름은 중요하다.




강원도에 사는 장우탄이란 사람이 10년 만에 상경하여 서울의 변화를 체감한 후 독립신문(1897.9.30)에 기고한 글은 실용 및 실무 지식, 기술과 기계, 문명적 제도, 구미 숭배열이 추동하는 세기말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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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ㅋㅋㅋ 서울이랑 똑같이 되려고 나무 다 때려부쉈냐? 아무튼 무식한 건 뭘 해도 티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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