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7

1905 李宇衍 동학농민전쟁과 '근대'는 무관하다.

동학농민전쟁과 '근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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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서울 종로에 전봉준 동상이 세워지고, 주말연속극도 나왔군요. 많이 수정, 보완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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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 또는 농민란을 이 정부가 선양, 현창하려 한다. 또 하나의 "민주화운동"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논자들의 초점은 동학란이후 그들이 일진회를 중심으로 친일로 갔다는 점이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것으로는 정부와 그 지지자들에게 반론, 황당한 움직임을 저지하기에 근본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후에 친일이 있었다고 해도, “반제 반봉건” 저항운동, 근대를 지향하는 “시민혁명”이었다고 우기면서 지금 국민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힘입어 저들은 끝까지 밀어부칠 것이다.
농민, 정확히는 小農(소작농이 아니며, 영어로는 peasant, farmer는 현대 기계화된 가족농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의 본질이 근대, 또는 근대시민혁명과 무관하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마르크스는 이 농민을 설명할 수 없었고, 그래서 러시아 상황으로 말년에 골머리를 썩다가 결국 부하린 등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답을 주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마르크스에게는 농업 자본가를 포함한 부르조아, 농업노동자 등 프로레타리아, 지주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미스 또한 농민=소농을 분석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영국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자본-임노동관계가 중심이었으므로, 다른 나라 농민들도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노동자나 자본가가 되고, 농업에서 "삼분할제"(노동자, 농민, 지주)가 성립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자유로운 소농경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하였다.
이후 사회주의 혁명전략에서 농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당면한 중대 과제로 설정한 이는 레닌이었다. 그가 {러시아에 있어서의 자본주의 발전} 등에서 ''농민층 양극분해''라는 억지를 부린 것도 기실 농민문제가 그렇게 중요했음음 반영한다. 당시 러시아에서 근로대중 다수가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이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레닌의 주도 하에 결국 노동자계급이 농민과 손을 잡고(노농농맹) 일차 부르조아 혁명을 수행하고, 그 뒤에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되어 제2차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다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레닌의 분석과 모순되는 것이었지만, 실천적으로 혁명의 시급성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농민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 최초로 이론적 분석을 행한 이는 러시아의 A. V. 차야노프였다. 그는 농민을 자본가겸, 노동자겸, 경영자겸, 지주(땅을 가진 경우)라고 보았다. 그로 인해 그들의 경제적 행동원리는 근대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에 의해 설명될 수 없고, ''농업집단화'', ''집단농장''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농민을 ''푸대 자루속의 감자''와 같이 푸대에서 쏟아지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로 묘사한 레닌도 ''농업집단화''만큼은 최대한 미루고자 했다.
농민문제를 고민해본 적 없는 스탈린은 달리 생각했고, 레닌 사후 집권하자 바로 급격한 농업집단화, 집단농장을 급속도로 추진하였다. 농민은 저항했지만, 폭력으로 진압되었다. 이후 러시아에서는 농민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나오는 감자가 집단농장의 생산량을 압도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인간본성에 반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차야노프는 집단화와 함께 바로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사망시기와 장소조차 알 수 없다.
정치, 이념적으로 농민은 “농민적 평등주의” 또는 “농민적 공산주의”로 성격지울 수 있다. 토지에 대해서는 "농민적 균분주의"가 핵심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에릭 울프의 {농민}, {20세기 농민전쟁}나 농민전쟁에 대한 여러 논저를 참고할 수 있다.
독일농민전쟁, 중국 태평천국의 난, 러시아 농민의 사회주의 혁명 참여, 프랑스 농민의 시민혁명 참여 등, 이 모든 것이 농민적 평등주의 내지 농민적 공산주의에 기반한 것이며, 농민반란은 그때그때 내외 상황에 따라 휩쓸렸다. 그 흐름은 자체적 동력에 의해 추동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외 상황에 따라 부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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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 모두 근대나 근대시민혁명과 본질적으로는 무관했다. 세계사 전체로 볼 때, 농민의 이념과 그에 따른 봉기는 자신의 생존이 위협되는 상황, 기아와 착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서면 항상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었다. 동학 또한 19세기 후반의 경제위기`생존위기에 대한 반응이었고, 그 시기가 조선왕조의 붕괴 직전이었을 뿐이다.
동학농민전쟁을 근대와 관련시키고 근대시민혁명으로 해석하고자 본격 저작물을 내기시작한 것은 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태진이다. 이러한 이해는 경제사 측면에서 김용섭 등의 자본주의맹아론과 명실상부한 짝을 이루었고, 지금도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통설은 교과서 서술의 뼈대를 제공하였고, 그 결과 동학농민전쟁을 근대 시민혁명에 근사한 무엇으로 이해하는 오늘의 국민적 착각과 환상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파급에는 그렇게 주워들은, 내재적 발전론이나 역사의 단계적 발전이라는 사회주의적 역사의식에 깊이 침윤된, 활동가`비활동가를 불문하는 586세대들이 큰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그렇다.
연구자들이 동학농민전쟁에 주목한 데는 이해할 만한 구석도 없지 않다. 그런 대규모 농민반란이 한국사에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학농민전쟁은 근대나 근대시민혁명과 본질적으로 무관했다. 오히려 주나라 시대 정전제 등, 유교의 전근대적, 토지 균분주의적 "개혁" 사상에 가까웠다.
절대왕정을 부정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사유재산절대와 계약자유를 원칙으로 삼는 자유시장경제, 그것을 국기로 삼는 대한민국과 전혀, 근본적으로 무관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그에 반하는 성격이었다.
동학농민전쟁을 '근대'와 관련지우려는 이 정부의 또 하나의 우민화 시도에 반대한다.
Comments
  • Sungdoo Lee 저열한 국민들이니 우민화는 디지털처럼 한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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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천 재밌는 분석이네요~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에 발생하긴 했지만, 내용적으로 봤을 때 ‘전근대 틀내에서의’ 농민반란이었다.. 정도로 요약될텐데, 그럼 <반외세 농민반란>이었다는 규정은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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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宇衍 최병천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반갑습니다. 좀 더 보겠습니다. 다만,외세가 왕의 뜻을 가로막기에 반대하는 존왕양이 가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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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영준 李宇衍 존왕양이라고 보긴 힘든것 같습니다. 동학의 반외세와 성리학의 위정척사는 결과물이 비슷해도 동기가 다릅니다. 동학은 개국 이후 상품시장의 교란과 지속적 가난에 대한 반발이 무장투쟁화한 것이고, 위정척사는 성리학 질서 관점에서의 척왜양론이니까요.
    • 李宇衍 천영준 개항이후 상품시장 교란, 존왕양이에 대해서 더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천영준 李宇衍 네. 사실 시전에서는 이미 19세기 초 중엽부터 양포나 면직물 등이 들어 와서 문제가 되었지요. 이것을 금난전권 범위에 포함시켜달라는 요청이 순조때부터 꾸준히 공시인순막을 통해 제기 되었습니다. 조일수호조규 이후엔 말할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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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변동현 어느정권이든 국민 무서운줄모르면 결국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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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윤 정신착란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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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 Sung Kang 구전소설로 허구의 역사를 작문하는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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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see Seosee 이태진은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의 폐혜를 잘 보여주죠 대한제국 우쭈쭈등 일관되게 억지로 조선이 서양의 근대화 를 따라갔다는 전제하에 꿰어 맞추고 있어요 특징이 외형이 비슷하다고 갖다 부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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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n KI Kim Seosee Seosee 대한민국에 충성하는게 아니라 조선왕조에 충성하는 근왕사학자죠. 개인적으로 그런 인간이 왜 "국립" 서울대학교에 있고 "국사"편찬위원회에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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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tae Oh 현 정부는 노무현의 생각을 계승한 세력이 아니지요. 그의 죽음을 활용해 집권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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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m Choi 동학혁명에서 촛불혁명까지. 안국역 설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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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kjin Park 동학운동은 근대적 개혁과는 무관하고 유교보수주의적인 성격이 강하죠.. 아직 근대에 대해서 당시 조선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맹아론과 함께 동학을 근대적 개혁이라고 주장하는건 학문적 사기에 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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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rry Song 이태진 교수 2005년 경 네이버 인조이재팬 시절 일본 역사전문가들에게 개망신 당한 이야기 유명합니다
    https://m.blog.naver.com/zaiyuan/220528168603
    이태진 털린 이야기
    BLOG.NAVER.COM
    이태진 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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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rry Song 끼워맞추기식 민족주의 역사관이 얼마나 폐해가 컸는지 서울대 이태진 교수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01&b=bullpen2...
    예전에 인조이재팬 역사란에서 일본인에게 서울대 교수도 털렸죠 ㅋㅋ : ML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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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성 안중근은 반란하는 동학도 때려잡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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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 프레임’은 바보 멍청이짓 - 진짜 친일하는 사람들? - 시사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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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의수 네. 맞습니다. 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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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dy Roh 또 한번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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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yuwon Nam 동학혁명 당시 그들은 그냥 탐관오리 들의 부정부패에 불만과 배가 고팠을뿐 근대화 같은건 알지도 못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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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얍삽이 동학 민란은 그저 일본 잇키 정도에 불과한 거라고 봅니다. 좌파는 이참에 홍길동, 장길산도 아예 민주화투사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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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ong D. Hahm 좋은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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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n KI Kim 갑오농민전쟁을 근대개혁이라 보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1) 조선후기에 신분제 변동이 있으면서 기존 질서에 일대 변혁이 생겼다 2) 오지영의 동학사에서 내건 폐정개혁안 12조인데 둘 다 신화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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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재 동학사상이 기독교사상과 더불어 조선왕국체제의 전근대성과 충돌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자국민을 학살하는 왕국체제가 일제에의해 분해되자 동학도는 근대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일본체제로 걸어들어갔고, 더러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으로 투신했으며, 자기 땅에서 살아남은 농민들은 기독교 교회 안으로 분산되었습니다. 왕국지배체제가 무너지니 억압당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체제를 찾아 몸부림친 세월이 오래토록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학농민운동은 억압을 뿌리치는 저항이요, 성실과 정직으로 모든 생명을 살리려는 피끓는 함성이었죠. 이것을 굳이 근대화 또는 자본주의 맹아로 보려는 이론는 다 실패했죠. 동학농민전쟁은 생명운동으로 지금도 살아 민민의 평화운동으로 움틀거리며 남과 북의 체제를 너머서는 미래의 지평에서 까지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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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宇衍 이영재 전근대와 충돌했다고 모두 근대는 아니지요.
  • Hyock Sup Lee 이영재 피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때 동학농민이나 지금의 촛불깨민들이나 같다고 보이네요.
  • 이영재 공감입니다







    • Hyock Sup Lee 당시, 조말, 의 부패한 사대체제의 엄혹한 수탈의 임계상황이 피부에 닿지 않습니까? 역사소설가 고 신순신은 김옥균이 일본이 아니라 전봉준과 공모했다면 결실하지 않았을까 가정하더라고요.
      동학 농민이 체제에 저항무력으로 발전했다는 점, 이를 외세 일본군이 진압했다는 사실, 이 두가지만으로도 현 사태, 즉 자한당 태극기로 표출되는 구체제세력 과 남북대화를 견제하는 미-일외세, 그 때와 유사하지 않습니까.
      디테일 팩는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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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宇衍 Hyock Sup Lee 태평천국도 무력저항이었고 외세가 진압에 참여했지만 근대지향은 아니었습니다.
      • Hyock Sup Lee 李宇衍 근대를 굳이 근대화론에 맞추어야 되나요. 근대는 정치, 경제, 문화의 복합된 산물이지요. 근대는 전근대에 시대적 대칭개념이니까요. 경제적 산업화, 도시화, 정치적 민주화, 문화적 평등, 국민교육 등, 서구인들이 정의한 개념이 있읍니다만.. 모두 전근대에 대한 변화, 개혁이지요.
      • 李宇衍 Hyock Sup Lee 동학에 있는 근대는 어떤 것이죠?
      • Hyock Sup Lee 李宇衍 평등 자주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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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ock Sup Lee 그리고 무력저항
      • Jake Jin Jeong Hyock Sup Lee 근대지향이라 함은 개인, 자유, 사유재산, 법치등의 가치와 관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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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성 Hyock Sup Lee 
        감옥균은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 단결에 세뇌된 급진 개혁차 였습니다.
        고종을 속이고 반란을 하다 3일만이 들통난 경솔한 이었죠.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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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宇衍 Hyock Sup Lee 평등은 토지균분과 같은 기계적 평등으로 자본주의 이전에는 농민이 항상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동학의 자주독립이란 외국이 조선의 왕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에 대한 저항, 존왕양이였습니다. 근대사상과 관계 없습니다.
      • 李宇衍 Hyock Sup Lee 이것 또한 전근대적 현상입니다. 배고픔을 못이기면 항상 폭동이 일어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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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성 李宇衍 
        동학도들은 이상한 교리를 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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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宇衍 윤희성 ㅎㅎ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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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ock Sup Lee 윤희성 누가 나라를 위태롭게 했나요? 지들이 할복 책임지고 애민했다면 모를까~ 외세위협, 부패정권이 겹치면 먼저 부패정권부터 타도하는게 답입니다.
      • 윤희성 Hyock Sup Lee 
        동학도가 반란을 일으킬 때 일본 등 외세가 조선이 칼을 겨눌때 입니다.
        그러면 힘을 합쳐 외세를 막아야지 반란을 일으키면 되겠습니까? See more
      • Hyock Sup Lee 정우진 맞아요. 허나 지금의 민주주의가 초기와 다르듯 진화했습니다. 일단 군주가 곧 국가였던 세상을 백성이 곧 국가, 이런 생각만으로도 근대화의 촛불은 됩니다.
      • Hyock Sup Lee 윤희성 부패권력을 먼저 때려잡는게 순서지요. 물론 이미 외세권력인 경우는 독립운동으로 바뀌겠지요?
      • Jake Jin Jeong Hyock Sup Lee 그것은 그냥 희망적인 생각이라 여깁니다. 촛불 혁명도 머 백성의 뜻이었죠.
      • Hyock Sup Lee 윤희성 부패를 못잡으면 그들은 외세와 손잡습니다. 고종이 그러 했듯이~
      • Hyock Sup Lee 李宇衍 배곺아도 국-민일체인 경우는 폭동하지 않아요. 고종이나 선조, 인조는 진작에 잡았어야죠.
        이승만은 4.19가 잡긴 했지만~
      • 윤희성 Hyock Sup Lee 
        당시 권력은 국가 제도에 의한 것으로 부패권을 때려잡는건 불가능 !
      • Hyock Sup Lee 정우진 근대지향, 맞아요.
        진화합니다. 무능한 군주를 타도했다면 근대화도 시작은 됩니다.
      • 윤희성 Hyock Sup Lee 
        고정이 식민지를 원했나여?
      • 윤희성 Hyock Sup Lee
        전봉준이 왕이 됐으면
        일본 침탈은 없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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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성 Hyock Sup Lee
        북조선에서는 촛불혁명 안하나?
      • Hyock Sup Lee 윤희성 역사에 가정은 불요하지요. 일본 침략도 우리가 물렁해서지요. 국-민일체는 언제나 관건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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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성 Hyock Sup Lee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 윤희성 Hyock Sup Lee 
        국- 민이 하나 되려면 경제가 잘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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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宇衍 태평천국도 무력저항이었고 외세가 진압에 참여했지만 근대지향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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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순근 이박사님.또 쓸데읎는 거 건드네.. 우째 나가 건들었다가 머리에 총맞은 것들만 골라가며 건드신디야~~ㅜ.ㅜ.

      동학을 건들면 .. 결국 나중엔 동학때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을까를 건들게 되고.. 그때 함 팩트를 말하면 즉시 위안부 할머니 동상 만드는 사람들한테 머리에 총맞을텐데.. 그래도 계속 그 길로 가실려우 ?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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