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9

장정아, <대표되지 않는 자발성: 홍콩의 200만 '검은 대행진'의 의미



(1) Jung-a Chang




Jung-a Chang
2 hrs ·



2주간 글을 너무 많이 올려 죄송합니다. 이제 당분간 가능한한 조용히 하면서, 다른 분들 글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서로 공명하는 제 글과 박민희기자님 글 함께 소개드립니다. "이 사건을 그저 중국과 홍콩의 대결구도로만 본다면, 또는 한국에게서 배운 거라고 자찬하는 데 그친다면, 곳곳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 가능성은 홍콩만의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장정아, <대표되지 않는 자발성: 홍콩의 200만 '검은 대행진'의 의미>, 창비주간논평)


"홍콩의 이번 시위를 '우월한 서구식 민주와 후진적 중국'의 이분법이나 반중의 틀로만 보는 것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이해와 연대가 아시아의 미래에 의미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다."(박민희, <우리는 모두 '홍콩인'이다>, 한겨레프리즘)

# 홍콩에서 광동어로 불리운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많은 분이 궁금해하셔서 맨아래 번역해서 붙였습니다.
다만 글에도 썼듯, 그리고 하남석선생님과 이택광선생님께서 이미 잘 지적해주셨듯, 이 노래가 불리운 맥락에 대한 관심이 '자찬'에 그치지 않기를, 서로 어떻게 연대해왔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 안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홍콩인들은 오랫동안 더 나은 중국과 홍콩의 미래를 위해 분투해왔다. 홍콩인들은 1989년 베이징 천안문 시위가 벌어졌을 때 대륙의 시위대를 지원하는 활동에 힘을 다했고, 이후에도 중국 대륙에서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를 지원해왔다.
국제적 연대와 공감이 홍콩인들의 '승리'에 힘을 보태고 중국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듯, 서로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이해와 연대가 아시아의 미래에 의미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홍콩인'이다.>
(박민희)

<"인민은 당신(행정수반)의 자식이 아니다", "생리주기보다 짧은 20일이 법안 의견수렴 기간이라니 말이 되나?"
이번 홍콩 시위와 집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이 잡혀가고 정당이 활동중지되면서 두려움은 사람들을 길거리에 잘 안 나오게 만들었지만, 이번 반대시위가 기폭제가 되자 그 두려움은 놀라운 자발성과 새로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운명에 더이상 순응하지 않고 나의 도시 홍콩을 내 스스로 구하겠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여러 이름이 등장하고 이름없는 시민이 등장하고 누구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는다.>
(장정아)

<광동어 버전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가사>
(두 가지 버전 정도가 있는데, 중국본토와 대만에선 노동운동 쪽으로 가사가 바뀌었다면 홍콩 광동어 버전은 거의 우리 가사를 중심으로 번역했습니다. 약간 어색한 부분은 제가 조금 부드럽게 의역했습니다만 거의 그대로입니다.)

명예도 이상도 기쁨도 희망도 침몰하여 빛을 보지 못한다
말은 없지만, 변치 않는 초심을 기억한다. 길위의 항쟁과 맹세.
동지는 하나하나 쓰러져, 깃발 위 핏자국은 흙모래로 가득하다
감옥은 불을 가둘 수 없으니, 다음에 올 용감한 이를 위해 빛나리라.
세월이 잃은 색채는 산하에 남아있다
밝은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사랑과 꿈이 아직 있다.
나는 굴복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넘어져 다치더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와라! 손을 잡고 앞을 향해 가며 함께 살고 함께 죽자.>

장정아 글
http://magazine.changbi.com/190619/?cat=2466

박민희기자님 글
https://news.v.daum.net/v/2019061617560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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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되지 않는 자발성: 홍콩 200만 ‘검은 대행진’의 의미장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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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아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인민은 당신(행정수반)의 자식이 아니다.” “생리주기보다도 짧은 20일이 법안 의견수렴 기간이라니 말이 되나?” “항쟁은 출신을 묻지 않는다. 본토 이주민도 동참한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 홍콩인들 스스로도 놀란 최근 홍콩 시위와 집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누구에 의해서도 대표되지 않겠다는 구호는 지도자 직선을 요구했던 2014년 우산혁명 때 처음 등장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다른가? 홍콩 시민과 학생들이 길거리로 연일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단지 특정 정책에 대한 반발, 정부와 시민의 대립, 또는 중국과 홍콩의 대립으로만 본다면 우산혁명 때와 비교해보기 어렵고 이번 사건 후 홍콩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포착하기 어렵다.



우산혁명 때는 분명한 지도부가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 점령구 집회의 중앙무대를 거부하고 단체들의 지휘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오직 나 자신으로서 참가하겠다는 자발성의 ‘혁명적’ 성격은 찬사를 보낼 만해 보였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모든 조직을 거부하고 심지어 점령구에서의 토론과 모임도 거부하면서 출구전략조차 토론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 시위대 내부 입장 차이에 대한 공격이 심해졌고,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도심을 79일 동안 점거했던 군중은 무력하게 해산되고 말았다. 도심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다.



우산혁명 이후 짙은 무력감 속에서 토론은 이어지기 어려웠다. 정부는 몇년이 지난 후에도 우산혁명 주요 참여자들을 기소했고, 그들은 최근 속속 수감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수정이 촉발한 반대 시위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103만명을 모았고 일부 지역을 잠시 점거했으며, 마침내 16일에는 200만명이 나왔다. 누구도 이끌지 않았고, 지금도 곳곳에서 경찰 방어선과 대치하는 이들 상당수는 익명의 청년들이다. 이번 시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여기에는 홍콩인들이 오랫동안 자랑스러워했던 법치의 보장을 더이상 받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특히 일국양제 속 홍콩의 공간이 점점 사라져, 중국에 종속될 뿐 아니라 아예 홍콩이라는 공간이 형체조차 없어지리라는 우려가 크다. 갑자기 실종된 후 중국본토에서 조사받았던 서점 관계자들 중 한명은 정부가 법안을 강행하려 하자 아예 대만으로 이민 가버렸다. 시민들이 뽑은 의회 의원들의 자격이 정부에 의해 박탈되고, 페이스북에서 독립을 주장한 글이 근거가 되어 정당 활동이 중지당했으며, 교수도 의원도 청년도 잡혀갔다. 두려움은 지난 몇년간 사람들을 길거리에 잘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상 ‘홍콩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 여겨진 이번 반대시위가 기폭제가 되자, 그 두려움은 놀라운 자발성과 새로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우산혁명 참여자들이 몇년 후에도 기소되고 수감되는 걸 보면서 이제 시위대들은 신분 노출을 피할 방법을 서로 공유한다. 마스크와 고글은 최루탄도 막지만 신분 노출도 막아준다. 시위 현장에서 ‘셀카’나 사람들 얼굴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걸 삼가고, 교통카드 대신 현금을 쓴다. 1회용 심카드로 바꿔 끼고 중국 앱들을 휴대폰에서 지운다. 페이스북 대신 텔레그램을 쓰며, 거기서 수시로 공유되는 정보에 따라 각자 선택해서 움직인다. 경찰이 찾아낼 수 있는 ‘주동자’는 더이상 없다. 익명의 네티즌들은 필요한 물자목록을 중요도 순서에 따라 분류하여 공유하고, 다양한 ‘교전수칙’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모든 행동은 참가자 자신이 선택해서 하면 된다.



그리고 전에 없던 다양한 이름의 주체가 등장했다. 행정수반이 “100만명이 반대해도 강행하는 이유는 제멋대로인 자식을 엄마로서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자 분노한 시민들은 ‘홍콩 엄마’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어 “인민은 당신의 자식이 아니다. 당신은 한 지역의 수장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외쳤다. “아이야, 두려워 말아라. 아빠가 여기 있다”며 아빠부대가 등장했고, 법안 지지 글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사장에게 직원은 “사장님, 당신은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지만 당신의 입장은 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라는 글로 대응했다.



이번 사안에 관심이 적을 것 같은 장년층을 겨냥하여, “수정법안이 통과되면 홍콩 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는 포스터를 곳곳에 뿌리며 관심을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광둥어에서도 다소 비하적 의미가 담긴 ‘아줌마’라는 호칭을 스스로 내건 집단은 말한다. “우리 아줌마들은 가족을 돌보느라 이번 시위에 못 나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히 반대한다. 전업주부건 맞벌이건 싱글맘이건 본토 이주민이건 종족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아줌마의 이름으로 호소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고 하여 한국에도 유명해진 ‘홍콩 엄마’ 집회에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지금 일어나 우리 자식들이 폭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을까봐, 그래서 중국 톈안먼사건 희생자 엄마들처럼 자식이 죽고 난 후 30년이 지나서도 계속 그 말을 해야 할까봐, 늦기 전에 지금 일어나 말하겠다.” 자식을 지키겠다며 나온 엄마들은 홍콩의 청년들을 통해 30년 전 중국 땅에서 죽어간 이들을 함께 끌어안는다. 이렇게 소환되는 톈안먼사건은 단지 오래전 먼 곳에서 있었던 불행한 비극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이어진다.



운명에 더이상 순응하지 않고 나의 도시 홍콩을 스스로 구하겠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하나가 아니다. 여러 이름이 등장하고, 이름없는 시민이 등장하고, 누구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는다. 이 사건을 그저 중국과 홍콩의 대결구도로만 본다면, 또는 한국에서 배운 거라고 자찬하는 데 그친다면, 곳곳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 가능성은 홍콩만의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



장정아 /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인류학

2019.6.19. ⓒ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SC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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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우리는 모두 '홍콩인'이다 / 박민희입력 2019.06.16. 17:56 수정 2019.06.16. 19:36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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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민 지지하는 타이페이 학생들타이페이 대학생과 시민들이 16일 타이페이에서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타이페이/AFP 연합뉴스

“홍콩을 보며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느낀다.” “마음을 다해 홍콩인들을 응원하고 있다.”

홍콩의 상황을 숨죽여 지켜본 중국의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전해온 소식들이다. 친중파 홍콩 정부가 추진한 ‘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해 홍콩인 703만명 중 103만명이 시위에 나섰고 결국 입법 보류를 이끌어낸 소식은 삼엄한 ‘검열 만리장성’을 뚫고 중국으로 전해지며 희망의 작은 불씨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 당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온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 행정장관이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입법 보류를 발표한 것은, 2012년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국 당국이 여론 앞에서 한발 물러선 사건으로 기록됐다. 16일에도 홍콩 시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법안의 완전 철회와 람 행정장관의 사임, 강경진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다시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시위에 나섰다.

저항의 이면에는 중국의 홍콩 정책이 홍콩인들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고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한 데 대한 분노와 공포가 있다. 2014년 홍콩인들은 행정장관 직선제가 ‘중국 정부가 승인한 후보들만의 선거’로 변질된 데 항의해 79일간 ‘우산혁명’ 시위에 나섰다. 2015년에는 중국 당국에 비판적인 책들을 판매한 홍콩 서점 주인 5명이 갑자기 중국으로 끌려가 구금됐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라도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는 범죄인 인도 조례 입법이 강행되자, 홍콩인들은 이번이 홍콩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일어섰다.

한국에서도 홍콩인들의 이번 시위에 대한 공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무더위 속에 최루탄과 고무탄에 맞서는 홍콩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5·18광주민주항쟁과 6월항쟁을 떠올렸다. 홍콩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은 아시아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교류하고 연대하며 ‘마음의 다리’를 만들어냈음을 깨닫게 했다.

아울러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이번 시위에 쏟아진 높은 관심의 이면에는 ‘강해진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중국은 자신감에 가득찬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위기감과 불안의 그림자도 짙어 보인다. 안정을 명분으로 감시카메라와 빅데이터를 이용한 ‘빅브러더’ 사회가 만들어졌고, 100만명 넘는 위구르인들이 ‘재교육 캠프’에 갇혀 있다고 유엔이 발표했으며, 인권운동가, 변호사, 독립적 노조를 세우려 했던 노동자들과 이들을 도우려던 대학생들이 구금되거나 실종됐다.

중국 주변에서는 ‘중국의 길’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높아졌다. 한국에서는 사드 사태까지 더해져 반중 정서가 굳건히 자리잡았다. 중국과 공존하려는 이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기술과 금융, 군사 분야로 확산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국 보수세력들은 한국 정부가 어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 등 ‘분명한 선택’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콩의 이번 시위를 ‘우월한 서구식 민주와 후진적 중국’의 이분법이나 ‘반중’의 틀로만 보는 것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홍콩인들은 오랫동안 더 나은 중국과 홍콩의 미래를 위해 분투해왔다. 홍콩인들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서 노동운동과 시민 권리 운동을 계속했다. 홍콩인들은 1989년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 대륙의 시위대를 지원하는 활동에 힘을 다했고, 이후에도 중국 대륙에서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를 지원해왔다.

중국 당국의 이번 ‘타협’ 결정에는 미국과의 무역·기술 전쟁이 격렬한 가운데 전세계가 주시하는 홍콩 시위를 강경 진압할 경우의 후폭풍에 대한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국제적 연대와 공감이 홍콩인들의 ‘승리’에 힘을 보태고 중국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듯, 서로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이해와 연대가 아시아의 미래에 의미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홍콩인’이다.



박민희
통일외교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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