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7

[영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 Vladimir Tikhonov



(6) [영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약 10년 전인가, 한 번 1호선을 타고 종각역쯤에서... - Vladimir Tikhonov




Vladimir Tikhonov
13 hrs ·



[영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약 10년 전인가, 한 번 1호선을 타고 종각역쯤에서 겪은 일이었습니다. 역에 도달하자 영어 안내 방송이 나왔는데, 저 옆에 지하철 차량의 한 모퉁이에 친구 일군과 함께 선 한 교복 차림의 여고생은 돌연히 친구들에게 내뱉었습니다: "영어, 영어, 난 당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세상이 좀 알아주었으면...나는 너를 증오해, 영어!" 저는 전후맥락을 당연 잘 알 리가 없지만, 그 여고생은 꼭 영어 시험을 앞두고 있었던 듯한 눈치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들리는 표현이지만 생각해보면 증오할만도 하겠죠? 비극 중의 비극이지만, 평균적 한국인의 인생은 한국어와 가장 사이 먼 언어 중의 하나를 얼마나 내면화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와 속하는 어족도 다르며 발음 구조도 다르고, 중첩되는 어휘도 예컨대 중국, 일본어에 비해 훨씬 적습니다. 현대 영어 어휘 중의 희랍, 라틴어 계통의 단어들이 약 30% 정도를 차지하며, 러어를 포함한 구주 계통의 언어 모어민들에게 적어도 이 단어들만큼 낯설지 않습니다. 제게 예컨대 전립선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제가 노르웨이에서나 영미권에서 비뇨기과에 들르면, '전립선'은 제 모어인 러어와 거의 비슷하게 prostate 같은 단어일 것입니다. '비뇨기과'의 영어 (urology)도 러어의 해당 단어와 거의 동일하죠. 한국어 모어민들에게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잇점은 있지만, 영어권에는 없습니다. 한국어의 대부분의 전문 용어들은 명치 시대에 일본에서 일어로 번역돼 조선으로 유입된 근대의 신조된 한자어들이니까요. 그러니 한국어 모어민으로서는 영어 구사란 러어 모어민에 비하면 아마도 몇 배 이상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어휘를 일단 익히고 기본적 청취, 발화, 작문을 구사해도 어차피 영미권에서 살아보지 못하는 이상 발음의 '현지화'는 어렵고 영어권에서 '산다'는 것은 이미 많은 경우엔 계급적 특권의 문제고....산 넘어 산이죠.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정말로 '증오'할만도 한 이런 고생을 '모든' 한국인들이 하게 됐는가요? 글쎄, 한국에 있어서의 영어의 패권적인 위치란 사실 유서가 좀 깊긴 합니다. 이미 개화기, 일제 강점기 때부터 주로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조선 토착 엘리트의 중요한 일부분을 이루었습니다. 서재필, 윤치호, 윤치영, 조병옥, 김활란, 김현철, 박인덕, 여운홍....개화기의 도미유학 유경험자는 약 50명, 1910년대에는 26명, 1920년대에는 332명, 1930년대에는 96명 등 해방 이전까지 다 같이 합산해도 500명 안팎이며 그 중에서는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잔류한 사람들도 상당수이었지만, 그들의 조선 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이미 그때만 해도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어차피 식민지의 유식자들은 영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1920년대의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중, 고등학교) 같으면 영어 수업은 1학년에는 주당 6시간, 2-3학년에는 7시간, 4-5학년에는 5시간이었습니다. 1927년에 개국된 경성방송국에서는 라디오 영어 강의도 진행했습니다. 일제 지배자들이 조선인들에게 '국어'라고 했던 일어를 강요했던 것과 동시에, 대미 전쟁의 시기만 제외하면 영어를 '문명의 언어'라고 존중히 모셨던 (?) 것이죠. 일제 때도 그렇지만, 일제가 물러가고 미국의 '직접적 지배' 아래에 들어간 이후로는...영어는 그 전에 일어와 영어가 받았던 각각의 그 '대접'을 동시에 단독적으로 독점하게 됐습니다. 미군이 인천에서 상륙한 1945년9월8일부터 시작된 "영어의 독점적 패권의 시대"는, 지금도 그냥 계속 진행중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영어 전성기'는 두 번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미군정 시대죠. 영어를 일본 학교에서라도, 대충대충이라도 배웠으면 미군의 통역이 되어서 갑자기 엄청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죠. 6.25 전쟁 때에는 영어 능통자는 일반 징집 대상자와 달리 통역 장교라도 되어서 적어도 목숨 부지하기가 훨씬 더 쉬웠으며, 이승만 시대의 '원조 경제' 시절에 여전히 비교적 쉽게 "출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중상주의적 개발 독재가 '국어'를 내세워 영어의 위신을 약간 상대화시켰지만, 또 실은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개발 독재의 실세들이 영어보다 일어를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상당수가 일군 장교 내지 일본 대학 졸업자 출신들이었으니까요. 때마침 1965년에 한일 수교가 이루어져 한국 관료들의 일본 시찰, 일본 따라 배우기 시대가 다시 열렸죠. 그런데 1997-8년 IMF 위기 이후로는 해방 이후의 역사에 있어서의 두번째 '영어 전성의 시대'가 다시 열립니다. 일본의 비중은 이미 상대화됐고, 일어를 모어 비슷하게 구사했던 박정희나 이병철, 구인회 등등 일제 시절 관료, 사업가 출신 '큰 오야붕'들도 거의 다 이미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영어를 견제할만한 '적수'가 더 이상 남지 않았던 것이죠. 거기에다가 신자유주의가 되어서 구미권 자본이 국내 금융계를 장악하고 국내 제조업 자본이 동남아시아를 경제 식민화하고 해외 취업이 잘 뚫리지 않는 취업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뜨고....그리고 거기에다가 나리킨, 나리킨이 다 된 대한민국에 금전적 여유가 생겨 도미 유학부터 '원어민 영어'까지 그저 중산층까지 다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적 재화가 된 것입니다. 식민지 시절 통들어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던 조선인들이 500명이나 될까 말까 했는데, 지금 현재 유학 중인 도미 유학생의 수는 5만8천 명 정도....비교나 되겠습니까?

괴물화되어버린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영어'는 과연 우리에게 지금 무엇인가요?

전통 시대의 한문과 같은 만능의 문화 자본인 셈이죠. 현실적인 필요성과 무관하게 영어 구사력의 정도가 계급적 신분과 정비례하기도 하고, 또 그 신분을 규정하기도 하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의 영어의 위치는 식민지 시절의 '국어', 즉 일어의 위치와도 엇비슷하죠. 그 때도 조선 사회는 일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했던, 일본 학교를 졸업한 '고등 유식자'부터 일어 인사말 정도만 할 수 있었던 다수의 빈민까지 각종의 '일본어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었거든요. 주요한 같은 거물 정도가 되면 일어 글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일본 특유의 시 형식인 와카 식으로 시도 작시할 수 있었는데...몇 년 지나면 한국에서도 영시를 잘 짓는 "글러벌 지식인" (?) 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뭐, 영어로 짓든 일어로 짓든 한글로 짓든 잘 짓기만 하면 경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영어 계급 사회'에서 각자의 '영어 계급'이 본인이나 그 부모의 경제력과 정비례하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영어라는 이름의 문화 자본이 결국 각자의 계급적 위치를 고정시키는 데에 이용되는 것이죠. 경제적 격차가 언어적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우리가 과연 살고 싶은 것인가요?

제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박정희 식의 국어주의를 절대 주장하지 않습니다. 표준어, 국어를 절대시시키는 것도, 식당 노동자와 공사장 노동자들 중의 상당수가 표준어 아닌 연변말이나 고려말의 단어들이 섞인 러어 등을 쓰는 이 시대에는 상당히 억압적인 늬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세상은 영어가 오로지 그 본연의 기능, 예컨대 학자들의 국제 소통 등의 차원에서만 쓰이고, 언어의 다양성이 존중 받는 세상입니다. 월남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다문화' 자녀가 학교에 가서 한국어와 함께 월남어도 배울 수 있는, 이런 세상이죠. 한글이나 독어, 일어로 쓴 논문도 한국의 학계에서 영어 논문 만큼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기도 하고요. 언어는 그저 필요에 따라 쓰이는 도구일 뿐이지, 어떤 한 언어가 물신이 되는 순간 언어 공부에 저처럼 평생동안 취미를 붙이는 인간에게마저도 그 언어는 증오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그런데 영어의 탈물신화는...미 제국이 지금처럼 쇠락의 길을 걸어도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수십 년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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