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8

한국미술 ‘잃어버린 페이지’ 메운다 - 경향신문



한국미술 ‘잃어버린 페이지’ 메운다 - 경향신문

한국미술 ‘잃어버린 페이지’ 메운다

입력 : 2005.03.24







분단 60년. 남과 북은 각기 체제에 몰입하면서 극단의 길로 치달았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북으로 간 화가들은 1950~60년대 자신의 그림세계를 펼쳐나갔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주체사상이 확립되면서 체제 선전도구로 예술은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북한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그림들은 모조리 벽에서 떼어 내려졌고, 남한은 남한대로 월북작가들을 민족반역자로 낙인찍어 그들의 업적들은 대부분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두 분단과 체제 고착 때문이다. 13년간 민간차원에서 북한지원사업을 펼쳐온 남북나눔(회장 홍정길 목사)은 분단 이후 남북 동질성이 가장 높은 1950~60년대를 주축으로 한 북한미술품을 수집해왔다. 컬렉션 규모는 500여점. 국내 최대 규모의 컬렉션으로 서울 일원동 밀알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밀알미술관이 그간 모아온 북한 미술 작품을 화집으로 묶어 냈다. ‘한국미술의 잃어버린 페이지’다. 배운성·함창연·길진섭·리쾌대·리팔찬·정종여·정관철·정영만·한상익·황태년 등 46명 작가의 작품 211점이 실려있다.


해방후 북한 미술의 가장 큰 변화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그림으로의 전환이다. 일본에 유학해 유럽식 인상파 그림을 배운 화가들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들의 그림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과 상관 없는 러시아 레핀아카데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보니 일본에 유학한 북한작가들의 인상주의 그림은 분단 이후에 볼 기회가 없게 되자 가짜로 오인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1950년대 초 레핀아카데미의 교수로 북한에 파견돼 평양미술학교 설립에 관여하면서 북한 미술의 근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변월룡 교수(1916~90)다. 인민예술가 정관철을 비롯한 문학수·정종여·김용준 등 북한의 화가들과 교류한 흔적(러시아 한인화가 변월룡과 북한에서온 편지·문영대 김경희 공저)들이 나와 한국미술사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우고 있다. 정관철(1916~83)은 동갑인 변월룡에게 선생님으로서의 극진한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는 유화와 판화 등 모든 부분에서 뛰어났지만 특히 한국인을 상징하는 구불구불한 소나무를 판화로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변월룡은 남북한 미술계에서 모두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밀알미술관측은 변월룡에 대한 작품과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인상주의 영향과 사실주의 영향이 함께 나타난 작가들도 많다. 엄도만(1915~71)은 내성적인 조선여성상을 묘사하면서도 러시아작가 슈리코프의 초상화를 연상케 한다는 설명이다. 또 리쾌대(1913~87)는 중국 쉬베이훙(徐悲鴻)만큼 출중한 인물화를 그렸지만 1950년대 작품은 레핀아카데미 출신에서나 볼 수 있는 사실주의 작품이다. 화집에는 역시 엄도만의 한복 입은 ‘여인’과 ‘노인’ 초상화, 리쾌대의 ‘삼일절 인물’과 ‘할머니’가 보인다.


밀알미술관의 자랑거리는 판화가 함창연(1933~2000)의 작품이다. 배운성의 제자인 함창연은 폴란드에 유학, 유럽의 정통판화를 가장 먼저 한반도에 도입한 인물. 독일 라이프치히미술제에서 수묵화 같은 작품 ‘밭갈이’로 금메달을, 빈미술제에서는 일제치하의 처참함을 묘사한 ‘화전민’으로 피카소와 함께 동메달을 수상했다. 밀알미술관측은 함창연의 화집을 발간, 유족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함창연의 양자이자 수제자인 김영훈(56)이 북한 판화의 맥을 3대째 잇는데, 오는 6월 밀알미술관에서 남한 판화가 김승연씨(50)와 ‘남북한 정상 판화가 2인전’을 열 계획이다.


또 하나 화집에서 돋보이는 것은 정관철의 유화 ‘김창옥 노인’. 평양미술박물관에 걸려 있는 대형 기록화 ‘우리는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의 인물 가운데 노인의 모습과 똑같아 이 그림을 위한 밑그림으로 보인다. 정영만의 1996년작 ‘금강산’은 수묵화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



〈이용 미술전문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503241748111#csidx020bbbdd9bf333bb64664ec609e7b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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