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3

알라딘: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김윤식 (지은이)

알라딘: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김윤식 (지은이)
솔출판사199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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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100자평(1)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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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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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품절] 이광수와 그의 시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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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아의 길
2. 배움의 길
3. 교사의 길
4. 방랑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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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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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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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윤식 (지은이)

1936년 경남 진영 출생. 서울대 명예교수.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1968년 서울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 1975년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임한 이래 문학사, 문학사상사, 작가론, 예술론, 비평, 에세이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연구와 글쓰기를 통해 한국 현대문학사의 기틀을 닦았으며 독보적인 학문적·문학적 성과를 이룩했다. 1973년 현대문학 신인상, 1987년 한국문학 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평론 부문), 1989년 김환태평론문학상, 1991년 팔봉비평문학상, 1994년 요산문학상, 2002년 대산문학... 더보기
수상 : 2008년 통영시문학상(청마문학상), 1994년 요산김정한문학상, 1993년 편운문학상
최근작 :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3 (큰글자책)>,<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2 (큰글자책)>,<문학을 걷다 (큰글자책)> … 총 20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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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교수는 왜 두 번씩 방일하여 굳이 이광수의 자취를 찾아다녔을까...이광수=친일파라는 천박한 견해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다층적 측면을 보게 해준다.
madwife 2015-08-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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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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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가 친일파가 된 이유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빌려주어 읽었던 책이다. 당시 읽었던 판본은 케이스에 3권이 들었던 것이었다. 저자 김윤식 교수는 당시 EBS에서 고전을 소개하는 프로로 접했던 분이었다.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말하는 것처럼 책 역시 평이하게 이광수란 사람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느낄 수 있게 써져 있었다. 
상당히 방대한 저술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전공이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인 평가는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이책을 읽으면서 구한말과 일제시대가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게 어떻게 보였는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친일이 살기 위해서가 아닌 신념으로서 행위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당시를 살던 사람의 결정이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잘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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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lu 2009-02-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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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근대의 양상, 이광수와 그의 시대

이광수의 전기문인 <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기념비적인 저서가 아닐까. 철저한 고증과 자료조사 그리고 이광수에 대한 저자의 강렬한 애정이 이런 대작을 빚어 놓을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김윤식의 저서 곳곳에는 이 이광수 연구의 체험을 강렬하게 묘사해 놓은 부분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김윤식의 근대 문학 연구에 있어 이광수 연구는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책 역시 김윤식의 기존의 작가 연구가 그러하듯 '아비 찾기'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다. 이광수에게 아비란 조부, 동학의 박찬명 대령, 예수, 톨스토이, 도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써 김윤식의 방법론으로서의 아비란 헤겔의 '절대정신'과 유사한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이광수를 '고아의식', '애정결핍증' 등의 논리를 통해 '부모의 부재', '애정의 결핍'에 대한 자각이 크면 클수록 '아비'에 대한 지향성 또한 강렬해지는 것으로 본다. 물론 이러한 아비찾기로서의 이광수의 일생은 준비론이라는 민족계량주의적 발상의 한계랄까, 아니면 그의 인간적 위선의 결과랄까 어쨌든 천황제 파시즘에로의 경사와 함께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나의 생각으로는 해방 이후의 춘원은 천황제 아비를 잃은 천애의 고아로서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던것 같다. 해방 직후의 2년여 기간 동안 한 편의 글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음이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때 이광수의 친일, 즉 민족 배반의 논리를 따지기에 앞서 그의 친일에 대한 신념의 무모성, 즉 전후 일본에서 줄기차게 비판되고 있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각 없는 경도를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광수에 대한 감정적인 친일 비판에서 구해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문사로서, 언론인으로서 혹은 지사(?)로서 많은 소설, 논설 등을 글들을 토해 놓은 춘원 이광수의 의미란 무엇일까. 나는 인간 이광수야 말로 우리의 근대, 근대성을 가장 드러내 보여주는 리트머스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소세키가 '자기본위'의 논리로 근대에 대응했고, 중국의 루쉰이 인민주의에 기반한 진보적 혁명주의를 통해 근대에 대응했던 인물들이라면 춘원은 준비론의 논리로 근대에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이광수의 근대 대응을 살펴보는 작업은 우리의 근대를 살피고 근대 이후의 논리를 모색하는 작업의 하나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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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e0525 2003-10-0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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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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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과 그의 시대
 
엊저녁에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른가 김윤식 선생(1936-2018)의 부고를 접했다. 위중한 상태라는 소식은 들은 바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해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은 이후 30년간 선생의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이 배웠다. 러시아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근대와 근대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강의하고 있는 현재의 일상도 선생의 강의와 책에서 계발된 바 크다. 공저를 포함해 250권이 넘는 저작은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질에 있어서도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필두로 한 선생의 한국근대문학사 탐구와 비평은 후학들이 뛰어넘어야 할 산맥이다.

올해 한국문학계는 황현산 선생(1946-2018), 허수경 시 인(1964-2018)에 이어서 소중한 경륜과 자산을 잃었다. 애석한 마음과 함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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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8-10-26 공감 (4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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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다'의 주어다
 
오늘자 한국일보(06. 06. 14)의 연재물,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김윤식 서문집>을 다루고 있다. 제목은 "나는 '쓰다'의 주어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지만, 서문이란 대표적인 '곁다리텍스트'이며, '곁다리텍스트'는 이 카테고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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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서문집>(2001, 사회평론)은 놀라운 책이다. 

그 놀라움을 낳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이라기보다 형식이다. 아니, 텍스트 너머에 어른거리는 긴 세월의 고된 글 노동에 대한 상상이다. 이 책은 국문학자 김윤식(70)이 1973년부터 2001년까지 낸 책들의 서문을 모아놓은 것이다(*물론 이후에도 그는 많은 책, 많은 서문을 썼다). 어느 프랑스 비평가는 한 책을 이루는 여러 물질적 요소 가운데 본문을 뺀 나머지(서문이나 발문, 헌사, 판권 난, 저자 소개, 표제, 부제, 제사, 차례 따위)를 곁다리텍스트(파라텍스트)라 부른 바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서문집’의 텍스트는 곁다리텍스트만으로 이뤄진 텍스트다.(*나의 '곁다리텍스트를 위하여' 참조)

-도대체 한 저자가 제 책의 서문만으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자면 얼마나 많은 책을 써야 할까? 서문의 길이도 천차만별이고 책의 두께도 그럴 테니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김윤식 서문집>을 기준으로 어림짐작해보자면 100권 안팎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저자가 낸 책 95권의 서문이 묶였다. 그 모두가 순수한 저서는 아니다. 책 끝머리에 모인 7편의 서문은 역서와 편서의 서문이고, 나머지 서문 88편에도 아주 드물게 같은 책의 개정 증보판 서문이 끼여들긴 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빼도 이 책에 제 서문을 빌려준 김윤식 저서는 80권이 넘는다.

-그것만해도 보통 저자라면 엄두도 못 낼 양이다. 그런데 김윤식은 2001년 이후에도 기운차게 책을 내고 있다. 그러니까, 2001년까지의 저서 가운데 ‘김윤식 서문집’에 그 이름이 빠진 책이 없다 쳐도, 김윤식이 지금까지 쓴 책은 100권에 바짝 다가간다. 거기에 편서와 역서를 보태면 김윤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은 100권이 훌쩍 넘는다. 이 책들 대다수가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라 학문이나 비평의 영역에 속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김윤식 서문집>의 서문, 다시 말해 서문들의 서문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모으면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생각에 책의 서문이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물론 이 표현은 겸양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서문을 곁다리텍스트로 여긴 프랑스 비평가의 생각과 통하는 데가 있다.

-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앞에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붙이면서, 저자는 1962년 ‘현대문학’ 8월호에 실린 자신의 ‘천료(추천 완료) 소감’을 옮겨놓고 있다. 문학청년의 치기가 묻어나는 그 소감에는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그의 지난 반세기 글 노동을 지탱한 것이 바로 ‘눈에 불을 켜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었을 테다.

-이렇게 많은 글을 쓴 저자가 글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혼자 하는 작업이다. 한밤중 원고지 앞에 앉아 있노라면, 그것이 우주만큼 넓고 아득하여 절망한다.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칠 곳도 없다. 우주가 나를 가두었던 것. 이 속에서의 작업은 일종의 게임인데, 상대는 누구이겠는가. 운명이란 이름의 나 자신이었던 것”(<김윤식 평론 문학선>, 1981, 서문).

 -김윤식은 말하자면 자신을 상대로 한 그 외로운 게임의 중독자였다. 요즘 젊은 세대 말로 글쓰기 ‘폐인’이었다.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쓰다’의 주어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사가이자 문학비평가다. 다시 말해 그의 방대한 텍스트들은 다른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배열하고 논평하는 텍스트들이다. 그러니,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읽다’의 주어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읽기는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근대’의 표지를 지닌 채 발설된 모든 문학 텍스트를 향했다. 임화와 이상과 김동리가 보여준 이념의 엇갈림도, 이광수에서 신경숙에 이르는 세대의 엇갈림도 김윤식이 보기엔 근대성 안의 엇갈림일 뿐이었다.

-‘쓰다’와 ‘읽다’의 붙박이 주어 김윤식에게 소위 ‘명문(名文)’이라는 것은 어떤 뜻을 지녔을까? “명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장이기를 바랐을 따름이다”(<문학사와 비평>, 1975, 서문). 이것이 겸양에서 나온 말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자신이 엮은 <애수의 미, 퇴폐의 미- 재북 월북 문인 해금 수필 61편 선집>(1989)의 서문에서 그가 ‘명문’에 대한 경멸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말해볼 수는 있습니다. 곧 명문이란 없다는 점. 설사 그런 것이 있더라도 대수로운 것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임화의 ‘수필론’과 서인식의 ‘애수와 퇴폐의 미’가 조금 말해놓고 있지 않습니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말이 있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일이 그것이지요. 말을 바꾸면, 되지도 않는 자기 감정을 질펀하게 노출시켜 남을 감동시키고자 덤비거나 대단치 않은 스스로의 주제를 돌보지 않고 흡사 무슨 도사의 표정을 짓는 짓 따위에서 벗어나, 자기 분석을 겨냥하는 일이 그것이지요. 자기 성찰과 자기 도취의 형식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도 수필이라는 이름의 산문 형식이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진술은, 소설문학에 대한 그의 다른 발언, 곧 “(문학작품에 대한) 절대적 평가기준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그 정답이다. 언어의 밀도가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김윤식의 소설 현장 비평>, 1997, 서문)는 말과 통한다.

-이 기준들은 보기에 따라 꽤 엄격하다. 김윤식의 문장은 이 기준들을 넉넉히 채우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문제는 명문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중기 이후 텍스트에서 사뭇 가시기는 했으나, 김윤식 텍스트는 ‘문법에서 벗어나는’ 문장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그의 웅장한 학문적 성채의 적잖은 부분은 읽어내기 힘들만큼 조악한 한국어를 벽돌로 삼아 세워졌다.

-한 세대에 걸쳐 김윤식이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문학 교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법에 대한 그의 이 대범함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직업적 나태였다 할 만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문장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란 무엇이겠는가’, ‘~가 아닐 것인가’ 같은 표현은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자기 도취에 빠진 도사의 표정’에서 얼마나 멀까? ‘언어의 밀도’를 잃어버린 ‘명문’의 허세에서는 또 얼마나 멀까?

-김윤식이 ‘쓰다’의 주어일 뿐만 아니라 ‘읽다’의 주어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의 글쓰기 무게중심이 중기 이후 ‘연구자의 논리’(근대문학 연구)에서 ‘표현자의 사상’(현장 비평)으로 조금씩 옮아가면서, 그 읽기 대상도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대 소설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표현’과 ‘인식’의 완전한 일치”(<작은 생각의 집짓기들>, 1985, 서문)라 스스로 정의한 비평에서 이 원로 비평가는 성실했는가? 아니 그 비평의 전제인 읽기에서 그는 성실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희의 나이에도 이어지고 있는 월평들은 김윤식이 이 시대의 가장 열정적인 소설 독자(가운데 한 사람)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단 한편에서 들추듯, 그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건네는 눈길은 아직 이름을 세우지 못한 작가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격려가 될 테다. 그러나 이 원로의 독서가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는 권위라는 자산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런 트집이 무슨 소용이랴? 20세기 한국문학 텍스트를 김윤식만큼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해 김윤식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도서관 한 구석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텍스트들이, 그리고 그 텍스트들의 저자들이, 김윤식의 손을 거쳐 한국문학사에서 제 자리를 얻었다. <김윤식 서문집>은 그의 이 끝없는 읽기-쓰기의 그림자다. 한국문학은 이 불세출의 독자-저자에게 큰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짐작에 그의 저작을 30-40권쯤 갖고 있는 나 또한 그에게, 혹은 한 '주어'에게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

06. 06. 14.

P.S. 고종석이 '또다른 다산(多産) 저자들'로 꼽고 있는 고은과 강준만에 대한 군말도 마저 옮겨온다.

-다산성에서 김윤식과 겨룰 만한 저자가 한국에 있을까? 있다.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시인 고은(73)과 언론학자 강준만(50)이다. 고은 저서의 저자 소개에 ‘저서 1백여 권’이라는 표현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고은 자신이 이미 그 무렵부터 저서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해온 데다, <김윤식 서문집> 같은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인보>나 <백두산> 같은 서사시들의 낱권을 각각 한 종으로 친다면, 고은의 저서가 1백 종이 넘는 것은 확실하다. 저서의 다수가 시집인 터라, 글자수로 따져서 고은이 김윤식과 겨루기는 어렵겠지만.

-고은의 산문은 한 시절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김윤식이 ‘명문’과 관련해 빈정거린 ‘도사의 표정’과 ‘자기도취의 형식’을 짙게 지니고 있었다. 또 청년 김윤식의 글보다 훨씬 더 문법에 대범했다. 그러나 이 약점들은 고은 특유의 주정적(主情的) 문체 속에서 서로를 지워내며 기이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일종의 강점이 되었다.

-강준만은 그 저서 수에서 이미 김윤식을 앞지른 듯하다. 강준만 저서의 적잖은 부분은 자료의 가공/재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점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지만, 그것은 강준만이 김윤식에 뒤지지 않는 ‘읽다’의 주어이자 실증주의자라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강준만이 사실과 현실에 바짝 붙어서 (미시)이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여느 이론가와 달리 대중의 언어를 쓰는 데 대해서도 탐탁지 않은 눈길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이론을 학자들의 닫힌 담론 공간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과 결부시킬 수 있겠다.

-고은 같은 탐미 취향은 없으나, 강준만은 그 대신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한다. 이것은 그 같은 다산 저자에게 드문 강점이다. 강준만의 글은 김윤식이 강조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 있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갖는” ‘자기 성찰’의 글에 가까워 보인다.

-문법적으로 단정할 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도 반들반들 닦인 글을 쓰는 다산 저자는 없을까? 있다. 고은처럼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김정환(52)이 그다. 그러나 그의 저술 양이 고은이나 강준만에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름답게 쓰면서 많이 쓰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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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6-14 공감 (4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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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사회적 독서
 
새해 들어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유일한 (반)강제는 매달 '사회적 독서'의 목록을 올리고 취지에 공감하는 몇몇 이들의 책읽기를 꼬드기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나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매달 같이 책을 읽거나 적어도 책을 서가에 꽂아두는 분이 몇 분 계시기 때문에(땡스투 추천으로 보자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는 된다) 아주 헛일은 아니다 싶다. 지난 2월에 꼽은 네 권의 책들 가운데 나는 케빈 스미스의 <순결한 할리우드>를 마지막으로 손에 들었고 '톰 크루즈와의... + 더보기
로쟈 2007-03-01 공감 (4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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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와 톨스토이

최근에 책이 새로 나온 김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논문을 쓰려 했다. 책도 다 구입했다. 이 참에 연구비 받던 '벨 에포크'에 주문해둔 톨-이 연구서도 처리할 겸.  그런데 <닥터 지바고> 일정에 맞추다 보니 그 논문을 먼저 쓰고 <전.평.>은 내년으로 미룬다. 여사여사 자료를 뒤지던 중 이광수가 이른바 '조선의 톨-이'를 자처했음을, 그 정도로까지 그를 좋아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이 부분을 좀 더 다루어 봐도 좋겠다. 비단 이광수뿐만 아니라 이 무렵 우리 지식인들이 사랑한 톨-이는 무엇보다도 <부활>의 작가였다. 정확히 <부활>도 아닌, <해당화: 가주사 애화>(중국어에서 번역했다고 한다)의 작가. 당시 각종 '애화'(대략 창부화된 여자들의 슬픈 이야기, 신파)가 무척 유행했는데 그 원조라고.  그리고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부활>의 한국어 완역(일본어에서) 역시 이광수(혹은 허영숙)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추정도 있을 정도라고.  아, 이광수는 러시아어도 구사했다고 한다.

겸사겸사 사족.  박형규 선생님 덕분에 <부활>을, 또 그밖의 많은 러시아 작품들을 훌륭한 우리말 버전으로 읽어왔지만(특히, 볼쇼이판 <전.평.>) 아, 이제는 세대교체가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이게 번역 및 번역가의 숙명임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번역가는 결코 작가가 아니다. 언제가 모 번역가 선생님의 말을 빌어 썼지만 번역가는 '그림자', 작가와 작품 뒤에 붙은 쓸쓸한 그림자이다. 모든 일, 모든 직업에는 '연령 제한' 있다. 학문이나 번역, 창작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당장 눈이 어두워 내가 번역하는(혹은 쓰는) 텍스트도 제대로 못 보는 마당에..ㅠ.ㅠ 물론 그걸 뛰어 넘는 드문 천재들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그럼에도'이다. 내 번역의 유효기간도 길지 않음을 또한 명심해야 한다.(그럼 뭐 먹고 살지?) 아무튼.

톨-이를 무척 사랑한 이광수의 소설 중 그의 흔적, 특히 <부활>의 영향이 아주 큰 작품이 <유정>이라고 한다. 헐, 기억 창고를 아무리 뒤져봐도 안 읽은 것이다, 님아 ㅠ.ㅠ 안빈, 석순옥(맞나?) 어쩌고 하는 무슨 사랑 얘기는 <유정>이 아니고 <사랑>이었나 보다. 그리하여, 이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고 밑바닥으로 다 파야하게 생겼다.

<유정>이야 노골적이고, 이 주제와 비교적 무관하다는 <무정> 역시 이형식의 박영채를 계몽하려는(나아가, 네흘류도프가 카츄사에게 그랬듯, '구원'하려는) 그 심리적, 정신적, 도덕적 흐름에 있어 기본적으로 <부활>을 밑에 깔고 있다. - 고 하는데, 아주 공감된다. 덧붙여, 이 경우에도 우리가 꼭 넘고 가야 할 산은 이 분의 이 책.

이광수를 좋아한 적은 없다. 그러나 웃긴 신파나 그 못지 않게 웃긴 도덕소설(계몽~)이나 썼다고 여겨진 그가 왠지, 소설을 참 잘 쓴 염상섭보다 더 인간적으로(?!) 여겨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보다 더 정감이 간다고 할지. 언젠가 강의실에서 김윤식 선생님이 열심히 이광수를 '씹던' 기억이 난다. 그의 고아콤플렉스, 또한 '조선/인'에 대한 총체적 열등감, '잘난 것', '높은 것'을 향한 열망, 그가 결국 친일로 간 것은 내적 필연이었던 것, 그의 지적 흐름상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평론가 최재서던가, 그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듯하다.) 허영숙과의 로맨스, 결혼 생활 역시 그러하다. 아이들을 많이 낳았던데, 참, 천생 연분이었던 듯하다. 그러게 '사랑의 문법'이 곧 '소설의 문법'으로 이어진다.(이상, 염상섭, 이광수).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보아온 이광수는 머리가 훌러덩 벗겨지고 지나치게 둥근(동그란) 알의 안경을 끼고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기껏해야 늙은 아저씨) 이광수이다. 나이가 들어보니 우리의 얼굴과 몸이 양질전화한다는 것을 알겠다. 정확히 그 결절점을 찾기는 힘들겠으나, 아무튼 우리는 나비나 다른 곤충의 변태 못지않은 과격한 변화를 겪는다. 어쩌다 젊은 날의 이광수 사진을 봤는데, 헐, 윤동주 뺨치는 얼굴이었구나. 과연 청년 이광수는 지식인에 작가에 혁명가에(그리고 열정적인 연인에), 그 무렵에는 뭐든지, 누구든지 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말년(중년)에 이런 얼굴이 된 것이다. 음, 호위호식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 역시, 출세지향적이던, 야망 많던 그가 원하던 대로.

겸사겸사, 톨-이의 역설은 늙어서 더 볼 만하다는 것. 그는 외모 콤플렉스가 무척 강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톨-이 원하는 톨-이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못 생겼다기보다는 못 됐게(!) 생긴 얼굴인데, 바로 이 대목 '악'을 누르고 '선'을 극대화하는 것이 톨-이의 일생일대의 과제였다. 그리고 말년엔 보다시피, 우리가 익히는, 또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얼굴.(그리고 그런, 정정한 할아버지의 몸.) 저 수북한 털. 사실 머리카락도 꽤 오랫동안 무성했다. 그러니 그 '육'(=악)을 감당하기가 그렇게 힘들었겠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창작(=삶)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니, 부러울 수밖에. 그게 없었다면 톨-이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터이다. 마음 착한 지주 귀족 할아버지가 돼서 여러 사회 사업, 자선 사업 하시고 아이들한테 민화 읽어주시고 그러셨을 터. 가끔씩 동네 처녀 총각 주례 서주시고 (믿거나 말거나 많은 사생아를 만드는 대신) 늙은 마누라랑 알콩달콩, 티격태격  잘 살고. 

결국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그래서 걸어가던 그 길의 끝에 이르게 된다. 약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푸른괭이 2018-12-09 공감 (1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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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비가 주룩주룩 왔다. 아이는 체험 학습을 다녀오고 나는 빈소에 다녀왔다.
이럴 줄 알았다. 에효.
사람은, 늙고 아프면, 죽는다.

국문학과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의 수업을 찾아듣고 그의 저서를 탐독하고(아무리 부지런히 읽어도 계속 나왔다, 새 책이ㅠ.ㅠ) 액자에 끼운 그의 사진을 자취방 책상에 세워두고 매일 바라보곤 했다.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그는 참 미남 교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오늘 보니 사모님의 미모와 기품도 놀라웠다.) 저서야 지금도 읽을 수 있지만, 그 강의는 물론 다시 들을 수 없겠다. 돌이켜 보면 대학 4년 내내 얼마나 많은 강의를 듣는가. 하지만 그만한 강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문학함, 그의 삶, 그의 짐승(=문학)스러움, 그런 것을 우리는 닮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데 왜 그의 고별 강연이 떠오르지 않지? 돌이켜 보니 그해(2001년) 나는 러시아에 있었다. 그걸 놓친 게 참 아깝다.



참 슬픈 날이다. 영면하시길.

영정 사진 속의 그는 여전히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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