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3

알라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알라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조영일 (지은이)비(도서출판b)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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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00자평(5)리뷰(3)

책소개
가라타니 고진은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그가 현재의 한국문학을 향해 던지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는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표적인 한국 문학인들(백낙청, 황석영, 황종연, 김병익)과의 비교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저자 조영일은 가라타니 고진의 주요저작을 옮겨온 번역가이자, 최근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저자가 모두 인터넷공간에 자율적으로 올린 글로, 이후 약간의 손질을 거쳐 문예지 등에 발표되었고, 그것을 다시 수정, 가필하여 완성되었다.


목차


서문

1. ‘문학의 종언’과 약간의 망설임
1. 문예창작과의 약진과 문학을 떠나는 사람들
2. 근대문학의 기원과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
3. 비평의 망설임: 예감한다는 것과 선언한다는 것
4. 근대비평의 특질과 그 존재양식
5. 제도와 비평: 비평가의 필수조건
6. 반복으로서의 문학: 순수비평의 탄생

2. ‘문학의 종언’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1. 위기인가 기회인가
2. 한국문학의 생존법
3.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문제
4. 비평이라는 양날의 면도칼

3. 비평의 운명―가라타니 고진과 황종연
1.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유령
2.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
3. 예술의 종언 또는 예술의 해방
4. ‘문학의 종언’과 ‘예술의 종언’
5. 동물화하는 인간 (코제브의 ‘종언론’ 분석)
6. 비평의 종언 혹은 비평의 전회
7. 도박으로서의 비평과 그 운명

4. 비평의 노년―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
1. 종언이냐 보람이냐
2.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과의 만남
3. ‘종언’ 앞에서: 백낙청과 황종연
4. 비평의 만남: '문학과지성'에서 '창작과비평'으로
5.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만남: 김병익의 관점에서
6. 비평의 충돌 A: ‘문학’을 둘러싸고
7. 비평의 충돌 B: ‘민족(nation)’을 둘러싸고
8. 비평의 종언: 문학의 적이 된 문학
9. 흔들리는 문단체제: 창비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5. 입담 對 비평―가라타니 고진과 황석영
1. 황석영에 대한 예의: '바리데기'의 안과 밖
2. 한국문학의 르네상스: 황석영과 하루키
3. 국가대표선수라는 영광: 황석영과 심형래
4. 태엽을 감는 풍경: '심청'의 경우
5. 즐거운 인터뷰와 최소한의 존중: 소설가 對 비평가
6. 소설에서 우화로: 무당과 탐정
7. 경험과 판단: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음모
8. 황석영과 일본이라는 나라
9. 내가 바로 장본인이다: 황석영 對 T.K.生
10. 입담을 넘어서: 오에 겐자부로를 둘러싸고
11. '장마'를 둘러싸고: 윤흥길과 나카가미 겐지
12. 근저(根底)라는 환상: 윤흥길과 황석영
13. 잘못된 만남: 황석영과 나카가미 겐지
14. 입담에서 비평으로: 황석영과 가라타니 고진

수록원고 발표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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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입담은 종종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스스로를 과장하기 마련이어서, 아무리 그럴 듯하고 재미있다고 해도 유머에 이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유머는 그와 같은 망각이나 과장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222쪽 - 자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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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08년 11월 15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조영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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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문예중앙>에 '비평의 빈곤: 유종호와 하루키'를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한국문학과 그 적들>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언어와 비극>, <근대문학의 종언>, <세계공화국으로>, <역사와 반복>, <네이션과 미학>, <정치를 말하다>, <문자와 국가> 등이 있다.


최근작 : <서강, 우리시대 문학을 말하다>,<세계문학의 구조>,<현대 정치철학의 모험> … 총 12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esthlos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문학과의 한판 전쟁!
종언인가, 보람인가?”

가라타니 고진, 그는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현재의 한국문학을 향해 던지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는 한국의 어떤 문학가가 주창한 테제(예컨대, 백낙청의 ‘한국문학의 보람’, 황석영의 ‘노벨문학상 20명설’)보다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위기’는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느끼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테제와 씨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이 테제를 둘러싼 논란은 먼 과거로 취급되고 있는 듯하며, 심지어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유행’에 뒤쳐진 것이라는 이유로 조롱을 당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가라타니가 제기한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바꿔 말해, 한국문학은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가?

조영일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의 첫 만남이었던 제1회 한일문학심포지엄(199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라타니가 왜 하필 한국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한국 문학인들과의 교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그런데 왜 그런 시도를 도중에 그만 두었는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표적인 한국 문학인들(백낙청, 황석영, 황종연, 김병익)과의 비교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한국문학이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는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론을 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테제와 그것을 주장한 가라타니 고진을 거부하게 만든 것일까? 저자 조영일은 그것은 한국문학 자체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가동시키는 한국문학시스템 및 그 관리자들과 전면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이 전쟁에는 원로비평가들에 대한 예의바름과 국민작가에 대해 이해심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문학을 죽이는 것은 독재정치가 아니라 문학 스스로가 만든 이와 같은 예의범절(위계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영일은 오로지 문제(논쟁)의 핵심만을 추적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한일 문학교류의 수준낮음과 ‘한국문학 낙관론’을 강하게 비판함은 물론, '창작과비평'이라는 한국의 대표적 문학운동에 대한 종언을 선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국민작가 황석영의 입담과도 진검승부를 벌인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이기에, 오랜만에 우리는 문학판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다운 전쟁을 참관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 조영일은 그동안 가라타니 고진의 주요저작을 직접 옮겨온 번역가이자, 인터넷공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문학사이트의 운영자이면서, 또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은 그의 첫 저작으로,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저자 스스로가 ‘비평집(문학평론집)’이라는 타이틀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기존의 ‘비평집’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작품해설과 서평을 짜깁기한 잡문집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다른 말로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은 청탁에 의해 생산된 수동적 비평이 아니라, 자율적(능동적) 비평이자 전작비평에 대한 시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인터넷공간에 자율적으로 올린 글로, 이후 약간의 손질을 거쳐 문예지 등에 발표되었고, 그것을 다시 수정 . 가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은 ‘비평집이 아닌 비평집’이라 이름붙일 만하다. 접기


평점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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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문학에서 위안이나 눈물, 뻔한 행복 이상의 것을 원하는 이들은 꼭 읽어야 할 책.
게슴츠레 2009-04-07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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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조영일과 '타자의 이해'라는 문제




본 리뷰는 책의 논지와 직접적인 상관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인용문의 경우,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의 즐거움을 앗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아직 완독하지 못한 독자들은 참고하시길). 다음의 글은 그저 한 독자가 책과 '대화'를 시도해보려 하나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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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타자'라는 말이 인문학이나 비평계에 유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것은 '비교-불가능한 어떤 것'에 대한 인정과 '평가에 있어서의 상대성'에 대한 부정으로 이해되곤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타자를 인정한다는 것은 타자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인식은 왜곡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함과 동시에, 그 왜곡에 대해 항시 자각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242쪽, 강조는 인용자.

타자에 대한 순수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애당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를 수단으로서뿐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고진의 칸트 도덕법칙 독해는 이 맥락에서 이해되야 한다. 타자를 '목적'으로 대하는 방법이 '수단'으로 대하는 방법과 뚜렷이 구분돼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목적'과 '수단'의 이분법에 사로잡힐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칸트의 잘못은 적절하게 '주체화되는' 한에서만, 즉 순수 의지('정념적' 동기들로부터 자유로운 의지)로 성취되는 한에서만 행위가 있는 것이라고 전제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행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동기로서의 도덕 법칙에 의해서만 촉발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즉, 내 동료의 평가에서 쾌락을 발견하기 위해 도덕적 행위를 수행했다는 의혹이 언제나 잠복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는 사실상 결코 발생하지 않으며(지구상에는 어떠한 성자도 없다) 오로지 영혼 정화의 무한한 점근선적 접근의 최종점으로서 정립될 수 있을 뿐인 어떤 것이 된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611쪽.

'나'는 '타자'를 '왜곡'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한 타자의 실체 따윈 없기에 '왜곡'이라는 말 자체는 성립될 수 없다. 라캉의 "사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타자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언급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나에게 결여된 것, 때문에 내가 욕망하는 그 무언가(대상a)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간주된다. 나는 그/녀에게 이상적 자아를 투영하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을 자아-이상의 관점에서 정립한다('라캉과 사랑'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책임질 수가 없으니 이쯤에서 접는다).
고진과 라캉, 그리고 조영일과 지젝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타자와의 근본적인 비대칭성이라는 문제다. 이는 단순히 '순수한 타자의 인정'으로서 평화롭게 해소될 수 없는 균열이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당연한 질문이 도출된다. 그렇다면 타자를 '수단'으로서 착취하지 않고, 타자를 순수한 '목적'으로 대한다는 기만을 피하고서, 타자를 '수단'으로서뿐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꽤나 어려운 질문이다. 라캉이 사랑에 대한 또다른 정의─"단지 사랑-승화만이 향유가 욕망으로 강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세미나『불안』)"─를 제시하고 했을 때 해결하고자 했던 것도 이 문제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운명적인 균열을 안고, 타자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뚜렷히 답할 수는 없으나 조영일이 황석영을 비판하며 논한 다음과 같은 지적들이 어떤 '실마리' 정도는 제공해 주지 않을까.

"입담은 객관성을 강조하지만 실은 매우 자기중심적인 데 반해, 비평은 주관성을 강조하지만 실은 탈─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바꿔 말해, 입담은 자신과 타인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그래야만 한 세계의 완결성을 구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평은 언제나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후자의 입장에서 볼 떄, 우리가 타인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항상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입담에서는 '거대한 차이'가 중요한 반면, 비평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 무당의 입담은 우리를 치유(풀이)할지 모르지만, 소설의 정신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끊임없이 보여주며, 비평가의 비판은 그 치유되지 않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건강함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2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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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8-11-30 공감(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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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과 2009년 6월 한국




4월에 읽었던 책인데 깜박 했다.아마 누나 생일 초대에 가면서 강북북로에서 읽었던 책이다.가라타니와 처음 [트란스크리티]을 만나고 2번째 책이었는데 [트란스크리틱]에비해 상당히 재미있고 읽기도 쉬운 책이었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하는 논조 였는데, 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역활 즉,그시대의 정치,사회,문화등의 반영으로서의 문학이 이제 이시대에는 더이상 필요없게되면서 근대문학의 문학으로서의 자기 종언을 해야할 시기다.순수문학이란 존재하는가?어떤의미의 문학이 순수 문학인가?연애?공상과학?코믹?.....세상이 참 단순하고 쉬워 진거 같다.

그런데, 요즘 서울광장은 좀 뜸한 것 같다.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화구 같다.올해 6월은 좀 조용한것 같다.항상 이맘때 한국전쟁관련 좌우이념 논쟁이 있었던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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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2009-06-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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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과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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