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3

알라딘: 근대문학의 종언

알라딘: 근대문학의 종언:

근대문학의 종언 | 바리에테 5
가라타니 고진 (지은이),조영일 (옮긴이)비(도서출판b)2006-04-25원제 : 近代文學の終り (2005년)





수험서.외국어.컴퓨터.대학교재 4만원 이상, 라떼 유리컵/스톱워치/본투리드 볼펜



Sales Point : 2,107

9.2100자평(6)리뷰(4)

380쪽
150*218mm
532g

책소개
일본에서 2005년 11월에 출간된 가라타니 고진의 최신작 <근대문학의 종언>을 완역했다. 가라타니 고진이 30년 넘게 펼쳐온 기존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검토하며, 그 이후 이루어질 새로운 전개에 대해 암시하는 책이다. '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세 편의 논문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트랜스크리틱>과 같은 주요저작에 대한 지은이 자신의 해설을 담았다.

1부에 수록된 '근대문학의 종언'은 일본과 한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글이다. 이 글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근대문학에서 사회적 문제를 상상력으로 떠맡았던 소설이 이제 그 역할을 방기하면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의 또 다른 부분은 가라타니 고진 자신의 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자기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 일러두기, 발표지면 일람
- 한국어판 서문
- 옮긴이 서문

1부 근대문학의 종언
1. 번역가 시메이 -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으로서의 번역
2. 문학의 쇠퇴 - 소세키의 <문학론>
3. 근대문학의 종언

2부 국가와 역사

1. 역사의 반복에 대하여
반복적인 구조를 파악한다
소비자에게 조국은 없다
주권의 방기로서 헌법 9조

2. 교환, 폭력, 그리고 국가
기반으로서 교환형태
어소시에이션이라는 X
자본주의를 지양한다
네이션의 구조
국가와 폭력
신용은 국가에 의거하지 않는다
국가의 민영화에 대하여
대항운동으로서의 비폭력
국가는 초자아를 갖는다
환경과 제3세계
네이션의 위상
트랜스크리틱 - 이동하는 비평

3부 텍스트의 미래로

1. 아이러니 없는 종언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둘러싸고
외국에 간다는 것
이론, 철학, 비평
일본문학은 죽었다

2. 와야 할 어소시에이션이즘
끝이 없는 텍스트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보편성을 새긴다
소모전략 또는 진지전의 가능성
NAM을 되돌아보고
X=어소시에이션이란 무엇인가
어소시에이션의 계기로서 렌쿠
어소시에이션이라는 보편성
데리다적 폐색을 넘어선다
네그리&하트의 '다중'을 검증한다
종속이론의 붕괴
생산과정에서 유통과정으로
'희사'라는 아이디어
부의 재분배를
헌법 9조와 국가의 '초자아'
인터넷의 가능성과 함정?282
'처음부터 읽는' 독자들에게
아이러니에 대항하여

- 저자 후기
- 옮긴이 해제 : 문학의 종언과 약간의 망설임
- 인명 색인

부록
가라타니 고진 연보
가라타니 고진 저작목록
가라타니 고진 주요저작 목차
접기


책속에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 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소리 높여 말하고 다닐 사항은 아닙니다. 단적인 사실입니다. 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젠 적습니다. 때문에 굳이 내가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문학이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졌던 시대가 예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닐 필요가 있습니다. - 본문 43~44쪽에서 접기
오늘은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43쪽 - 얼그레이효과
내 자신이 일본에서 문학비평을 해온 경험으로 말하지만,근대문학은 1980년대에 끝났다는 실감이 있습니다. 소위 버블,소비사회,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던 시기입니다.-46쪽 - 얼그레이효과
고진이 녹색평론 김종철에게, / 그는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가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때문에 그만두었다는 것입니다.나는 동감을 표했습니다.-49쪽 접기 - 얼그레이효과
이제까지 감성적 오락을 위한 단순한 읽을거리였던 '소설'에서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르지만,보다 인식적이고 실로 도덕적인 가능성이 발견되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소설은 '공감'의 공동체,즉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의 기반이 됩니다. 소설이 지식인과 대중 또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공감'을 통해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을 형성하는 것입니다.-51쪽 접기 - 얼그레이효과
근대소설은 말하자면 음성이나 삽화에서 독립한 것인데,그것은 글쓴이에게도 독자에게도 커다란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청각적 미디어가 나오게 되자,그런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58쪽 - 얼그레이효과
일본적 스노비즘은 역사적 이념도(72)지적이고 도덕적인 내용도 없이 공허한 형식적 게임에 목숨을 거는 것과 같은 생활양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전통지향도 내부지향도 아니며 타인지향의 극단적인 형태인 것입니다.거기에는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밖에 없습니다.-72.73쪽 - 얼그레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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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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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이다. 1941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동경대 경제학부와 동경대 대학원 영문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9년부터 문학 비평가로 활동했으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マルクスその可能性の中心≫ (1978),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日本近代文學の起源≫ (1980), ≪은유로서의 건축隱喩としての建築≫ (1983), ≪내성과 회고內省と遡行≫ (1985), ≪탐구 Ⅰ探究 Ⅰ≫ (1986), ≪탐구 Ⅱ探究 Ⅱ≫ (1989) 등이 있다.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과 ≪은유로서의 건축≫이 영어로 잇...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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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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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2006년 <비평의 빈곤: 유종호와 하루키>를 <문예중앙>에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2008), <한국문학과 그 적들>(2009), <세계문학의 구조>(2011)를 쓰고, <세계사의 구조> 등 12권의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과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 등을 번역했다. 일본의 문예지 <문학계>, <겐론>, <스바루> 등에 비평이 소개되었고, <세계문학의 구조>가... 더보기


최근작 : <직업으로서의 문학> … 총 12종 (모두보기)
가라타니 고진(지은이)의 말
옛날은 ‘근대문학’이 자명=자연이 아니라 역사적인 제도라고 말해야 했지만, 오늘날 '근대문학'은 그저 역사적일 뿐이다, 즉 이미 과거의 것이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나 자신도 문학현장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근대문학의 기원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면 최근 1세기 동안 문학이 왜 그토록 큰 의미를 가졌는가, 그리고 왜 지금 그것이 사라졌는가를 명확히 해 둘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원'이 다른 형태로 드러날 것이라고 여겼다. 이 책에 실린 논문과 강연은 이런 재검토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Editor Blog
근대 문학의 종언, 그 이후 l 2008-06-08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근대소설이 끝났다면, 일본의 역사적 문맥으로 보았을 때 '요미혼'이나 '닌죠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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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죽은 시인의 사회>,<사상적 지진>,<자발적 복종>등 총 191종
대표분야 : 한국시 32위 (브랜드 지수 10,640점)










제목을 보고 문예비평을 기대했던 나 같은 독자로서는 다소 당혹스럽거나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문예비평보다는 사상가로서 저자의 면모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역주가 다소 소홀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흥미롭게 읽히는 역자후기가 이를 상쇄한다.
그것은실로 2018-10-0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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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 자체는 매우 얇은 팜플렛정도 됩니다. 후반부는 담론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가=네이션=자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ㅇㅇ 2014-05-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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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학은 '종언'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인가


근대의 기점과 개념에 관한 논의는 어떤 면에서 길고도 지루하다. 그만큼 중요하고 인류사에서 전환기적 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고 있는 지금을 현대라고 한다. 현대는 ‘현재’라는 개념과는 물론 구별되어야 한다. 불과 200여년 사이에 인류의 삶과 사상은 그 이전의 어느 시대도 빠르게 변화해 왔다. 중세를 넘어 근대로의 이행기의 특징은 거칠게 표현하면 인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다. 신 중심 사회의 미망에서 벗어나 인간과 이성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한다. 민족과 국가를 앞세운 파시즘은 맑시즘에 대한 반발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인류 문명은 급격한 변동을 겪었다.

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근대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예술은 그 언저리에서 언제나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했왔다. 특히 문학은 사회 변혁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문학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지루한 논쟁은,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함무라비 법전의 문구처럼 ‘문학의 위기’ 또한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논의되는 지루한 반성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학은 어디에 자리매김 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되기 된다. 이 문제는 언제나 있어왔다는 반성적 고찰로 끝날 수도 있으나 그대로 넘길 수도 없다.

일본의 지성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 문학의 종언>은 이러한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문학계의 엄살이 아니라 ‘근대 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가라타니의 논문은 한국문학계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3년 10월 긴키대학에서 발표된 논문이 <문학동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이후 비평계가 아니라 언론에서 더 관심을 보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한것처럼 문학의 위기 운운이 아니라 ‘근대 문학의 종언’에 대한 선언적 의미는 가히 충격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 문학의 위기를 넘어 ‘종언’이라고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가라타니의 말은 여러 가지 논쟁을 가져왔다. 한국 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선언인가하는 문제부터 일반화될 수 없는 문학에 대한 종언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짚어 볼 사항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라타니가 던진 화두이다. ‘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문학의 종언’이라니?

여기서 문학의 범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라타니는 근대 문학을 특히 소설로 한정 시키고 있다. 사회와 제도를 넘어서서 문학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끝이 없어 보였다. 소설로 표현되는 사상들은 어떤 장르와 매체로도 감당할 수 없는 위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판단이다. 사르트르의 <구토>를 예로 들면서 사르트르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은 소설가 이상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의 역할과 기원은 18세기 러시아와 유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본 문학에서는 소세키의 ‘문학론’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회화의 역할과 의미가 재정립 되었듯이 영화의 출발과 더불어 소설은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부정적 전망이었다. 그러나 회화처럼 소설은 그 위치와 역할의 무한한 위협과 도전 속에서도 근근이 버텨내고 있다. 가라타니는 여기에 종지부를 찍는 선언을 한 것이다. 아메리카 문학은 50년대에 그리고 일본 문학은 80년대에 이러한 현상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여러번 방문한 적이 있는 가라타니는 한국에서 만큼은 아직도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낙관적 전망을 보았다고 한다. 물론 일본에 비교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근대문학의 종언’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는 함의를 이끌어 낸다. 과연 그의 말은 진실인가?

물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종언’이라니. 작가들에게는 귀에 들리지도 않을 말이다. 가라타니가 특히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은 문학 비평가들인지도 모른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 비평가로서 비교문학을 연구한 것은 시기적으로 대략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내놓은 80년부터 대략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이다. 이후 철학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준 가라타니의 견해는 아직 확신에 찬 선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 선언적 의미가 주는 화두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가라타니는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영문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이 책에서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심도 있게 다루거나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가고 있지 않다. 짧은 논문은 발표문 형식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일부를 던져주고 있을 뿐이다. 1부에서 번역가 시메이와 소세키의 문학론을 살펴보고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논문을 실었다. 나머지 2부 ‘국가와 역사’,3부 ‘텍스트의 미래로’에서는 가라타니 사상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60년 주기의 역사의 반복에 관한 특이한 견해와 교환과 폭력에 관한 국가관, 그리고 자신만의 어소시에이션이즘 이론을 펼치는 대담은 흥미롭다. 책 전체가 강연과 대담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높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부터 <공산당 선언>을 통해 경제 체제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견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생산단계에서 자본과 노동자의 충돌과 투쟁보다 소비 단계에서 ‘선택’의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본도 최종 소비단계에서 한 번은 약자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산업 사회에서 물질을 토대로 한 자본의 경우에 한정되는 문제가 있지만 한 번도 주목한 적이 없는 부분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또 대담에 참여한 학자들의 자신감이 눈여결 볼만하다. 겉으로 드러난 자신감이 아니라 일본의 학문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갖는 의미와 세계성에 대한 고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과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 온 교수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소개에 급급한 우리 학계의 현실을 잠깐동안 돌아보았다. 비판과 반성을 위한 계기로 삼을 만하다. 비난과 자조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지만 대담자들이 보여주는 논의의 범위와 이론들은 우리의 그것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양한 문제들이 계통 없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보다는 가리타니 고진에 대한 최근의 견해와 이론들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책이다. 보다 깊이 있는 관심과 고민은 물론 다른 책을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할 문제다. 아쉬웠던 것은 일본 문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가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일본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한 거지만 모든 분야에 통달한 전문 독자는 없다고 위로할 뿐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과 <다중>이 숙제로 남겨졌다.



060506-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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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힘 2006-10-29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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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과 민주주의의 종언




오늘 어제부터 집중적으로 읽었던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광화문 근처 맥도널드에서 다 읽었다.가라타니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생산과정에서가 아닌 유통과정에서의 투쟁, 진지전이 아닌 소모전으로서의 소비자운동 ..... .......아주 신선한 이론이었다.

이참에 가라타니의 사둔 책을 마저 읽어야 겠다.세계공화국으로와 역사와 반복이다.책을 사눟고 언제 읽을까 생각했는데 ..있으면 다 읽고 만다.그러니 돈 있을때마다 부지런히 사다 모아야 겠다.언젠가는 읽는다.

저녁에 명동에서 와이프랑 술한잔 하면서 책읽고 독후감 이야기해보라기에...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차기 대선주자는 누가 될것 같으냐고 묻길래...유시민,한명숙,강금실,정동영,권영길,심상정,노회찬 다합쳐도 박근혜 못따라가니 다음도 한나라당 후보가 될것같다고 얘기하니 ..너무 실망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이번 시국에서도 보고 배우는게 없는가 하고 안타까워 한다.

나도 안타깝지만....박근혜 대항 누구를 내세우지? 위에 열거한 후보들은 포스가 좀 약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재인이나 김근태 같은 카리스마 있는 사람에 위에 후보들이 열렬히 밀어주면 좀 가능성이 있지 않나 한번 생각해본다.이번에 노무현대통령 서거 일처리 하는걸 보고 문재인 같은 사람에게 믿음이 확 갔다.

그렇다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 성향이 나와 비슷하지도 않지만 워낙 현재 인간들이 싫으니 그래도 tv나 신문에 그런 인간들 좀 덜 만나고 싶은 바람에...이렇게라도 생각해 본다.


- 접기
에피쿠로스 2009-06-1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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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지어(91)



얼그레이효과 2010-06-0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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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근대문학이란?






1. 근대란? <역사>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 근고와 현대의 중간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 그가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근대 문학에 어떠한 비중을 두었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즉, 그에게 문학이란 어떠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는가?

2.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으로서의 번역 (제1장)

* 일본문학 속의 아이러니

그는 주코프스키의 방법("원문을 완전히 부수어, 자기 나름의 시형으로 단지 의미만을 번역한다)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능력이 없었던 그는 축어적인 번역(벤야민은 그것이 순수언어로의 회귀라고 한다.)을 하게 된다. 그는 투르게네프의 「밀회」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젊은 층에게 영향을 준 작품은 투르게네프의 「밀회」이다.

(중략) 청년들에게 청신한 인상을 주었고, 종래의 문장 감각에 익숙한 눈에는 어색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문체가 그들 젊은 감수성에는 새로운 표현의 도를 보여주었다.(근대문학의 종언, p.19)

그러나 투르게네프는 리얼리즘 소설이 유행하고 있었다. 리얼리즘 문학이란 화자가 있음에도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법의 고안에 있다. 이에 반해서 고골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바흐친이 강조한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 유지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란 게사쿠(에도시대의 통속 오락소설)라기 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하이카이(익살, 농담, 해학. '하이카이렌가'의 준말이기도 함)라는 일본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p.27)

이렇게 리얼리즘 문학으로 갔던 일본은 미술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사진기의 도입으로 일본회화의 도음으로 인상파 미술로 변화했던 서양과는 달리 일본은 본격적으로 인상파 이전의 서양미술을 규범삼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 『뜬구름』은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후타바테이는 고골의 선성에 있었다. (고진의 견해인 듯)

→ 언문일치를 꾀했던 그의 글쓰기가 우리나라에 준 영향(우리나라의 최초의 근대소설을 이광수에게 초점을 둘 때, 언문일치를 시도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 문학의 쇠퇴
바흐친이 중요시한 것이 '카니발적 세계감각'이었다. 소셰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문장이야말로 전형적인 사생문이라고 한다.

소세키는 에세이에서 사생문의 특징 중 하나를 어떤 '정신태도'에서 찾고 있다. "사상문 작가가 타인의 일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보는 태도도 아니다. (중략) 남자가 여자를 보고, 여자가 남자를 보는 태도도 아니다. 즉 어른이 아이를 보는 태도이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이다."(「사생문」) .

프로이트는 유머가 괴로워하는 자아(아이)에 대해 초자아(부모)가 그런 것은 별 것 아니라고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루쉰 혹은 마르케스와 고골과 소세키를 동등선에서 보고 있다. 소세키의 『문학론』은 당시 근대문학의 완전히 비주류에 놓여있던 것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근대의 종언은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으로서 그 상징성을 지녔다. 나카가미 겐지, 쓰시마 유코(다자이 오사무의 딸),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다카하시 겐이치로 등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르네상스적 문학을 회복한 것으로 보았다.

→ 가라타니 고진은 바흐친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는 느낌이다. 그 점에서 소세키와도 대비점에 놓인다.

4. 근대문학의 종언

4-1
소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 것은 근대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말은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앙가주망을 주창했던 사르트르의 위치에 주목한다. 1960년대부터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이 보급되었는데 그것은 로망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저작을 의미한다.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은 이미 근대문학로서의 소설(앙티로망을 포함하여)이 끝났다는 의미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착오라고 한다.

(의문이 가는 점은 그가 『구토』를 최초의 앙티로망이라고 본 점, 사르트르 자신은 앙티로망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 그럼 그가 실존철학 자체를 부정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좀 더 공부해봐야할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앙가주망(로쟈는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다.)과 근대문학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시절의 소설가들의 계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4-2
대중문화가 발전 하면서 마이너리티 문학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에는 흑인여성작가, 그리고 아시아계 여성작가 나왔다고 한다.(요즘도 혼혈세대들이나 이주3세대의 문학이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잡지를 통해서 들었다.) 활력을 주나,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한국에서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정치)운동이 불가능하던 시대에 학생운동이 활발했는데,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서 학생운동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운동은 대리적표현이었는데, 그것과 문학이 닮아 있다고 한다.(이점에서 그가 근대문학에게 부여하는 위치가 드러나는 듯하다.) 그와 친한 김종철은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p.49)

다고 말하는 것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문장이 그의 문학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건 정치성과 관련이 되어있어보이는데, 정치적 발언의 자유가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는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과 정치의 관련성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일전에 한 비평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난 용산참사와 관련되어서 소설가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요시다슈이치를 비난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그와 고진과의 연관성을 진작하게 되었다. 강의를 듣던 대부분의 문학도들이 께름찍한 표정을 지었는데, 현재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거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는 역설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세대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 시대 작가들이 시대를 리얼리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재학중인 교수님들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들도 이들과의 견해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4-3
미학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칸트에 의해서다. 칸트가 감성과 감정이 지적·도덕적 능력(오성이나 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감성이나 감정을 긍정하는 태도는 상공업에 종하사는 시민계급의 우위에서 나온 것이다. 소설은 '공감'의 공동체, 즉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서 생각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이 지식인과 대중 또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공감'을 통해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국민주의의 출현과 상상의 공동체의 창출의 주 원인을 특정 문자 언어(예를 들어 라틴어)에 대한 접근이 특권층에 제한되던 양상의 감퇴, "신의 지배(divine rule)"와 왕정 등의 정치개념을 폐지하려는 운동,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 인쇄기(printing press)의 출현(앤더슨은 이를 "인쇄자본주의(print-capitalism)"라고 불렀다.)을 꼽았다(위키백과)

옛날에는 종교, 도덕에 대하여 '시의 옹호'가 이뤄졌다면, 현대로 말하자면(근대) 정치적인 도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4-4
근대국가는 한문이나 라틴어와 같은 보편적인 지적 언어를 속어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문어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언문일치는 감성적, 감정적, 구체적인 것과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연결하는 도구다. 현 전 세계의 네이션은 자본주의적인 세계화(globalization) 에 의해서 진행중이지만, 이것에 반발하는 것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종교의 원리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이 지점에서 자꾸만 김규항이 생각난다.)

4-5
소설은 인쇄기술과 함께 발전을 해왔다. 근대소설은 묵독되는 것이다. 내면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그러나 소세키의 소설이나 후타바테이의 『뜬구름』,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낭독함으로써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한다.

4-6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시청각적 미디어가 들어오면서 그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얼리즘의 성격이 '3인칭 객관적 묘사'라면 화자가 존재하게 되면 현전성이랄까 '깊이'같은 것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일본작가가 '사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3인칭 객관묘사라는 '상징형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인칭 소설을 의심하면서 사르트르의 소설이 생겨났고,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도 1인칭으로 말한다고 한다. 모더니즘 소설은 영화에 대항하여 이루어진 소설의 소설성 실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근대소설이 네이션 형성의 기반이 되었지만 현재 소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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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착증후군 2010-01-04 공감(0)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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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의 문학과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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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gue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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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적어도 '말인'은 되지 말자!"


6.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천한 것과 돼먹잖은 놈의 진화 , <다윈의 대답1 ?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피터 싱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윈주의 좌파’의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설명하듯 극단적인 이기주의 전략보다는 협력적 전략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윤리적 노하우와 가상적 인격, <윤리적 노하우> 프란시스코 바렐라. 저자가 보기에 윤리는 ‘노핫know ?what’의 문제가 아니라 ‘노하우kno... + 더보기
시이소오 2016-05-12 공감 (3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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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과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의 최신작인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의 표제 강연문을 나는 이미 <문학동네>(2004년 겨울호) 버전으로 읽은 바 있지만, 저자 자신이 단행본에 수록하면서 전면적인 개정을 가했다고 하므로 다시 읽어봄 직하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펼쳐놓는다. 원래는 2003년 10월, 고진이 몸담고 있던 긴키대학의 한 연속강연에서 행한 강의록인데, 출간을 위해서 꼼꼼하게 다시 가필을 한 듯하다. 재작년에 이 글이 번... + 더보기
로쟈 2006-04-18 공감 (50)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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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책들(73)


토요일 오전에 결혼식에 갔다가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의 역자를 만났다. 바로 물어본 것은 책의 근간 여부였는데, 벌써 깔렸다는 것이었다, 이번주에 말이다(알라딘의 새로나온 책 코너는 언제나 뒷북친다). 몇달 전 근간 소식을 접하고 고대하던 책이었던 만큼 제일 먼저 꼽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이미지를 띄우는 기능이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이 페이퍼는 언제 완결될지 알 수 없다). 한 차례 날려먹고 다시 쓴다. 하지만 조금 짧게. 어쨌든 ... + 더보기
로쟈 2006-04-15 공감 (4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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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문학은 전후문학이다"


이번주 '프레시안books'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10715144535). 조영일의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 2011)에 대한 것인데, 원고는 아침에 부랴부랴 2배속으로 작성해 보냈다. 일독해볼 만한 흥미로운 책이다. 프레시안(11. 07. 15) 한국에 톨스토이 없는 이유는? '식민지' 없어서!? <세계 문학의 구조>(도서출판b 펴냄)는 평... + 더보기
로쟈 2011-07-15 공감 (3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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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번주 '프레시안 books'에 실린 '3인 1책 전격수다'를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531173010&section=03).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를 읽고 나눈 수다다. 묵직한 책이어서 오래 묵혔다가 다루게 됐다. 프레시안(13. 05. 31) 일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고, 국가를 전복할 권리! 이현우 : 가라타니 ... + 더보기
로쟈 2013-06-01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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