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4

John Bolton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 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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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eongho
11 hrs ·

제페토 할아버지의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 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 
PDF파일을 방금 구해서 관심이 가는 몇 대목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었다. 내용을 꼼꼼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라 그냥 첫인상만 이야기해보겠다. 
1. 
책은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공작이 부하 장군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Hard pounding this, gentlemen, but we will see who can pound the longest."
배경을 알면 금방 이해되는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포병대가 영국군 진지에 마구 포격을 가하던 상황에서 한 말이다. "우리를 두들겨 부수려고 작심했구만. 하지만 누가 제일 오래 상대를 두들겨 부술지는 곧 알게 된다."
어떤 느낌으로 쓴 책인지는 인용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2. 
김어준은 뉴스공장에서 "연인에게 버림받은 자의 리벤지 포르노"라고 평가하던데 자기를 내쫓았다고 삐쳐서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까발렸다는 식의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볼턴이 책을 낸 이유는 복수심이나 돈 때문이라기보다 자기 신념에 어긋나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수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3. 
볼턴이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일 대학교를 숨마쿰라우데로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 출신이다. 레이건,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트럼프, 4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그를 중용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 때는 법무부 차관,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는 국무부 국제기구 담당 차관보, 아들 부시 대통령 때는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 UN 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했다. 그 후 10여 년을 재야에 있다가 트럼프 대통령 때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네오콘의 이데올로기를 체화하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모든 것을 걸어온 인물이다.
4. 
지난 대선에서 네오콘은 뼛속까지 장사꾼 마인드인 트럼프를 불안하게 여겼고 전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볼턴은 의외로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그 이유로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되었다. 
트럼프가 볼턴을 필요로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동시에 볼턴도 트럼프를 필요로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돌려놓은 방향타를 네오콘이 원하는 방향으로 되돌리려면 대외정책에 문외한인 트럼프를 자신이 배후조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말이다.

5.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좌절의 기록인 동시에 차분한 복기다. 자기가 관여한 중요한 일들을 기억에만 의존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고만 볼 것은 아니다.(실제로 볼턴은 모든 것을 기록하는 메모광으로 알려져 있다.) 행동하는 네오콘 이데올로그 입장에서 어디에서 무엇이 어떻게 뒤틀렸는지를 꼼꼼히 되짚어보는 내용이다.
6.
한국 언론에 소개된 것을 보면 책 대부분이 북미 정상회담에 얽힌 뒷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중국은 당연하고 러시아, 대만,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등을 골고루 언급했다. 한반도 이슈는 전체 15개 챕터 중 3개 챕터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다. 
7. 
강성 네오콘 이데올로그이자 행동대장인 볼턴이 작심하고 미국 대외정책의 민낯을 까발린 것이라서 우리에게는 아주 유용한 참고자료다. 이런 책이 아니면 어떤 기회에 네오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겠나.
2010년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와 재외 공관 사이에 오간 전문 25만 여 건을 공개해서 큰 소동이 있었다. 이라크에 주둔하던 미 정보부대 소속 브래들리 매닝이 위키리크스에 몰래 제공했는데 매닝의 직급이 낮아서 접근할 수 있는 비밀의 레벨이 낮았다. 따라서 1급 비밀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1급 비밀에 해당할만한 내용도 상당수 소개하고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정보의 내용 자체가 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만 하다. 그래서 백악관이 볼턴에게 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이다.
8. 
책 내용의 진위를 정확히 가리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이라 볼턴도 모든 것을 있었던 그대로 기술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퍼즐로 가득 차 있다. 차근차근 퍼즐을 맞춰가며 행간에 숨은 진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행간을 읽어내려는 자가 헛다리를 짚도록 곳곳에 함정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함정을 피해가며 미국 네오콘의 숨겨진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외교 당국이 할 일이다.
9. 
책을 읽다 보면 그간 얼마나 치열한 수 싸움과 외교전이 벌어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리저리 휘둘리기나 했지 무슨 결과가 있었냐며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책을 읽었다면 절대 그런 소리가 안 나온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1차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6월 말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 간극은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문 대통령이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며,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미국과 다른 아젠다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여느 나라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있었다. 
One important point Trump made at the end of June underscored the potential of a division growing between the US and Moon Jae-in, which increasingly concerned us. Having watched Moon in action, Trump came to understand that Moon had a different agenda from ours, as any government prioritizes its national interest." 
나는 윗 대목을 읽고 마음이 뭉클했다. 문 대통령은 볼턴이 인정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10.
볼턴의 회고록 출판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온갖 창피를 다 당하고 재선 가도에는 빨간불이 켜질 것인가?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책이 묘사하는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움직였다. 물론 트럼프가 생각하는 미국의 국익은 '돈'이다. 
네오콘의 대외정책 아젠다가 무엇이든 장사꾼 트럼프는 모든 것을 비용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미국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외국에 내다 버리는 돈을 한 푼이라도 줄이고자 했다. 비용을 줄일 수 없다면 우방이고 나발이고 간에 비용을 대신 지불하게 하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했다면 트럼프에게는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국익 수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트럼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텔레그라프지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 Telegraph, The Room Where It Happened by John Bolton, review: Trump emerges not unscathed, but more human(https://www.telegraph.co.uk/books/non-fiction/room-happened-john-bolton-review-trump-emerges-not-unscathed/)
11.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회고록이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우리는 남북한 관계 개선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 북한은 일이 틀어지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는지 내막을 파악하게 될 수도 있다.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이기도 한데 정말로 그렇게 되어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해본다.
12. 
책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읽어볼 생각이다. 네오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어서다. 모든 책으 제값을 주고 다 구입하는데 이 책도 검토 후에 구입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볼턴은 선인세로만 200만 불을 받았다고 한다. 초판이 20만 부 풀렸다고 하는데 전 세계 언론이 다 광고를 해준 셈이라 100만 부 판매는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 경우 우리 돈으로 100억 원의 수입이 예상된다.
2018년 초 트럼프 행정부의 내막을 파헤친 마이크 울프의 <화염과 분노>가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저자가 9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이 근거다. 
반트럼프 정서가 팽배한 미국에서는 요즘 트럼프 때리기만 하면 장사가 된다. 볼턴의 회고록이야말로 상업적인 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회고록이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직면하고 있는 냉정한 현실이다. 어떤 이유로도 값싼 호기심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에는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
13.
볼턴이 해고당한 것은 이란 문제 때문이었다. 이란이 미군의 드론을 격추하자 볼턴은 무력시위를 제안했다. 드론을 날린 기지를 초토화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인명피해가 없는데 비싼 돈을 주고 산 무기로 불필요한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며 거절한다.(다시 한 번 트럼프에게는 돈이 제일 중요하다)
이란에 대한 보복을 거절한 대통령을 두고 볼턴은 나약해빠진 보스 밑에서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며 제발로 떠났다.(트럼프는 자기가 해고했다고 주장하고 볼턴은 스스로 그만뒀다고 상반된 주장한다)
볼턴은 상대를 대화가 아닌 힘으로 굴복시켜야 하고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볼턴의 회고록에 열광하기 전에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고 재직 당시 한반도의 운명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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