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3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수 연구위원 : 네이버 블로그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수 연구위원 : 네이버 블로그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 수 연구위원 동북아역사재단 공 2011. 4. 13. 10:37 이웃추가 본 5 댓글 0 블로그 카 동북아역사재단 2020. 9. 23.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수 연구위원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rrectasia&logNo=5010922731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2/7


지난 3월 9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서양학계의 일본 천황제 연구의 일인자로 알려진 포트랜 드 주립대 케네스 루오프(Kenneth Ruoff) 교수 강연이 열렸다. “전후의 상징적 천황제 : 일본 ‘전통’ 천황제로의 회귀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이 끝난 후 재단의 연민수 연구위원과 나눈 대 담을 소개한다. 저서 《국민의 천황》을 보니 영어권에서 일본 천황제 연구의 일인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일본 천황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원에 있을 때, 사실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는데 일본 천황제 연구로 전 후 일본 민주주의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후 일본인들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내셔널리즘을 찾아야 했다. 전쟁 전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모두 민주주의와 상반되는 것이었는 데 전후에 일본인들은 민주주의와 부합하는 내셔널리즘을 찾아야 했으며, 그것이 바로 천황제 다. 심지어 천황제는 일본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위협으로 생 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말 극단적인 좌파나 우파가 아닌 이상 오늘날 일본의 거의 모든 내셔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 점은 전후 일본에서 매우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역사에서 천황과 천황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천황이란 존재는 어 떤 의미가 있는가? 천황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근대 이전에 천황은 민족의 상징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에는 민족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일 본인들은 천황이 민족국가의 상징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일본 역사가들 사이에서 논쟁도 있지 만 많은 역사가들이 근대 이전의 농부와 같은 일반인들은 천황의 존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천 황이 일본민족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교토에 사는 어떤 무속적인 존재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근 대 이전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서를 보면 천황과 관련된 전통은 근대에 기원을 둔 것이고, 천황 관련 관습들은 유럽의 군주 국에서 빌려 온 것이라고 했다. 어떤 요소들을 빌려 온 것인가? 현 천황과 황후가 결혼할 때 사진을 보면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다. 거기에 “일본적인 것”은 전혀 없다. 모두 영국 황실에서 빌려온 것이다. 근대 이전 일본 황족은 가마를 타고 결혼했다. 이미 차와 기차가 있던 1959년의 일본에서 이렇게 말이 끄는 마차는 매우 전통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건 일본의 전통이 아니다. 이것이 유럽 군주국에서 빌려온 천황관련 관습 중 하나이 다. 일본 천황가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일본인이 했던 농담을 인용하면 진정으로 “전통적”이려면 천황은 일부일처제에서 벗어나 여러 명의 아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 본 천황가뿐 아니라, 전통적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하는 영국 왕실의 경우도 소위 그들이 말하 는 “전통”이라는 것이 사실 대부분 근대에 발명된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영국 왕실도 상당히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5 댓글 0 블로그 카 동북아역사재단 2020. 9. 23.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수 연구위원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rrectasia&logNo=5010922731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3/7 일본 역사에서 수수께끼 중 하나가 천황제가 고대부터 폐지되지 않고 계승되어 온 것이다. 권 력의 주체가 바뀌면 이전 권력은 자연히 소멸되는 것이 왕조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인데, 그 이 유는 무엇일까? 먼저 일본 천황가가 완전히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14세기 일본 에서는 남북 왕조 간의 갈등이 있었고, 남과 북 중 어디가 정통 일본 황실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 황실혈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어떻게 일본 황실이 존립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아주 독창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 일 본천황들이 대체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권력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가도, 새로운 권력자는 천황을 죽일 필요 없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천 황이 일본 역사 대부분에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천황을 안전하게 존속할 수 있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천황제는 군국주의와 결부되어 대외팽창, 침략주의로 나아가게 되고 이때문에 아시아제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대일본제국헌법에 보면 법적으로 천황은 절대통수권을 갖는 군주다. 그런데 패전 이후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 미국은 면죄부를 주었 다. 천황제의 존속은 일본우익들이 과거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미국 의 책임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의 책임이 있는가"에 대해 간단히 답변하자면, "그렇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우 복잡 한 이야기다. 미국은 천황을 전범으로 손쉽게 처형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천황을 철저하게 보 호했다. 그를 미군정 지배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천황을 미군정 지배에 잘 이용하고 헌법을 새로이 개정한 후, 1952년 그를 폐위시키고 그의 아들 아키히토를 천황에 오르게 할 수 도 있었다. 히로히토를 천황으로 그대로 남겨 두며 생긴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이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일본인들이 과거 전쟁에 대한 정직한 토론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히로히토의 죽음이 냉전시기 종결과 맞물려져 있긴 했지만, 그가 죽자 갑자기 일본에서는 과거 전쟁에 대해 아주 많은 토론들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5 댓글 0 블로그 카 동북아역사재단 2020. 9. 23.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수 연구위원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rrectasia&logNo=5010922731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4/7 일본의 극우파가 ‘전후 상징으로 존재하는 천황 의 지위가 사실은 진정한 일본전통으로 회귀를 의미한다’라는 결론을 지었다고 언급했는데 이 말은 천황의 지위에 대한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한다. 일본 역사를 보면 권력의 이중구조가 어 느 시기에나 보이고, 권력자들이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되는데? 광범위한 의미에서 전후 상징천황제가 일본전통의 회귀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일본 보수주 의자들은 중요한 점 두 가지를 항상 빼고 말한다. 첫 번째는 전후 상징천황제는 헌법에 따라, 그리고 국민주권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상징천황제라는 점이다. 이는 1868년 이전 천황제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만약 일본 국민이 천황을 없애고 싶으면, 그들은 천황제를 없앨 권리를 가지 고 있다. 두 번째는 헌법뿐 아니라, 현재 천황제가 순수한 일본전통에서 상당히 멀다는 것이다. 천황 전통 대부분이 근현대의 산물일 뿐 아니라, 상당수가 해외에서 빌려온 것이다. 즉, 일본 왕 실은 전통적이지도 않고, 순수하게 일본적이지도 않으며, 헌법과 국민주권 틀안에 존재하고 있 다. 이는 모두 과거 일본 전통 천황제와 다른 것이다. 현재 일본의 천황제는 기로에 놓여 있다. 남자만 천황으로 즉위할 수 있다는 규범 때문에 앞으 로 천황제가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만일 천황제 존속이 어렵게 되면, 극우파 들은 집결할 상징물을 새로 찾아낼 것이라고 했는데 천황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상징물로는 어 떤 것이 있을까? 일본 극우파들은 목적을 위해 천황을 이용할 뿐이다. 2차 대전 후에 더 이상 왕실을 국가 상징 물로 이용할 수 없었던 프랑스의 극우주의자들이 외국인을 몰아냈던 쟌 다르크를 상징물로 내 세워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을 추진한 것처럼 그들은 내셔널리즘의 상징으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메이지 유신 초기만 해도 천황은 일반인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후 메 이지 시기 내내 많은 시간을 들여 천황은 일본 민족국가를 대표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국 민에게 주입켰으며, 결국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메이지 시대에 천황이 국가 자부심 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듯이,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 이렇게 주입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 5 댓글 0 블로그 카 동북아역사재단 2020. 9. 23. [대담] 일본의 천황제는 근대의 산물 - 케네스 루오프 교수 VS 연민수 연구위원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rrectasia&logNo=5010922731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5/7 천황, 천황제의 연구는 일본의 역사 안에서 하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천황제의 성립 자체가 외 부 자극으로 성립했다는 점에서 시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고대의 천황제 는 신라와 중국의 당을 의식한 면도 있고, 근대에는 서양 열강과 관계 속에서 출현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의 관점에서 검토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훌륭한 질문이자 일본 보수주의자들을 정말 화나게 할 만한 질문이다. 일본 보수파나 극우파는 일본의 천황제가 독특하고 특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 천황제를 세계사, 특히 근대 세계 사 속에 놓고 보면, 별로 독특할 것도 없다. 천황제는 당연히 동아시아사와 세계 근대사 속에 놓고 보아야 한다. 천황제는 많은 부분 중국과 한국에서 영향을 받았고, 근대로 와서는 세계 여 러 나라들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른 모든 근대 민족국가에서 내셔널리즘이 발견되듯이, 일본에 서는 천황제를 내셔널리즘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됐을 뿐이다. 지금까지 일본 천황가에 대해 받 은 질문 중 가장 심도 깊은 질문들이었다. 일본 천황과 천황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한국 독자에게도 많은 흥미를 끌 것 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훌륭한 연구를 기대하며 지속적인 교류가 있기를 바란다. <글_ 이윤정, 사진_ 송호철> 케네스 루오프 교수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학과 학사학위를, 콜롬비아대 역사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 재 포트랜드 주립대학 일본학 연구소 소장 겸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 펴낸 저서 The People’s Emperor : Democracy and the Japanese Monarchy 1945~19 95는 《국민의 천황 : 민주주의와 일본의 군주제, 1945~1995》의 일본어 번역본으로 2004년 아사히신문에서 사회과 학분야 최고의 책에 수상하는 Osaragi Jiro(오사라기 지로)상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저서로는 Imperial Japan at its Zenith : The War time Celebration of the Empire’s 2,600th Anniversary (제국주의 일본의 정점 : 전쟁 중이던 제 국의 2,600 번째 기 념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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