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2

[위안부문제]책 만주 일본군 위안소 계장의 수기 <무한 병참>


Sejin Pak


[위안부문제]책 만주 일본군 위안소 계장의 수기 <무한 병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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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위안부 한구에 도착하면 위안소주와 같이 필요서류를 가지고 병참위안계에 온다. 사진. 호적등본. 서약서. 부모승낙서. 경찰허가서 시읍면리의 신분증명서를 조사하여 신상조서를 만들어 전력 부모주소 직업 가족 등을 기록하며 빌린돈의 액수, 기생의 성격이나 특성 치료력도 나중에 추가기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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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비 영업비는 가게가 부담하고 5;5로 빚이 있는자는 6;4로 정하였다. 위안부 한달 4,500엔 정도의 수입이 있고 빚은 평균 6,7000엔으로 일년 반 정도로 빚을 값고 내지로 돌아가게 지도를 하였다.
... 병사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내진 서민. 여자도 운명이 같음. 서로 동정과 이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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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 "서약서. 부모승낙서, 빚을 값고 돌아가게하는 지도"라는 것들이 눈에 뜨인다. 부모가 승낙하다? 부모가 빚을 지고, 딸이 그 빚을 갚기 위해 팔려가는 구조: 어서 많이 들어 본 것이다. 1920-30년대의 일본의 농촌에서도 흔했고, 조선에서도 흔했다. 심지어 심청전 이야기도그렇다.
- "병사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내진 서민. 여자도 운명이 같음. 서로 동정과 이해가 있었[다]]" - <제국의 위안부>에서 읽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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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이나, 밑의 서평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이 글의 댓글에서는 책이 말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계속 다른데서 주워들은 20만명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간 "일본놈들 나쁜놈들" 하는 민족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崔明淑

t2Sn0pgohnhsoretd ·

<독서>武漢兵站  -山田清吉- 1978.12.25
전에 한국어를 가르치던 학생에게 종군 위안부를 "매춘하기 위해 모였던 여성들"이라고 들어서 놀랐었다. 내가 들어오던 믿던 것과는 달라서였다. 그 자리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건데 돈벌러 간 사람이나 속아서 간 사람, 잡혀 간 사람들이 있지 않았겠나? 정도의 말을 하였지만 내가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다.
페북에서 알게 된 선생님의 서평소개를 읽고 읽고 싶어진 책이 있었다.
'무한 병참'
1978년에 씌여진 책으로 위안부운동 이전에 나온 책이라서 읽고 싶어졌다. 주변의 논란으로 위축되지 않은 솔직한 수기일 것 같아서 관심이 갔고 실제로 글에서 어떤 가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1944.7월 저자는 漢口의 무한병참 사령부의 부관이었다. 병참의 업무는 숙소관리, 수송, 장례유품, 포로, 경리, 위생, 위안계 등이었는데 그 중 위안계는 연예 영화 위문단 요정 식당 육군특종위안소관리이다. 특히 그는 위안소 관리의 계장으로 근무를 했었다. 책은 병참 업무 전반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의 3~5장에 위안소에 대한 내용이 있다. 위안부 들의 생활과 군에서 위안부와 위안소를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와 인상에 남던 위안부 등의 각종에피소드가 실려있다.
당시 무한(한구)에 위안부는 내지일본인 130명과 조선인 150이 있었고 조선과 일본의 영업소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군의 시설로 위안소를 영업하게 하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인데 일본에서는 1932년 상해사변때 岡村寧次大佐가 나가사키현지사에게 부탁하여 위안부단체를 부른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후 각 병참의 일로 위안소를 가지게 되었으며 위안소에 대한 무한에서의 기록은 1938년 7월 部外秘 教育総監部編 戦時服務提要에 성병예방 위생시설완비 군이 정한 매춘부의 지역민과의 접촉 엄금이 적혀 있는 정도이고 병참근무령에 위안소령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군이 관여했는지 구체적인 자료..이것이 필요할 것이다. 수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여기에 올려본다.
-위안부 한구에 도착하면 위안소주와 같이 필요서류를 가지고 병참위안계에 온다. 사진. 호적등본. 서약서. 부모승낙서. 경찰허가서 시읍면리의 신분증명서를 조사하여 신상조서를 만들어 전력 부모주소 직업 가족 등을 기록하며 빌린돈의 액수, 기생의 성격이나 특성 치료력도 나중에 추가기입을 한다.
-조선에서 위안소주가 위안부를 모집해 오는데 도중에 배가 난파하여 승객 모두 죽었지만 그 위안소주의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게하여 모집된 위안부의 이름과 주소등을 파악하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長尾和郎"관동군 군대일기`이들 조선 여성은 종군 간호부 모집광고로 모여진 사람들이라서 시설에서 영업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일본 내지에서 온 기생은 창부, 예기, 여급, 경력이 있는 20-27,8세.가 많았고 반도에서 온 자는 전력도 없이 18, 9세 젊은 처자가 많았다. 계장으로서 "괴로운 일인데 참을 수 있나? " 미리 위안소주에게 들은 듯이 고개를 끄덕임.
-식비 영업비는 가게가 부담하고 5;5로 빚이 있는자는 6;4로 정하였다. 위안부 한달 4,500엔 정도의 수입이 있고 빚은 평균 6,7000엔으로 일년 반 정도로 빚을 값고 내지로 돌아가게 지도를 하였다.
-中公新書 "関東軍"관동군 책 속에 1940년 관동군 특별 연습을 기회로 34개 사단으로 팽창했을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인데 이 때까지 북만주에는 70만 병력 말14만필 비행기 600대가 집중수송되어 있었다. 작전준비를 위해 만주와 조선에 모인 작전기자재는 그후 몇 번인가 남방의 내지로 전용됬음에 불구하고 종전까지 전량의 50%남을 정도로 막대하였다. 原善四郎참모가 병사욕구, 가진 돈, 여성의 능력을 면밀히 계산해서 비행기로 조선에 가 약 1만명(예정은 2만명)을 모아 북만주 광야로 보내어 시설을 특설하여 영업시켰다.
-죽음을 건 자가 행하는 일종의 의식. 병사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내진 서민. 여자도 운명이 같음. 서로 동정과 이해가 있었지만 여자가 너무부족. 가혹한노동에 짓눌러 희생이 되었다.
-"草の海旅断想" 위안부는 종군간호사처럼 노래로 불려지지도 않고 전쟁사나 이야기에나오지도 않지만 몇퍼센트의 병사들 가슴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렇게 명복을 빌 수밖에 없다. 종군위안부란 무언가 음탕 비극성이 조형된 단순한 생물 병사들을 비춘 거울같은 존재 내 자신 생각해 보건데 일본제국 육군의 대패전 속에서 위안부와의 부분만이 아름다웠던것 같다. 향기롭고 가치있는 위안부들에 대해 나는 충심으로 경례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 위안부는 노예처럼 혹사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본인처럼 빚을 값는 제도로 바꾸어 관리했다.
군시설로 위안소를 거느렸던 것, 조선에서의 모집 과정에서 많은 속임수가 있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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