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백승종 정약용, 세종 북방 영토의 개척을 고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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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세종의 마음을 읽다
이유는 다르겠으나 누구든지 세종을 호평한다. 다산 정약용 같은 석학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 궁금하다. 그의 글 ‘요동론’이 내 시선을 잡아당긴다(‘다산시문집’, 제12권). 정약용은 이 글에서 세종이 북쪽에 천리나 되는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한 사실에 감탄하였다.
그런데 세종도 고구려의 영토를 모두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요동을 회복하지 못한 사실을 놓고 예전부터 식자들은 설왕설래하였다. 정약용은 그 점을 언급하며, 요동을 되찾지 못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주장했다. 그곳은 한족과 북방 유목민족이 모두 중시하는 땅이라 도리어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정약용은 강조했다. 상무 정신이 부족한 조선 사람인지라, 요동을 오래 점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에 나는 비위가 좀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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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정약용은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먼저 세종이 요동을 차지했더라면 여러 나라와 복잡한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사신 접대만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했다. 또 국토방어에 많은 인력이 요구되어 국력도 고갈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주변 국가와 사이가 조금만 틀어져도 외적이 사방에서 쳐들어올 테니, 여간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듣고 보면 냉철한 분석이요,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세종 때 명나라는 이미 북경에 도읍한 다음이었다. 요동은 그들의 앞마당이었던 셈이다. 굳이 명나라와 힘겨운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요동을 차지할 마음이 세종에게 있었을 리 없다. 그때 유목민족이 요동을 차지하였더라면 사정은 어땠을까. 정약용이 차분하게 분석하듯, 요동은 척박한 지역이라 경제적 이득이 별로 없는 땅이었다. 현명한 세종이 불모지에 가까운 요동을 얻으려고 국제적인 분란을 일으킬 리가 있었을까. 훗날 우리가 중국을 제압할 만큼 강성해지면 요동부터 찾으라는 정약용의 당부가 가슴에 와닿는다.
세종이 세상을 뜨자 조선의 국력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왕이 힘써 경영한 사군, 즉 무창, 여연, 우예, 자성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폐지되었다. 후세는 이를 둘러싸고 찬반으로 엇갈렸다. 그 사정을 잘 아는 정약용은 ‘폐사군론’을 지어 세종의 본뜻을 되새겼다(‘다산시문집’, 제12권).
병법에 밝았던 학자라서 그랬을 터인데 정약용은 비유를 꺼냈다. 몸통을 공격당한 뱀은 머리와 꼬리 힘으로 반격하는 법이라 했다. 갑산은 뱀의 머리, 위원은 꼬리에 해당하고 사군은 몸통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사군을 폐지했으므로 몸통이 사라진 뱀 꼴이었다. 이로써 조선의 국방에 큰 결함이 생겼다면서, 정약용은 한탄하였다. 외적이 사군 옛땅을 점령하고는 남쪽으로 쳐들어오면 어찌 될 것인가. 대동강 이북을 한꺼번에 잃을 염려가 있다고 정약용은 걱정했다. 그는 세종의 눈으로 국가방어체제를 재점검하였고, 그래서 사군의 복구가 절실하다고 보았다.
18세기 후반에는 옛 사군을 만주족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금과 은, 구리와 쇠를 캐어 이익을 얻었고, 산삼과 초피 가죽까지 독점해 부를 쌓았다. 그들은 화포를 비롯한 병기도 확보해 철통같은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우리나라 관리들은 그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나라의 기강이 이렇게까지 무너졌으니 어찌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을까.
과거에 세종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방 영토의 개척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토방어의 보루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정약용은 그러한 세종의 전략을 높이 평가하고 사군을 회복하자고 말하였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매사에 우리는 뚜렷한 이유 없이 누군가를 칭송하거나 비판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족: 오늘 아침 어느 신문에 실은 제 토막글입니다. 비판을 하든 상찬을 하든 제대로 알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Hun-Mo Yi, 이은선 and 24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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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은 토막글이 아닙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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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혜덕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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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 좋은 분석 내용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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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종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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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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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종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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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h
  • 간도와 만주!!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난뒤 ... 백성들은 알아서들^^ 고토로 복귀한 셈이군요.
    이렇게 얄궂게 표현하면 안되지만... 사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태어난 고향 떠나지 못하는 토박이들이 만주로 연해주로
    북간도로 떠나면서 민족대이동이 점화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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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토를 차지하면 또 여러 문제가 있었군요.
    현재의 결론이 아니라 과거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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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현명한 리더와 (중앙.지방)공무원들이 정말 중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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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고구려땅 아쉽지만 나름 잘 버텨온 우리민족이란 사실을 새삼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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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h
  • 중국에서는 동북3성을 중히 여깁니다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정신줄을 놓고 살았다간 한반도가 동북4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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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수록 다산은 불세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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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동을 포함한 동북 삼성은 농사짓기도 거름지고 또 자원도 많은데. 고구려가 적은 인구로 중화족을 물리친 배경에도 풍부한 물산에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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