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4

[김수영] (2)유교 -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정신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정신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정신

등록 :2021-05-31 
[거대한 100년, 김수영] (2)유교
곧은 소리를 부르는
곧은 소리
그 무지막지한 소리에는
죽음충동이 꿈틀댄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모더니즘과 선비정신이
서로 식별되지 않는
영점에서 만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이 자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려고 직접 작성한 노트. “동양 사람은 한문을 배워서 고대의 훌륭한 서적을 읽을 줄 알아야 된다”는 문장이 한자와 한글로 병기되어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수영을 읽으면 첨단 사상과 문예 이론을 소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후진국 시인의 눈을 날카롭게 할퀴는 서양 문물의 광채가 여기저기 번쩍인다. 따라잡을 거리, 넘어설 높이는 아득했다. 제대로 배울 스승도 선배도 없었던 김수영은 독학으로 자기 한 몸에 의지해서 역사의 격차를 줄여나갔다. 도대체 예술적 현대성이 무엇인지, 그 현대성을 뒤떨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뇌했던 몸짓은 우리 문학사의 위대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몸짓에서 자주 간과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거기에 담긴 전통 복원의 의지다. 김수영이 “자신의 실질적인 첫 작품”을 논할 때 거론된 ‘미역국’(1965)을 보자.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환희를.” 이렇게 시작하는 작품에서 미역국은 “구슬픈 조상”을 비유한다. 조상으로는 조선 유학자가 거명된다. “미역국에 뜬 기름이여 구슬픈 조상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퇴계든 정다산이든 (…) 이것이/ 환희인 걸 어떻게 하랴.”

김수영은 왜 이런 시를 두고 자신의 실질적인 첫 작품이 될 만하다고 했는가. 아마 이 시기에 이르러 전통(특히 유가 전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에 대한 절망에서 벗어나 확신에 도달한 것같이 보이는데, 그런 도달 과정은 이렇게 추론해볼 수 있다. 전통은 확실히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그 비틀어진 전통을 미역처럼 한참 삶다 보면 역사에 회생의 활력을 가져다줄 기름이 뜰 것이다.



김수영 시 ‘격문’ 육필원고. 김현경 제공


한해 전에 발표된 ‘거대한 뿌리’(1964)에서도 유사한 역사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전통의 숭고한 크기를 노래하는 이 시에서는 삶기가 아닌 썩기의 논리가 바탕에 깔린다. 전통은 썩어서 수명을 다했지만, 그렇게 썩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전통의 긍정과 회생의 논리를 담은 절창이고, 그만큼 널리 애송된다.

그러나 이런 걸작이 그냥 단숨에 터져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 회생의 의지는 김수영의 작품 전체를 통해 꾸준히 관찰된다. 10년 전의 작품 ‘더러운 향로’(1954)도 좋은 사례다. 향로는 동양 제례 문화의 상징이다. 시인은 여기서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 옆을 지나며 도취에 빠진다. 동양 사상이 추구한 길은 마음을 취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도 끝없이 더러워지고 썩어빠졌다는 데 있다.

김수영의 공식적인 데뷔작인 ‘묘정의 노래’(1945)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서는 옛 사당을 복원하는 화공(畫工)이 시적 주체로 설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공자의 생활난’에서는 시인의 길이 군자의 길과 동일시된다. 최초의 두 시 모두 김수영의 정신적 고향이 모더니즘보다는 동아시아 전통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쯤 되면 김수영의 위대함을 단순히 서양의 모더니즘을 한국적으로 소화해냈다는 점에서만 찾기 어려워진다. 차라리 동서의 정신이 만나는 미래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수영 시 ‘폭포’ 첫 장. 김현경 제공

사실 김수영 시에서는 자신을 선비로 의식하는 대목이 심심치 않게 되풀이된다. 이런 데에서 시인은 동서의 전통을 교차시켜 상호 순화와 정돈의 효과를 유도하려는 몸짓을 보여준다. 가령 ‘모르지?’(1961) 같은 시를 보자. “구차한 문밖 선비가 벽장문 옆에다/ 카잘스, 그람, 슈바이처, 엡스타인의 사진을 붙이고 있는 이유/ 모르지?”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각 당대를 풍미하던 서양의 음악가, 과학자, 의사, 조각가다. 선비의 낡은 벽장문 옆에다 첨단 문화의 얼굴들을 붙여놓는 이유를 모르지? 김수영은 비슷한 질문을 ‘거리 1’(1955)에서도 던진다. “스으라(쇠라)여/ 너는 이 세상을 점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 조그마한 물방울로/ 그려 보려 하는데/ 차라리 어떠할까/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

김수영은 이런 식으로 동서 상상력의 교차가 일으킬 효과를 묻고 있다. 그런 교차의 전략은 ‘공자의 생활난’에서부터 발휘되었다. 여기서는 점묘화와 문인화 대신 마카로니와 국수가 한자리에 모인다. 명석한 시선을 추구하는 데카르트의 방법과 도덕성을 추구하는 공자의 길이 서로 이어진다. 동양과 서양의 이접적 종합을 의도하는 작시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종합이 일어날 특이점을 김수영은 나중에 온몸이라 불렀다.

그런 온몸에 이르기까지 김수영은 동아시아의 고전을 탐독했을 법하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읽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김수영의 산문에는 하이데거, 보들레르, 바타유, 블랑쇼의 시론을 읽고 감격하는 모습이며 영미권의 비평 이론을 번역하고 학습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반면 동아시아의 고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다는 이야기는 전해진다. 첫 작품 ‘묘정의 노래’가 “어린 시절의 성지”였던 동묘(도교 사원)에서 이미지를 가져왔고, 그곳의 거대한 관우 입상에서 받았던 외경과 공포를 회상하는 대목도 있다. ‘원효대사’(1968)라는 시를 보면, 김수영은 불교에도 무관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의 길에 들어서서 한자 문화권의 책을 붙들고 씨름한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1945년에 써서 <예술부락> 제2집(1946. 3. 1.)에 발표한 김수영 시 ‘묘정의 노래’. 맹문재 사진 제공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의 시는 우리 고전과 결부시키지 않는다면 해석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가령 ‘격문’(1961) 같은 시는 “땅이 편편하고/ 집이 편편하고”와 같이 온갖 사물에 ‘편편하다’라는 술어를 갖다 붙인다. 그러다가 “진짜 시인이 될 수 있으니 시원하고/ (…) 이 시원함은 진짜이고/ 자유다”로 끝난다. 왜 이런 시에 격문이란 제목이 붙은 것인가. 이는 <논어>(7:37)에 나오는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고 물로 쓸어내린 듯 시원하다”(君子坦蕩蕩)라는 구절에 기대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 김수영은 자신이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일정한 경지에 들어섰음을 그런 문장을 빌려 선언하는 것이다.

‘중용에 대하여’(1960)와 “중용의 술잔”이란 표현이 나오는 ‘술과 어린 고양이’(1961)도 <중용>으로 돌아가 해석해야 한다. 중용은 군자가 도달해야 할 최고의 경지다. 유가적인 의미의 자유가 중용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4·19 이후 김수영의 시론을 끌고 가는 자유의 이념은 단순히 서양적인 것도, 단순히 정치적인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동서의 자유 개념을 끌어안는 어떤 존재론적인 깊이가 숨어 있다. 김수영이 참여 지식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거듭날 때도 우리는 그의 핏줄에 이미 흐르고 있던 선비정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런 점을 말해주는 것이 ‘폭포’(1957) 같은 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김수영은 이 시를 모더니즘을 구현하는 대표작으로 지목한 적이 있다. 사실 곧은 소리를 부르는 곧은 소리, 모든 규정성을 깨뜨리는 그 무지막지한 소리에는 죽음충동이 꿈틀댄다. 죽음은 모더니즘이 숭배하는 창조적 파괴의 원리다. 그런데 곧음[直]은 과거 선비정신의 핵심에 해당했다. 대쪽에 비유되는 선비정신에는 죽음충동이 이글거린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모더니즘과 선비정신이 서로 식별되지 않는 영점에서 만나고 있다.

널리 애송되는 ‘사랑의 변주곡’(1967)에서는 선비정신의 근간인 성리학에 대한 식견이 드러난다. 이 시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 “아들아/ (…)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를 보자. 여기에 나오는 복사씨와 살구씨는 주자가 유가적인 의미의 사랑[仁]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였던 사례다. 인을 우주론적 원리로 확대했던 주자는 복사와 살구가 씨앗에서 나온 열매이듯, 세상 만물이 인이라는 씨앗에서 나온 열매라 했다.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에서 복사씨와 살구씨를 가져와 김수영은 현대적인 상상력을 발아시켰다.




김수영은 모더니즘을 끌고 가는 두 수레바퀴를 사랑과 죽음이라 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죽음은 서양적인 개념도 동양적인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동서 횡단적인 작시법에서 빚어진 도주선이고, 김수영의 마지막 걸작 ‘풀’(1968)은 그런 그의 작시법의 절정에 해당한다.

김상환 | 서울대 철학과 교수·문학평론가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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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97285.html#csidx89a300ae1f8027f9f7a3db86573b47a


twitter 대표계정 입니다.Jin Han Yun2021.06.01 07:56
유교의 으뜸 경전은 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의 오경과 논어.중용.대학.맹자 사서가 공통됩니다. 세계화시대고, 유교가 국교이던 조선.대한제국이 불교Monkey일본에 강제 점령당한후,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가 종교주권은 없는채, 이어지고 있는 복잡한 한국 현대사회입니다. 이러한 혼란한 시대에는 상대방에 대해, 전혀 모르던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교사회에서 모르거나, 도외시하던 많은 철학들(유교에서 파생된 무속신앙, 노장사상, 불교등)! 그리고 서유럽과 중남미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은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인 유교와 하느님숭배 및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가르침이 비슷합니다. 하느님[유교의 天은 하늘(하느님]!.

서양은 남편의 성씨를 그대로 따라 살고 있습니다. 수천년 유교문화에서 잘 지켜온 부계성씨사용도 그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너무 많은 주장들을 수용하며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유교 경전인 詩經은 하느님[天, 하늘(하느님)]이 만백성을 낳으신점(天生蒸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하느님이나 천주님도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개념이 비슷합니다. 공자님은 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경고하시고, 깨우치신 天命을 가르치시고, 하늘이 공자님께 부여한 덕(德)을 바탕으로, 도덕정치의 밑바탕이 된 인의예지신을 가르치시고, 공맹의 가르침은 삼강오륜을 낳아, 모든 동아시아 통치자들은 공자님이 제시하신 군자의 가르침을 따르기 열망하며(실제로 군자로 추증되려면 후세에 유림들의 합의나 국가의 법으로 추증되어야 인정됨) 노력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성인이나 군자는 공자님과 그 이전의 성인이신 요.순.우.탕, 문.무.주공정도로 한정하여왔습니다.후세의 중국 황제나 제후들은 유교의 최고 제사장과 정치.군사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할수는 있어도, 성인이나 군자칭호를 부여받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만 믿으며 중심으로 삼고, 서유럽의 가톨릭같은 세계종교도 이해하면서(비교종교학 방식으로), 군자의 길을 배우고 익히다보면, 자기 지위에 맞게 後學성격 儒生.儒林,유교도의 위치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느님(天)을 숭배하고 神明(천지의 신령)을 섬기며,조상에 제사하며, 공자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유교의 수천년 전통은 범위를 넓혀 남에게도 부모와 같은 노인공경.연장자 존대, 형제.자매와 같은 너그러움.인자함을 넓히도록 기반을 조성해 왔습니다. 이웃이 어렵고, 과부나 부모가 일찍 죽은 아이는 국가나 마을이 포용하는 유교 전통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좋은 전통입니다.


@

유교는 天[하느님,하늘(하느님), 태극과 연계]이 만물과 인간(하느님의 기품부여)을 창조하신후, 天,계절주관 五帝,地神,山川神,부엌신(조왕신)등 여러신을 숭배하는 다신교전통이 있어왔습니다. 무속신앙도 ,한나라때 공자님의 유교가 동아시아 세계종교가 되기 전의, 은.주시대 始原유교의 영향받은 고대 한국의 유교전통 및 , 한나라이후 세계종교가 된 유교 경전과 교육에 모두 연계되는 고대 한국 유교의 여러 신, 조상신을 섬기는 것에 해당됩니다.

정사영역 기자조선에서 비롯된 삼한 및, 위만조선, 한사군.부여.고구려.백제.신라등이 중국과의 교류로 알게 된 여러 유교중심문물을 융합하여 발전해 온 고대 한국.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중국에서 단순 소개된 중국유교에 흡수된 외래신앙으로,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없이, 하층주변부에 머물며, 주류종교인 유교밑에서 중국 도교,중국불교형태로 이어진 민속신앙입니다.특히 불교는 은.주시대 시원유교 및, 한사군때의 세계종교 유교가 고대 한국에 정착된 후, 포교된 외래신앙으로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 나서야 받아들여졌습니다.

공자님에 제사하는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하기전에는, 은나라왕족후손,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이 있었습니다. 고려.조선때 인정하던 기자조선이 일본강점기를거쳐 부정되어, 공자님이전의 始原유교를 부정하는 경향이 새로 생긴것인데, 기자조선 마지막왕 기준왕은 유교 한문성씨.본관을 사용하여 서씨.한씨가 그 후손이 되었습니다. 한씨는 三韓의 지배층이 되었고, 삼한은 始原유교부터 전해진 유교 제천의식인 단오절(5월제).시월제를 지냈습니다.

하느님의 종교인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의 정체성을 확실히하고, 하느님과 별개의 철학인 도교,불교를 이해하는것도 어느정도 필요합니다.도교는 유교처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점에 주안을 두지 않고, 후대에 갈수록 불교의 보살같은 용어도 사용하여,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수천년 이어진 유교의 하느님(天).공자님과 맞지는 않습니다. 불교는 원래부터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부처가 새로 만든 후발신앙으로 브라만을 섬겨온 인도에서도 다시 배척받게 된 인도발 신앙입니다. 창조신보다 높다는 Chimpanzee류의 부처를 받드는 무신론적 Monkey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불교와 섞인 후대의 중국 도교도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는 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철학.민속적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제사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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