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3

강미숙 시민은 빛났고 정부는 의도적으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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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시민은 빛났고 정부는 의도적으로 없었다

어제 경찰이 공개한 녹취록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11건 외에도 사고 전 4시간동안 72건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6~8시에 28건, 8~10시에 51건이나 신고가 접수되었으니 현장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보여준다. 자신은 나왔지만 현장에 있는 시민들을 살려달라고, 친구들을 구해달라고 그렇게 손을 내밀었는데 국가는 그 손을 외면했다.
오후 6시 34분부터 시민들은 사고위험을 당국에 알렸고 정확한 위치와 상황을 전달, 심지어는 이태원역 1번 출구를 통제해달라, 동선을 정리해달라, 경찰이 서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등등 정확한 상황파악과 대처요령까지 전달했다. 시큰둥하게 대응하는 경찰이 답답하여 누구는 현장 사진을 보내주겠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직접 파출소로 찾아가 자신의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현장을 빠져나간 시민들은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112에 신고하여 사고위험을 알렸다.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만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솔선수범한 것이다. 어떤 여성은 일방통행을 제안하여 원활한 흐름을 유도하기도 했다. 얼마나 빛나는 청년들이고 시민들인가.
당일 현장에는 137명의 경찰이 배치되었지만 경비, 안전 인력은 단 한명도 없었고 마약단속을 위한 사복경찰들만 잠입해 있었다. 그날 몇군데 집회에 81개 기동대 4,800여명이 투입되었고 1.5km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도 시위대를 대비해 1,100여명이 배치되었지만 9시쯤 집회해산하면서 철수했으니 그 시간 시시각각으로 이태원 압사 위험신고에 대응만 했어도 참사규모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대형참사가 나기 직전인 10시에는 이태원 일대에서 30분후 마약단속을 할 예정이라고 기자단에게 공지했다고 한다. 콘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정지시킨 것이다. 애당초 3년만의 노마스크 할로윈 축제로 이태원에 하루 10만명이 운집할 것이 예측된다며 인력충원을 요청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마약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이제야 29일 밤 처음 사고를 인지했을 때 흘러나온 말들이 이해가 간다.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이태원에서 약쟁이들이 뒤엉켜 쓰러졌다, 지하에서 가스누출 사고가 있었다, 서양귀신 놀음에 취한 정신나간 애들 등등의 유언비어들이 돌아다녔다. 어떤 근거도 없이 마약에 취했다는 말이 나오는지 몹시 괴이쩍었다.
어쩌면 저들은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낮은 지지율 반등을 꾀한 것은 아닐까. 현장에 정복 경찰이 보이지 않아야 군중들이 경계심이 사라져 성과를 크게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태원 전체를 약쟁이들이 광란의 밤을 즐기는 곳으로 매도하여 사회혼란을 획책하고 공안정국으로 전환, 집회 시위에 강력대응하려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용산서가 수차례 할로윈 주말에 인력충원을 요청한 것을 묵살하고 안전경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일축한 게 아닐까. 게다가 나서기 좋아하는 한동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수상하다.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그러하다면 이건 행정력 공백으로 인한 단순 참사가 아니라 행정이 국민, 그것도 2,30대를 약쟁이로 몰아 위기를 타개하고자 한 심각한 국가범죄에 해당한다. 미국 FBI나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 정부가 소위 적색분자 소탕을 마약, 범죄와 연결지었던 것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사고발생 이후 저들의 대응과 태도를 보면 국민을 필요하면 때려잡을 범죄자 취급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용산경찰서는 정보과는 물론 치안종합상황실도 할로윈 주말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순호 경찰국장, 윤희근 경찰청장은 일선 경찰들을 감찰하겠다고 하고 윤석열은 '112 신고 대응못한 경찰에 격앙, 엄정처리'하라며 가이드라인을 지시했다.
당일 112 신고접수 후 어떤 지휘체계로 전달되었는지 해당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와 문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파출소의 당직 경찰관은 밤길 순찰을 도는 업무지시를 받고 있으며 명령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위치라는 것, 경비와 안전은 기동대의 업무라는 것. 이제 경찰의 시간이다. 신고가 빗발치는데도 왜 현장 출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감찰에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감찰받아야 할 자들은 경찰 수뇌부들이고 청년들의 축제를 마약단속의 기회로 삼은 정부당국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과 대검이 일선 경찰을 감찰하고 조사하는 것이 못미덥다. 윗선의 안위를 위해 힘없는 말단 공무원들만 희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이 국가 사법시스템을 못미더워한다는 것은 국가 공권력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공권력의 힘은 권위와 신뢰에서 나온다. 국민이 더이상 공권력에 도움을 청해도 안전을 지켜주지 않을 거라 불신하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무정부상태의 패닉에 빠지게 된다.
청년들은 숨막히는 현실에서 하루만이라도 숨을 쉬겠다고 가장 핫한 축제현장을 찾았다. 골목에 끼어있던 우리의 아들딸들 대부분은 할로윈 코스튬을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에버랜드, 서울랜드, 롯데월드와 전국 곳곳에서 할로윈 축제가 길게는 80일씩 열리고 있음에도 굳이 많은 이들이 좁아터진 이태원을 찾은 것은 자유와 해방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넓은 광장이 아니라 또래들과 부비부비를 만끽하겠다고 가을 주말을 나선 것이다.
우리는 모처럼 숨 쉬어보겠다고 이국적인 거리로 나간 청년들의 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국민들이 압사하고 질식사하게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누구하나 처벌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원죄가 그 사건을 지켜보며 절망했던 죄없는 자식들을 또다시 희생하게 만들었다. 
이태원 참사의 전말이 하나하나 밝혀질수록 사죄나 몇몇 말단 공무원의 징계로 끝날 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정복 경찰을 투입할 수 없었던 게 분명한 용산서와 이태원 파출소의 젊은 경찰관들은 죄가 없다.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의 형사처벌, 내각 총사퇴,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을 초래한 무능한 수장, 국가운영의 자격을 잃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만이 생에서 강제격리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길이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면이 서는 길이다.
55 comments


Sangjin Park
참사의 배경이 밝혀 질수록 분통이 터집니다. 계속 이어지는 긴급한 신고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이유가 무언지,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린건지 반드시 밝혀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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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욱
마약 단속으로 지지율을 끌어 올리려는 얄팍한 굥정부 ᆢ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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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각
지지율 반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서리 맞은 배추같은데. 사복경찰이 그렇게 깔렸다는데 왜 현장 상황보고와 대처가 그렇게 안되었는지 궁금합니다~
Reply22 h
Anna Kim
아...왜 자꾸 마약 얘기를 하나 했습니다. 이런 사정이...
Reply23 h
강욱천
김순호는 행안부 소속 경찰국장 입니다.
경찰청장은 윤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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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현




전 음모론을 매우 경계하지만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때는 사생결단을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약단속해서 지지율 반등을 꾀하다니요?
미쳐돌아가는 세상입니다..
May be an image of one or more people and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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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an Seok
무능한 자들의 총합체의 결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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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Bong Lee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도 이 참사의 실체적 진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차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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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마약수사는 통상 검찰특활비로 하죠
검찰특활비 증액을 위한 명분 쌓기용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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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님
갈수록 슬프고 화가 나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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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임
이 미친 자들의 수뇌부터
단죄해야합니다.
Reply20 h
이유정
공감또 공감합니다.
때아닌 마약과의 전쟁이란 말이 왜나올까 의아했는데
결국은 뭐하나 해보려고
그 아까운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범죄라는게
맥이 짚어지네요,,,,ㅜ
공유합니다.
Reply23 h
김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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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태
사복입은 마약단속반도 이정도면 위험하다 사람이 떠밀려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텐데 그러면 상부에 보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지 가만히 있었다 이게 공무원의 자세가 맞나? 뭐가 우선 순위인지를 감이 안 오나??
Reply19 h
장명현
세상에 원인없는 결과는 없고 씨뿌리지 않았는데 추수는 없습니다.
저들은 이 일을 우발적이거나 불가항력적인 일로 몰고가려는 저의 뒤에 강작가님께서 지적하신 음모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사건에 대한 셜록홈즈 식 접근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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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연
김 순호는 경찰국장이고, 윤 희근이 경찰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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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bog Choi
마약단속 성과 올리려고 일부러 정복경찰 인원을 줄이고 112신고 모두 다 묵살한건지 특검해야만 합니다.
Reply18 h
이종회
사고전 정부는 없고
사고후 정부는 있다(SNS단속과 토끼몰이)
Reply1 d
Hum Kim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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