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7

2015 읽자, ‘제국의 위안부’ / 박민희 한겨레

[편집국에서] 읽자, ‘제국의 위안부’ / 박민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편집국에서] 읽자, ‘제국의 위안부’ / 박민희

등록 :2015-12-16 
박민희 기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더 뜨겁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발, 법원의 문제 구절 34곳 삭제 판결에 이어 지난달 18일 검찰은 박 교수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뒤이어 한·일 양국에서 한국 검찰의 기소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하고 박 교수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성명이 잇따라 발표됐다. 한편, 지난 9일에는 연구자와 활동가 380명이 <제국의 위안부>내용을 비판하면서 박 교수와 그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에게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우선 필자는 국가가 법의 잣대로 시민, 학자의 표현, 연구를 단죄하는 데 분명히 반대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피해자이자 생존자로서 증언과 토론을 통해 이 책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반박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좀더 진지한 사회적 토론으로 나아가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박 교수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을 국가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탄압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검찰 기소 이후 초점이 표현의 자유 문제로 옮아가면서, 책의 내용에 대한 논의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점은 특히 아쉽다.

이 책을 읽어보자(초판본이 좋겠지만 삭제본도 논지는 같다). 박 교수는 가부장제와 빈곤에 고통받던 여성들을 속여 위안부로 끌고 간 조선인 업자들의 역할을 상세히 보여주면서, 위안부 강제동원이 ‘우리(조선) 안의 협력자들’의 범죄라고 강조한다. 일왕이나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우며, 식민지배와 관련한 ‘구조적인 죄’에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논리에서는 위안부 제도가 전쟁범죄이고, 전쟁을 설계·지휘하고 위안부 동원을 지시한 일왕과 군사령부가 주범으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진실은 사라져 버린다.

나아가 책은 일본 군인과 위안부의 애틋한 사랑과 일상을 강조하면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군대에 애국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근거는 빈약하다. 일본 언론인 센다 가코의 <종군위안부>에 등장하는 일본인 위안부의 증언을 조선인 위안부의 애국 의식으로 비약시키거나, 일본인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을 역사적 사료처럼 해석한다.

초기작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에서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민족, 제국주의자, 남성중심주의자 면모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던 박 교수는 이후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점점 기울었다.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화해를 위해서><제국의 위안부>등으로 이어진 그의 연구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민단체에 의해 내셔널리즘이 확대되면서 위안부 문제 등의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는 인식을 보인다. “내가 아는 일본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타국을 식민화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 문제시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야욕’이 아니라 우리의 보이는 ‘왜곡’ 쪽이다.”(<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

이런 관점에 서면, 전시 성폭력이자 국가폭력, 반인류 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도, 양심적 시민들의 노력에도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우경화의 길로 질주하는 현실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논란의 와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국의 위안부>를 읽고 토론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박 교수의 공개적인 토론도 기대한다. 표현의 자유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한-일 관계, 식민지 역사, 일본의 우경화와 양국 민족주의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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