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7

13편 전태일은 사실 분신 "당했다"?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지록위마의 시대 윤석열 정부를 평하다] 13편 전태일은 사실 분신 "당했다"?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지록위마의 시대 윤석열 정부를 평하다] 13편 전태일은 사실 분신 "당했다"?

1. 가설이 곧 사실이 되어버리는 상황

 일찍이 막스 베버는 학문의 과학성에 대해 연구가설을 설정하는 단계에서의 연구자 개인의 '자의성'은 어쩔 수 없지만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학문의 객관성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쉽게 말하여 어떠한 연구주제를 택하고 가설을 설정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연구자의 자의에 맡겨져 있지만 그 가설의 검증과정은 객관적이고 다른 연구자들의 검증을 견뎌낼 수 있어야 과학적인 연구가 된다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은 종종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떠한 연구과정을 거쳐 그 가설과 주장의 타당성이 검증되었는지보다 연구주제와 가설 그 자체가 하나의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특히나 가설설정 자체가 정치적 맥락을 전제로 하고 있을 때면 종종 연구의 결과나 과정보다도 가설 자체가 하나의 주장으로 널리 퍼지는 경우를 보고는 한다. 어떤 의미에서 연구자의 '가설 설정' 자체도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는 그 예들을 바로 보게 될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 뉴라이트 운동이 절정을 맞이한 뒤부터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보는 과정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크게 유행한 과정이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단계에 도달하여 다시금 권위주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이 과정이 마냥 무익했다거나 특정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지나간 역사를 다시 한번 곰곰이 되살펴볼 필요도 있다. E.H.카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대화"라 했을 때 그의 진의는 역사란 결국 현재를 보다 복합적이고 풍부하게 해석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뉴라이트 운동은 한국의 권위주의 정체를 비교사적인 차원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소련 스탈린의 공업화 과정에서 일어난 우크라이나 대기근 등의 참사, 중국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과정에서의 희생 등에 비하면 한국의 권위주의 정체는 비교적 적은 희생과 비용으로 공업화를 달성하였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본래 학술적인 연구라 하면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어째서 한국의 공업화는 비교적 적은 비용과 희생을 지불하며 달성될 수 있었는지를 놓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사, 지정학적인 원인, 한국 특유의 정치문화 등을 탐구해야 한다. 뉴라이트 운동의 문제는 그로부터 곧바로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권위주의적 정치인들에 대한 재평가를 무리하게 시도했다는 데서 나온다. 그것은 현실의 정치세력으로서의 보수우파들의 권력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지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뉴라이트 운동은 한국사를 비교사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초기의 취지와 달리 박정희, 이승만 등의 정치인 개인에 대한 지나친 찬양으로 흐르며 사실상 반공주의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크다고 본다. 구(舊)우파들과 달리 반공주의로부터 탈피하겠다던 뉴라이트는 결국 반일종족주의 등과 같은 반공주의를 또다시 들고 나오게 되었다.

반공주의에 힘입어 이들은 박정희, 이승만 등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기 시작하며 지적으로 완전히 파산하였다. 대표적인 일이 이승만 정부 시기에 있었던 민간인 학살을 '과거사 파헤치기'라 규정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린다고 비판한 일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난다"(카를 마르크스, <자본 1-3>, 김영민 역, 이론과실천, 1991, p.917)고 말했지만 근대국가 또한 마찬가지로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난"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말처럼 구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인민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위에 서있는 것이다. 제주도 4.3사건 등이 보여주듯이 아직 주권이 성립하지 않은 지역을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가 어떻게 다뤘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이 국가의 전제적인 지배에 대항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고 자유시장경제를 외치면서도 국가를 무조건적으로 숭배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무시하였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위해 이들은 못할 짓이 없다. 이런 경향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2. 전태일은 분신 "당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인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불법을 엄단하겠다는 식의 무차별적인 조사와 압수수색으로 표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 건설노조 구성원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 상황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논평은 하지 않겠다. 아래에 링크된 이장규님의 글을 읽어보는 편이 사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문제는 이 사건을 놓고 보이는 반응이다.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지나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상황에서 망자를 욕되게 하는 발언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나왔다. 근대사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개인에 기초해 있고, 그 개인의 사리사욕의 표출이 여러 매개 과정을 거쳐 사회 보편의 의지와 합치되도록 유도하게 제도화되어 있는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타인의 욕망의 표출을 "기득권"으로밖에 보지를 못한다.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보편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없이 기득권이라 매도하며 억누르고 국가 폭력기구를 동원하여 없애버리는 것만을 선호한다. 이런 사회에서 공개성과 토론에 입각하여 유지되는 공론장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공론장을 이런 인터넷 매체 혹은 여론조사 따위와 동일시하는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하버마스 등이 부르주아 언론매체 및 정치클럽 등을 공론장의 범주에 포함시켰을지라도 그들이 궁극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공론은 의회에서 형성된다고 말한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공론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과정이 누적되어 건설노조에 속한 개인이 죽음으로 항변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정부가 혹은 의회가 건설노조의 문제를 진지하게 공론장에서 다루었더라면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까? 아마 이런 질문에조차 "불법행위를 안 했으면 될 일"이라 답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정도밖에 안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이 "불법행위"라는 표현에 경도되어 사건의 본질을 오도하려는 입장들에게는 어차피 아무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망자에 대해 망령된 말을 하는 것은 사건을 개인화하여 정부에 대한 비판의 여지를 모면해보고자 하는 행위로 애잔하게 봐줄 여지라도 있지만 망자의 죽음을 누군가가 부추겼다든지 혹은 누군가가 직접 망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든지의 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격을 놓아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보수우파들은 그런 인간적인 품격이라고는 본디 찾아볼 수가 없는 이들이다. 아무리 민주당에 비판적이더라도 보수우파를 지지할 수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적어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느 하한선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우파들은 그런 하한선이 없다. 전태일 열사가 다른 이에 의해 '분신당했다'는 글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지식인의 경솔함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전태일 열사가 자발적으로 분신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분신당한 것이라는 주장은 꽤 오래 되었다. 앞서 말하였던 뉴라이트 운동의 결과로 보수우파들은 지난 한국 근현대사를 모두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려는 어떠한 강박을 지니게 되었다. 어떠한 의미의 비판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박은 전태일 열사 또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박정희를 부정하며 국가를 혼란케 하려는 '세력'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둔갑시켰다. 이러한 식의 전도된 해석의 절정이 "전태일 바로보기"라는 시리즈로 나온 적이 있다. 나와 같은 호사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관련해서는 많은 기사들이 있는데 이 중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 대한 류석춘의 주장만을 검토해보겠다.류석춘은 이 글에서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전태일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당시에 청계천 평화시장을 둘러싼 노동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조직가 사울 알렌스키로부터 훈련받은 "외부세력"이 개입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전태일 평전>이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외부세력"이 <평전> 내에서 "김개남"이라는 가명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평전>의 초판과 달리 이후의 개정판에서는 김개남이라는 인물이 사라지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숨긴 일이라고 추론한다. 더 나아가서 이 "외부세력" 김개남에 의해 전태일이 살해당했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한편 조영래의 《평전》은 전태일 주변의 등장인물에 관한 서술에서도 조악한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가명인 김개남의 첫 등장을 《평전》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968년 봄 평화시장 재단사인 김개남은 전태일을 알게 되었다”(145쪽). 《평전》의 주인공은 당연히 전태일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의 기술은 당연히 “전태일은 김개남을 알게 되었다”로 표현해야 한다. 주어와 목적어의 순서를 뒤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외부세력의 의도적 접근과 관찰을 무심코 드러낸 표현이 아닐까? 그렇다면 가명으로 등장하는 김개남이야말로 오재식이 증언하고 있는 현장조직에 침투한 활동가일 가능성이 높다."

"이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관해서도 <평전>은 불분명한 대목을 남긴다. 석유를 뒤집어쓴 전태일에게 불을 붙인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인가? 다른 동료 운동가인가? 동료라면 누구인가? … 그러나 1983년 초판 <전태일 평전>은 이 부분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1983년 초판은 이 대목에서 김개남이 성냥불을 붙인 사실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태일은 김개남의 도움을 받아 분신하였다. 그렇다면 김개남이 누구인가? <평전>이 말하듯 이 이름은 가명이다. 그리고 앞에서 추론하였듯 김개남이야말로 학생운동 출신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한 활동가 조직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또 있다. … 22세에 분신한 전태일의 삶을 그린 조영래의 <평전>은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있다. 왜냐하면 외부세력이 “접근한 현장의 하나가 전태일의 분신사건”이라는 오재식의 공개증언이 <평전>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 김개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과연 그는 전태일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하였는가? 1990년대 초 ‘유서대필’ 사건을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지던 운동권 대학생들의 자살을 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일갈했던 시인 김지하, 그리고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고발한 당시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의 발언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쟁점은 앞으로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조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I&nNewsNumb=201612100061&page=8&fbclid=IwAR0VwS89VRTNFQPMVY-4W3wpQRAf_mqZ-Y3_OrZm2ZOMYVQHfVLczfxl-NE

 과연 그런 것인가? 전태일 본인은 죽고자 하지 않았는데 그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던 특정한 세력의 개입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것인가? 그리고 조영래라는 걸출한 인권변호사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전태일 평전>을 썼다는 말인가? 이미 1990년에 사망한 조영래 변호사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일부러 개정하면서까지 사실관계를 숨기고자 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그랬던 것일까? 누가 언제 왜 어떻게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류석춘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 쟁점은 앞으로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조명이 필요한 부분이다"며 넘어간다. 사실이라 한다면 좌파들과 노동운동가들은 정말로 끔찍한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끔찍한 건 좌파와 노동운동가들이 아니라 류석춘의 주장 그 자체이다. 류석춘은 김개남이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답해주겠다. 1983년 초판에서 등장했던 김개남이 개정판에서 사라진 이유는 김개남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전태일에게 불을 붙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불을 붙였다. 알다시피 김개남은 동학농민봉기를 이끌었던 인물 중 하나로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에서 누가 전태일 분신 당시에 불을 붙였는지 알 수가 없어 가상의 인물로 김개남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돌배게 출판사에서 나온 안재성의 <청계, 내 청춘>(돌베개, 2007)에는 이미 개정판에서 김개남이 사라진 이유가 나온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보자.

 “전태일의 분신 상황과 관련된 내용도 그 중 하나다. 애초 <전태일 평전>(초판을 지칭)에는 분신할 때 김개남(가명)이라는 친구가 전태일의 몸에 불을 붙인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전태일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바로 옆에서 이것을 지켜본 사람이 김영문이었다. 분신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들이 상황을 조영래에게 잘못 전달하면서, 김영문이 김개남이라는 가명으로 등장해 전태일에게 불을 붙인 것으로 <전태일 평전>에 잘못 묘사된 것이다. 김영문은 전태일이 분신한 1년 후 군대에 가 있어서 조영래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할 처지가 못 됐다. 조영래도 수배 중이어서 취재가 제한적이었다. 이런 사정 탓에 이렇게 잘못된 사실이 <전태일 평전>에 수록된 것이다.”

"김영문은 전태일이 분신한 1년 후 군대에 가는데 그가 군에 있는 사이에 분신 사건에 대한 증언들이 채록되었고, 그와 관련된 부분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담뱃가게 주인이나 가게 옆에 있던 삼동회원들은 분신 순간의 상황을 정확히 볼 수 없었는데 김영문이 전태일을 따라가더니 불길이 일었다는 정황 때문에 김영문이 불을 붙여준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채록을 맡은 조영래가 수배중이어서 취재에 자유롭지 못한 원인도 있었다. 김영문은 군에서 제대한 후 서대문의 한 중국집에서 조영래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 남들이 자기를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에는 김영문이 김개남이라는 가명으로 등장해 전태일의 요청에 따라 라이터 불을 붙여준 것으로 나온다. 김영문은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라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을 뿐더러, 그날 전태일을 따라가기는 했어도 불을 붙일 정도의 거리도 되기 전에 그의 몸에서 먼저 불길이 솟았으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다. 잘못된 기록은 오랫동안 김영문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안재성의 책에 나온 김영문의 증언을 보고 다시 위로 올라가 류석춘의 '소설'을 감상해보자. 걸작이지 않은가? 실소가 절로 나온다. 과연 이런 사람이 학자로서의 자격을 유지해도 되는 것일까? 이 사람은 조영래나 전태일에 관해서 심도 깊게 이해하려고 연구한 게 아니다. 그저 박정희를 옹호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딴에는 대한민국을 옹호하기 위해 아무 주장이나 한 것이다. 안재성의 책 같은 것은 아마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계피복노조가 기획한 책인데도 그렇다. 그러니 김개남이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나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역사학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증언자의 기록도 꼼꼼하게 읽어보고 인터뷰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주변 상황을 시찰하고 채록한 뒤에 글을 써야 한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다루는 대상이 '실제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추리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후대인으로서의 우리에게는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심판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후대에 태어났다"는 대단한 '특권'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류석춘의 글은 이러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갖추지 않았다.

류석춘이 쓴 소설이 확대재생산되어 현재의 노동운동에서의 분신 사건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체 대학 교수에게 누가 과거를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이렇게 큰 권한을 주었다는 말인가? "是可忍也 孰不可忍也"(시가인야 숙불가인야, "이것을 차마 용납한다면 무엇인들 용납하지 못하리오”, <논어> 제3편 팔일(八佾))

3. 노동운동을 대하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자세에 관하여
한국 사회는 노동(자)에 대한 멸시가 보편화되어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타칭 "진보세력"조차도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기득권"이라 매도하기 바쁘다.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였다. 지금도 보수우파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해 노무현의 발언을 가지고 온다. 과연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세력은 노동운동과 노조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가?
최근 충청도에서는 청소년노동인권조례의 제정에 반대하며 "제 자녀를 노동자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회사의 경영자나 CEO로 키우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노동자는 대체 무엇일까? 청소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게 하자는 주장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경영자나 CEO가 되면 누군가는 그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 이들의 인식 속에서 노동자는 그저 남의 말이나 듣는 예속민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이런 주장을 공론장에서 공개적으로 꺼내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받지 않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노동자에 대한 멸시, 차별 등을 전제로 할 때만 한국의 과도한 경쟁이 정당화 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겠다.

 이 글에서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으려 한다. 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구조에서는 사장이 직접 노동을 하는 자영업을 비롯한 영세기업체의 적체 현상이 두드러진다. 계급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못지 않게 과거 소농의 현대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의 비중이 다른 선진사회에 비해 상당히 크다. 계급적으로 쁘띠 부르주아지들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영세성을 이유로 대자본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몰락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중성을 지녔다. 게다가 한국은 대부분이 자가소유를 지향하는 사회 아니던가? 이 쁘띠 부르주아지의 나라에서 노동자의 계급성을 존중하라는 말이 통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근대사회란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그것을 조정하면서 발전해나가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해달라 말하고 싶다. 노동력 상품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폭력기구를 동원해 상대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아이는 노동자로 키우고 싶지 않다는 말만 하지 않아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고 어디서나 자신의 노동의 가치에 따른 권리를 편하게 주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분노조차도 사그라버린 허탈함과 무력함이 글을 더 쓸 수 없게 만들어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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