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1

알라딘: [전자책] 17세기 전반기 한중 문학교류 노경희

알라딘: [전자책] 17세기 전반기 한중 문학교류


[eBook] 17세기 전반기 한중 문학교류 | 태학총서 46
노경희 (지은이)주식회사 태학사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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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0원


[eBook] 17세기 전반기 한중 문학교류
선택한 도서 총 1권 / 구매가 10,500원

종이책 페이지수 : 252쪽


책소개
태학총서 시리즈 46권. 17세기 전반기 명과 조선 간의 문학교류 양상과 조선 문단의 명대 문학 수용, 조선시문의 중국 전파, 그리고 이후 펼쳐진 조선 문학의 전개 양상을 살핀 책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들의 유기적 연결 관계에 집중하여, 이 시기의 한중 문학교류가 한 국가의 일방적인 문화 전달과 수용이 아닌 서로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진행된 쌍방적인 교류이며 조선문단의 명문학 수용 또한 조선문단의 전통과 맞물려 비판적이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조선문단에서 조선 문학과 예술의 독자적인 개성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이상과 같이 조선의 문학을 국제적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하게 된 17세기 전반기 문인들의 자각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목차


서문

들어가며
제1부 명과 조선의 문인교유와 문학교류
1장 문관출신 명사신 접반과 문학교류
1. 명사신 접반을 통한 문학교류의 배경
2. 문관사신 접반과 문학교류 활동
1) 1602년 고천준(顧天峻)·최정건(崔廷健) 접반
2) 1606년 주지번(朱之蕃)·양유년(梁有年) 접반
3) 1609년 유용(劉用)·웅화(熊化) 접반

2장 조선문인의 명사행과 문학교류
1. 명사행을 통한 문학교류의 배경
2. 명사행과 문학교류 활동
1) 16세기 말~17세기 초 이정구의 사행
2) 1597·1611년 이수광의 사행
3) 1614·1615년 허균의 사행

제2부 조선의 중국 시론 수용과 시선집 편찬
1장 명대 전후칠자 시론의 비판적 수용더보기



책속에서


유학을 떠난 이후로 필자를 사로잡은 고민은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우리 한문학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의 문제였다. 우리의 고전문학, 특히 한문학은 중국 문학과 어떠한 차별점이 있는지, 일찍부터 중국 문명권을 벗어나 있던 일본의 고전문학과 비교하면 또 무엇이 다른지, 필자에게는 이러한 조선 문학의 실체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였다. 그 방법론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고 외부에 매몰되지 않는, 우리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갖춘 연구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것만이 하나의 존재로 빛나는 우리 문학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첫발자국으로 17세기 전반기 조선한시의 독자적 가치를 탐색하면서, 동아시아 문학사 전체 구도 속에서 조선 문학의 위상을 찾고자 시도하였다.
- 서문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노경희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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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일본 교토대 박사(동아시아 비교문학 전공)
대표 저역서에 『17세기 전반기 한중 문학교류』(2015), 『에도의 독서열(번역서)』(2020), 『황화집과 황화수창(공저)』(2022) 등이 있다.

최근작 : <고전과 동아시아>,<알고 보면 반할 꽃시>,<황화집과 황화수창> … 총 1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징비록>과 ‘화정(華政)’의 시대!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사라진 시대, 그런 만큼 문학의 위로는 더욱 절실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연이은 당쟁과 반정으로 갈등이 정점에 치달은 시대.
16세기 후반 이후 17세기 전반기를 우리는 전쟁과 당쟁의 시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일본의 침입과 조선의 요청에 따른 명나라의 참전으로 조선 땅은 순식간에 한중일 삼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백성들은 전란의 고통에 신음하고 위정자들은 그 고통의 소리를 외면하며 오직 왕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막연히 느끼는 이 시기의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때의 조선은 그렇게 황폐하고 처참하기만 한 공간이었을까.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들은 총칼을 휘두르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의 문학에 매료되어 이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조선의 문인들은 전란으로 조선의 시문이 불타 사라지는 상황에 안타까워하면서 중국 장수들의 조선한시 수집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전란 속에서 조선의 한시를 두고 이국 문인들 간에 우정이 싹텄고, 이로써 조선시는 중국으로까지 널리 소개되었다.
1597년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 오명제는 조선 땅에 와서 처음 제대로 접한 조선한시를 보고 그 수준에 탄복하며 이를 널리 구한다. 그리고 당시 조선 최고 지식인이었던 허균과 이덕형 등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조선시가 수집되고, 오명제는 이렇게 모인 조선시들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가 <조선시집>을 출판한다. 이 시집은 중국 문인들이 기존에 접했던 사신들의 수창 시집인 <황화집>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조선한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소개된 조선의 한시는 중국 문단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고 이후 조선을 방문하는 중국 장수들과 사신들은 앞다투어 조선시를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허난설헌의 <난설헌집>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고, 난설헌은 이후 중국 문단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조선 시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란 이후 조선을 방문한 중국 문인들은 조선문인들과의 문화교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 1606년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한 당시 명나라 최고의 문인 주지번은 조선문인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하면서 조선문인들에게 명문단의 생생한 현장을 소개하고, 왕세정과 문징명 등 당시 가장 유행한 중국 강남 문인들의 시문집과 서화 작품을 선물하였다. 또한 조선의 한시와 서화 예술에 큰 관심을 가져, 조선 정부에 역대 조선시선집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고, 한석봉과 이징의 그림에 탄복하며 이를 널리 구한다. 명나라 최고 문인의 조선 시문과 예술에 대한 높은 평가는 조선 문인들에게 더없는 자부심을 선사하였다.
17세기 전반기 중국과 조선의 문인들은 사행과 사신 교류를 통해 양국 문단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국경을 넘어선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문화를 습득해간다. 문학으로 교류하던 시대, 이렇게 조선의 문학은 한문학의 본고장인 중국에 널리 알려졌고, 그 과정 속에서 조선문인들은 자신들의 시문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었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조선 문학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루어지고, 조선문인들은 ‘조선적’인 것이 지닌 가치에 새롭게 눈뜨게 된다. 가장 조선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18세기에 전성기를 보인 조선 문화예술의 화려한 번영을 가져왔다.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18세기 독자적인 조선문화의 전성기는 하루아침에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쟁과 당쟁의 혼돈 속에서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했던 17세기 문인들의 절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책은 17세기 전반기 명과 조선 간의 문학교류 양상과 조선 문단의 명대 문학 수용, 조선시문의 중국 전파, 그리고 이후 펼쳐진 조선 문학의 전개 양상을 살핀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들의 유기적 연결 관계에 집중하여, 이 시기의 한중 문학교류가 한 국가의 일방적인 문화 전달과 수용이 아닌 서로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진행된 쌍방적인 교류이며 조선문단의 명문학 수용 또한 조선문단의 전통과 맞물려 비판적이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조선문단에서 조선 문학과 예술의 독자적인 개성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이상과 같이 조선의 문학을 국제적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하게 된 17세기 전반기 문인들의 자각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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