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4

재일문학의 북한 표상 󰠏 최실의 󰡔지니의 퍼즐󰡕 󰠏 김 계 자** 2020

 SSWUHR 41(1), 149󰠏167 (2020)

DOI http://dx.doi.org/10.24185/SSWUHR.2020.02.41.149 * 

재일문학의 북한 표상  󰠏 최실의 󰡔지니의 퍼즐󰡕 󰠏

김 계 자**

초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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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실의 󰡔지니의 퍼즐󰡕에 표현된 일본사회의 북한 인식을 살펴보고, 
최근에 재일문학이 표상해 온 북한 문제에 대하여 그 의미를 생각해 본 것이다. 󰡔
지니의 퍼즐󰡕 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소설의 구조, 즉 시선의 문제이다. 
일본󰠏조선학교󰠏북한으로 연 쇄되는 이동이 거듭되면서 
일본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북한으로 초점이 집중되고, 
일련 의 과정을 미국이라는 제삼의 위치에서 조망하는 구도는 
일본사회의 북한 인식의 단면 을 보여준다. 

작중인물 지니가 겪는 갈등은 재일(在日)하는 입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임 에도 불구하고,
 ‘재일’이 일본 속의 북한 문제로 등치되는 순간 정작 일본사회에 배태 된 차별과 폭력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은 소거되어 버린다. 

한반도와 일본은 식민과 분단, 냉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역사문제나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에, 그리고 북일 간에 이산(離散)의 문제가 얽혀 있어 통시적이고 포 괄적인 시좌와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재일문학은 이러한 얽힌 문제들이 다양하게 표 출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문학 텍스트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를 견지하기 어려운 만큼, 복합적 이고 중층적인 시각을 갖고 시대적인 보편성을 찾아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해 석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본고에서 최실의 󰡔지니의 퍼즐󰡕이 일본에 불러일으킨 반향 을 대상화하여 재일문학이 갖는 역사성과 문학적 함의를 찾아내려고 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주제어 : 최실, 지니의 퍼즐, 재일문학, 조선학교, 북한 표상 14)15)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신진연구자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A8038684)

** 한신대학교 교수

1. 서론

2015년을 지나면서 ‘해방 70년’은 동시에 ‘분단 70년’과 ‘재일 70년’의 굴곡진 그림자를 드리우며 한반도와 일본을 둘러싸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노정했다. ‘전후 70년’을 맞이한 2015년에 일본에서는 러 일전쟁이 식민 지배하에 있던 아시아에 용기를 주었다는 등의 일본의 근대에 대한 상찬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내각총리대신 담화(아베담화)로 발표했고, 12월에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최종 합의’를 발표하여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 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등, 일본인 스스로 식민지배와 전쟁책임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은 7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전후에 전혀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 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한가운데에서 재일문학은 차별과 생존의 위협을 느끼 며 마이너리티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현안을 담아내 왔다. 일제강 점기부터 이어져 온 한국인 )의 일본어문학이 해방 후에 재일문학으로 이어져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해 왔는데, 일본사회나 한일관계 속에서, 또 북일 관계에 연동되어 야기되는 갈등과 긴장감을 재일문학은 동시대 적으로 표출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나온 최실(崔實)의 󰡔지니의 퍼즐(ジニのパズル)󰡕(󰡔群像󰡕, 2016.6)은 재일 70년의 현재적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니의 퍼즐󰡕은 제59회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일본문단에 “초 신인의 출현!” )을 알렸다. 한국 국적의 ‘박지니(朴ジニ)’가 일본의 조선학 교에 다니면서 겪는 일을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인데, 북한 과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젊은 세대의 거침없는 표현과 감 성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 소설에 대하여 ‘지니’와 같은 소수자들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과 폭력의 문제3), 일본사회의 배외주의와 다문화 공생4) 을 지적하는 논의는 선평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다.5)

사실 일본사회가 표면적으로는 다문화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뿌리 

깊은 차별과 폭력이 상존하는 현실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최근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비롯하여 노골적인 극우주의와 ‘혐한(嫌韓)’ 현상은 재일 사회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극에 달해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소설은 일본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일까? 여기에는 고도 경제성장기와 1990년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전후 70년을 지나는 동안 부침을 겪으며 첨예화된 북한 이슈가 관련되어 있다. 그리 고 이러한 북일 간의 문제에 남북관계나 한일 간의 문제가 얽혀 있음은 물론이다. 본고에서는 󰡔지니의 퍼즐󰡕에서 북한 이슈가 드러내는 일본사 회와 재일의 문제를 살펴보고, 재일문학의 북한 표상이 갖는 의미에 대 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登)가 한 심사평이다. ‘군조신인문학상’은 고단샤(講談社)가 발행하는 월간 문예지 󰡔군조󰡕에서 순문학 공모를 통해 상을 수여하는 권위 있는 신인문학상인데(홍윤표 외, 󰡔읽는 만큼 보이는 일본󰡕, 역락, 2019, 103쪽), 심사위원 5명의 만장일치로 󰡔지니의 퍼즐󰡕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외에도 제33회(2016) ‘오다사쿠노스케상(織田作之助賞)’과 일본문화청에서 주최하는 제67회(2017) ‘예술선장신인상(芸術選奨新人賞)’ 을 수상하는 등, 일본문단에서 화제를 모았다.

3) 김태경, 「분노사회 일본󰠏2000년대 이후 일본사회・문화 분석󰠏」, 󰡔일본학연구󰡕 54집, 

2018.5, 160쪽.

4) 신승모, 「전후 ‘재일’외국인의 문학상 수상과 ‘다문화사회’의 향방󰠏최실(崔實)의 󰡔지니 의 퍼즐(ジニのパズル)󰡕(2016)을 중심으로󰠏」, 󰡔일본학󰡕 44집, 2017.5, 317쪽.

5) ‘군조신인문학상’ 선고위원 중의 한 명인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는 일본이 단일 언 어와 단일민족의 국가라는 환상 속에 있기 때문에 사회 자체가 잠재적인 폭력 위에 성립하고 있어서 “이 소설은 언제 폭력에 노출될지 알 수 없는 사람만이 느끼는 긴 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군조󰡕, 2016.6, 83쪽).

2. 본론

1)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좌

󰡔지니의 퍼즐󰡕의 작중세계는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시좌 (視座)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일코리안 ‘박지니’의 시선을 따라 2003 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1998년 도쿄로 거슬러 올라가 5년 전의 중학생 때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다시 현재의 미국으로 돌아 와 이야기를 끝맺는 구조이다. 즉, 2003년의 미국에서 1998년의 일본 속 북한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소설의 현재 시점인 2003년과 지니가 겪은 일이 전개되는 1998년은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해이다. 2003년 1 월에 북한이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금지조약)를 탈

퇴하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위기가 고조되었다. 이는 바로 전해인 2002년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 고, 대북제재가 심해지던 직후에 나온 탈퇴 선언이었다. 일본에서는 2001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가 방북하여 ‘북일 평양 선언’을 발표한 이후, 특히 일본인 납치문제가 매스컴에 연일 오르내리 면서 북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고 ), 이른바 ‘북한 때리기(北朝鮮バッシング)’가 맹렬해진 시기이다. 이러한 북한에 대한 일본의 부정적인 여론의 화살은 일본 내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와 조선학 교로 돌려져 조선학교 학생에 대한 폭언과 폭행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고, 문부과학성의 학교 정책에서도 조선학교는 불리한 취급을 받아야 했다. ) 이와 같이 소설의 현재 시점은 미국을 위시하여 일본에서도 북한에 대 한 비판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니의 회상으로 전개되는 5년 전의 1998년 일본은 어떠한

가? 주지하듯이 1998년은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해이다. 지니는 1998년 4월에 이전에 다니던 일본학교에서 조선 학교로 옮겨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지니가 입학한 학교는 도쿄의 주 조(十条)에 있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東京朝鮮中高級學校)로, 일본의 중 학교・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교육을 행하고 있는 조총련계의 민족학교이 다. 지니는 입학한 날부터 민족의상인 치마저고리를 입고, 체육관에 김 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낯선 광경에 위화감을 느낀다. 교실에 걸린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불쾌한 기 분을 느끼며 더러운 걸레를 집어던지는 등의 가볍고 장난스러운 도발을 시도한다. 또, 학교에서 사용하는 ‘조선말’이 익숙하지 않아 소통에 불편 을 느끼는데, 처음에는 해프닝으로 이야기되는 정도 다. 그런데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개학날은 전날 북조선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보도로 시끄러웠다. 미사일은 일본 열도를 관통해 바다로 떨어졌다고 한다. 역 앞 가판대에도 북조선이라는 글자가 큼 직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라는 글자도 있었다.

당시 북조선은 김정일 정권하에 있었는데,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드라운 머리칼을 공중에 둥실둥실 흩날리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김정일이 활짝 웃는 사진이 텔레 비전이나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험악한 표정을 한 조총련의 의장 사진도 실렸다. 하지만 조선학교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었기에 마음이 놓 다.(94󰠏95쪽)8)

위의 인용은 1998년 8월 말에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니가 학교 가는 길에 접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대포동 미사일 

 

진집), 눈빛출판사, 2013, 267쪽.

8) 최실(정수윤 옮김), 󰡔지니의 퍼즐󰡕, 은행나무, 2018, 94󰠏95쪽. 이하, 󰡔지니의 퍼즐󰡕 본 문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 표기함.

발사로 북한은 일본에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이미지가 악화되는데, 이 러한 악화된 일본 국내의 시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존재가 바 로 조총련계의 힘없는 조선학교 학생들인 것이다. 지니의 시선이 ‘북조 선’에 이어 조총련, 그리고 조선학교로 이동하는 과정은 일본 안에서 북 한 문제가 연쇄되어 인식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일본인의 폭력을 피하기 위하여 눈에 띄는 치마 저고리 대신에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라는 연락을 받지 못한 지니는 평 소의 옷차림으로 등교하는데, 역 플랫폼과 전철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긴박한 분위기를 느끼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일상의 공간이 위험한 장소가 되는 체험을 하면서 지니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조선학교 교육이라고 하면 ‘북조선 교육’이라는 오해를 사기 쉽지만, 선생님들 입 에서 북조선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북조선 얘기 같은 건 아무도 하지 않는다. 교복과 학교 행사를 빼면 일본학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초상화는 어느 날은 그저 풍경에 불과했고, 어느 날은 명백히 이상한 물건 이었으며, 어느 날은 내게 이렇게 속삭 다. 뭘 신경 써, 뭘 보고 있어, 뭐가 틀렸 다는 거야, 무슨 근거로 잘못됐다는 거지.

미사일이 발사된 직후의 그날은, 교실에 없었지만 싫어도 초상화의 존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99󰠏100쪽)

위의 인용은 재일 3세가 느낄 수 있는 정체성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데,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풍경이 재일(在日)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다르게 인식되는 심리기제를 포착하고 있다. ) 이때부터 지니의 가장 큰 화두는 북한 미사일이 아니라, 오히려 김씨 일 가의 초상화로 향한다. 북한 권력자의 초상화는 곧 북한을 의미하는 상 징으로, 이를 받드는 것은 자신이 북한에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지니는 이를 끊어내려고 한다. 그래야 조선학교가 곧 북한이라는 일본사회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도 북한과 분리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급기야 방과 후에 일본인 남성에 게 “조센진은 더러운 생물”이라는 폭언과 함께 성폭력을 당한 지니는 학 교에 걸려 있는 김씨 부자(父子)의 초상화를 떼어내서 교실 베란다 밖으 로 내동댕이치며 “북조선은 (중략) 김씨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살인자의 학생들이 아니다. 초상화는 지금 이 순간부로 배제한다. 북조 선 국기를 탈환하라!”고 외친다. 지니는 이와 같이 북한을 향하여 분노 를 표출한 자신의 행위를 ‘혁명’이라고 칭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니의 퍼즐󰡕의 작중세계는 2002년 이후

에 대두된 일본인 납치 문제와 북한에 대한 국제적 비판 속에서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북핵 문제가 두드러진 1998년의 상황이 회상되는 내용이 시점인물 지니의 심경의 변화를 따라 전개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석연치 않은 문제를 드러낸다. 북한에 대한 일

본사회의 비판이 일본 내의 마이너리티인 재일코리안으로 향하고, 특히 조총련계의 민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표출 되는 문제가 소설 속에서 중심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신에 조선학교 에서 반(反) 북한 ‘혁명’을 일으키는 지니의 행동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일본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를 지니가 대변하고 있는 듯한 인 상을 준다. 즉, 지니에게 가해진 일본사회의 차별과 폭력 문제가 희석되 어 버리는 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힘든 지니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곳이 스테퍼니가 있는 미국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생각해볼 점이다. 지니는 스테퍼니를 “아주 연약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 진 드래건”(37쪽)이라고 생각하며 의지한다.

물론 텍스트의 구조를 도식적으로 대입해서 단순화하는 것은 신중해

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니가 자신의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는 대 상은 북한뿐이고, 정작 자신에게 성폭력을 행한 일본에 대해서는 두려워 하면서도 대립하는 행동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련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마음의 치유를 하고 있는 곳이 미국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의 구조는 의도적인 설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인식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지니에게 가해진 폭 력에서 북한이 문제의 온상이고, 일본 문제는 소거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을 거점으로 두고 제삼의 장소에서 북한을 통어하고 있는 미국의 위치는 흡사 동시대의 국제적 구도를 방불케 한다.

작중인물 지니가 일본의 ‘소학교’를 졸업하고 조선학교로 옮겨 학교를 

다니다 미국으로 가게 되는 과정은 작자 최실이 스스로 밝힌 자신의 실 제 이력과 겹치기 때문에(󰡔大阪毎日新聞󰡕夕刊, 2017.7.20), 미국이라는 공 간이 의식적으로 설정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은 있다. 그러나 작자의 실제의 이력과 비교해서 텍스트를 고찰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칫 텍스트 해석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작자의 이력은 배제하고 작중세계에서 지니의 심경의 변화와 동시대적 문맥을 고려하여 북한󰠏일본󰠏미국의 상징적 구도를 고찰한 것이다.

2) 북한에서 온 3통의 편지

󰡔지니의 퍼즐󰡕은 「스테퍼니」, 「교실의 초상화」, 「대포동」, 「혁명가의 알」, 「선언」 같은 30개의 소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 소설의 전 개상 맞물리지 않고 돌연 나타나는 내용이 있다. 1998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세 번 삽입되는 「북조선에서 온 편지」(이하, 「편지」) 가 바로 그러하다. 처음 2통은 지니의 외할아버지가 지니의 엄마에게, 즉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형식이고, 나머지 1통은 북한에 있는 외할아버 지의 딸, 즉 지니 엄마의 이복형제 ‘진아’가 보낸 편지이다. 먼저, 「편지1」 은 지니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삽입된다.

안녕. 잘 지내니. 나는 여전히 건강하다. 북조선에 온 지 벌써 3년이 흘렀구나. 세 월은 정말 유수와 같이 흘러서, 가끔씩 멈춰 생각하는 시간도 잊고 사는 듯하다. 북조선은 아주 살기 좋은 나라란다. 일본을 떠나는 게 쉽진 않겠지. 그래도 여기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는 점점 발전하고 있어. 현재 여기저기 공 사를 하고 있단다. 일도 쉬는 날이 없어.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밥도 먹기 전에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잠이 들지만, 그래도 분명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 에서도 온몸을 던져 일을 했어. 그러니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기 노동 자들은 평등하게 일을 한단다. 일본에 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59󰠏60쪽)

지니의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딸 ‘애린’(지니의 엄마)이 어렸을 때 가족

을 일본에 두고 자신만 북한으로 갔다. 편지에 명확히 밝혀 있지 않지만, “아주 살기 좋은 나라”, “발전하고 있어”, “평등하게” 등과 같은 이른바 ‘귀국사업’ ) 당시 북한에서 내건 슬로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표현 으로 짐작하건대, 1960~70년대에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

다. 편지에 “북조선에 온 지 벌써 3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시점인물 지니가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 시점(1998년)에서 3년 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편지의 시점은 지니의 엄마가 어렸을 때이므로 지니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현재와 맞물리지 않는다. 3통의 「편지」는 지니의 이야기가 전 개되는 1998년 시점과 관계없이 두 세대에 걸친 북한 이야기가 시간상 간격을 두고 본문에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니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 가는 내용에 왜 이러한 「편지」가 삽입되어 있는 것일까? 「편지」라는 장치가 텍스트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나머지 2통의 내용에 대해서도 검 토해보겠다.

「편지2」는 지니의 조선학교 생활이 몇 개월 지나 여름방학에 접어들 무렵에 삽입되는데, 조선학교에서 겪는 언어 갈등이나 학교 밖에서 겪는 ‘조선인’ 차별 속에서 김씨 부자의 초상화가 더 이상 풍경의 일부가 아 니라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지니가 생각하는 무렵이다.

딸이 크면 북조선에 놀러 오란 말은 못 하겠구나. 게다가 난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가족을 소중히 여기렴. 설득력 없는 말이겠지만, 진심으로 널 사랑한다. 그리고 너의 새로운 가족도. 지니󰠏멋진 이름이야. 분명 좋은 아이로 자라 겠지. 그러니 이제 네 가족만 생각해라. 아빠는 잊어다오. 알겠지. 이제 편지는 기 다리지 마. 끝으로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사랑한다.(85쪽)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편지2」는 지니가 태어났을 때 보내온 것을 알 수 있는데, 「편지1」과는 달리 북한을 찬미하는 표현이 전혀 들어 있지 않고, 딸을 앞으로 서로 만날 수 없는 아버지의 이산(離散)의 슬픔이 담 겨 있다. 지니가 조선학교 안팎에서 겪는 갈등이 그려지는 가운데 이 편 지가 삽입되어 지니의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심경이 더욱 고조되는 효 과를 준다.

그리고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지니가 게임센터에서 성폭행 사건을 겪

은 직후에 「편지3」이 삽입된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진아라고 합니다. 놀라셨겠지만 저는 당신 아버지의 딸입 니다. 아버지는 북조선에 오자마자 결혼을 강요당하셨어요. 그러니까 전 당신의 이 복자매가 되겠군요. 아버지의 편지가 끊긴 지 벌써 여러 해가 흐른 줄로 압니다. 연락이 늦은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마지막 편지를 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편지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부디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119󰠏120쪽)

위의 편지는 지니 엄마의 이복자매가 보내온 것으로, 지니의 외할아버 지가 제대로 약도 써보지 못하고 병을 앓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 는데, 북한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쓰기 어렵다는 뉘앙스의 문장 속에 북 한 체제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담아내고 있다. 즉, 「편지3」은 미사일 발 사 사건으로 지니의 심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시점에서 이산가 족의 슬픈 사연을 통해 북한사회의 폐쇄적인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어 지니가 ‘혁명’을 일으키는 데 박차를 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북한에서 온 편지 3통은 지니가 사건을 이야기해가

는 시간과는 엇갈려 있지만, 조선학교에서 느끼는 지니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면서 북한에 대한 분노를 격한 행동으로 표출하는 심경의 변화와 맞물려서 1998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지니의 갈등은 일본사회에서 조선학교를 다니는 과정에서 발

생한 것인데, 북한에서 보내온 3통의 편지는 지니가 겪는 갈등을 북한 문제로 직접 연결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일본사 회에서 벌어지는 재일을 둘러싼 갈등이 곧바로 북한 문제로 치환되어 버린다. 그런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일 본의 조선학교는 북한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교 를 곧바로 북한에 등치시키는 메커니즘이 「편지」의 삽입을 통해 효율적 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일본의 북한 인식과 ‘조선학교’

북한에서 온 3통의 편지 외에 소설의 후반에 또 하나의 편지가 삽입

되는데, 1998년의 일련의 사건이 끝나고 2003년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 후에, 이번에는 지니가 「천국에 계신 할아버지께」 보내는 편지가 삽입된

다. 지니는 ‘혁명’이 끝난 뒤에 정신적 쇼크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다가 하와이의 가톨릭고등학교를 거쳐 현재의 오리건주로 이동해 홈스테이하 고 있는 곳의 스테퍼니를 통해 정신적 치유를 해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 서 지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이 적 고 있다.

아이들을 협박하는 일본인이나, 아이들이 희생돼도 변함없는 학교 인간들이나, 간 단히 사람 목숨을 빼앗는 빌어먹을 김씨 독재자나, 전부 다 같이 엿이나 먹어라. 할아버지, 난 절대 외면하지 않겠어. 어떻게 외면해. 만난 적은 없지만 피로 이어진 가족이 북조선에 있는데. 그러니 할아버지, 난 결단코 외면하지 않을래. 모두를 다 적으로 돌린다 해도 외면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할아버지, 하나만 알려주세요. 할아버지는 진짜로 북조선이 좋은 나라라 고 생각해서 그런 편지를 보낸 거에요? 그렇게 안 쓰면 위험했던 거죠? 진짜 할아 버지 눈으로 직접 본 건 뭐 나요? 편지를 쓸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161쪽)

위의 편지에서 보듯이, 지니는 일본, 조선학교, 그리고 북한을 모두 비 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에 대하여 비판적인 감정을 노골적 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으로 귀국한 할아버지에게 북 한의 현실을 따져 묻고 확인하는 문장 속에 지상낙원으로 선전한 북한 의 허상을 드러내고, 북한 문제에 대하여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 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서도 ‘일본󰠏조선학교󰠏북한’으로 이어지는 지니의 

시선의 이동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사회의 북한에 대한 비판 적인 인식이 조선학교를 거치면서 마치 조선학교가 리틀 북한처럼 그려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에는 한국 국적의 지니가 일본인 이 다니는 ‘소학교’를 나온 후에 조총련계의 조선학교로 옮겨온 이력도 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사실 ‘조선학교’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는 조총련 산 하의 민족학교이기 때문에, 조선학교와 북한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 운 점이 있다. 그러나 조선학교의 역사적인 성립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후 일본사회의 차별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민족 교육을 해가려는 과정 속에서 생겼으며, 설립 직후부터 ‘한신교육투쟁(阪神教育闘争, 1948)’을 비롯하여 일본 정부의 탄압에 맞서 싸워오는 과정 에서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의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던 일본 노동자계 급과 공산당 세력과의 연대가 오늘날의 조선학교로 이어져 온 것이다.12)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조선학교를 현재의 북한과 등치시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13) 더욱이 일본 속의 북한 이슈와 비판적인 시선이 조선학교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송기찬도 밝혔듯이, “조선학교를 교육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 치 공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며, 이는 “일본사회의 재일코리안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와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14)

따라서 물어야 할 것은 조선학교로 향해진 일본사회의 몰이해와 폭력 을 지니가 대상화하여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비평하고 있는지의 여부이 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인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학교를 둘러 싸고 일어난 부조리한 문제에 대하여 지니에게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하

 

의 성립과 교육 내용을 오해하거나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고 지적 하고, 해방 이후 일본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한반 도의 상황에 연동하며 명맥을 이어온 조선학교의 역사를 정리하여 보여주었다(문경 수, 「작품해설」, 󰡔지니의 퍼즐󰡕, 은행나무, 2018, 178󰠏189쪽). 

12) 정영 환(임경화 옮김),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푸른역사, 2019, 286󰠏297쪽.

13) 김인덕은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이 “북한 국민 교육을 강요하거나 교원 인사권을 총련 이 장악한 점, 각종 교과서를 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산하 교과서 편찬위원회에서 편 찬하고 있는 점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문제로 일본정부의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고 지적하 다(김인덕, 󰡔재일조선인 민족교육 연구󰡕, 국학자료원, 2016, 81󰠏82쪽). 

14) 宋基燦, 󰡔「語られないもの」としての朝鮮学校─在日民族教育とアイデンティティ・ポリティクス─󰡕, 岩波書店, 2012, 240쪽.

는 것은 사실이지만, 편지 속에서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이다. 덧붙여, 이 러한 비평의 시좌가 미국에서 조망되고 있는 구조 또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가 지적하듯이, 일본에서 북한을 비판 할 때 들고 나오는 논리가 바로 구미(歐美) 쪽의 ‘자유’, ‘인권’, ‘민주주 의’ 등의 가치관으로, 이러한 가치를 일본은 공유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 은 그렇지 못하다는 시각이 기저에 있는 것이다. ) 지니가 미국의 위치 에서 북한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시각에는 이러한 일본인의 습성을 반 하는 측면이 있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구조와 내용이 소설이 나온 2010년대의 북핵 문제를 비롯하여 동북아의 현안을 둘러싼 국제적 콘텍 스트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전후 50년이 본격적인 문제제기 없이 간과해 온 문제들이 70년의 시간 차가 무색할 정도로 더욱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일본의 배외주의로 나타 나고 있음을 󰡔지니의 퍼즐󰡕의 텍스트 공간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재일문학의 달라진 북한 표상

최실이 󰡔지니의 퍼즐󰡕에서 보여준 북한 표상은 최근에 재일문학이 달 라지고 있는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 보기 위하여 재일문학에서 북한을 표상해온 부분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 음과 같다.

재일문학은 해방 후에 김달수를 필두로 시작된 이래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해 왔다. 특히, 북한 관련 내용은 한반도의 남북 상황과 한일관계, 그리고 북일관계에 연동되어 동시대적 문맥을 반 해 왔다. 초창기에 김 달수가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나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등, 구 프롤레타리아문학자들과 연대하여 재일문학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북 한 문학의 소개나 번역이 주를 이루었다. 김달수는 최초의 재일 종합잡 지 󰡔민주조선(民主朝鮮)󰡕(1946.4~1950.7)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일 제강점기부터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진 시기에 활동한 좌파 계열의 문학 을 월북작가를 포함하여 평론과 번역을 통해 소개하고 스스로 창작도 

해서 발표하 다 ). 그러다 1960년대 이후가 되면 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북한 이슈 가 점차 줄었고,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이나 ‘나오키상(直木賞)’, ‘군조신 인문학상’ 같은 일본문단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재일 작가들이 수상하면서 ‘한류(韓流)’ 붐이 일었다. 이러한 시기에 조선학교를 둘러싼 갈등을 경 쾌하게 그린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의 󰡔GO󰡕(2000)를 비롯하여, 2008 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고 조국에 대한 그리 움을 감상적으로 표현한 유미리의 논픽션 󰡔평양의 여름휴가󰠏내가 본 북 조선(ピョンヤンの夏休みわたしが見た「北朝鮮」)󰡕(2011)이 나오는데, 이들 작품은 북한을 직접 그리든 일본의 조선학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문 제를 표현하든 어느 쪽도 북한의 실체에 접근하거나 화자의 북한에 대 한 심경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활약 중인 젊은 세대 여성작가 중심으로 북한 표상이 

달라지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후카자와 우시오(深沢潮)는 󰡔한 사 랑 사랑하는 사람들(ハンサラン愛する人びと)󰡕(2013)에서 재일코리안의 다 양한 관계 맺기를 통해 한국과 북한을 아우르는 재일의 확장된 인식을 보여주었는데, 식민과 냉전의 시대를 지나온 재일하는 삶의 희로애락을 담담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담아낸 수작(秀作)이다. 또, 화감독 양 희는 실제로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가족을 둔 자신의 체험에 기 초하여 펴낸 󰡔가족의 나라(かぞくのくに)󰡕(2012)와 󰡔조선대학교 이야기(朝鮮大学校物語)󰡕(2018)에서 재일의 삶과 북한의 실체적 문제에 접근하는 핍진성(逼眞性)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본고에서 살펴본 최실의 󰡔지니의 퍼즐󰡕은 생기 넘치는 문체로 현재의 북한 문제를 다소 과격하고 도전적 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재일문학에 세대교체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후카자와 우시오와 양 희, 그리고 최실과 

같은 현대 재일여성문학에서 북한 문제를 새로운 감각과 표현으로 담아 내고 있는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한반도와 일본을 가로지르며 해방과 재일의 7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두 세대 이상의 세대교체 가 있었고, 따라서 식민과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현재의 재일하 는 위치에서 자신의 가족이나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것은 앞선 세대 처럼 조국으로의 회귀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오히려 역사를 어떻게 기 억하고 논의해갈 것인가의 담론 공간으로 의미가 전환된다. 그렇기 때문 에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동시대적 문맥이 개입하기도 하고, 경계를 걸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니의 퍼즐󰡕이 함 의하는 역동성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니가 조선학교에서 ‘혁명’을 통해 보여준 북한에 대한 날선 비판은 그 자체에 대한 시비(是非)를 넘 어, 식민과 냉전의 시대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동북아의 불편한 역사의 기억이 새롭게 재구성되는 쟁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3. 결론

이상에서 최실의 󰡔지니의 퍼즐󰡕에 표현된 일본사회의 북한 인식을 살 펴보고, 최근에 재일문학이 표상해 온 북한 문제에 대하여 그 의미를 생 각해 보았다.

󰡔지니의 퍼즐󰡕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소설의 구조, 즉 시선의 문제이 다. 일본󰠏조선학교󰠏북한으로 연쇄되는 이동이 거듭되면서 일본에서 일어 나는 문제가 북한으로 초점이 집중되고, 일련의 과정을 미국이라는 제삼 의 위치에서 조망하는 구도는 일본사회의 북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작중인물 지니가 겪는 갈등은 재일(在日)하는 입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임 에도 불구하고, ‘재일’이 일본 속의 북한 문제로 등치되는 순간 정작 일 본사회에 배태된 차별과 폭력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은 소거되어 버리 는 데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은 식민과 분단, 냉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역사문제나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에, 그리고 북일 간에 이산(離散)의 문제 가 얽혀 있어 통시적이고 포괄적인 시좌와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재일 문학은 이러한 얽힌 문제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더욱이 식민이나 전쟁을 몸소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사실의 증언이 아닌 조부모 세대에 대한 ‘기억’으로 현재의 자신 의 정체성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현재, 의식적이거나 무의식 적으로 빠질 수 있는 왜곡에 경계심을 갖고 대상에 대한 상대적 거리를 두지 않으면 자칫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최근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일 본의 역사수정주의가 바로 그러하다.

문학 텍스트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를 견지하기 어려운 만큼,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시각을 갖고 시대적인 보편성을 찾아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해석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본고에서 최실의 󰡔지니의 퍼즐󰡕이 일본에 불러일으킨 반향을 대상화하여 재일문학이 갖는 역사성과 문학적 함의를 찾아내려고 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구니토 아미, 󰡔구술증언으로 본 재일탈북자의 일상생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김인덕, 󰡔재일조선인 민족교육 연구󰡕, 국학자료원, 2016. 김태경, 「분노사회 일본󰠏2000년대 이후 일본사회・문화 분석󰠏」, 󰡔일본학연구󰡕 54집, 2018.5.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책임에 대하여󰠏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돌베 개, 2019.

송화섭, 「대화와 압력의 일본 대북정책󰠏북・일 관계정상화는 핵・미사일・납치문제가 선행 돼야 한다󰠏」, 󰡔北韓󰡕, 2006.4.

신승모, 「전후 ‘재일’외국인의 문학상 수상과 ‘다문화사회’의 향방󰠏최실(崔實)의 󰡔지니의 퍼즐(ジニのパズル)󰡕(2016)을 중심으로󰠏」, 󰡔일본학󰡕 44집, 2017.5.

오미정, 「전후 일본의 북한문학 소개와 수용󰠏잡지 󰡔民主朝鮮󰡕을 중심으로󰠏」, 󰡔우리어문연 구󰡕 40집, 2011.5.

정 환, 「‘조선적(朝鮮籍)’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재」, 󰡔일본의 조선학교󰡕(김지연 사진

집), 눈빛출판사, 2013.

정 환(임경화 옮김),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푸른역사, 2019. 최실(정수윤 옮김), 󰡔지니의 퍼즐󰡕, 은행나무, 2018. 홍윤표 외, 󰡔읽는 만큼 보이는 일본󰡕, 역락, 2019.

宋基燦, 󰡔「語られないもの」としての朝鮮学校─在日民族教育とアイデンティティ・ポリティクス─󰡕, 岩波書店, 2012.

<Abstract>

 

North Korea Represented in Zainichi Korean Literature

: Jini’s Puzzle written by Che Sil

Kim, Gaeja (Hanshin Univ.)

This paper considers the recognition of North Korea in Japan represented in Jini’s Puzzle written by Che Sil, and thinks about the meaning of North Korea issue in recent Zainichi Korean Literature.

The first thing worthy of notice is the structure of the text, or the perspective. Through the chain transfer like Japan󰠏Chosun School󰠏North Korea, the problems happened in Japan are concentrated on North Korea, and this process is overlooked from the position of the United States. This structure directly represents the recognition of North Korea in Japan. In fact, Jini’s conflict is the problem faced in the position of Zainichi. As soon as Zainichi, however, is replaced by North Korea in Japan, the basic issues arisen from the Japanese society such as discrimination or violence are erased.

Through the period of the colonization and the Cold War, The Korean Peninsula and Japan have been involved each other in history, international relation, and separation, etc.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have a diachronic and comprehensive view over these problems. It is significant to think about the historicity and literary implications of Zainichi Korean Literature by objectifying the sensation the text aroused.

Key words : Che Sil, Jini’s Puzzle, Zainichi Korean Literature, Chosun School, Representation of North Korea

투  고  일:2020년 1월 21일 심사완료일:2020년 2월 10일 게재확정일:2020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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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하나의 알이 깨졌다

<지니의 퍼즐> 최실
by이유미Oct 17. 2019


무라카미 하루키 다음으로 외웠던 일본 소설가의 이름은 가네시로 가즈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일본 소설의 맛(?)을 알아 버려 닥치는 대로 일본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는 짧고 강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됐고, 작가의 이름과 재일교포란 정보는 그 다음이었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무라카미 하루키 다음으로 외우는 일본 소설가의 이름이 된 데에는 그만큼 소설 《GO》가 인상적으로 재미있어서였다. 《GO》는 훗날 영화화되기도 했고,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상상만 했던 인물들이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해하며 영화도 찾아봤다. 그나저나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책은 《GO》가 아닌데.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만큼 강렬한 소설을 만나서 주절주절 서론이 길어 졌다.



얼마 전 최실 작가의 《지니의 퍼즐》을 읽었다. 참 묘하게도 처음 《GO》를 접했을 때처럼 단번에 읽어버렸다. 재미있는 소설은 아껴 읽고 싶지만 그게 참 뜻대로 안 된단 말이지. ‘군조 신인문학상’ ‘오다사쿠노스케상’ ‘예술선장 신인상’ 등 작가의 수상 이력이 화려한 건 둘째치고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가독성에 가속도가 붙어 모처럼 새벽잠을 벼른 채 한 권을 끝냈다.




《지니의 퍼즐》은 재일조선인 3세인 박지니의 단도직입적인 혁명 이야기다. 책에서 주인공 박지니는 자신을 ‘혁명가의 알’이라고 친구 니나에게 말한다. 촌스럽게도 ‘알’하면 데미안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결과적으로 이 둘은 세계를 뚫고 나오려는 대상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나는 그 대목에서 지니뿐만 아니라 작가 최실 또한 하나의 알처럼 생각됐다. 그 알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고 그 안에서 이제 막 파닥거리는 생명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이 소설이 그 알의 결과물처럼 여겨졌다.




참 오랜만에 부조리에 맞서는 도전적인 문장을 읽었더니 이 두근거림이 사라지기 전에 뭐라도 써 놓고 싶어 진다. 무릇 탁월한 문장과 이야기는 쓰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 모두가 그랬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따라가는 매일의 순간 앞에서 스스로 알이 되어 깨어져도 뚫고 나오고 싶어하는 한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고여 있지 않고 점점 틀 밖으로 번져 나가는 게 아닐까?




‘학교-혹은 이 세상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듯 도쿄, 하와이를 거쳐 오리건 주로 온’ 지니가 일본 조선 학교에 다니던 중학생 시절을 홈스테이 아주머니 스테퍼니에게 털어놓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길래 낯선 땅에서 불운을 운운하며 허우적거리는 걸까? 나에게 《지니의 퍼즐》은 단순히 재일교포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현상에 대해 남들과 달리 ‘깊게 생각하는’ 인물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생각에 멈추지 않고 어떻게든 저질러 보고야 마는 멋진 좌절 스토리로 읽혔다.




‘만약 눈앞에서 아이들이 괴로워하고 있다면. 만약 어른들이 자존심을 조금만 버려도 수많은 일들이 해결된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어른은 아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160쪽-




주인공 지니는 불합리한 세상에 맞설 노력조차 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다. 깊은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도’로 이어진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공부하게 만드는 현실에 분개하며 어떤 어른도 하지 못한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건물 밖으로 던지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물성은 얇지만 여운만큼은 두터운 《지니의 퍼즐》을 다 읽고 최실 작가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았다. 주인공 지니만큼이나 당차 보이는 사진 속 작가는 소설이 될 줄 모르고 그냥 이야기를 썼단다. 어떤 이야기는 쓰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뿐.




PS: 엊그제 매주 빼놓지 않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듣는데 ‘제3회 한민족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차이와 다양성을 아우르는 우리 문학인, 이산문학 선정 도서 26권 중 1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대회인데,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지니의 퍼즐》이 포함돼 있었다. 앞서 쓴 이야기도 독후감이 된다면 도전해 봐야지. 제3회 한민족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와 관련된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diasporabook.or.kr)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GO》도 대상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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