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0

민경우의 삶, 아내 그리고 책 - 민중의소리

민경우의 삶, 아내 그리고 책 - 민중의소리

민경우의 삶, 아내 그리고 책

[인터뷰] 통일운동사 책 발간한 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
기자
발행 200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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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쓴 글을 모아 <민경우가 쓴 통일운동사>를 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책도 내셨고 만나뵙고 싶습니다."
"아..네. 아내가 입원을 하고 있어서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만났으면 하는데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피곤기가 묻어있었다. 민경우 그 만큼이나 통일운동판에서 잘 알려져 있는 아내 김혜정씨가 수술을 해 한 삼일 정도 간호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고.

북적거리는 병원로비를 지나 한산해 보이는 신경과 앞 대기실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목적에는 약간 빗겨나지만 책보단 우선 골수 운동권 민경우, 그의 삶이 더 궁금했다.

# 운동하는 삶

어려서부터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를 골수 운동권으로 이끈 건 피비린내나는 80년 광주항쟁의 잔향이었다.

서울대 국사학과 84학번인 그는 이듬해 5월 72명의 대학생들이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한 사건을 목도한 후 80년 광주학살에 미국이 개입됐음을 알게됐고, 알게 된 이상 철저한 반미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김영삼 정권 출범으로 80년대 중후반에 정립됐던 이론들이 흔들리면서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커졌었죠. 그러는 와중에 범민련 문제가 불거졌고, 저는 소위 범민련을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투쟁을 했습니다."

"95년도부터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김영삼 정권이 심각하게 통일운동을 탄압할 때여서 이적단체의 표본이 되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한다는게 녹록치 않았죠."

95년과 2003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과 통일연대 사무처장을 지내는 동안 2번에 걸쳐 국가보안법으로 연행, 4년여간 감옥살이를 했다.

# 간첩 민경우

그에게도 간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때가 있었다. 요즘 세상에 간첩운운했다간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다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통일운동 한다하는 사람들에게 간첩딱지 붙이기란 누워서 떡먹기보다 더 쉬었다.

간첩이라는 단어에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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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첫 구속이 됐을 때 의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안기부에서 검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안기부 수사기록을 보니까 '간첩 민경우'라고 써 있더라구요."

"그 때는 당황했었죠. 사실 '보안법 피의자'하고 '간첩'은 느낌부터 엄연히 다르니까. 근데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좀 지나니까 그려려니 되더라구요. 두번째 구속됐을 때는 '이런게 간첩이라면 얼마든지 해보자' 뭐 이런 오기와 배짱이 생겼다고나 할까.."

# 아내, 그리고 또 한 명의 든든한 동지

30대를 감옥과 수배생활, 그리고 그에 준하는 상태로 거리에서 보낸 그도 엄연히 가정이 있는 사람이다.

이번 책 발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도 바로 아내 김혜정씨이다.

"아내는 거의 매일 면회를 와줬어요. 안에 있는 사람에게 면회시간은 소풍가는 느낌이지만 면회오는 사람은 고작 7분을 위해 먼 곳에서 오는 거잖아요. 근데 아내는 내가 요청한 자료나 기사, 책을 가지고 거의 매일 왔으니까 고생을 참 많이 했죠."

이번에 나온 책도 옥 안에서 감상문 형식을 빌려 쓴 글을 아내에게 건네주면 김혜정씨는 그 글을 인터넷신문 통일뉴스에 연재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민씨는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90년 '소개팅'으로 울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김혜정씨와 만나 이듬해 바로 결혼을 했다.

갑자기 아내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니까 놀랬는지 민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떻게 보면 우리같은 386세대들이 불행한 세대라고 할 수 있죠. 그때는 워낙 광주가 주는 압박이 컸기 때문에 개인의 진로나 개성에 우선해서 전두환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식이 압도했죠. 돌아보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살았습니다. 아내같은 경우도 20대는 수업을 안듣고 정권과의 싸움에 열중했었고, 30대는 저 때문에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죠.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마워요."

민씨는 "아내는 386의 그 시대적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굉장히 개성있고 활발하게 예술가 타입으로 살 수 있었을텐데..안됐지 뭐.."라며 미안함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159325/align:left]#책

"책을 낸 이유요?"

참 빨리도 물어본다고 생각했겠다.

"제가 90년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하면서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이 통일운동에 담겨있는 미세하지만 의미있는 쟁점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제도권의 지식들과 관점들을 우리도 모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책은 제도권의 관점과 시각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식 통일운동에 기초, 논리를 정립하려고 노력을 해서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흥미로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글에는 '필자는 이 당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다'는 등 민씨가 일선에서 고민했던 바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는 "딱딱한 글이 아니에요. 제가 고민했던 궤적을 따라 추적한 글이라서 재있을 거에요"라며 짧게 덧붙였다.

헤어지는 길에 한마디 더 물어보았다.

"참, 거취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있습니까?"
"새로운 연대연합체가 만들어지면 정책연구소 같은데서 일할 것 같습니다."

그에게 참 잘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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