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

김대호 | Facebook 검색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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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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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자유연합] 신년 단배식을 1.4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서 했습니다. 기독교 정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묘역에서 단배식을 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역사를 잊고, 은혜를 잊고, 문명을 잊고, 소명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잊은 것 같아서 입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묻힌 선교사들은 한반도에 복음과 더불어 자유와 평등(신분차별, 남녀 차별 철폐), 근대적 의료, 교육, 위생, 과학, 세계(견문) 등 문명의 빛을 가지고 온 분들입니다. 가히 민족의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은 지하철 2호선 건설 과정에서 하마터면 없어질 뻔 했다 합니다. 1970년대는 쓰레기장처럼 방치되어있었으니..... 우리가 이 곳과 이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 자체가 일종의 배은망덕입니다. 
우리는  문명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갖지 못했습니다. 
반제반봉건 무장 투쟁 중심 사관에 입각하여 갑오농민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면서도, 이 선교사들은 기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관의 가장 악성 변종이 김일성 일가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북한의 역사관입니다.  
독립운동사 중심의 역사서술은 조선은 자력으로 근대화의 길로 걷고 있었고, 고종은 개명군주라고 역사를 왜곡하였습니다. 고종이 앞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던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고, 일본제국주의와 을사5적 타령만 했습니다. 자본주의-시장경제 맹아를 침소봉대하고, 재산권, 자유권, 평등권을 20세기 초까지 마구 짓이기던 조선의 극악한 정치체제의 힘과 강고함에 눈을 감았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은 운동권을 비춰 보는 거울입니다. 1980년대,  20대 운동권은 너도 나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했습니다. 역사가 부르면 그 곳이 지옥이나 단두대라 할지라도  달려 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역사의 성전에 모든 것을 바치는 전사가 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초심은 완전히 말라비틀어졌고, 뜨거운 맹세를 노래하던 전사들은 화석이 되었거나, 부와 권력을 한껏 거머쥐었습니다. 그 푸른 정신은 말라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윤상원 같은 전사와 전태일, 박영진 같은 열사를 기렸으나, 언제부터인지 억울한 피해자를 기리면서, 증오를 부추겨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극단적으로 타락해 버렸습니다.
위안부 소녀상과 세월호 기념물은 일본과 박근혜정부에 대한 무한 증오만 재생산하고, 간교한 민족업자, 민주건달들의 주머니만 불려주고 있습니다. 
스무살 즈음에는 제 마음의 고향이랄까 성지는 4.19 묘역과 망월동이었습니다.  점점 좌로 기울어지면서, 20대 중반 즈음에는 지리산과 한라산이 추가 되었습니다. 국립묘지는 그 한참 후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알아가면서, 양화진 선교사 묘역 이야말로 성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천도교(동학), 공산주의(맑스레닌주의), 무정부주의 등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을 하였습니다. 1970~80년대는 운동권이 기독교를 우습게 봤습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고, 교회로부터 젖을 공급 받으며 자라 났음에도 불구하고......그 역시 배은망덕입니다. 은혜를 잊은 운동권이 포용력을 가질 리가 없지요. 
지금 보니, 기독교는 여전히 19세기 말에 목숨바쳐 조선을 위해 헌신했던 그 선교사들의 정신을 그런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과 야만이 판치는 오지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벽에 부딪쳐 주저 않은 한국 문명을 일으켜 세울 힘은 없어 보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한계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근대적 사상집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 자유연합당이 그런 집단이 되어 보려고 노력은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독교를 아편 취급한 운동권은 완전히 몰락하거나 추하게 변질되었습니다. 운동권과 역사/현실 인식과 가치 측면에서 그리 다르지 않았던 북한의 참상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에 조선시대 인물은 1~2명으로 줄이고, 이승만, 박정희, 안창호 선생 같은 분과 경제건설이나 과학기술입국에 기여한 분(정주영 등)과 이 분(외국인 선교사)들 중에 한 분이 꼭 들어갔으면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정신문화적 근대화가 한단계 도약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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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의 문제적 행태가 길 가운데 삐죽 나와있는 '돌부리'라면, 이를 파내려고 호미나 삽질을 하면 무엇이 나올까? 
바로 아래 공공운수노조가 나올 것이다. 조합원 25만명에 지하철, 철도, 버스, 택시, 화물, 택배, 공항, 항만, 전력, 가스, 국민연금, 건강보험, 청소, 시설관리 등 멈추면  대체 수단이 별로 없는 서비스를 틀어쥐고 있는 한국 최대최강의 노조다. 2013년 12월(수서발 고속철을 별도 회사로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파업)에 봤듯이, 조합원 2만 여명의 철도노조 단독으로 박근혜정부와 맞짱을 떴다. 
삽질을 좀 더하면 민노총이 나온다. 2022년 통계(2023년 말에야 나온다. 고용노동부도 한심하다)가 나오면 조합원이 120만명을 넘었을 것이다. 숫적으로는 2020년 쯤 한노총을 제쳤지만, 1987년 이후 생긴 대기업, 공기업 노조 대부분이 민노총 소속이라 그 투쟁력=파괴력은 한노총의 100배는 될 것이다. 1995년 출범 당시부터 그랬다. 
민노총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금속노조도 있고, 군기가 군대를 방불케하는 건설노조도 있고, 정부의 하부 집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공노도 있다. 민주진보 진영의 핵무력이 민노총이라면, 그 핵탄두는 공공운수노조가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웬만한 조직(양대 정당이라 할지라도)은 민노총-한노총-조선직업총동맹 3단체 결의대회와 조선직맹의 연대사 건으로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으면, 휘청거리거나 최소한 불난 호떡집이 되는데, 민노총은 미동도 없다. 조합원이나 PD계열 정파 활동가의 항의도 없는 듯 하다. 1990년대 같았으면 국보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퍼포먼스라도 벌어질텐데, 경찰도 안기부도 감히 건드릴 생각을 안한다. 
**조선 직맹의 연대사는 요 며칠전부터 메이저 언론에서도 취급하는데,  실은 지난 9월과 10월 자유일보를 통해 문제제기 하였다. 
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0
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98
**내가 알기론 한민호 전문체국장이 민노총 홈피에 올라가 있는 연대사를 캪처하여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리면서 널리 퍼진 듯 하다. 
뿌리를 향해 삽질을 좀 더 하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고용노동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거기서 삽질을 더 하면, 바로 1987년 체제가 나타난다. 
부등호로 표시하면 화물연대<<공공운수노조<<민노총<<고용노동패러다임<<1987년 체제가 된다. 
화물연대의 문제적 행동은 호미나 삽으로 간단히 파낼 수있는 돌부리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도 아니고, 아예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물연대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제=대립물을 구체적인 사람이나 조직으로 규정하기를 좋아 하다 보니, 민노총을 까야 한다고 해서, 자유일보에 매주 1면을 털어 13회(내일 나가는 것 포함)를 연재한 것이다. 조선직맹 연대사를 언급한 글은 제1탄(9.19)과 제6탄(10.24)이다. 
체제는 흔히 헌법과 선거법과 법률(기본법)과 국제조약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보다 더 본원적인 것은 지배적인 정신문화(정의 관념 내지 도그마), 사상이념과 국내/국제적 정치지형이다. 한마디로 체제는 곧 특정한 시공간의 지배적 세계관/가치관이요, 정의요, 상식이요, 당위요, 선이다.  1987년 체제는 곧 1987년의 정의다. 지구상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중에서, 지배적 가치관/세계관=정의=체제가 가장 다른 나라가 남한과 북한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고용노동 패러다임은 1987년 체제를 주요한 골조의 하나다. 이번에 우리가 목도한 것은 "처지와 조건 등이 천차만별인 근로자 전체를 약자/피해자요, 국가/자본/대기업/재벌은 강자/가해자라 전제" 하에, 근로자에 대해 특별한 사회적 보호와 배려(특권 특혜)가 필요하다는 관념 아니 도그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특권특혜를 제공하니(노란봉투법도 그 중의 하나), 공무원도 자영업자도 너도 나도 근로자라고 우긴다.  이것이 노조법 2조, 3조 개정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7년 체제는, 노조는 약자의 무기고, 파업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나 하며,  따라서 노조 투쟁(파업)은 정의, 노조 탄압은 불의라는 도그마를 주류/지배 관념으로 만들었다. 
 이 관념은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법원을 깊숙히 침식해 들어갔다. 권리와 권리, 권리와 의무, 위험(공헌)과 이익,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 정의의 핵심이고, 이는 끊임없이 변해나가기 마련인데,  오래 전에 형성된 관념을 활자로 새긴 책을 통해서 세상을 접한 3040 법관들은 살아있는 현실/실상을 모른다. 그래서 철지난 도그마에 입각하여 법봉을 두드리는 것이 양심이요, 정의요, 인권이라 생각한다. (이건 2014년 쌍용차 2심 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썼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절감했다. 그 때는 조국도 비판 대열에 앞장섰다.) 
http://economy.donga.com/ISSUE/Vote2016/News?m=view...
1987년 체제를 지탱하는 도그마들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문재인정부가 설파한 촛불혁명 담론과 외교안보, 경제, 고용노동, 복지, 환경, 여성 정책은 1987년 이후 주류가 된 도그마에 입각해 있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담론도, 김능한 대법관의 위안부 관련 판결도, 토착왜구 어쩌구 하는 담론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검찰개혁-조국수호 함성도, 5.18, 4.3, 동학 관련 언설도 다 그런 것이다. 
처음부터 도그마 였던 것이 아니라, 모순부조리의 구조 내지 현실은 변했어도, 정의 관념 내지 개혁 방향이 바뀌지 않아서다. 
각주구검의 고사처럼, 처음에는 (물속에 잠긴) 칼이 금 그어놓은 곳바로 아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 움직이면 멀어진다. 
처음에는 배의 앞쪽이 남쪽(정의) 뒷쪽이 북쪽(불의)이라 힘차게 노를 저으면 정의를 향해 다가간다. 그런데 물살과 바람이 바뀌고, 키잡이가 혼미하면 의도/기대/희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배가 간다. 힘차게 노를 저으면 정의가 아니라 불의를 향해 쾌속으로 나아간다. 
1987년 체제를 지탱하는 정의 관념, 방향감각, 정치지형이 낳은 모순 내지 패악을 극명하게 보여준 존재가 바로 문재인, 이재명과 이들이 지배하는 민주당이다. 
윤통은 한국의 독특한 역사와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 중의 하나인 듯 하다. 사실 그의 자유에 대한 공부와 언설은 서구 지성사의 산물로, 한국 특수적인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1987년 이후 35년간 쌓인 정신문화적, 정치지형적, 체제제도적  적폐가 하늘을 찌르니(검수완박, 이상민 해임 건의안 , 예산안 처리 등) 구시대의 막차와 새시대의 첫차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누구 보다 철학, 가치, 정책, 인사, 말 등을 꿰는 '줄기 내러티브'가 약한 사람이, 시대의 강요에 의해 가장 강한 '줄기 내러티브'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혁명과 가장 거리가 먼 관료 출신이 정치 혁명, 문화 혁명, 제도 혁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윤통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 한국으로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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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대선 결과를 보고, 정권이 딛고 서 있는 역사적 서사의 위력과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이후 역대 정부의 국정비전, 국정지표, 실천규범(국정운영 원리) 등을 연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체계성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가 제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정리 했지요. 이런 인식 하에서 국가비전은 선진일류국가로, 실천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 국정목표는 신발전체제(질적성장, 법치확립, 다원주의, 고신뢰사회 등), 국정지표는 섬기는 정부, 활기찬시장경제, 능동적 복지, 인재대국, 성숙한 세계국가 등.  
사실 선진화는 모든 것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얘기라서, 선진화를 가로막는 질곡이나 대립물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대체로 듣기 좋은 말(중도실용, 품격, 통합, 화합, 협치, 신뢰, 질적성장, 선진통일 등) 대잔치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한국 특유의 모순부조리에 압박과 설움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피와 눈물, 분노와 한숨을 수반하는 투쟁을 회피하거나 외면합니다. 그래서 mb정부나 박근혜정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문재인정부와 비교하면 천백배 나은 정부이지만, 어쨌든 인구•연금•재정•지방•산업•교육 등 다방면에서 밀어닥치는 지속가능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은 별로 없습니다. (쓰고 보니 윤석열정부가 성공을 원한다면 이명박정부에 대한 평가, 반성 아니 성과, 한계, 오류를 천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듯한 서사(敍事=story)에 뿌리박지 않은 가치, 비전, 방법 혹은 국가비전, 국정목표, 국정과제, 국정운영원리(실천규범) 등은 대체로 좋은 말 대잔치로 끝납니다. 대립물(엣지)도 흐릿하니 엣지도 없습니다. 
서사는 대통령과 정권의 소명의식, 자부심, 동지의식의 토대이자, 사상이념적 통일성의 근간 입니다. 서사가 공유되지 않으면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손발(위와 아래)도 안맞고, 앞뒤가 안맞게 되고, 분노도 자부심도 생기지 않습니다. 
서사는 희생과 헌신(피와 눈물), 고난과 승리(환희)로 짜여진 감동적 스토리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조선로동당 규약(김일성 찬양)이 대표적입니다. 동학-독립운동-통일운동-노동운동(전태일)-민주화운동(5.18)-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진보의 서사도 만만찮습니다.  그런데 보수는 서사가 약합니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개항 이후 150년의 서사와 1945년 이후 77년의 서사는 위정척사 vs 문명개화 등으로 읊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87년 이후 35년의 서사 입니다. 이게 흐릿하거나 약하면 윤석열정부는 mb정부 시즌2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1987년 이후 35년은 민주화, 자유화, 세계화, 지식정보화(디지털화) 등이 진행되었지만, 동시에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발전 동력(제도, 정신, 문화 등)의 소진 과정이었습니다. 
단적으로 정치와 정부의 통합 조정 기능이 후퇴하면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할 가치(권리-권리, 권리-의무(부담), 이익-공헌(위험), 권한-책임)간 불균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로비력, 정보력, 투쟁력에 의한 국가(제도•규제•정책•예산)를 통한 합법적 약탈(지대추구)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득권(지대)의 성채가 곳곳에 들어서고, 양대정당, 공공부문, 규제산업, 면허직업, 조직노동, 부동산부자 등이 대표적인 기득권이 되었고, 경쟁의 본질은 성안 진입(성안 사람되기) 경쟁이었습니다. 성 자체를 허물려고 하는 움직임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결국 힘없는 약자(자영업자, 영세사업자 등)와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면서 인구•연금•재정•지방•산업•교육 등 다방면에서 지속가능성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은 온 몸에서 암세포가 증식하는 말기암 환자입니다. 사상이념만 바꾸면 치유되는 병이 아니라, 온 몸의 균형이 깨져서 암이 모든 기관으로 퍼진 상태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대한민국은 고장난 자동차입니다.  운전수만 바꾸면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닙니다. 
아무튼 1987년 이후 35년을 설명하는 서사의 질이 윤석열정부 성공의 관건이 아닌가 합니다. 
저처럼 지난 35년을 설명한다면 지금은 민주개혁 시대가 아니라 자유개혁 시대입니다. 자유(재산권, 통상, 동맹), 자립, (사적)자치, 개방 등이 핵심 가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극히 왜곡된 국가시스템의 재설계, 정상화(합법적 제도적 불의 타파)와   민주•진보-자유•보수-공공부문이 합작한 기득권의 성채 허물기가 시대 정신입니다. 
윤석열의 말과 행보와 인사를 보니 서사의 부재, 국정비전의 부실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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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거대한 정신병동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순수(불순물 없음)나 정통 혹은 의리와 명분에 대한 비이성적, 비논리적 집착이나 고집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다.  한반도의 풍토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힘에 살고 힘에 죽는 무인이나 상공인은 이런 병에 잘 안걸린다. 의리와 명분을 설파하고 몸소 실천하고, 가능하면 권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문인/선비 DNA가 이 병에 잘 걸린다. 
아무튼 이 집착과 고집은 본질적으로 과거/역사로 눈을 돌리고 미래에 눈을 감으며, 거짓과 조작을 필요로 하며, 가장 무서운 것은 근거없는 증오와 적대로 바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순수/정통 집착병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출세하거나 잘 팔리는 작가가 되려면 정신병 환자가 되어야 할 것 같으니,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미칠 노릇일 거다. (그래도 보수에는 정신병 환자가 비교적 적다)
이성계의 건국신화와 김일성의 건국신화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순수, 정통, 고귀함에 대한 집착과 고집은 진실에 대한 무시, 은폐, 조작을 요구한다. 외형은 달라도 본질은  '용비어천가'인 어떤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신화도 본질적으로 거짓과 조작으로 점철된 용비어천가다. 
그런 점에서 나는"누가 누구를 낳고"가 계속 이어지 마태복음 1장이 참 특이하게 다가왔다.  거기엔 간통 (차도)살인자도 있고, 피가 더러운 이방 여자도 잇다. 또한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의 혼미와 타락을 서술한 내용도 특이했다!!  왕가 탄생 스토리가 없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아마 다 신의 특별한 계시나 기름 부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용비어천가류의 신화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민족이나 국가나 왕가나 정치세력을 좀 더 멋있게, 고귀하게 그려내는 것은 정치적 필요이자, 인지상정인 것 같다. 문제는  순수나 정통을 내세워 자해를 하고(대한민국의 위대함과 존엄함을 폄하하고),  정치적 경쟁상대에 대한 근거없는 증오와 적대감을 불러일으켜, 청산, 척결, 궤멸 시켜야 하는 존재로 몬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순수와 정통에 대한 집착은 거짓과 조작, 과도한 증오와 적대,  소모적 대립과 갈등의 양산 공장이 아닐까 한다.   
사실 나도 1980년대 대학 초년생 시절,  "이 산하에"(3절.기나긴 밤이었거든 투쟁의 밤이었거든  북만주 벌판에 울리던 거역의 밤이었거든)를 비장하게 부르면서, 대한민국과 국군이 임시정부, 광복군, 북만주/백두산 일대의 항일무장투쟁을 뿌리로 하여 탄생했다고 믿었고, 또 믿고 싶었다.
 그런데 장준하의 돌베게, 김산의 아리랑과 (불편한 진실을 서술한) 논문과 책을 보면서  아름다운 환상은 산산히 박살이 났다. 물론 임시정부가 후지고, 광복군과 항일무장투쟁이  한심하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우스워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간통 후 간접 살인을 통해  태어난 솔로몬왕 얘기가 괜히 있는 것 아니다. 혈통이 고귀해서 고귀한 사람 되고, 혈통이 더러워서 더러운 사람 된다는 얘기도 없다. 
지금와서 보니  홍경래의 난(서북농민전쟁이라고 하나?)-동학(갑오농민전쟁이라 하나?)-항일의병-항일무장투쟁을 역사의 정통인 것처럼 서술하는 역사관 자체가 (문명사에 눈을 감아버리니) 북한 정통론을 뒷받침하는, 그야말로 자해적 사관이었다. 역사적 진실과 사실에 대한 왜곡(침소봉대)과 은폐조작을 밥먹듯 하는 쓰레기 사관이었다. 
아직도 운동권 대학생 1~2학년에서 멀리 못간 것 같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를 지배하고, 아직도 민주당의 큰 손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문재인 이 인간은 재임시에도 한심했지만, 퇴임하고 나니 더 한심한 자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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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얘기를 너무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주식, 부동산, 금 같은 자산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중고등학생만 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화폐 유통속도'라는 좀 생소한 말로 설명하니, 복잡한 경제현상을 간명하게 설명하는 무슨 비밀의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화폐의 유통속도(V) = P*Y / M (단, P=물가, Y=산출량, M=통화량)이니, 경제성장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출량(Y)증가율은 낮은데,  통화량(M)이 증가한다면 P가 그만큼 오르지 않으면(상승 압력은 받겠지만) V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니 통화량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 중의 하나인 M2(광의의 통화) 평잔 증가율이  7.3%(2016) 5.5%(2017) 6.3%(2018) 7.0%(2019)인데, 2020년 들어서 1~5월  증가율은 사상 최대폭으로 작년 동기 대비 거의 10%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2019년 평잔이 2810조원인데  2020년 5월 평잔은 3054조원입니다. 
 10% 내외 고성장 시절도 아닌, 2~3%(명목으로는 3~4%?) 저성장 시대에 통화량을 이렇게 늘리면 물가(P)가 안 오를 수 없겠지요. 그런데 물가(P) 상승을 내리누르는 이러저러한 기제들이 많으니, 결국 서울수도권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불거지고, 화폐 유통 속도(V)는 소폭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요? 
서울 아파트값 상승은 문재인정부의 포퓰리즘적인 재정, 금융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악한 포퓰리즘+시장과 경제에 대한 지독한 무지몽매가 결합되었다고 봐야합니다. 
아무튼 통화량이 많이 늘어나면 자산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고, 따라서 (빨리 반응하는 좋은)자산을 가진 사람과 나쁜 자산을 가진 사람 혹은 자산이 없는 사람의 격차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 분 얘기의 핵심은 특정 소수로 분노를 돌리는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경계인데,  대체로 우익은 난민이나 이민자를, 좌익은 부자나 기득권자를 지목한답니다. 그런데 한국은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사회갈등, 남북 갈등을 노론-친일-독재-냉전-보수-자본-재벌-신자유주의-돈 먼저 생각하는 세력 등을 멋대로 연결하여 악마화 하고, 자신들은 동학-항일-민주-평화-진보-노동-사람 먼저 생각하는 세력 등을 멋대로 연결하여 정의의 사도처럼 생각하니 폭력성, 몰염치성, 위선, 독선, 무능이 훨씬 심할 수 밖에 없겠지요. 
출처 : http://news.chosun.com/.../2020/07/13/2020071303869.html
[朝鮮칼럼 The Column] 느려진 돈의 속도가 집값 폭등의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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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느려진 돈의 속도가 집값 폭등의 배후
최근 미국의 자본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현상이 경제 펀더멘털과 자산 가격, 특히 주가와의 괴리다. 그러나 이러한 괴리는 새로운 현상..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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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사는 1936년생(만85세)  우리 장모님. 아파트 노인정에 나가십니다. 과거 달동네라던 사당동을 1980년대 말에 재개발하여 1991년에 15층 아파트를  지었으니, 호남 출신 80세 내외 할머니들이 노인정에 많답니다. 
이 분들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신답니다. 이재명의 죄상이야 소상히 알리는 없겠지만, 뭔가 큰 추문이 있다는 것, 문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하다는 것, 그래서 이재명과 민주당이 인기가 별로 없다는 것 쯤은 아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랍니다. 찍긴 찍어야 할텐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아서....... 
우리 장모님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좀 어리버리한 노인인 줄 알고 은근히 생각을 떠 보신답니다. 자신들이 좀 잘해주고 설득하면 이재명을 찍을 거라고 기대하면서.......충남 예산 출신 우리 장모님은 충청도 출신 답게, 그 분들이 빈정 상할 얘기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 분들에게 맞장구 치지도 않습니다. 정치 얘기는 노인정 밖에서 생각이 통하는 노인끼리만 한답니다. 아마 서울 경기 지역 아파트 노인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일겁니다. 
장모님 얘기를 듣다 보면 한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정치와 권력 향배에 관심도 많고, (조직되지는 않았지만) 순식간에 이심전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전략 투표를 하는 유권자 집단이 호남민이 아닌가 합니다.  민주당은 이들(수도권 호남민 포함)이 중추고, 여기에 화석 운동권이 가세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호남은 평야지대라 조선 시대부터 중앙(정치) 권력의 약탈과 강압에 가장 심하게 당했고(기축옥사부터 동학 봉기까지), 그 이후 서울수도권과 산업도시로의 인구집중 과정에서 이농도 많이 했고(중국이 일찍 개혁개방 되었으면 좀 달라졌을텐데.....), 게다가 이북(서북지방) 실향민과 달리 선진 문물(기독교에서 고등교육까지)을 체화하지도 못했으니, 끼리끼리 뭉쳐야 하고, 권력이라도 가져야 소외, 고립, 박대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니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 분들이 권력 맛도 알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끼리끼리 나눠 먹을 줄도 알지만,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되는 공정, 정의, 형평, 법 감각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의" 보다는 "이"에 예민합니다. 정의 감각은 한국민이 전반적으로 취약하지만, 그 중에서 더 취약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대한 민주당에 대한 일체감은 훨씬 강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5.18은 이들의 거대한 상징자산이 되었습니다. 국힘당이 당사에 전두환, 노태우 사진을 걸지 못하고, 엄연한 정치적 조상인 전두환이 죽어도 조문도 꺼리고, 반면에 5.18 묘역과 노무현 묘역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거대하고 강력한 정치집단인 호남민에 필적하는 정치집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프리카 중동에 인구의 20~30%를 차지하는 종족/종파가  장기간 권력(군, 경찰, 방송언론, 금융기관, 공기업 등)을 독점하는 곳이 있는데, 이 종족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호남민인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종족만큼 편향적, 맹목적, 이기적, 폐쇄적,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의 향배가 바뀌는 큰 선거를 유혈사태 없이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약점, 결점이 지금 극대화된 것은 호남민의 그것을  보완, 견제, 상쇄해 온 민주(운동권)파가 완전히 썩어문들어져 버려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경쟁 정파인 자유보수파 내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민주당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적인 정치집단으로 우뚝 서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공정, 정의, 법치에 훨씬 충실하고, 국가경영도 훨씬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중도확장 운운하며 5.18에 머리 조아리고, 전두환에 생까고, 호남에 예산 인사 특혜 약속하는 수준으로는 호남민의 마음을 사지 못합니다. 호남 민심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민주당이지, 값이 다르면 다홍치마 안삽니다. 윤과 안과 두 국당은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정도로 가야 합니다. 세상이 다 아는 얘기 좀 해봤습니다.


'해체하라'는 말은 쉽게 말해 '죽여라'는 말이다. 저 놈 '죽여라"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복창하는 나라!! 불만 표시를 '죽여라'는 살벌한 말로 하는 나라. 
이게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단순 불만 표출이니 한 귀로 흘려라고?? 칼이 아니라 말로만 싸우던 오랜 역사와 문화가 있어서(결투 문화도 없고......) 상욕을 겁 안내듯이, 죽여라는 말도 겁 낼 필요 없다고??!! 
 그런식이면 4대강보 파괴할 다너마이트를 청와대에 설치하자는 얘기도 할 수 있겠다. 이 역시 괘념치말고 한 귀로 흘리라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손에, 상대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절대 무기가 쥐어지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해방공간에서 숱하게 벌어진 참상의 뿌리다. 
말이 씨가 된다. 말이 학살이 되고 전쟁이 된다. 
160여만명에 대해 생각해봤다. 
문정권은 현재와 미래의 준엄한 위기에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게하고, 대신에 과거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5.18, 상해임정, 4.3, 여순, 동학 등을 통해 당시 집권/주류 세력의 허물만 주시하도록했다. 
나는 자한당과 바미당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은 문정권의 이런 시선 돌리기 작업을 방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중요한 문제가 뭔지를 망각하도록 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나저나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이젠 닫을 때가 된 듯하다.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의 신문고가 아니라, 저 놈 죽여라라는 함성만 넘치는 난장판으로 되었으니!!!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청와대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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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청와대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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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 
잠시 후(오후 3시) 김용삼 기자의 발제문.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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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親中) 사대주의와 반일 종족주의는 완벽한 닮은꼴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광풍과도 같은 반일감정이  또 다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번 반일감정의 근원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걷어찼다. 2015년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던 위안부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반일감정 조장 제2탄은 징용 배상 판결이었다. 이로써 1965년 박정희 정부 시절 체결했던 한일협정의 근본 취지가 도전받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무역 보복으로 대응하면서 한일 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뿌리를 추적해 올라가면 단재 E. H. 카의 사관(史觀), 신채호의 사관이 발견된다. E. H. 카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현재의 시각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랑케의 실증주의적 사관을 비판하고 나선 E. H. 카의 이론은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를 써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적나라한 왜곡·날조가 자행되기 시작했다.
신채호 사관의 세계관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있어 아(我)는 조선민족, 비아(非我)는 조선민족 이외의 민족이 된다. 신채호가 김원봉의 부탁을 받아 쓴 ‘의열단 선언’(조선혁명선언)은 신채호의 극단적인 투쟁사관의 백미다. 
신채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과 그의 추종자들이 주창한 외교독립론, 실력양성론, 준비론, 자치론을 격렬하게 성토하면서 “일제와 협력하려는 적(敵)”으로 규정했다.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방략은 칼 한 번, 총 한 방 쏘지 않고 편지질이나 하고, 조선의 독립을 외국의 처분에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매국노 짓이라며 질타했다. 
신채호는 ‘의열단 선언’에서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 가진 자는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했다. 따라서 이들도 의열단의 암살 대상이 되었다. 
신채호와 의열단원들이 원했던 노선은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였다. 즉 폭력적 암살·파괴·폭동을 줄기차게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며, 부단한 암살·파괴·폭동으로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이상적인 조선을 건설해야 한다면서 민중직접혁명론을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일제와의 투쟁에 너무 바빠서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게 되자 자기 부인에게 “나는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으니 도저히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 되면 고아원에 맡기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이승만이 주장한 외교독립론은 신채호 등등의 무장투쟁론과는 근본적으로 세계관이이 달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유럽 전체가 파괴와 살육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유럽 열강들이 아시아 문제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일본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일본은 동맹국인 영국이 독일과 교전상태에 돌입하자 1914년 9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적도 북쪽의 태평양에 흩어져 있던 독일령 섬들을 점령했다. 이어 칭다오(靑島)를 중심으로 산둥(山東)반도의 독일 조차지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독일 조차지보다 훨씬 북쪽의 중국 영토에 상륙하여 조차지 인접지대의 독일 상사들이 투자했던 모든 철도, 광산, 공장시설들까지 빼앗았다. 
이승만 외교독립론과 신채호 투쟁사관 격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의 판도는 북쪽으로는 바이칼 호 동쪽의 시베리아 지역에서부터 북만주 일대, 중국에서는 산동과 화중(華中)지역 양쯔강(揚子江) 일대, 남쪽으로는 태평양의 남양군도까지 광활한 지역을 장악했다. 그전까지 전 세계를 호령하던 서양 열강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승국이나 패전국을 가릴 것 없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재개 불능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에서는 공산 혁명이 일어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따라서 동아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일본을 억제하거나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러일전쟁 당시까지 일본을 지지하고 성원했던 미국이었다. 일본이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팽창하면 할수록 중국의 주권을 옹호하고 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미국과의 갈등과 마찰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부딪치게 되었다.
열강으로 급부상한 일본은 산업력이나 군사력에서 다른 서양 열강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일본은 해군력 확장에 전력을 기울여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 1922년 워싱턴에서 군축회의를 열어 해군력 확장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강력한 일본을 상대로 김원봉의 의열단, 박용만이나 노백린 등이 구상한 수백 명 규모의 빈약한 병력으로 세계 강국 일본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일 경우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숭고한 이상은 현실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빛나는 법인데, 우리의 무장 독립운동은 이상은 원대했으나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된 후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 부임을 재촉하는 의견에 따라 하와이에서 목재 운반선을 타고 상해로 밀항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첫 임시의정원 회의를 주재한 1921년 1월 5일, 임정 요인들은 독립운동의 방안을 놓고 격돌했다.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은 이러한 현실론에서 출발한다. 일본은 배타적 식민지를 추구하는 나라(대동아공영권)이고, 미국은 모든 나라가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개방·통상을 추구하는 나라다. 따라서 언젠가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여 태평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때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하여 모든 식민지를 해방시킬 것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서로 다른 독립방략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때 해방될 것이니, 지금부터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이승만이 윌슨 대통령에게 국제연맹이 완전독립을 전제로 한국을 일본에서 분리하여 위임통치해 줄 것을 청원하는 문서를 제출하자 신채호는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 놈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강력 성토했다.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도 “이승만은 썩은 대가리”라면서 “자치운동이나 위임통치 원하는 외교가는 원치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승만이 주장한 위임통치론의 핵심은 한국을 ‘통상이 자유로운’ 문호개방 지역으로 만들어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즉, 한국이 미국 위임통치 하에서 중립적 지위를 누리고, 중립국 체제의 자치적 정치 환경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 미국과 자유통상을 통해 국부 증대시켜 실력을 양성한 다음, 그 후에 국제정세 변화를 활용하여 완전독립을 달성한다는 단계적 외교독립론이었다. 
신채호나 공산주의자 이동휘는 이승만이 주장한 위임통치론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고, 세계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지성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이승만은 자신의 신념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라는 저서를 발표했다. 그 후 세계의 역사는 이승만의 예언대로 진행되었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한 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일본이 패망했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때어나 3년간 통치한 다음 독립시켰다. 
오늘날 한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반일감정은 신채호처럼 현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상론적, 유토피아적 항일투쟁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반일감정을 교묘히 부추긴 세력은 북한 김일성 집단이다. 그들은 가짜 항일 무장투쟁의 신화를 조작하여 자신들은 일제와 무력으로 싸운 정의의 집단, 남한은 친일파 매국노들이 외세를 등에 업고 분단정권을 세운 불의의 집단으로 창작해 냈다. 
북벌론·소중화(小中華) 사상과 반일감정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허구를 바탕으로 무장투쟁 집단을 선(善), 외교독립 집단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그 조작된 등식에 역사를 끼워 맞추는 식의 왜곡 날조를 감행했다. 북한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이어받은 국내의 좌익·좌파·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은 자신들의 투쟁의 뿌리를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맞서기 위해 봉기했던 의병, 동학 농민운동, 3·1운동에 이어 일제 하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 무장투쟁, 해방 후 미군정이라는 외세에 대항한 좌익들의 단선단정 반대 투쟁,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4·19, 군사독재에 저항한 광주 5·18, 그리고 군사독재의 연장인 박근혜 정부를 쫓아낸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이러한 황당무계한 사관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까지 집어넣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반일감정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이처럼 그 뿌리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 신채호와 E. H. 카의 사관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효종 시대의 북벌론과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나타난다. 
한국인들은 삼국시대부터 중국에 사대하고 이웃 나라와 교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중화문명의 후예요, 다른 주변국들은 야만이라는 근거 없는 종족적 우월의식을 배양해 왔다. 조선 초기 여진족은 조선 조정에 조공을 바치고 볼모를 살던 야만족이요, 일본은 우리가 유교와 불교, 문화를 전해준 쪽바리 야만인이라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머리에 유전인자처럼 박혔다.
1637년 야만인이 세운 청나라에게 삼전도에서 조선 국왕이 치욕스러운 항복을 한 이후 조선은 문명의 시계가 멈춰섰다. 이때부터 만주족이 세운 청은 적대적 타자가 되었고, 조선은 한족이 세운 명나라를 지고지선의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1644년 명나라가 야만족에게 멸망하여 청나라가 출범하자 조선은 군사 1만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가 군사력 300만 명,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청나라를 무력으로 정벌하겠다는 황당무계한 북벌론을 주장한다. 효종과, 노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송시열이 북벌론의 주인공이었다.
북벌론은 실제로 북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벌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한 국내용 프로파간다였다. 
이러한 북벌론이 부질없는 환상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환성에서 깨어난 조선 지도부는 자신들을 명나라를 계승한 문명국, 즉 소중화의 나라로 자리매김했고, 자신들을 굴복시킨 청나라를 야만국·오랑캐로 적대했다. 
조선의 국가 지도부는 겉으로는 청에게 복속했지만 단 한 번도 청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의 국왕과 세자, 문무백관은 망해서 지구상에서 사라진 명나라 황제에게 200년이 넘도록 제사를 올리면서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를 갈았다.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을 깨부수고 동아시아의 강자로 등장하자, 청나라에 대한 적대감정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치환된다. 조선 조정은 명나라의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상국(上國)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내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한반도에 끌어들인 민비가 참혹하게 시해 당하고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하는 아관파천이 일어난다.
항일 무장투쟁은 새로운 형태의 북벌론
‘적대적 타자’가 일본이 된 이상, 그들을 물리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북벌론’이 필요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러한 ‘주장’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 결과 일제하에서 만주와 중국에서의 항일 무장투쟁이 등장한다. 
1940년대 항일 무장세력으로 꼽히는 광복군은 500여 명, 가장 수가 많았을 때가 682명,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 정부군 산하로 조직한 조선의용대는 300여 명이었다. 광복군은 경비 일체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지휘권이 중국 국민당 군대에 소속되었고,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을 중국군이 차지했다. 조선의용대도 모든 활동비와 월급, 무기를 중국 국민당 군대로부터 지원받았다.
만주에서 김일성이란 존재가 어떤 항일 무장투쟁을 했는지, 이를 입증할 어떠한 사료도, 근거도 없다. 다만, “우리는 이러저러한 무장투쟁을 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처럼 무장투쟁을 내세운 세력들은 명나라의 후예인 장제스(蔣介石)·마오쩌둥(毛澤東)에게 의탁하여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도, 자주적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통수권이나 지휘권을 넘겨주는 것에 대해서도 어떠한 반발심이나 의구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소중화의 세계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세계관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오랑캐의 나라 청이 멸망하고, ‘중화의 나라’가 복원되었으니 그들에게 의탁하여 새로운 ‘적대적 타자’로 등장한 일본을 상대로 ‘정신적 북벌’을 감행한 것이 바로 신채호와 김원봉, 김일성이 주도했던 항일 무장투쟁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이러한 항일 무장투쟁은 오늘날에는 위안부 소녀상 세우기,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립, 일본 여행 가지 않기, 엉터리 항일투쟁 영화 제작 등 새로운 형태의 문화전쟁으로 치환되고 있다. 이제 1965년 체결된 한일 수교협정 재검토까지 제기되고 있으니 한일 외교 파탄은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 한일 수교를 통해 산업화를 이루어낸 박정희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샤마니즘적 주체사상에 기초한 전체주의 국가 북한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북한처럼 폐쇄·고립·독재·변태의 세습 왕조로 후진시키는 첫 단계가 반일 감정 조장하기다. 
자, 그렇다면 한일 외교관계가 파탄 나면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가. 이 정도 대차대조표도 따질 줄 모른다면 그들이야말로 무뇌아, 저능아 아니겠는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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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 
내  노선을 얘기하라면 이거다. 
친일독재 타령, 종북좌익 타령하면서,  좌-우-공공 기득권에 영합하여 한 진영의 후보가 되어 대통령 자리 먹어 보려는 선수가 아니라,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공멸의 위기를 직시하고,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합작과 연정을 할 수 있는 선수를 갈망한다. 
권좌에 올라, 검찰, 국세청, 감사원, 규제 가지고 미운 놈 혼내주고, 재벌들 갈취하고, 똘마니들에게 공공기관장 자리와 경제예산으로 일용할 양식을 좀 주지만, 
수명을 다한 제도와 구조는 거의 손 못대고, 박근혜보다 더한 분노, 증오의 홍수를 불러일으켜,  떠내려가는 그런 정권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손학규, 정의화, 안철수, 새누리의 이른바 비박과 김부겸 안희정 등이 자신의 가치를 더 선명하고 강하게 발산해 줬으면 한다. 한데 모여 같은 당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미증유의 위기, 진짜 위기를 힘과 지혜를 모아, 연정과 합작 방식으로 타개해줬으면 한다.
"해방 후 ‘합작’을 실패하게 한 책임의 반은 좌파에 있다.
극좌와 극우가 아닌 사람들이 ‘합작’을 주장했고, 미국과 소련을 업은 극좌와 극우에 의해 ‘합작’은 좌절되었고,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남북 합작이 아니다.
옛날의 좌우합작도 아니다.
중국의 국공합작 같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좌도우기의 개혁을 할 수 있는 합작과 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당분 간 다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국가의 과제가 70년 동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당분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통일’이라는 단어도 심장 속 깊이 감추어라.
‘한 민족 두 국가’로 외환(外患)을 벗어나자.
우선 대한민국의 인간화·선진화를 위해 ‘합작’하고 ‘연정’하자.
때가 되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통일이 거론될 것이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나아간 ‘아시아 연방’이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Namgok Lee
  · 
몽양 여운형(이기형 지음)을 다 읽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힘들다.
물론 저자의 관점에서 쓴 책이니까, 반대자들의 의견도 있을 것이다.
몽양의 연설 내용이다.
“....해방된 오늘 지주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지식인·사무원·소시민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보시오.  ....농민·노동자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들어 보시오. ....손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먼요. 그렇습니다. 일제 통치 36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만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같이 굳게 손을 잡고 건국대업에 매진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은 일찍이 압록강· 두만강 저 쪽 광활한 만주 땅에 용맹을 떨치고 웅지를 펴지 않았습니까.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개토왕비는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또 문화적으로는 금속활자· 고려청자· 훈민정음 등 세계가 자랑할 뛰어난 민족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문화적 긍지를 가지고 세계사적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는 건국대업에 임하기 위해 조선인민당을 창건합니다.... “
그는 좌우합작과 통일조국을 위해 헌신하다가 좌우 양쪽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당시 경찰의 묵인 아래 암살되었다.
어제 밤 문득 이 책을 보다가 ‘동학’이 생각났다.
나는 과거 역사를 많이 공부해보지 않았다. 그 편파적 해석이나 현실에 도움이 안되는 역사 논쟁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조선 후기 근대부터 시간 나는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
동학운동과 상층의 근대화 세력 간의 합작은 불가능했을까?
일본 소규모 군대의 기관총 앞에 귀중한 근대화의 동력을 소멸시킨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민족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기회는 해방 후 ‘합작’이었다.
이것도 실패하였다.
나라가 망하고, 분단되고, 동족 상잔까지 하는데는, 외세의 절대적으로 우세한 힘이 있었지만 그 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내부의 분열과 상잔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한다면, ‘합작’했어야 한다.
‘합작’ 실패의 역사였다.
이제 세 번째 기회다.
어떤 사람들은 ‘합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마 좌파의 ‘통일전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분들에게 몽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방 후 ‘합작’을 실패하게 한 책임의 반은 좌파에 있다.
극좌와 극우가 아닌 사람들이 ‘합작’을 주장했고, 미국과 소련을 업은 극좌와 극우에 의해 ‘합작’은 좌절되었고,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남북 합작이 아니다.
옛날의 좌우합작도 아니다.
중국의 국공합작 같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좌도우기의 개혁을 할 수 있는 합작과 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당분 간 다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국가의 과제가 70년 동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당분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통일’이라는 단어도 심장 속 깊이 감추어라.
‘한 민족 두 국가’로 외환(外患)을 벗어나자.
우선 대한민국의 인간화·선진화를 위해 ‘합작’하고 ‘연정’하자.
때가 되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통일이 거론될 것이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나아간 ‘아시아 연방’이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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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 
전우용? 얘가 학자인가?? 입 더러워질까봐 욕 삼킨다.(욕 삼키면 식도와 위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살다보니 정말 기상천외한 논리를 다 보는구나. 북한 방송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신은미와 어깨를 견줄만하다.   황당무계 견강부회의 극치다. 
~~~~~~
그러면서 "아베 정권이 경제공격을 개시하자마자 자한당(자유한국당)과 족벌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 정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100여 년 전 매국단체 일진회가 했던 짓 그대로다. 이미 한 번 겪은 일이니 같은 수법에 또 당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정권의 공격이 형식은 '경제공격'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공격'"이라며 "현상은 국가 대 국가의 분쟁이지만 본질은 일본 군국주의 잔존세력 대 평화를 지향하는 양심세력 사이의 싸움"이라고 부연했다. 나아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국민의 자존심이고 호혜평등한 자주외교의 토대이며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덧붙였다.
어떤 역사학자가 분석한 일본 경제보복 조치의 ‘진짜 이유’
vop.co.kr
어떤 역사학자가 분석한 일본 경제보복 조치의 ‘진짜 이유’
“한국의 ‘자주외교’를 흔들고 일본에 굴종적인 박근혜 ‘후계정권’을 세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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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 
불쌍한 애들 두번 죽이는구나!! 민주공화국의 성패는 결국은 시민적 덕성에  달려있는데,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후속대응과 지금 하는 행동은 시민적 덕성의 무덤이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아프다. 
애들 두번 죽이지 마라. 뼈속깊이 공유하던 슬픔과 성찰을 짓밟지마라!! 당신들만 유족 아니고, 당신들만 부모 아니다. 그리고 유족 앞세워 저열한 정략 휘두르는 자들!! 니들만 시민 아니고,  니들만 슬픈 것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 '책임자 17인' 발표···朴·황교안·우병우 포함
mnews.joins.com
세월호 유가족 '책임자 17인' 발표···朴·황교안·우병우 포함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15일 책임자 17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처벌을 촉구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4.16연대는 1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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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 
경계선에 서 있으면, 이쪽 저쪽이 비교적 잘 보인다.
또한 본질과 구조를 천착하면 다양한 현상들이 왜 어떻게 나타나는 지도 비교적 잘 보인다. 
오늘 저녁은 아마도 상대에 대해 불안감과 혐오감이 심한 사람들일수록--일단 쟤들을 싹 쓸어버려야 새로운 사회의 초석이 놓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낭패감과 당혹감이 클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변화와 개혁의 추동력은 80~90%는 진보/좌파라고 알고 있다. (나머지 10~20%가 마가렛 대처 같은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는 보수/우파의 불가사의한 힘(대중적지지)의 실체와 근원을 모르는 듯 하다. 
나는 이 힘의 실체와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고 쓸수 있다면, 한국의 무능하고 찌질한 보수/우파 정도는 능히 역사의 변방으로 밀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 7~8년 동안 '진보/좌파 혁신 내지 정상화'를 위해 부끄럽지 않을만큼 노력은 한 것 같은데, 웬걸 오히려 내가 변방으로 밀려나버렸다. 확신컨대 김대중/노무현도 그런 것 같다. 어느 당에서는 두 사람의 사진을 걸어 놓고 사기를 치고는 있지만......
한국 보수/우파의 힘은 인간과 기업의 탐욕과 속성, 이익집단의 동학, 정부(공무원)와 시장의 힘과 한계와 속살, 국제관계의 동학 등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균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trade-off관계에 있지 않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 그것이 생명이든 안전/안보든 인권이든  민주주의든 돈이든.......당연히 속물적 속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 진보/좌파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당위가 너무 일면적이면서도 강하다. 이 당위의 원류는 oecd지표 이기도 하고, 유럽 진보/좌파의 가치이기도, 유교 도덕률 이기도 하고, 마르크스주의나 민족주의이기도 하다. 핵심은 도덕(좋은 의도), 인권/기본권, 생태, 자주(상호 대등하고 호혜적인 국제관계) 등이다.  trade-off 같은 복잡미묘한 문제를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책적 귀결은 인권/기본권을 확대강화하고(해고는 살인이고, 여성 의무공천 해야하고, 기초생보자 권리는 손대면 안되고, 공무원 노동3권 보장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도 보장하고......), 
시장/자본/기업/금융은 규제하고, 부자와 기업에게 더 많은 책임과 부담을 강요하고, 국가/정부와 사회가 더 많은 자원을 수취/배분하고, 기업/대형마트/개업업자 등 악동(?)들은 더 촘촘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아무튼 기업에게 천사가 될 것을 강요한다. 인내하는 자본이 되어야 한단다. 금융도 실물경제에 충직하게 봉사해야 하고, 미국 역시 (댓가를 받지 않는) 세계의 착한 경찰이자 좋은 이웃이기를 기대한다. 
당연히 세상살이 좀 해 본 사람은 이런 진보/좌파의 안목과 마인드로 국가를 절대 운영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안다. 한국 보수/우파/주류의 추악한 면을 더 잘 아는 장년, 노년세대가 저 형편없는 보수/우파를 압도적으로 많이 지지하는 이유이다. 
보수/우파의 눈으로 보면, 진보/좌파는 국가의 기강과 질서와 안보 개념이 너무 취약하다.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통진당과 연대는 그 생생한 징표다.
(사실 mb정부하 국정원이 저지른 선거부정을 박통보고 책임지라고 질기고 가열차게 투쟁한 것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시도때도 없이 정권을 흔드는 진보/좌파의 공세에 맞서) '박근혜를 지키자'는 구호가 대중적 호소력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그 무능함이 극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진보/좌파가 만든 나쁜 기억이 그것을 덮을만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수/우파의 눈으로 보면 진보/좌파는 현세대와 약자 코스프레하는 이익집단의 권리는 크게 보지만, 진짜 약자와 미래세대의 권리는 보지 못한다. 기업과 시장과 미국에 대해서는 추한 얼굴만 보고, 정부와 협동조합 등에 대해서는 이쁜 얼굴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썩지 않도록 하고, 너무 편향되지 않게 하는 방부제, 평형수 역할은 하기에 이 정도의 지지라도 나오는 것 아닐까? 
사실 한국이 시장 만능주의, 기업이 제멋대로 하는 나라라면--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진보/좌파의 가치는 어느 정도 유효하다. 잠시지만 집권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정부/규제 만능주의인데, 구조적으로 너무 무능하다. 기업의 손발은 너무 많은 포인트에서 묶어놨다. 인권/기본권은 힘센자들만 과잉되게 누리고, 시간이 가도 아래로 내려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무튼 보수/우파는 무능하고, 찌질하다. 하지만 시대가 가는 큰 흐름에 역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진보/좌파는 그 못지 않게 무능하고, 무엇보다도 철이 없고, 시대의 큰 흐름과 충돌한다. 공공/관, 고용노동, 금융, 교육, 보건의료, 외교안보 등 너무 많은 곳에서 그런 조짐이 완연하다. 
상대의 약점이나 악덕만 보면, 없어져야 마땅한 존재이다. 그래서 무슨 보수/우파냐 고 한다. 수구-냉전-부패-무능 세력이지 하면서. 물론 무슨 진보/좌파냐고 한다. 종북-친북-떼법-좌익 세력이지 하면서.....  
그런데 자신의 약점과 악덕을 보면 자신 역시 없어져야 마땅한 존재이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전혀 건드릴 수 없는 지방선거 이다 보니, 더 의미없는 싸움이라, 지켜보기 더 역겹지만, 그래도 월드컵 보다는 100배는 재밌으니, 오늘 저녁 허심하게 지켜 볼 것이다. 게다가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는 무소속 후보들이 몇 명까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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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
이한우  ·   · 
3.9 대선 결과를 보고, 정권이 딛고 서 있는 역사적 서사의 위력과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이후 역대 정부의 국정비전, 국정지표, 실천규범(국정운영 원리) 등을 연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체계성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가 제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정리 했지요. 이런 인식 하에서 국가비전은 선진일류국가로, 실천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 국정목표는 신발전체제(질적성장, 법치확립, 다원주의, 고신뢰사회 등), 국정지표는 섬기는 정부, 활기찬시장경제, 능동적 복지, 인재대국, 성숙한 세계국가 등.  
사실 선진화는 모든 것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얘기라서, 선진화를 가로막는 질곡이나 대립물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대체로 듣기 좋은 말(중도실용, 품격, 통합, 화합, 협치, 신뢰, 질적성장, 선진통일 등) 대잔치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한국 특유의 모순부조리에 압박과 설움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피와 눈물, 분노와 한숨을 수반하는 투쟁을 회피하거나 외면합니다. 그래서 mb정부나 박근혜정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문재인정부와 비교하면 천백배 나은 정부이지만, 어쨌든 인구•연금•재정•지방•산업•교육 등 다방면에서 밀어닥치는 지속가능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은 별로 없습니다. (쓰고 보니 윤석열정부가 성공을 원한다면 이명박정부에 대한 평가, 반성 아니 성과, 한계, 오류를 천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듯한 서사(敍事=story)에 뿌리박지 않은 가치, 비전, 방법 혹은 국가비전, 국정목표, 국정과제, 국정운영원리(실천규범) 등은 대체로 좋은 말 대잔치로 끝납니다. 대립물(엣지)도 흐릿하니 엣지도 없습니다. 
서사는 대통령과 정권의 소명의식, 자부심, 동지의식의 토대이자, 사상이념적 통일성의 근간 입니다. 서사가 공유되지 않으면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손발(위와 아래)도 안맞고, 앞뒤가 안맞게 되고, 분노도 자부심도 생기지 않습니다. 
서사는 희생과 헌신(피와 눈물), 고난과 승리(환희)로 짜여진 감동적 스토리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조선로동당 규약(김일성 찬양)이 대표적입니다. 동학-독립운동-통일운동-노동운동(전태일)-민주화운동(5.18)-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진보의 서사도 만만찮습니다.  그런데 보수는 서사가 약합니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개항 이후 150년의 서사와 1945년 이후 77년의 서사는 위정척사 vs 문명개화 등으로 읊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87년 이후 35년의 서사 입니다. 이게 흐릿하거나 약하면 윤석열정부는 mb정부 시즌2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1987년 이후 35년은 민주화, 자유화, 세계화, 지식정보화(디지털화) 등이 진행되었지만, 동시에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발전 동력(제도, 정신, 문화 등)의 소진 과정이었습니다. 
단적으로 정치와 정부의 통합 조정 기능이 후퇴하면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할 가치(권리-권리, 권리-의무(부담), 이익-공헌(위험), 권한-책임)간 불균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로비력, 정보력, 투쟁력에 의한 국가(제도•규제•정책•예산)를 통한 합법적 약탈(지대추구)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득권(지대)의 성채가 곳곳에 들어서고, 양대정당, 공공부문, 규제산업, 면허직업, 조직노동, 부동산부자 등이 대표적인 기득권이 되었고, 경쟁의 본질은 성안 진입(성안 사람되기) 경쟁이었습니다. 성 자체를 허물려고 하는 움직임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결국 힘없는 약자(자영업자, 영세사업자 등)와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면서 인구•연금•재정•지방•산업•교육 등 다방면에서 지속가능성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은 온 몸에서 암세포가 증식하는 말기암 환자입니다. 사상이념만 바꾸면 치유되는 병이 아니라, 온 몸의 균형이 깨져서 암이 모든 기관으로 퍼진 상태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대한민국은 고장난 자동차입니다.  운전수만 바꾸면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닙니다. 
아무튼 1987년 이후 35년을 설명하는 서사의 질이 윤석열정부 성공의 관건이 아닌가 합니다. 
저처럼 지난 35년을 설명한다면 지금은 민주개혁 시대가 아니라 자유개혁 시대입니다. 자유(재산권, 통상, 동맹), 자립, (사적)자치, 개방 등이 핵심 가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극히 왜곡된 국가시스템의 재설계, 정상화(합법적 제도적 불의 타파)와   민주•진보-자유•보수-공공부문이 합작한 기득권의 성채 허물기가 시대 정신입니다. 
윤석열의 말과 행보와 인사를 보니 서사의 부재, 국정비전의 부실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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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 
연말의 격렬한 갈등과  연초의 (담론 시장에서 목소리 좀 높이는 사람들이 날려보내는) 신년사 비슷한 멜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상식, 논리, 사실(실사구시)의 칼을 들고 이 헛소리, 단견, 즉물들을 베고 쑤셔대면, 그러니까 과거에 내가 노무현, 조국, 장하준, 정동영, 유시민, 손학규,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그리고 신자유주의 타령, 희망버스, 한미fta, 쌍용차, 철도파업 등에 쏟아부었던 정도의 비판을 해 대면, 에너지 분산으로 지금 꼭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참는다. 
날카롭고 묵직한 비판/ 비평도 꼭 필요하지만, 사람은 논리나 사실 못지 않게 느낌과 실적과 권위로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안철수의 말이 그럴듯해서 저 엄청난 지지율이 생겼나? 
그래서 답답한 심정, 연말 연초 소회를 몇 자에 우겨넣는다.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디테일이 약하고, 거시적 안목도 박약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소명)를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무엇이 대한민국의 성장, 통합, 지속가능성을 옥죄고 있는지를 모른다. 점점 짙어지는 1953/61 체제의 그늘과 1987/97체제의 그늘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성밖 사람들과 청년/미래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잔혹한 앙시앙레짐의 그늘을 주적으로 삼아 죽기살기로 싸워야 하는데, 과거의 주적과 싸우고 있다. 무대위 고릴라 실험 이론이 생각난다. 유신부활이라면서 반독재민주화 투쟁, 노동기본권 쟁취/사수 투쟁 전선에 떨쳐나선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미국, 권력, 자본(재벌), 시장을 성장과 통합을 이루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대체로 크고 강하고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는 듯하다. 경찰, 검찰, 군대 역시 내가 (집권하면) 사용해야 할 소중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하다. 
공산주의자(자본과 시장 폐절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는 거의 없을테니 논리가 그런 사람이야 없겠지만, 정서는 그런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민영화=악, 철도민영화는 돈 벌 구멍 없는 재벌에게 확실한 돈벌이 기회(특혜) 주기 술책, 한미FTA=식민지로 가는 고속도로라는 등식이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진입(진압) 경찰의 불쌍한 졸병이 커피믹스 하나 가져간 것을 가지고 그렇게 조롱할 리가 없다. 
보수는 기득권이 많다고 하나 그 용사/영웅들의 자연적 수명 때문에--김기춘의 나이가 몇인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보의 용사/ 영웅들은 아직 팔팔한 40~50대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악 프레임과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에 입각한 도덕적 자부심까지 있으니 철옹성이다. 
논리와 비판적 사유는 어디 묻어놓았는지, 의외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물들을 별개로 인식한다. 논리적 모순이 너무 많다. 실물에 몸을 담궈보지 않아, 한국 특유의 바닥현실과 속살과 사물의 연관을 모르는 강단파, 유학파들의 지적 헤게모니가 너무 쎈 탓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실물을 아는 사람들의 무능 탓이다. 
그 결과 문제의 구조, 뿌리를 너무 모른다. 현상과 본질, 문제의 상류, 중류, 하류, 주된 측면과 부차적 측면을 모른다. 양극화-일자리 문제, 수도권 집중 문제, 공공부문 문제, 정치와 지방자치 문제, 소모적인 경쟁, 노조와 농협 문제, 재벌과 GDP 문제 등등.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별 의미가 없다.
2014년은 좋은 생각의 대중화, 코어 네트웍의 공고화, 물적 기반의 안정화를 이루는 해로 생각하고 있다. 100문 100답집 형식이 될지, 매니페스토 형식이 될지, 논문적 형식이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생각을 간명하게 집약 집중한 책 하나는 쓰려고 한다. 이런 거라도 안하면, 작은 헛소리, 헛발질에 칼 휘두를 것 같아서다. 그러면 동네 쌈질 하다가 볼 일 다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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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는 나도 앞뒤로 합치면 1/3 가량 읽었기에 간단히 소감을 썼다. 그래서 담벼락 서핑하다가 이 짧은 독후감이 눈에 띠었다.
그리고 확인된 양아치 이재명, 조국과 검증된 깡통인 한동훈에 대한 묻지마 지지 심리의 뿌리를 봤다.
철도원삼대는 민족사적 정통성이 현 북한에 있다는 역사관에 입각해서 씌어진 소설 책이다. 일제하 좌익 노동운동-해방 이후에는 대구 10.1폭동-2.7구국투쟁-전평총파업-4.3-여순 등을 잇는 대한민국 건설 저지 투쟁과 6.25 적화통일 투쟁이 역사적 정통이라는 얘기다. 이창우씨의 댓글에 그 역사관과 정서가 좀 더 선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봉건 조선시대엔 양반세도에 눌려 죽고, 일제시대엔 친일 경찰에 고문당해 죽고, 해방 후엔 반공 친미로 갈아탄 친일파들의 빨갱이 사냥에 죽고, 일본 관동군 출신의 변절자 박정희 군부 독재정권의 긴급조치에 죽고, 그의 양아들 전두환 군사깡패의 광주학살에 죽고 사상전향공작 녹화사업에 죽고… 슬프디 슬픈 역사였다. 그럼에도 갑오년 동학 농민전쟁으로, 기미년 만세운동으로, 4월 혁명으로, 부마항쟁으로 광주항쟁으로, 유월항쟁으로, 촛불항쟁으로 이만큼 밀어왔다."
1980년대 초중반 대학 1~3학년 때 나도 이 친구와 비슷한 역사관과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리산, 한라산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에서 뜨거운 무엇이 밀고 올라왔다.
그런데 얼마전 철도원삼대를 읽고, 경악했다. 1943년생 황석영이 80이 되어도 그 허구와 사기와 무지로 구성된 반역적 역사관,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는데, 이창우 같은 독자가 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철도원 삼대와 통일열사/해방전사는 만동묘에 모셔진 명나라 신종 같은 존재다.
황석영과 이창우는 현실이 참 불편할 것이다. 북한이 시원하게 이겼어야 하는데, 저 모양이니 개떡 같은 역사요 현실이다.
이런 정서 가진 사람들 제명에 못 죽는다. 박현채, 김남주 등이 60대에, 40대에 암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느꼈다.
아참, 4.19-5.18-6월항쟁-촛불혁명을 철도원삼대의 가치(인민공화국 만세)를 구현하는 투쟁으로 뭉뚱그리는 것 같은데, 이건 4.19-5.18-6월항쟁-촛불혁명에 대한 모독이다. 이 정신을 사취하려는 짓이다.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 하니, 이를 확 뒤엎어 버릴 것 같은 이재명, 조국에 환호하는 것이다. 이재명과 조국에 대한 불가사의한 지지율의 뿌리는 바로 현실에 대한 강력한 혐오, 분노, 거부, 전복 심리다.
마찬가지로 윤정부와 국힘에 대한 비슷한 혐오, 분노, 거부, 전복 심리가 있다. 한동훈에 대한 만만치않은 팬덤의 본질이다. 물론 여기에 연예인에 대한 (논리, 이성을 내팽개친) 팬심(감정적 환호 등)도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윤정부와 국힘당에 대한 비판, 제언 글이라면, 나만큼 많이 쓴 사람이 없을 것이다. 책만해도 4권 이니. 그 중에 한권은 "국민의힘 당으로는 안된다"가 있다. 윤정부 까기, 국힘당 비판하기, 원희룡-나경원-윤상현 까기 대회가 있으면 금메달 자신이 있다. 대한민국 까기 대회를 해도 메달권에 들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내가 왜 한동훈을 정책 깡통, 정무 깡통, 성찰 깡통, 공심 깡통(사심 그득)이라고 비판하면서 극력 반대하는가? 왜 한동훈만은 안된고 입에 거픔을 무는가?
그것은 한동훈은 어려운 국힘당과 윤정부와 대한민국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북한은 대안이 아니고, 북한이 유포한 역사관이 준거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원수같은 국힘당도 한심한 윤정부도 더 나은 쪽으로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발 정신 좀 차리시길. 한동훈 물고 빠는 지인들에게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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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 책상위에 그 유명한 해전사 1권이 있는데(제 손때가 묻은 책은 아닙니다) 해전사에 감화 받은 분이 있으면 반드시 읽었으면 합니다. 역사학자의 글과 다릅니다. 40년 전에 이런 글을 읽었다면 저도 586도 대한민국도 참 달라졌을 것 같은데.....
위선과 거짓, 무능과 비겁의 끝판왕인 문재인정권이 아직도 40% 내외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말종 정치인인 이재명후보가 무려 47.8%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괴력의 원천은 수십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서사(story)입니다. 동학(반외세반봉건)-항일독립운동-분단 저지 운동-(북중러 3국 합작의 침략 전쟁과 북한의 참상은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반독재민주화운동-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서사!!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서사는 조선로동당이 읊고 있고, 남한에서 가장 선명한 정치 서사는 민주노동당 원강령이었습니다. 1987년 이후 탄생한 정부 중에서 문재인정부만큼 서사가 강력한 정부는 없을 것입니다
문정부는 촛불시민혁명 서사와 위정척사파와 공산주의, 민족주의 운동으로부터 내려오는 서사 2개를 다 갖고 있습니다.
사실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이라는 구절이 있는 대한민국 헌법이 문재인-노무현-김대중정부가 휘감고 있던 서사와 유사합니다. 이 서사에서 정통과 사통, 도덕과 부도덕, 불의와 비운에 스러져간 피해자와 무도한 가해자(수구 보수 냉전 기득권 재벌 검찰 등) 프레임이 만들어졌습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는 한강의 기적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개항이후 150년, 해방이후 77년, 1987년 이후 35년을 설명하는 별도의 서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가비전이나 핵심 가치에서 엣지(대립물)가 없습니다. 선진화 협치 통합 경제 복지의 이름으로 우는 아이 젖주는 심정으로 무원칙한 양보와 타협을 해왔습니다. 물론 오만과 비겁과 자해도 있었고.....
윤당선자를 비롯하여 이명박 박근혜의 메시지와 행보를 보면, 이나 혼미와 실패를 뜯어보면 가치 비전 실천규범 전체를 꿰는 서사의 부재 내지 부실이 눈에 띕니다.
150년은 위정척사파와 문명개화파의 대결이 맞는 것 같습니다. 1987년 이후의 대립구도는 좀 집어내긴 어렵지만....
주대환의 말인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위정척사파의 반동사상과 문명개화파의 진보사상이 대립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실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이념과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는 겉모습만 달리할 뿐 근원적으로 문명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갈등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대환 선배가 대한민국 역사 바로 알기를 강조하고, 근현대사에 심취한 것을 10여년 전부터 봐왔는데,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노인증후군인가 싶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깊이 이해 됩니다. 바른 역사 인식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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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의 탄생
주대환(<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 저자)
제1강
(2022. 3. 17)
- 민주공화국의 꿈은 어디서 왔는가? -
우선 이렇게 멋진 <이태원클래스>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윤범기 기자님을 비롯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 강의의 제목은 ‘대한민국의 탄생’입니다.
대한민국 탄생의 세 단계
대한민국의 탄생은 꿈의 단계, 설계의 단계, 실현의 단계, 세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건축의 과정과 비유한다면, (1) 아름다운 집에 살고 싶다는 꿈과 살고 싶은 집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2) 그림으로 설계도를 그리고 아무데나 남의 땅이라도 가건물을 지어보고, (3) 내 땅을 구하여 현실의 기초 위에 실제로 집을 지은, 그런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3회에 걸쳐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1850년생 이상재, 1875년생 이승만, 1900년생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세 세대(three generations)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 이름, 국호(國號)부터 살펴보시죠.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국호를 두고 치열한 토론과 표결이 전개되었습니다.
물론 다수결로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습니다만, 상당한 수의 의원들은 ‘고려공화국’으로 하자고 주장합니다. Republic of Korea의 깔끔한 직역이죠. 지금도 우리는 세계를 향해서 말할 때는 Great라든지 그런 형용사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저 ‘Republic of Korea’라고 부릅니다. 다만 우리끼리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스스로 궁궐을 지킬 힘조차 없던 한심한 나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 뜨거운 이름,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한 글자를 바꾼 이름이기도 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c of China)를 모방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3•1운동 직후에 한성과 상해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의 국호가 대한민국이었다는 사실과 임시정부의 집정관총재(대통령)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이승만 박사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people이라고 써놓고는 (인민이 아닌) 국민이라 읽고, Liberation Day를 (해방절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광복절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여하튼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름과 그 정체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에서도 그 제1조에 역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민주공화국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같은 왕국들이 흥하고 망하면서 이어졌지만, 민주공화국은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사실 유라시아의 구대륙에서 민주공화국은 흔하지 않습니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같이 신대륙에서 근대에 세워진 나라들은 민주공화국이 많지만, 구대륙에서는 매우 드뭅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이 연이은 혁명과 전쟁으로 커다란 희생을 치른 나라만 온전한 민주공화국이 되었고, 영국과 일본, 스웨덴과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은 여전히 왕국(王國)이라는 근대 이전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외형적으로는 입헌군주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35년 동안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고통과 건국 초기의 큰 전쟁을 치르고서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큰 희생을 치르고 큰 고통을 겪은 나라들이 민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아니, 혁명과 전쟁 등으로 다른 나라 못지않게 큰,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아직 제대로 된 현대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지 못한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운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닙니다. 조선 왕국이 망하여 식민지가 되었던 시대와 해방 후 한국전쟁이 끝나기까지, 즉 건국 과정에서 목숨을 바치고, 피땀을 흘려 이렇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신 조상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씨를 뿌리고 싹을 가꾼 사람들
그러면 중국(명, 청) 제국의 번속국(藩屬國)의 하나였던 조선 왕국 청년들에게 독립한 민주공화국이라는 꿈을 가져다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그 사람을 만나러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독립문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만날 분은 서재필(1864-1951) 선생입니다. 자신이 세운 독립문 옆에 독립신문을 오른 손에 꽉 움켜쥔 서재필의 동상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1884년 갑신정변에 스무 살 막내로서 참여한 사람입니다. 3일 천하가 무너졌을 때 그는 일본으로,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다른 선배들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그는 미국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고등학교부터 다시 공부하여 의사가 됩니다.
갑오개혁을 주도한 개화파 정권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중추원 고문이 되었지만, 관직을 맡지 않고,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바로 중국의 번속국이 아니라는 선언이죠. 이로서 서재필에 의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본노선이 정립되었습니다. 그것은 친미노선이고, 민주공화국의 노선입니다.
독립신문 창간호 사설을 읽어보십시오. 거기에는 아주 분명한 민주주의 지향이 담겨 있습니다. 순 한글로, 구어체로 쓰여져 있지요. 23년 후에 최남선이 쓴 기미독립선언서와 비교해도 훨씬 현대적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현실 권력인 대한제국과 고종을 인정하는 척했기 때문에 민주공화국을 노골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분명히 미국을 모델로 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스물 한 살의 청년 주시경(1876-1914)이 독립신문 1897년 4월 22일자에 기고한 국문론(國文論)을 읽어보십시오. “한글이 진정한 글자이고 한자는 그림에 불과하다”는 혁명적 주장은 정말 대단합니다. 한글을 국문(國文)이라 부르다니, 엄청난 사상혁명이 아닌가요?
실은 이에 앞서 더 큰 사상혁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880년 김홍집(1842-1896)이 일본으로 수신사로 갔다가 만난 중국사람 황중헌으로부터 받아온 <조선책략(朝鮮策略)>으로 대표될 수 있는 세계관의 변화입니다.
구체적 내용은 미국과 수교하기를 권유하는 책인데요, 그 배경이 되는 세계관과 현실인식이 여전히 중화질서와 성리학에 갇혀 살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 격렬한 반응은 “어느새 털끝이 일어서고 쓸개가 떨리며 이이서 울음이 북받치고 눈물이 흐릅니다”라는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의 한 구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위정척사파의 반동사상과 문명개화파의 진보사상이 대립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실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이념과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는 겉모습만 달리할 뿐 근원적으로 문명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갈등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선책략과 영남만인소는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읽어야할 문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중에 이야기할 박헌영의 <8월 테제>와 함께 <조선책략>을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문서를 읽지 않고서 한국 근현대사를 말하지 말라”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제필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 이름을 쓴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로 그가 귀국한 직후 고종이 몰래 아관파천을 하고, 하루아침에 고종으로부터 배신당한 총리대신 김홍집이 길바닥에서 참혹하게 죽는 모습을 보았으니, 5년 동안 낮에는 막노동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를 다니는 고생 끝에 1890년 취득한 미국 시민권이야말로, 인권도 법치도 없는 조선이라는 중세 야만국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패라 여긴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실 이미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 부모와 형과 아내가 음독자살하고, 동생은 참형되고, 두 살짜리 아들은 굶어죽었는데, 누가 그의 미국인 행세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서재필은 반동 세력에 밀려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청년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중화제국의 번속국(藩屬國)이 아닌 독립국, 왕국이 아닌 공화국, 군주정이나 귀족정이 아닌 민주정의 나라를 꿈꾸는 청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을 돌본 아버지 같은 분, 서재필이 뿌린 씨앗에서 나온 새싹들을 돌본 사람은 월남 이상재(1850-1927) 였습니다.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서울시 종로 4가 종묘 앞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거기 가면 월남 이상재 선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1898년 종로거리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한 후에는 경성YMCA 총무가 되셨습니다. 1924년에 조선일보사 사장도 하고, 1927년 좌우합작으로 만들어진 신간회 초대 회장이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에게 우(右)는 아들 세대이고, 좌(左)는 손자 세대입니다. 그는 이동휘(1873-1935), 이승만(1875-1965), 안창호(1878-1938) 같은 아들 세대, 박헌영(1900-1955), 조봉암(1899-1959) 같은 손자 세대를 보살피고 돌보았습니다. 특히 이승만을 아들 같이 키우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종로에 동상이 서있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왜 만민공동회가 중요한가요? 바로 만민공동회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근대 시민으로 거듭 났기 때문입니다. 장차 이 땅에 민주공화국을 세울 주체가 나타난 것입니다. 백정 출신의 박성춘이 연단에 올라 연설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부 고관대작들과 시장 상인들과 백정이 함께 어울려서 정치 토론을 하는 이 모습은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기도 했던 김홍집(1842-1896) 총리가 갑오경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홍집은 김옥균(1951-1894)보다 아홉 살이 많습니다. 그는 김옥균을 비롯한 철없는 동생들이 일을 벌여놓으면 뒷수습을 하였습니다. 법률과 제도를 바꾸는 실질적인 혁명은 그가 다 했습니다.
서재필이 씨를 뿌리고, 이상재가 가꾸기 전에 밭을 갈아엎어 놓은 분이 김홍집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는 김홍집, 현대사에서는 조봉암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만민공동회가 거듭되면서 고종을 몰아내고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하는 급진적인 청년들의 움직임까지 나타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스물 세 살의 청년 지도자 이승만(1875-1965)이 잡혀 들어가서 죽을 뻔했지만 선교사들의 구명운동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5년 7개월 만에 풀려납니다.
민주공화국의 꿈은 어디서 왔는가?
이승만과 주시경, 이동휘와 안창호에게 독립국, 민주공화국의 꿈을 심어준 서재필과 이상재 외에도,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려면 우리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지에 가야 합니다.
여러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지 가 보셨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예, 서울시 마포구 2호선 합정역에 있습니다. 꼭 한 번 가보십시오, 정말 큰 감동을 느끼실 겁니다. 신학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저 멀리 동아시아 한 귀퉁이에 있는 미지(未知)의 나라 Korea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교를 하다 선교가 잘 안 되어서 조선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와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1859-1916), 두 미국인 청년들이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가장 먼저, 1885년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배재학당을 세우고, 바로 거기서 이승만과 주시경을 비롯한 여러 조선의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아까 말씀을 드렸듯이, 스물 한 살의 청년 주시경(1876-1914)이 독립신문 1897년 4월 22일자에 “한글이 진정한 글자이고 한자는 그림에 불과하다”는 혁명적 주장을 하였지만, 그 사실을 배재학당 학생 주상호(주시경의 젊은 시절 이름) 혼자 깨달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조선에서 발견한 Korean Alphabet이라는 엄청난 문화유산이야말로 참된 글자라는 사실을 학생 주상호에게 말해주었겠지요. 그리고 서로 영어와 조선말을 가르쳐주면서 조선말의 문법을 세우고, 띄어쓰기를 시도하였을 겁니다.
주시경 선생은 사십(四十)도 되기 전에 과로사하였지만, 많은 제자들을 길렀습니다, 그래서 김두봉, 최현배, 김윤경, 이극로, 장지영 등 나중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탄압받는 학자 대부분이 주시경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의 스승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민족주의자들로 가득한 중∙고등학교 역사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시경의 스승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와 헐버트와 게일이었습니다.
바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분들이지요. 헐버트(1863-1949)는 “한글만큼 우수한 글자는 세상에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사민필지(士民必知)>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선교할 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습니다. 정부가 무능한 조선에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는 외국인 선교사들은 새로운 문명의 전도사로서 대환영을 받게 되고, 기독교는 빠르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본국으로 보고서와 편지를 쓰고, 수시로 본국에 돌아가서 순회강연을 하면서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심에 있는 Korea라는 나라에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장차 기독교 나라가 건설되리라는 믿음을 전하면서 후원금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언더우드는 연세대학교를 세우고, 에비슨(1860-1959)은 세브란스병원을 세웠습니다. 세브란스라는 철강사업으로 큰돈을 번 기업인이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스크랜턴(1832-1909)이라는 여성 선교사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세웠습니다. 베어드(1862-1931) 선교사는 평양에 숭실대학교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학교와 병원 가운데 상당수가 이들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 게일(1863-1937)은 성경을 번역하고, 많은 책을 써서 한국을 세계에 소개합니다. 영국에서 온 기자 베델(1972-1909)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습니다.
평양에서 활동한 여성 의료 선교사 로제타 홀(1865-1951)은 박 에스더라는 최초의 한국인 여성 의사를 길러내고, 의료 선교사 무어(1860-1906)는 백정의 아들 박서양을 의사로 교육시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서 배포하는 영문판 안내 팸플릿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The missionaries profoundly influenced Korean society, not only by establishing hospitals and schools, but by affecting its intangible values, thus contributing to the abolition of the class hierarchy in old Korea."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values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인권, 평등, 자유... 그런 것들이죠. 평등한 인권, 언론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는 과학 기술 문명과 함께 서양에서 들어온 가치입니다. 그것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땅에 가지고 온 선물입니다. 이동휘와 이승만과 주시경과 안창호 등 당시의 청년들은 그 가치를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이고, 이 땅에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98년 서울 종로와 평양 쾌재정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스물 세 살의 이승만과 스무 살의 안창호는 연설하면서, 그 꿈이 바로 민중의 꿈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들 청년들이 대중적인 지도자로 떠오릅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역사는 지난 124년 동안 장엄하게 흘러 마침내 우리나라는 유럽 문명과 동아시아 문명이 만나서 융합하는 멋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서 이 땅에 민주공화국의 꿈을 가져다준 미국과 캐나다 선교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만,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지에 갈 때마다 정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가보시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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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이 낳은 큰 스승 도산 안창호를 늦게 알게 된 것은, 1970~80년대 운동권과 (진보)사학계가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주로 피를 흘린 항일무장투쟁에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동학(갑오농민전쟁), 3.1운동, 윤봉길/이봉창 등 수많은 의사/열사들의 총폭탄 테러, 적색노조/농민조합운동, 만주의 항일빨치산 투쟁 등이 주류가 되고, 나머지는 자치운동, 물산장려운동,민족개량주의 등으로 폄하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 보니 윤치호, 이광수 등은 민족반역자가 되고, 안창호는 별 시덥지 않은 운동을 한 사람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런 편향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당시 민중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패륜적 반역자와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기 때문이고......그러다 보니 지식사회의 핵심 화두가 여전히, 과거사에 함몰되어 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헬조선 현실에 대한 성찰반성이 증발한 것이다. 그 비극적 장면이 151버스 앞자리의 위안부 소녀상이 아닌가 한다. 이건 거의 코리아 몬도가네 수준인 것처럼 보인다. 이거 기획하고 실행한 자들은 아무래도 혼이 정상 같지 않다.
도산 안창호는 맨땅에서 헤딩이라도 해 가면서 국가, 민족, 사회를 바로 세우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준다. 안창호의 말과 행동과 가까운 사람들의 평은 (성경 구절구절이 가슴에 콱콱 박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성경을 넘기면서 받는 감흥과 비슷한 뭔가를 준다.
어차피 역사는 현재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과거이자, 과거와 현재/미래의 대화라고 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도산이 다산, 다석, 백범, 단재 등을 다 합친 것 보다 백배, 천배 더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늘이 8.15라서 그런지, 이런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책 155쪽 내용이다.
도산은 경술 국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러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자가 누구요? 그것은 나 자신이요.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에 조아(손톱과 어금니)를 박게 하였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기를 허용하였소? 그러므로 망국의 책임자는 곧 나 자신이요"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되는 것이 ‘아아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임놈이요, 저 놈이 죽일놈이라고 만 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도산은 상해에서 기미 당시에 이렇게 열렬하게 부르짖어서 동포가 서로 투쟁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 책임전가는 분명히 비굴한 자의 일이요, 또 민족의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도산은 보았다.
이렇게 거짓과 공론을 우리 민족성의 가장 큰 결함이라고 간파한 그는 자기와 동포의 마음에서 이 악습을 제거하기를 결심한 것이었다. 務實力行(무실역행)이 그 대책이었다. '참'과 '행'을 힘쓰자는 것이다.
**저 말은 무엇을 거부, 반대하는지를 봐야 머리에 들어온다. 그것은 거짓, 허위 사기, 허언을 멀리하고, 실천없는 공리공담을 멀리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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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오후 3시) 김용삼 기자의 발제문.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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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親中) 사대주의와 반일 종족주의는 완벽한 닮은꼴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광풍과도 같은 반일감정이 또 다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번 반일감정의 근원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걷어찼다. 2015년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던 위안부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반일감정 조장 제2탄은 징용 배상 판결이었다. 이로써 1965년 박정희 정부 시절 체결했던 한일협정의 근본 취지가 도전받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무역 보복으로 대응하면서 한일 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뿌리를 추적해 올라가면 단재 E. H. 카의 사관(史觀), 신채호의 사관이 발견된다. E. H. 카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현재의 시각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랑케의 실증주의적 사관을 비판하고 나선 E. H. 카의 이론은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를 써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적나라한 왜곡·날조가 자행되기 시작했다.
신채호 사관의 세계관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있어 아(我)는 조선민족, 비아(非我)는 조선민족 이외의 민족이 된다. 신채호가 김원봉의 부탁을 받아 쓴 ‘의열단 선언’(조선혁명선언)은 신채호의 극단적인 투쟁사관의 백미다.
신채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과 그의 추종자들이 주창한 외교독립론, 실력양성론, 준비론, 자치론을 격렬하게 성토하면서 “일제와 협력하려는 적(敵)”으로 규정했다.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방략은 칼 한 번, 총 한 방 쏘지 않고 편지질이나 하고, 조선의 독립을 외국의 처분에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매국노 짓이라며 질타했다.
신채호는 ‘의열단 선언’에서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 가진 자는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했다. 따라서 이들도 의열단의 암살 대상이 되었다.
신채호와 의열단원들이 원했던 노선은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였다. 즉 폭력적 암살·파괴·폭동을 줄기차게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며, 부단한 암살·파괴·폭동으로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이상적인 조선을 건설해야 한다면서 민중직접혁명론을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일제와의 투쟁에 너무 바빠서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게 되자 자기 부인에게 “나는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으니 도저히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 되면 고아원에 맡기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이승만이 주장한 외교독립론은 신채호 등등의 무장투쟁론과는 근본적으로 세계관이이 달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유럽 전체가 파괴와 살육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유럽 열강들이 아시아 문제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일본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일본은 동맹국인 영국이 독일과 교전상태에 돌입하자 1914년 9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적도 북쪽의 태평양에 흩어져 있던 독일령 섬들을 점령했다. 이어 칭다오(靑島)를 중심으로 산둥(山東)반도의 독일 조차지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독일 조차지보다 훨씬 북쪽의 중국 영토에 상륙하여 조차지 인접지대의 독일 상사들이 투자했던 모든 철도, 광산, 공장시설들까지 빼앗았다.
이승만 외교독립론과 신채호 투쟁사관 격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의 판도는 북쪽으로는 바이칼 호 동쪽의 시베리아 지역에서부터 북만주 일대, 중국에서는 산동과 화중(華中)지역 양쯔강(揚子江) 일대, 남쪽으로는 태평양의 남양군도까지 광활한 지역을 장악했다. 그전까지 전 세계를 호령하던 서양 열강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승국이나 패전국을 가릴 것 없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재개 불능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에서는 공산 혁명이 일어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따라서 동아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일본을 억제하거나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러일전쟁 당시까지 일본을 지지하고 성원했던 미국이었다. 일본이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팽창하면 할수록 중국의 주권을 옹호하고 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미국과의 갈등과 마찰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부딪치게 되었다.
열강으로 급부상한 일본은 산업력이나 군사력에서 다른 서양 열강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일본은 해군력 확장에 전력을 기울여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 1922년 워싱턴에서 군축회의를 열어 해군력 확장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강력한 일본을 상대로 김원봉의 의열단, 박용만이나 노백린 등이 구상한 수백 명 규모의 빈약한 병력으로 세계 강국 일본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일 경우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숭고한 이상은 현실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빛나는 법인데, 우리의 무장 독립운동은 이상은 원대했으나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된 후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 부임을 재촉하는 의견에 따라 하와이에서 목재 운반선을 타고 상해로 밀항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첫 임시의정원 회의를 주재한 1921년 1월 5일, 임정 요인들은 독립운동의 방안을 놓고 격돌했다.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은 이러한 현실론에서 출발한다. 일본은 배타적 식민지를 추구하는 나라(대동아공영권)이고, 미국은 모든 나라가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개방·통상을 추구하는 나라다. 따라서 언젠가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여 태평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때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하여 모든 식민지를 해방시킬 것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서로 다른 독립방략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때 해방될 것이니, 지금부터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이승만이 윌슨 대통령에게 국제연맹이 완전독립을 전제로 한국을 일본에서 분리하여 위임통치해 줄 것을 청원하는 문서를 제출하자 신채호는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 놈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강력 성토했다.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도 “이승만은 썩은 대가리”라면서 “자치운동이나 위임통치 원하는 외교가는 원치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승만이 주장한 위임통치론의 핵심은 한국을 ‘통상이 자유로운’ 문호개방 지역으로 만들어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즉, 한국이 미국 위임통치 하에서 중립적 지위를 누리고, 중립국 체제의 자치적 정치 환경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 미국과 자유통상을 통해 국부 증대시켜 실력을 양성한 다음, 그 후에 국제정세 변화를 활용하여 완전독립을 달성한다는 단계적 외교독립론이었다.
신채호나 공산주의자 이동휘는 이승만이 주장한 위임통치론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고, 세계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지성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이승만은 자신의 신념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라는 저서를 발표했다. 그 후 세계의 역사는 이승만의 예언대로 진행되었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한 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일본이 패망했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때어나 3년간 통치한 다음 독립시켰다.
오늘날 한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반일감정은 신채호처럼 현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상론적, 유토피아적 항일투쟁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반일감정을 교묘히 부추긴 세력은 북한 김일성 집단이다. 그들은 가짜 항일 무장투쟁의 신화를 조작하여 자신들은 일제와 무력으로 싸운 정의의 집단, 남한은 친일파 매국노들이 외세를 등에 업고 분단정권을 세운 불의의 집단으로 창작해 냈다.
북벌론·소중화(小中華) 사상과 반일감정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허구를 바탕으로 무장투쟁 집단을 선(善), 외교독립 집단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그 조작된 등식에 역사를 끼워 맞추는 식의 왜곡 날조를 감행했다. 북한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이어받은 국내의 좌익·좌파·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은 자신들의 투쟁의 뿌리를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맞서기 위해 봉기했던 의병, 동학 농민운동, 3·1운동에 이어 일제 하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 무장투쟁, 해방 후 미군정이라는 외세에 대항한 좌익들의 단선단정 반대 투쟁,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4·19, 군사독재에 저항한 광주 5·18, 그리고 군사독재의 연장인 박근혜 정부를 쫓아낸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이러한 황당무계한 사관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까지 집어넣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반일감정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이처럼 그 뿌리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 신채호와 E. H. 카의 사관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효종 시대의 북벌론과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나타난다.
한국인들은 삼국시대부터 중국에 사대하고 이웃 나라와 교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중화문명의 후예요, 다른 주변국들은 야만이라는 근거 없는 종족적 우월의식을 배양해 왔다. 조선 초기 여진족은 조선 조정에 조공을 바치고 볼모를 살던 야만족이요, 일본은 우리가 유교와 불교, 문화를 전해준 쪽바리 야만인이라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머리에 유전인자처럼 박혔다.
1637년 야만인이 세운 청나라에게 삼전도에서 조선 국왕이 치욕스러운 항복을 한 이후 조선은 문명의 시계가 멈춰섰다. 이때부터 만주족이 세운 청은 적대적 타자가 되었고, 조선은 한족이 세운 명나라를 지고지선의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1644년 명나라가 야만족에게 멸망하여 청나라가 출범하자 조선은 군사 1만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가 군사력 300만 명,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청나라를 무력으로 정벌하겠다는 황당무계한 북벌론을 주장한다. 효종과, 노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송시열이 북벌론의 주인공이었다.
북벌론은 실제로 북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벌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한 국내용 프로파간다였다.
이러한 북벌론이 부질없는 환상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환성에서 깨어난 조선 지도부는 자신들을 명나라를 계승한 문명국, 즉 소중화의 나라로 자리매김했고, 자신들을 굴복시킨 청나라를 야만국·오랑캐로 적대했다.
조선의 국가 지도부는 겉으로는 청에게 복속했지만 단 한 번도 청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의 국왕과 세자, 문무백관은 망해서 지구상에서 사라진 명나라 황제에게 200년이 넘도록 제사를 올리면서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를 갈았다.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을 깨부수고 동아시아의 강자로 등장하자, 청나라에 대한 적대감정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치환된다. 조선 조정은 명나라의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상국(上國)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내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한반도에 끌어들인 민비가 참혹하게 시해 당하고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하는 아관파천이 일어난다.
항일 무장투쟁은 새로운 형태의 북벌론
‘적대적 타자’가 일본이 된 이상, 그들을 물리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북벌론’이 필요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러한 ‘주장’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 결과 일제하에서 만주와 중국에서의 항일 무장투쟁이 등장한다.
1940년대 항일 무장세력으로 꼽히는 광복군은 500여 명, 가장 수가 많았을 때가 682명,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 정부군 산하로 조직한 조선의용대는 300여 명이었다. 광복군은 경비 일체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지휘권이 중국 국민당 군대에 소속되었고,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을 중국군이 차지했다. 조선의용대도 모든 활동비와 월급, 무기를 중국 국민당 군대로부터 지원받았다.
만주에서 김일성이란 존재가 어떤 항일 무장투쟁을 했는지, 이를 입증할 어떠한 사료도, 근거도 없다. 다만, “우리는 이러저러한 무장투쟁을 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처럼 무장투쟁을 내세운 세력들은 명나라의 후예인 장제스(蔣介石)·마오쩌둥(毛澤東)에게 의탁하여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도, 자주적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통수권이나 지휘권을 넘겨주는 것에 대해서도 어떠한 반발심이나 의구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소중화의 세계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세계관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오랑캐의 나라 청이 멸망하고, ‘중화의 나라’가 복원되었으니 그들에게 의탁하여 새로운 ‘적대적 타자’로 등장한 일본을 상대로 ‘정신적 북벌’을 감행한 것이 바로 신채호와 김원봉, 김일성이 주도했던 항일 무장투쟁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이러한 항일 무장투쟁은 오늘날에는 위안부 소녀상 세우기,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립, 일본 여행 가지 않기, 엉터리 항일투쟁 영화 제작 등 새로운 형태의 문화전쟁으로 치환되고 있다. 이제 1965년 체결된 한일 수교협정 재검토까지 제기되고 있으니 한일 외교 파탄은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 한일 수교를 통해 산업화를 이루어낸 박정희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샤마니즘적 주체사상에 기초한 전체주의 국가 북한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북한처럼 폐쇄·고립·독재·변태의 세습 왕조로 후진시키는 첫 단계가 반일 감정 조장하기다.
자, 그렇다면 한일 외교관계가 파탄 나면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가. 이 정도 대차대조표도 따질 줄 모른다면 그들이야말로 무뇌아, 저능아 아니겠는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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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선을 얘기하라면 이거다.
친일독재 타령, 종북좌익 타령하면서, 좌-우-공공 기득권에 영합하여 한 진영의 후보가 되어 대통령 자리 먹어 보려는 선수가 아니라,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공멸의 위기를 직시하고,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합작과 연정을 할 수 있는 선수를 갈망한다.
권좌에 올라, 검찰, 국세청, 감사원, 규제 가지고 미운 놈 혼내주고, 재벌들 갈취하고, 똘마니들에게 공공기관장 자리와 경제예산으로 일용할 양식을 좀 주지만,
수명을 다한 제도와 구조는 거의 손 못대고, 박근혜보다 더한 분노, 증오의 홍수를 불러일으켜, 떠내려가는 그런 정권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손학규, 정의화, 안철수, 새누리의 이른바 비박과 김부겸 안희정 등이 자신의 가치를 더 선명하고 강하게 발산해 줬으면 한다. 한데 모여 같은 당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미증유의 위기, 진짜 위기를 힘과 지혜를 모아, 연정과 합작 방식으로 타개해줬으면 한다.
"해방 후 ‘합작’을 실패하게 한 책임의 반은 좌파에 있다.
극좌와 극우가 아닌 사람들이 ‘합작’을 주장했고, 미국과 소련을 업은 극좌와 극우에 의해 ‘합작’은 좌절되었고,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남북 합작이 아니다.
옛날의 좌우합작도 아니다.
중국의 국공합작 같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좌도우기의 개혁을 할 수 있는 합작과 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당분 간 다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국가의 과제가 70년 동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당분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통일’이라는 단어도 심장 속 깊이 감추어라.
‘한 민족 두 국가’로 외환(外患)을 벗어나자.
우선 대한민국의 인간화·선진화를 위해 ‘합작’하고 ‘연정’하자.
때가 되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통일이 거론될 것이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나아간 ‘아시아 연방’이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몽양 여운형(이기형 지음)을 다 읽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힘들다.
물론 저자의 관점에서 쓴 책이니까, 반대자들의 의견도 있을 것이다.
몽양의 연설 내용이다.
“....해방된 오늘 지주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지식인·사무원·소시민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보시오. ....농민·노동자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들어 보시오. ....손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먼요. 그렇습니다. 일제 통치 36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만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같이 굳게 손을 잡고 건국대업에 매진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은 일찍이 압록강· 두만강 저 쪽 광활한 만주 땅에 용맹을 떨치고 웅지를 펴지 않았습니까.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개토왕비는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또 문화적으로는 금속활자· 고려청자· 훈민정음 등 세계가 자랑할 뛰어난 민족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문화적 긍지를 가지고 세계사적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는 건국대업에 임하기 위해 조선인민당을 창건합니다.... “
그는 좌우합작과 통일조국을 위해 헌신하다가 좌우 양쪽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당시 경찰의 묵인 아래 암살되었다.
어제 밤 문득 이 책을 보다가 ‘동학’이 생각났다.
나는 과거 역사를 많이 공부해보지 않았다. 그 편파적 해석이나 현실에 도움이 안되는 역사 논쟁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조선 후기 근대부터 시간 나는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
동학운동과 상층의 근대화 세력 간의 합작은 불가능했을까?
일본 소규모 군대의 기관총 앞에 귀중한 근대화의 동력을 소멸시킨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민족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기회는 해방 후 ‘합작’이었다.
이것도 실패하였다.
나라가 망하고, 분단되고, 동족 상잔까지 하는데는, 외세의 절대적으로 우세한 힘이 있었지만 그 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내부의 분열과 상잔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한다면, ‘합작’했어야 한다.
‘합작’ 실패의 역사였다.
이제 세 번째 기회다.
어떤 사람들은 ‘합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마 좌파의 ‘통일전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분들에게 몽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방 후 ‘합작’을 실패하게 한 책임의 반은 좌파에 있다.
극좌와 극우가 아닌 사람들이 ‘합작’을 주장했고, 미국과 소련을 업은 극좌와 극우에 의해 ‘합작’은 좌절되었고,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남북 합작이 아니다.
옛날의 좌우합작도 아니다.
중국의 국공합작 같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좌도우기의 개혁을 할 수 있는 합작과 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당분 간 다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국가의 과제가 70년 동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당분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통일’이라는 단어도 심장 속 깊이 감추어라.
‘한 민족 두 국가’로 외환(外患)을 벗어나자.
우선 대한민국의 인간화·선진화를 위해 ‘합작’하고 ‘연정’하자.
때가 되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통일이 거론될 것이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나아간 ‘아시아 연방’이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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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and 6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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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얘가 학자인가?? 입 더러워질까봐 욕 삼킨다.(욕 삼키면 식도와 위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살다보니 정말 기상천외한 논리를 다 보는구나. 북한 방송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신은미와 어깨를 견줄만하다. 황당무계 견강부회의 극치다.
~~~~~~
그러면서 "아베 정권이 경제공격을 개시하자마자 자한당(자유한국당)과 족벌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 정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100여 년 전 매국단체 일진회가 했던 짓 그대로다. 이미 한 번 겪은 일이니 같은 수법에 또 당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정권의 공격이 형식은 '경제공격'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공격'"이라며 "현상은 국가 대 국가의 분쟁이지만 본질은 일본 군국주의 잔존세력 대 평화를 지향하는 양심세력 사이의 싸움"이라고 부연했다. 나아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국민의 자존심이고 호혜평등한 자주외교의 토대이며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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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애들 두번 죽이는구나!! 민주공화국의 성패는 결국은 시민적 덕성에 달려있는데,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후속대응과 지금 하는 행동은 시민적 덕성의 무덤이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아프다.
애들 두번 죽이지 마라. 뼈속깊이 공유하던 슬픔과 성찰을 짓밟지마라!! 당신들만 유족 아니고, 당신들만 부모 아니다. 그리고 유족 앞세워 저열한 정략 휘두르는 자들!! 니들만 시민 아니고, 니들만 슬픈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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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에 서 있으면, 이쪽 저쪽이 비교적 잘 보인다.
또한 본질과 구조를 천착하면 다양한 현상들이 왜 어떻게 나타나는 지도 비교적 잘 보인다.
오늘 저녁은 아마도 상대에 대해 불안감과 혐오감이 심한 사람들일수록--일단 쟤들을 싹 쓸어버려야 새로운 사회의 초석이 놓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낭패감과 당혹감이 클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변화와 개혁의 추동력은 80~90%는 진보/좌파라고 알고 있다. (나머지 10~20%가 마가렛 대처 같은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는 보수/우파의 불가사의한 힘(대중적지지)의 실체와 근원을 모르는 듯 하다.
나는 이 힘의 실체와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고 쓸수 있다면, 한국의 무능하고 찌질한 보수/우파 정도는 능히 역사의 변방으로 밀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 7~8년 동안 '진보/좌파 혁신 내지 정상화'를 위해 부끄럽지 않을만큼 노력은 한 것 같은데, 웬걸 오히려 내가 변방으로 밀려나버렸다. 확신컨대 김대중/노무현도 그런 것 같다. 어느 당에서는 두 사람의 사진을 걸어 놓고 사기를 치고는 있지만......
한국 보수/우파의 힘은 인간과 기업의 탐욕과 속성, 이익집단의 동학, 정부(공무원)와 시장의 힘과 한계와 속살, 국제관계의 동학 등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균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trade-off관계에 있지 않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 그것이 생명이든 안전/안보든 인권이든 민주주의든 돈이든.......당연히 속물적 속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 진보/좌파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당위가 너무 일면적이면서도 강하다. 이 당위의 원류는 oecd지표 이기도 하고, 유럽 진보/좌파의 가치이기도, 유교 도덕률 이기도 하고, 마르크스주의나 민족주의이기도 하다. 핵심은 도덕(좋은 의도), 인권/기본권, 생태, 자주(상호 대등하고 호혜적인 국제관계) 등이다. trade-off 같은 복잡미묘한 문제를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책적 귀결은 인권/기본권을 확대강화하고(해고는 살인이고, 여성 의무공천 해야하고, 기초생보자 권리는 손대면 안되고, 공무원 노동3권 보장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도 보장하고......),
시장/자본/기업/금융은 규제하고, 부자와 기업에게 더 많은 책임과 부담을 강요하고, 국가/정부와 사회가 더 많은 자원을 수취/배분하고, 기업/대형마트/개업업자 등 악동(?)들은 더 촘촘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아무튼 기업에게 천사가 될 것을 강요한다. 인내하는 자본이 되어야 한단다. 금융도 실물경제에 충직하게 봉사해야 하고, 미국 역시 (댓가를 받지 않는) 세계의 착한 경찰이자 좋은 이웃이기를 기대한다.
당연히 세상살이 좀 해 본 사람은 이런 진보/좌파의 안목과 마인드로 국가를 절대 운영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안다. 한국 보수/우파/주류의 추악한 면을 더 잘 아는 장년, 노년세대가 저 형편없는 보수/우파를 압도적으로 많이 지지하는 이유이다.
보수/우파의 눈으로 보면, 진보/좌파는 국가의 기강과 질서와 안보 개념이 너무 취약하다.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통진당과 연대는 그 생생한 징표다.
(사실 mb정부하 국정원이 저지른 선거부정을 박통보고 책임지라고 질기고 가열차게 투쟁한 것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시도때도 없이 정권을 흔드는 진보/좌파의 공세에 맞서) '박근혜를 지키자'는 구호가 대중적 호소력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그 무능함이 극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진보/좌파가 만든 나쁜 기억이 그것을 덮을만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수/우파의 눈으로 보면 진보/좌파는 현세대와 약자 코스프레하는 이익집단의 권리는 크게 보지만, 진짜 약자와 미래세대의 권리는 보지 못한다. 기업과 시장과 미국에 대해서는 추한 얼굴만 보고, 정부와 협동조합 등에 대해서는 이쁜 얼굴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썩지 않도록 하고, 너무 편향되지 않게 하는 방부제, 평형수 역할은 하기에 이 정도의 지지라도 나오는 것 아닐까?
사실 한국이 시장 만능주의, 기업이 제멋대로 하는 나라라면--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진보/좌파의 가치는 어느 정도 유효하다. 잠시지만 집권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정부/규제 만능주의인데, 구조적으로 너무 무능하다. 기업의 손발은 너무 많은 포인트에서 묶어놨다. 인권/기본권은 힘센자들만 과잉되게 누리고, 시간이 가도 아래로 내려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무튼 보수/우파는 무능하고, 찌질하다. 하지만 시대가 가는 큰 흐름에 역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진보/좌파는 그 못지 않게 무능하고, 무엇보다도 철이 없고, 시대의 큰 흐름과 충돌한다. 공공/관, 고용노동, 금융, 교육, 보건의료, 외교안보 등 너무 많은 곳에서 그런 조짐이 완연하다.
상대의 약점이나 악덕만 보면, 없어져야 마땅한 존재이다. 그래서 무슨 보수/우파냐 고 한다. 수구-냉전-부패-무능 세력이지 하면서. 물론 무슨 진보/좌파냐고 한다. 종북-친북-떼법-좌익 세력이지 하면서.....
그런데 자신의 약점과 악덕을 보면 자신 역시 없어져야 마땅한 존재이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전혀 건드릴 수 없는 지방선거 이다 보니, 더 의미없는 싸움이라, 지켜보기 더 역겹지만, 그래도 월드컵 보다는 100배는 재밌으니, 오늘 저녁 허심하게 지켜 볼 것이다. 게다가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는 무소속 후보들이 몇 명까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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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and 8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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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3.9 대선 결과를 보고, 정권이 딛고 서 있는 역사적 서사의 위력과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이후 역대 정부의 국정비전, 국정지표, 실천규범(국정운영 원리) 등을 연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체계성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가 제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정리 했지요. 이런 인식 하에서 국가비전은 선진일류국가로, 실천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 국정목표는 신발전체제(질적성장, 법치확립, 다원주의, 고신뢰사회 등), 국정지표는 섬기는 정부, 활기찬시장경제, 능동적 복지, 인재대국, 성숙한 세계국가 등.
사실 선진화는 모든 것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얘기라서, 선진화를 가로막는 질곡이나 대립물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대체로 듣기 좋은 말(중도실용, 품격, 통합, 화합, 협치, 신뢰, 질적성장, 선진통일 등) 대잔치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한국 특유의 모순부조리에 압박과 설움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피와 눈물, 분노와 한숨을 수반하는 투쟁을 회피하거나 외면합니다. 그래서 mb정부나 박근혜정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문재인정부와 비교하면 천백배 나은 정부이지만, 어쨌든 인구•연금•재정•지방•산업•교육 등 다방면에서 밀어닥치는 지속가능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은 별로 없습니다. (쓰고 보니 윤석열정부가 성공을 원한다면 이명박정부에 대한 평가, 반성 아니 성과, 한계, 오류를 천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듯한 서사(敍事=story)에 뿌리박지 않은 가치, 비전, 방법 혹은 국가비전, 국정목표, 국정과제, 국정운영원리(실천규범) 등은 대체로 좋은 말 대잔치로 끝납니다. 대립물(엣지)도 흐릿하니 엣지도 없습니다.
서사는 대통령과 정권의 소명의식, 자부심, 동지의식의 토대이자, 사상이념적 통일성의 근간 입니다. 서사가 공유되지 않으면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손발(위와 아래)도 안맞고, 앞뒤가 안맞게 되고, 분노도 자부심도 생기지 않습니다.
서사는 희생과 헌신(피와 눈물), 고난과 승리(환희)로 짜여진 감동적 스토리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조선로동당 규약(김일성 찬양)이 대표적입니다. 동학-독립운동-통일운동-노동운동(전태일)-민주화운동(5.18)-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진보의 서사도 만만찮습니다. 그런데 보수는 서사가 약합니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개항 이후 150년의 서사와 1945년 이후 77년의 서사는 위정척사 vs 문명개화 등으로 읊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87년 이후 35년의 서사 입니다. 이게 흐릿하거나 약하면 윤석열정부는 mb정부 시즌2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1987년 이후 35년은 민주화, 자유화, 세계화, 지식정보화(디지털화) 등이 진행되었지만, 동시에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발전 동력(제도, 정신, 문화 등)의 소진 과정이었습니다.
단적으로 정치와 정부의 통합 조정 기능이 후퇴하면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할 가치(권리-권리, 권리-의무(부담), 이익-공헌(위험), 권한-책임)간 불균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로비력, 정보력, 투쟁력에 의한 국가(제도•규제•정책•예산)를 통한 합법적 약탈(지대추구)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득권(지대)의 성채가 곳곳에 들어서고, 양대정당, 공공부문, 규제산업, 면허직업, 조직노동, 부동산부자 등이 대표적인 기득권이 되었고, 경쟁의 본질은 성안 진입(성안 사람되기) 경쟁이었습니다. 성 자체를 허물려고 하는 움직임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결국 힘없는 약자(자영업자, 영세사업자 등)와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면서 인구•연금•재정•지방•산업•교육 등 다방면에서 지속가능성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은 온 몸에서 암세포가 증식하는 말기암 환자입니다. 사상이념만 바꾸면 치유되는 병이 아니라, 온 몸의 균형이 깨져서 암이 모든 기관으로 퍼진 상태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대한민국은 고장난 자동차입니다. 운전수만 바꾸면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닙니다.
아무튼 1987년 이후 35년을 설명하는 서사의 질이 윤석열정부 성공의 관건이 아닌가 합니다.
저처럼 지난 35년을 설명한다면 지금은 민주개혁 시대가 아니라 자유개혁 시대입니다. 자유(재산권, 통상, 동맹), 자립, (사적)자치, 개방 등이 핵심 가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극히 왜곡된 국가시스템의 재설계, 정상화(합법적 제도적 불의 타파)와 민주•진보-자유•보수-공공부문이 합작한 기득권의 성채 허물기가 시대 정신입니다.
윤석열의 말과 행보와 인사를 보니 서사의 부재, 국정비전의 부실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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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격렬한 갈등과 연초의 (담론 시장에서 목소리 좀 높이는 사람들이 날려보내는) 신년사 비슷한 멜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상식, 논리, 사실(실사구시)의 칼을 들고 이 헛소리, 단견, 즉물들을 베고 쑤셔대면, 그러니까 과거에 내가 노무현, 조국, 장하준, 정동영, 유시민, 손학규,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그리고 신자유주의 타령, 희망버스, 한미fta, 쌍용차, 철도파업 등에 쏟아부었던 정도의 비판을 해 대면, 에너지 분산으로 지금 꼭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참는다.
날카롭고 묵직한 비판/ 비평도 꼭 필요하지만, 사람은 논리나 사실 못지 않게 느낌과 실적과 권위로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안철수의 말이 그럴듯해서 저 엄청난 지지율이 생겼나?
그래서 답답한 심정, 연말 연초 소회를 몇 자에 우겨넣는다.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디테일이 약하고, 거시적 안목도 박약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소명)를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무엇이 대한민국의 성장, 통합, 지속가능성을 옥죄고 있는지를 모른다. 점점 짙어지는 1953/61 체제의 그늘과 1987/97체제의 그늘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성밖 사람들과 청년/미래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잔혹한 앙시앙레짐의 그늘을 주적으로 삼아 죽기살기로 싸워야 하는데, 과거의 주적과 싸우고 있다. 무대위 고릴라 실험 이론이 생각난다. 유신부활이라면서 반독재민주화 투쟁, 노동기본권 쟁취/사수 투쟁 전선에 떨쳐나선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미국, 권력, 자본(재벌), 시장을 성장과 통합을 이루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대체로 크고 강하고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는 듯하다. 경찰, 검찰, 군대 역시 내가 (집권하면) 사용해야 할 소중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하다.
공산주의자(자본과 시장 폐절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는 거의 없을테니 논리가 그런 사람이야 없겠지만, 정서는 그런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민영화=악, 철도민영화는 돈 벌 구멍 없는 재벌에게 확실한 돈벌이 기회(특혜) 주기 술책, 한미FTA=식민지로 가는 고속도로라는 등식이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진입(진압) 경찰의 불쌍한 졸병이 커피믹스 하나 가져간 것을 가지고 그렇게 조롱할 리가 없다.
보수는 기득권이 많다고 하나 그 용사/영웅들의 자연적 수명 때문에--김기춘의 나이가 몇인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보의 용사/ 영웅들은 아직 팔팔한 40~50대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악 프레임과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에 입각한 도덕적 자부심까지 있으니 철옹성이다.
논리와 비판적 사유는 어디 묻어놓았는지, 의외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물들을 별개로 인식한다. 논리적 모순이 너무 많다. 실물에 몸을 담궈보지 않아, 한국 특유의 바닥현실과 속살과 사물의 연관을 모르는 강단파, 유학파들의 지적 헤게모니가 너무 쎈 탓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실물을 아는 사람들의 무능 탓이다.
그 결과 문제의 구조, 뿌리를 너무 모른다. 현상과 본질, 문제의 상류, 중류, 하류, 주된 측면과 부차적 측면을 모른다. 양극화-일자리 문제, 수도권 집중 문제, 공공부문 문제, 정치와 지방자치 문제, 소모적인 경쟁, 노조와 농협 문제, 재벌과 GDP 문제 등등.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별 의미가 없다.
2014년은 좋은 생각의 대중화, 코어 네트웍의 공고화, 물적 기반의 안정화를 이루는 해로 생각하고 있다. 100문 100답집 형식이 될지, 매니페스토 형식이 될지, 논문적 형식이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생각을 간명하게 집약 집중한 책 하나는 쓰려고 한다. 이런 거라도 안하면, 작은 헛소리, 헛발질에 칼 휘두를 것 같아서다. 그러면 동네 쌈질 하다가 볼 일 다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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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Ma and 5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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