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6-25
한승동의 독서무한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오구라 기조 지음, 한정선 옮김/서울대일본연구소(2015)
신영복 교수의 <담론>에도 나와 있지만,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1600만의 중남미 원주민들이 살해당했고, 그곳에 노예로 사냥당해 끌려간 아프리카인도 1600만에 달했다. 앵글로색슨계가 주도한 유럽인의 북미 침략 때는 4천만~6천만의 원주민들이 ‘인종청소’를 당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8천만이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100만으로 줄었다고 했다.
당시 유럽의 평균 생활수준은 인도보다 낮았다고 한다.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등을 쓴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도 16세기까지, 어쩌면 18세기까지도 유럽의 생활수준이 중국·조선보다 훨씬 낮았을 것으로 봤다. 코르테스와 피사로가 아스텍과 잉카인들을 학살하고 약탈할 때 그들 유럽 문명이 아메리카의 그것보다 더 우월했을 것이라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유럽이 더 우월했기 때문에 아메리카나 인도 등을 식민지배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식민지배했기 때문에 더 우월해진 것이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가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한 강연과 질의응답 내용을 책으로 엮은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는 일본 내의 이른바 혐한(嫌韓)과 헤이트 스피치의 유형과 특성, 그 배경적 사고 등을 잘 정리했다.
수긍할 부분이 많지만, 혐한파들의 사고에서 일관된 특징 중 하나는 한국(조선) 또는 동아시아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우월의식이다. 근대(메이지 유신) 이후 형성된 일본인들의 우월의식은 서양인들에 대한 열등의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그 내면에 강고하게 뿌리박고 있는 듯하다. 일본 내의 혐한은 그런 우월의식이 이젠 예전처럼 잘 먹히지 않게 된 현실에 대한 당혹감 내지 위기감에서 비롯된 면도 있다고 오구라 교수는 말했다.
우월의식은 현재의 불균등한 현실의 반영일 뿐이다. 일본이 과거에 우월했기 때문에 조선이나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식민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침략하고 식민지배했기 때문에 우월해질 수 있었다. 문화나 문명의 우열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근대의식의 유산이지만, 근거없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그것을 낳은 침략과 약탈의 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일본이 언제까지 과거사 사죄를 되풀이해야 하냐며 지겨워한다는 혐한파들은 일본 보수우파 주류가 단 한 번이라도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적이 있는지부터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들은 오히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한반도·중국 침략 과정에서 2천만 이상의 주민들이 학살당했다고 일본 학자들은 추산한다.
근대 일본 정한론자들은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장악하면 일본이 위험해진다는 ‘한반도 비수’론을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았다. 그 터무니없는 일본 국수주의가 한반도인들을 얼마나 큰 고통과 불행에 빠뜨렸던가. 그것이 남긴 남북 분단과 동족간 적대관계로 고통과 불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승동 문화부 선임기자근대에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던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면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보장해 주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우파 주류세력은 이젠 중국의 위협을 이유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또다시 미국 앞잡이 노릇을 하며 그때처럼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만들려는가. 혐한파들이 정말 경계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닌가.
한승동 문화부 선임기자 sdh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97618.html#csidx8ad02ecfc5836479882696cca10e8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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