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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에 구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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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목사 2018.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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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 (이정배)
[인터뷰] ‘교회 이후’의 교회(Post Church)를 생각한다
청어람 월례강좌를 앞두고 광화문 광장 인근 카페에서 이정배 목사(전 감신대 교수)를 만났다.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종횡하며 질문을 던져보았다.
청어람(청) : ‘거리의 신학자’ 느낌으로 간간이 뵙긴 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정배(이) : 청어람에 대해서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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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물음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
청 : 이번 강연에서 다룰 주제를 ‘탈/향’으로 잡았습니다.
이 : 제가 그간 관여해온 ‘작은 교회 운동’의 모토로 말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신학적 물음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종교개혁시대, 오늘의 시대가 다 저마다의 질문을 가지고 있지요. 시공간이 달라지면 질문도 달라지고, 대답도 달라집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벗어나야 할 ‘탈’의 가치로 ‘탈성직주의’, ‘탈성장주의’, ‘탈성별주의’를 내놓았습니다. 이 내용은 종교개혁의 3대 원리에 대한 메타 크리틱(meta critic)이기도 합니다. 루터 시대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는 역설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면죄부보다 더 타락한 것이 ‘오직 믿음’이 되고, ‘오직 은총’이나 ‘오직 성경’도 그러합니다. 옛날의 구호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청 : 종교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셨는데, 그간 연구와 활동을 추동해 온 핵심적 문제의식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 : 저는 원래 조직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스위스 바젤대학에는 조직신학 내에 종교철학과 윤리학이 함께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종교철학을 선택했지만, 타종교 연구나 철학 분야로 나아가지 않고, 이런 맥락 위에서 기독교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로 연구해왔지요.
제가 논문을 쓰던 무렵에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 JPIC(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 논의가 나왔어요. 이를 계기로 생태, 환경 등의 주제가 부각되었는데, 제가 몸담은 한국 감리교에는 토착화 신학 전통이 있어요. 저는 이런 흐름과 대화하며 신학 논의 내에 생태학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한국적 생명신학을 추구해왔어요. 하다 보니 자연이나 생명이란 것은 기독교만 독점할 수는 없는 주제라 타종교도 보게 되고, 종교와 과학의 대화도 보게 되어서 관심사가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가 컸습니다. 과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신학이 가능한가’ 같은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간 위축된 정치신학 담론을 다시 꺼내야 했어요.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주의 등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책을 5권 엮었는데, 종교개혁 3대 원리를 비판하고, 정치신학 담론이 축소된 것에 대해 생각하며 토착화, 종교 신학, 발터 벤야민 등과의 연결을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청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여러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어떻게 세월호 참사와 만나게 되셨나요?
이 : 그게 2014년 고난주간 수요일에 벌어진 사건이잖아요. 안산의 후배 목사가 도저히 그 주 부활절에 설교할 수가 없다고 해서 제가 설교자로 갔어요. 예레미야 애가의 구절로 설교를 했는데, 그때는 제가 그냥 머리로 아는 내용을 가지고 애가에 관하여, 안산이란 변방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유가족들 위로해야 하겠다는 수준이었지요. 그런데 그 교회에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박은희 부부가 있었던 거예요. 이들과 진하게 만나고서, 세월호 문제를 보니 이게 큰일이구나 싶었어요. 단순히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풀리지 않는 질문이 너무 많은 거예요. 왜 출항했고, 왜 좌초했고, 왜 구하지 않았고, 왜 방해했는지 하나도 밝혀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세월호를 ‘신과 같다’라고도 했어요. 모두가 말은 많이 하지만 그 실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존재 같았다고 할까요? 유경근 부부가 모두 뿌리 깊은 감리교 집안입니다. 이들 이야기를 듣고, 그 주간에 학생들을 통해서 조사를 해봤어요. 주일 설교에서 세월호 언급한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 봤더니, 조사한 500개 교회 중에 12개 밖에 없었어요. 아주 간략한 언급뿐이었고, 신학적으로는 전혀 다루지 못했던 거죠. 그 이후에 신학생들이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서 시위한 사건도 있었죠. 그 학생들이 학교에서 퇴출당할 위기가 닥쳤는데, 부모들이 감리교 목회자인데도 집이나 교회에서 더 심하게 공격을 받았어요. 그 친구들 보호하려고 노력도 했는데, 기득권 체제 안에서는 뭐 하나 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도 일찍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감각은 실종되고, 사회적 영성이 불가능해진 한국교회,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
청 : 결국 우리 이야기가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가야 하는가’로 넘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 :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용어는 ‘이후 교회(Post-Church)’입니다. 그게 교회 이후일 수도 있고, 종교 이후일 수도 있어요. 미국의 신학자 존 캅(John Cobb)이 85세에 <영적인 파산>이란 책을 썼어요. 미국교회가 파산했다는 주장이었어요. 상담학, 심리학의 차원으로 축소된 교회, 사회적 관심은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고 했어요. 한국교회는 예수가 누군지를 잊었어요.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사람 하나 없고, 자기들만의 리그와 언어에 갇혔어요. 하나님 이름으로 뭐든 가능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이건 ‘영적 병’이고, ‘영적 방종’이에요. 교회가 이토록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버린 거예요. 두꺼운 도그마에 안주하고, 경제적 안정만 바라고, 사회적 감각은 실종되었어요. 사회적 영성이 불가능해진 거지요.
‘작은 교회 운동’을 하면서 보니, 세월호 유족들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작은 교회 사람들이었어요. 만 명 교회 하나보다 백 명 교회 백 개가 낫다고 생각해요. ‘교회 바깥에 구원이 없다’고 해왔는데, 이제는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 되묻게 됩니다. 기독교 도그마를 근본적으로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세월호 어머니’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부활의 공적 차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앙에 세 가지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눈’이죠.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입니다. 둘째는 ‘의심의 눈’이예요. 질문하고,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눈이지요. 셋째는 ‘자기발견의 눈’입니다. 성서 안에 없더라도 성서의 시공간적 제한 바깥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경험이나 사건들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눈이지요.
청 : 은퇴 이후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곧 강연에서 만날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 17-8년 전부터 시골로 갈 생각이었어요. 조만간 횡성으로 이사합니다. 밭에서 일하니까 기도할 때보다 쉽게 마음이 하나가 됩디다. (웃음) 그간 못 읽었던 책을 몰아서 읽고 있는데, 책마다 독후감을 써서 남기고 있어요. 최근에 <제주 4.3사건 진상 보고서>를 읽었고, 한나 아렌트의 저서도 읽었고,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를 선택했던 여성들을 그린 <세 여자>도 읽었어요. 수도원의 일상이 원래 독서와 기도와 노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강연으로 청중을 만날 때,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삶이 실려야 하거든요. 서양은 학문 따로 삶 따로인 경우가 많지만, 동양의 사상은 ‘내 삶이 내 메시지(My life is my Message)’를 추구해요. 어쭙잖지만 제가 힘을 실어서 하는 말에 동감하고 이런 삶을 살아보자는 다짐을 피차에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정리 :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http://ichungeoram.com/12982)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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