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4

[161.6] “더 이상 한국사회를 병들게 해서는 안된다.” 이무성_광주교구, 전 광주대교수


[161.6] “더 이상 한국사회를 병들게 해서는 안된다.”

프로파일 신인간 ・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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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더 이상 한국사회를 병들게 해서는 안된다.”

- 한반도 평화공존시대에 동학 천도교의 역할

이무성_광주교구, 전 광주대교수

천도교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동학을 함께 거론하는 것이 언제부터인지 나의 습성이 되었다. ‘도는 비롯 천도이나 학은 동학이다’ 라는 의미로서 도수천도, 학즉동학(道雖天道學則東學)이라고 말씀하신 수운 대신사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청년학생들과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동학과 천도교를 함께 이야기 하며 창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오늘의 현실과 빗대어 사회적 책무를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주문하기도 한다.

민족종교로서 천도교의 현재 상황은 너무 안타깝다.

한 때 어느 종교보다도 믿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지금은 존재감 정도만 드러내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숫자로 채워지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형식이 내용을 채우는 그릇이라는 말처럼, 최소한의 활동을 통하여 그 영향력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신도들의 숫자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천도교의 역할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절실하다.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문화로 인하여 정치가들에 대한 기대는 매우 낮은 신뢰수준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남북의 평화공존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업이다. 그러나 이를 견인하여야 중심세력들의 역할은 뚜렷하지 않다. 천도교가 마땅히 그 일을 수행해야 함에도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남한에서 천도교의 열악한 종교로서 위세에도 불구하고 민족종교로서 그 역할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도 휴전체제의 완전 종식을 통한 한반도 평화공존의 절대 필요성 때문이다.

지난해 최인국 무단방북 상황임에도 시대적인 흐름의 탓인지 오히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천도교 역할을 주위에서 적극 당부하는 긍정적인 평가로서 기대되고 있다. 현행 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이라는 실정법 위반으로 정부당국에서 수사 중이라고 한다. 거의 사문화되어 현 시대상황에 맞지 않은 법에 대한 정비도 이번 기회에 적극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천도교인 최인국 사태에 대한 합리적 사회여론 추이를 지켜보면서 민주사회의 다양성이 정착되고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를 전문 연구하는 경제사학자로 자처하며 짧게 몸담은 대학에서 당초 하고자 하는 연구를 본격화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해직되었다. 본업을 한 곁에 놔두고 대학을 대학답게 사학적폐청산에 우선적으로 집중을 하고 있다. 먹고사는 수단이 아닌 학문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고자 대학에 늦게 합류하였는데 대학의 비정상적인 운영에 반기를 들어 도중 타의에 의해 쫓겨난 셈이다.

다행이 해직기간 중 광주 강훈 도정님 등을 우연찮게 뵙게 되어 신부, 스님, 목사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사회활동가들과 함께 동학 천도교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학습하였다. 그 공부모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종교평화회의에도 천도교 몫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세습 등 종학의 횡포도 해당 대학에서 해직된 동료 교수들로부터 공유하기도 하였다. 발을 딛고 있는 현장에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는 나의 생활철학에 충실코자 서울, 광주 등을 오가면서 사학개혁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로서 모순은 결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부정의들이 사적인 이해세력들과 결합되어 그 폐해들이 고스란히 사회전체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부조리한 대학 등 사회의 한 단면을 통하여 체험하였다. 특히 종교 학교법인의 경우도 여느 적폐사학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더 크게 실망하였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류인 대학의 비판력을 제거하는 나쁜 역할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하여 더 충격을 받았다.

대학에서 청년들은 학점관리, 스팩 쌓기, 취업 이외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현 시대에 취업 등 생존방식에 의미를 두고 있어 대사회에 대한 적극적 참여자로서 청년으로 그 열정을 쏟을 수 있기엔 현 세태는 젊은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목소리들도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해법에 대하여는 각각이다. 주창하는 사람들도 순수한 입장보다는 자신의 이해를 침범하지 않은 범위에서 자신의 기득도 유지하고 사회의 공적인 역할도 가능한 분야를 말하는 정도이다. 종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됨에도 물질소유에 그 가치들이 침몰되어 종교집단의 대형화, 형해화 등으로 기성 종교에 대하여 기대를 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천도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천도교는 대중들의 그 욕구에 절대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자체 역량이 사실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아쉬움이 많다. 시대적 상황, 사건 그리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행할 인물이나 집단으로서 조직체 등이 유효하게 작동되어야 인류에 희망을 주는 역사의 혁신들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앞설 수 없다’라 한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은 무산되었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굳은 포옹으로 이어져 한때는 평화체제의 기운이 한반도를 채웠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도 그러한 평화의 흐름들이 이어졌지만 이명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그 흐름은 역주행하였다. 다행이도 평화체제의 정착이 없이는 한민족의 불행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남북한 대중들의 염원에 따라 남북정상의 2번의 만남, 그리고 북미 판문점 정상주선을 위한 조역으로서의 통 큰 역할 등을 통하여 평화구축의 분위기는 어렵사리 유지는 되고 있다.

척왜양이(斥倭洋夷)를 기치로 하여 남북한의 동포들이 대동단결하여야 민족의 어려움을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민족종교의 맏형으로서 천도교에서 이런 일을 적극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해서도 북한 천도교도들과의 평화적인 교류는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이미 해방 전 세대와의 부분적인 교류를 통하여 서로 신뢰관계를 형성도 큰 자산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선배 천도교인들의 평화교류 지속의 역할로 젊은 세대들에게 그 교류들이 폭과 심도 있는 깊이를 더하여 이어가도록 천도교의 역사적인 기여가 절실하다.

남북합동시일, 평양교당(2011.11.13)

천도교청우당의 이전 역할과 향후 과제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의 창가학회는 정치결집체로서 공명당을 창당하여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종교적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도 참고해야 한다. 천도교에 우호적인 집단과의 적극적인 교류와 대화를 통해 현재 답보상태인 남북관계를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기대를 높여야 한다.

이미 기독교는 선교목적으로 상당한 목회자들을 북한에 파견하여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천도교가 먼저 수행해야 할 일들을 타종교에서 하고 있는 것은 천도교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민족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도 해월신사와 의암성사의 유업완수를 위해서도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해방시기 북한에만 천도교 교인들이 200만 명이 넘었다. 남북분단의 냉전체제에서 천도교는 남북한 양쪽으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불운한 시기를 한 상당기간 겪으면서 교세가 위축되었다. 분단으로 기득을 누리고 있는 반역사적 인사들에 의하여 통일논의조차도 거부되는 가운데 천도교의 평화통일에 대한 활동은 개별 천도교인 차원에서는 꾸준히 전개는 되었다. 그 내용들이 언론 통제 등 군사독재시절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1978년 8월 5일 이도천 천도교 춘천교구장의 평화통일 염원을 외친 임진각 분신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일부 언론에만 단신으로 천도교중앙총부에 유서1통과 자신의 사진4장을 남긴 채 석유를 온 몸에 끼얹고 분신하였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도천 교구장은 1908년 함남 함주군 출신으로 분신당시 70세로 천도교 교단 차원에서의 그에 대한 공식적인 추모나 평가에는 인색했다. 그 분의 분신 10주기와 20주기를 맞아 신인간지에 추모기사, 2006년 동학민족통일회에서 평화통일기행과 2018년 5월호 개벽신문에서 40주년 추모기사로 “내 한 몸 불살라서 긍을꽃을 피우니”라는 추모내용이 전부로 알고 있다. 수운 대신사의 큰 뜻을 자신 몸을 불사르면서 현장에서 실천하신 그 분을 향한 반성들이 천도교 내부에서도 필요한 시점이다. 천도교의 위축되고 있는 교세확장을 위해서도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구축에 천도교의 모든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농촌의 피폐로 동학의 창궐정신을 현장에서 찾기 힘든 현세에 천도교의 역할은 자본주의 외세문화수입으로 물질만능으로서의 현세를 사람중심의 공동체 복원과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동학혁명 정신의 기치로서 재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천도교인들의 합동시일이 제한적이나마 진행되어 더디지만 평화통일의 기초를 천도교에서는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단되어 그 흐름이 크게 후퇴되었다. 최근 특히 천도교 차원에서의 한민족 동일체로서 남북화합을 위해 통 큰 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로부터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였다. 상대방을 적대적인 타도대상으로 여겨서는 결코 평화공존은 이룰 수 없다.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대와의 다름을 존중, 인정하며 자신에게 다소 손해가 되더라도 상대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배려가 전제되어야 답보상태의 남북평화의 물꼬는 트일 수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행태는 최근에도 진행형이다. 이는 동학 발흥시기인 19세기와도 유사한 상황이다. 현재 이를 주도하고 있는 군국주의자 아베는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독의 손자이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자. 일본이 다시 일어 난다’는 해방 당시의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결코 빈말은 아님을 오늘날 정세에서 확인한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대화이다’라는 어느 역사학자들의 말을 구태어 되풀이하지 않아도 한국역사에서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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