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5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정치교육을 일상화 할 때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정치교육을 일상화 할 때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정치교육을 일상화 할 때
 금강일보 승인 2020.08.24 

한남대 명예교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정치가들, 특히 국회의원이나 장관들 같은 이들은 매우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장관들 이름으로 발표한 담화문이 동네 담벼락이나 공회당 게시판에 나붙을 때, 그들의 얼굴도 함께 인쇄되었었다. 국회의원이나 다음에 입후보하려는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장짜리 큰 달력을 집집마다 돌리면서, 그 위에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인쇄하였다. 그들은 한 해 내내 안방에 모든 식구들이 항상 볼 수 있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기회가 되어 장터에 와서 연설을 하거나, 차에 스피커를 달고 다니면서 방송할 때는 굉장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도록 말을 똑똑하게 잘 하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 때까지 그들은 내가 우러러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중학생일 때 4·19혁명이 일어났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벌떼처럼 일어나 거리로 나왔고 자유를 외쳤다. 대통령이 자리를 물러나고, 장관들이 바뀌고, 새로운 선거를 통하여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까지 굉장한 사람들이라고 인식되던 이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재판할 때, 검사 변호사 판사들이 그들에게 묻고 답하는 것들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그 기사를 읽는 동안 이제까지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그들이 한결같이 도둑놈들이요 사기꾼들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새정부에서 사람들이 의샤의샤하면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기를 바랄 때, 새로 구성된 국회는 파당싸움으로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그러다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모든 정치가들은 물러나고 젊은 군인들이 장관과 도지사와 시장을 맡아서 일을 하였다. 대위 소령 중령 대령 준장 소장 따위의 계급장을 달고 있던 군인들이 정치를 한다고 야단이었다. 물론 이렇다 하는 명망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 한 것인지, 어떤 강압에 의하여서인지 군인정치에 관여하였다. 민간 정치인에게 물려주겠다느니, 군사정부를 더 오래 지속하겠다느니 하는 따위가 오락가락 하다가, 아무런 정치훈련 없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른바 국회의원들이 뽑혔다.

그 중에는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얼마 지나서는 정권을 담당한 측에서 선택하여 임명된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4ㆍ19를 겪었기 때문인지 학생들에게는 일체의 정치행위가 금지되었다. 언론도 재갈물려 할 말을 못했다. 우리 삶에는 금지할 것과 그렇게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런 모습으로 내려오다가 노동자들과 농민들과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의하여 군사정권은 위기에 닿게 되었다. 대통령은 살해되고, 정국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 때 또 젊은 정치군인들이 무자비한 행동으로 정권을 잡았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을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 언론도 눌려 있었고, 학문활동 역시 제한되었다.

그러나 생명은 눌리거나 감금된 상태로 오래도록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생명이 자라면 어렸을 때 보호하던 모든 옷이나 껍질은 벗겨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갈아입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선거제도는 상당히 민주화되었다. 아직도 일반 사람들의 의견을 잘 반영할 제도가 되지 못하였지만, 조금 지나면 그런 제도로 틀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허술한 제도나 소박한 제도는 언제나 영악한 자들에 의하여 점령되고 악용된다. 그것을 차차 잘 수정하고 고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민주제도에 의하여 대표를 뽑는 것은 민주주의 실현의 초보단계라고 본다. 그 대신 그렇게 뽑힌 그들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과 일반 사람들의 일상이 민주주의 방식에 물이 들어, 그 생활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교육이 있어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훈련이 되어야 한다.

정치란 모두가 잘 알듯이, 사람들이 모둠을 이루어 오순도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함께 의견을 나누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참으로 오래도록 가정에서나 작은 사회에서나 큰 사회에서 권위가 있고 권력이 있으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생활규범과 관행이 만들어지던 전통이 있다. 일반 사람들은 그냥 그들이 만들어주는 것을 받아먹으면 된다고 길들이려고 하였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런 관행들은 일반화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저항에 부딪친다. 속생명이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해야 할 일은 다시 말하지만 정치교육이다. 어려서부터 가정이나 유치원이나 학교나 회사에서 자기들의 삶의 길을 그 자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서 정하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 함께 할 것이 언론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모든 매체는 혼자서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토론하는 형태로 나가는 것이 좋다.

국회는 말로 토론하여 일을 정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보면 참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질이 낮은 행태가 심하다. 토론이 없고, 주장만 있으며 윽박지름만 있다. 특히 장관후보자의 청문회나 대정부질문은 죄인과 수사관의 심문과 같은 느낌이다. 그 자리는 정책이 정당하고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를 따지는 자리다. 네가 성인군자냐 도덕가냐 하는 것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것으로는 더러운 정치교육이 될 뿐이다. 그렇더라도 정치교육의 하나로 국회의 모든 회의는 크든 작든 다 그대로 일반에게 방영되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모든 사회단위에서는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동등한 권리로 토론하여 해야 할 길을 자기들이 결정하는 것이 일상화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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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모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에 충실히하는것이 사명이고 소명인데 그자리만 이용하려는 욕심이 그 진정성을 희석시키네요
 · Reply · 2 h
고연
지금의 교육이 전면적으로 바뀌지않는다면 과연 이나라에 희망이 있겠는지요.
토론할 나이의 중고생은 문제풀이만 기계적으로 하고있으니 말입니다.
 · Reply · 2 h
崔明淑
사회를 보면 자기주장을 펼칠때 다들 투사들 같아요. 결사반대..죽음을 가지고 반대한다고 해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익집단의 기득권 수호인 경우가 허다하구요.
 · Reply · 2 h
정지용
교수님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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