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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김일성의 아이들’ 다큐 만든 김덕영 “이 역사, 대단합니다” : 한겨레

‘김일성의 아이들’ 다큐 만든 김덕영 “이 역사, 대단합니다”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김일성의 아이들’ 다큐 만든 김덕영 “이 역사, 대단합니다”

등록 :2020-04-09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1950년대 초
북 1만명 동구권 위탁교육
1956년 갑자기 무더기 송환

2004년
박찬욱 “북 남편 기다리는
루마니아 할머니가 있더라”
날아가 만난 할머니는 글썽이며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

2010년
후속작업 못해 마음의 짐
온라인에 자료 풀어…누가 대신…

2018년
한국인들 사기행각…나서자 맘 먹어
자비 1억5천만원…이듬해 유럽으로

2020년
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한국전쟁 70주년 6월 개봉하고파”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연출한 김덕영 감독. 김덕영 감독 제공대학 같은 과 선배 박찬욱 감독이 문득 전화를 걸어왔다. 동유럽 여행 중 들은 얘기라며 “북한 남편을 40년 넘게 기다리는 루마니아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었다. 믿기 힘들었다.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독립 피디였던 김덕영 감독은 루마니아로 날아갔다. 2004년의 일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한국전쟁은 10만명의 전쟁고아를 만들었다. 남한은 아이들을 미국, 서유럽 등에 입양 보냈고,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에 위탁 교육을 보냈다. 1950년대 초반 당시 갓 스무살이던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는 루마니아로 온 북한 아이들 담당 교사였다. 미르초유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북한 교사 조정호씨와 사랑에 빠졌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57년 결혼해 딸까지 낳았지만, 남편이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몇년 안 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한 장면. 가운데 어른이 담당 교사였던 제오르제타 미르초유. 김덕영 감독 제공“할머니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걸 계기로 북한 전쟁고아 문제를 처음 알게 됐어요. 루마니아에서 관련 문서와 기록영상을 극적으로 찾았어요. 할머니와 함께 기록영상을 보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이 역사가 대단한 거구나. 방송 이후에도 계속 파고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최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이 말했다.

당시 취재한 결과물은 그해 6월 <한국방송>(KBS)에서 방영된 <수요기획-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를 통해 알려졌다. 반향이 컸다. 이후에도 북한 전쟁고아 관련 정보가 그에게 꾸준히 들어왔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빠 선뜻 후속 작업을 하지 못했다. 마음의 짐 같은 책임감을 느끼던 그는 2010년 관련 자료를 블로그 등 온라인에 풀었다. 누군가가 대신 작업을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하지만 내가 해보겠다고 연락해온 이는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의 한 장면. 김덕영 감독 제공2018년이었다. 한국인들이 동유럽에서 북한 전쟁고아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을 속이는 등 안 좋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참 순박한 사람들인데, 화가 났어요. 내가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은 까닭이죠.” 컴퓨터에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불가리아 등 나라별 폴더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동유럽에 보내진 아이들은 공식 기록상 5천명으로, 실제론 1만명은 됐을 거라고 김 감독은 추정했다.



지난해 초 동유럽으로 건너가 촬영에 들어갔다. 15년 만에 재회한 미르초유 할머니는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생사도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 1957’이라 새긴 결혼반지가 부은 손가락을 파고드는데도 빼지 않았다. 불가리아에서 북한 아이들과 친구로 지냈다는 7명을 인터뷰할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한국말로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였다. 1절이 끝나니 이번엔 할머니들이 2절을 이어 불렀다. 알고 보니 북한에서 공식 국가보다 더 많이 불린다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였다.





김덕영 감독이 불가리아에서 촬영하는 모습. 김덕영 감독 제공“북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불렀으면 불가리아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기억하겠어요? 아이들은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운동장에서 김일성 얼굴을 새긴 인공기에 경례하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해요. 김일성 우상화 작업이 1950년대 초부터 이뤄진 셈이죠. 이런 사상이 70년에 걸쳐 3대째 이어져온 북한 사회를 냉철하게 인식해야 통일도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1956년부터 갑자기 북한으로 조기 송환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동유럽을 방문하는 동안 반대파가 반기를 든 ‘8월 종파 사건’이 벌어지고, 헝가리에선 반소련 봉기가 일어난 와중에 폴란드의 북한 아이 둘이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려다 잡히는 일까지 터지자 아이들을 불러들이고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다. “북한은 아이들을 잠재적 위험 요소로 보고 뿔뿔이 흩어놓았어요. 이후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비밀에 부쳤죠.”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한 장면. 김덕영 감독 제공이런 이야기를 자비 1억5천만원을 들여 제작한 다큐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 담았다. 앞서 배우 추상미가 폴란드의 북한 고아 이야기를 담아 연출한 다큐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이 스토리텔링이 강한 감성적 접근이 돋보였다면, <김일성의 아이들>은 동유럽 전역을 두루 취재해 기록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영화는 올해 프랑스 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제는 5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다. 영화는 6월로 예정된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도 초청됐다. 김 감독은 한국전쟁 70년을 맞는 6월 극장 개봉을 추진 중이다. 또 같은 달 <김일성의 아이들> 책도 펴낼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36392.html#csidxea2c6f44e04f51ba432b347d2453a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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