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1

Sejin Pak [위안부문제][한국의 학자] 매년 이만 때가 되면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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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한국의 학자] 매년 이만 때가 되면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 언제나 일본군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가 하는 그러한 사건에 관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 발견이 일본서는 감추려고 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 그런데 사실은 일본 학자들은 오래 전 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팩트에서 나오는 결론-추론이 다르다.
- 상식적으로 뒤에오는 학자는 앞에 간 학자의 연구를 알아야 하고, 그 학자가 논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학문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한국선 그러기 전에 언론에 성급하게 자기 의견을 발표해 버린다.
이우연:
아무래도 낚인 것 같다. 또 바보가 되었다. 학자가 다른 학자에 할 일은 서로를 고양하는 것이지, 이렇게 바보 만드는 게 아니다.
아래에서 나는 "미군 기록에서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 30명을 총살했다'는 기록는 새로운 이야기다"고 했는데, 이미 20년 전에 일본 아사노 교수가 논문에서 언급하고, 2년 전 경향신문에 나온 이야기란다.
그러면, 강성현`정진성 교수가 어제 발표하여 모든 언론사가 보도한, 수 개월 전에 미국국가기록원 "발견"했다는 그 필름은 2년 전이나 20년 전에 공개된 미군 기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없다. 하나도 없다. 몹쓸 상상력에 의해 국민들의 적대와 혐오만의 감정만 고양할 뿐이다.
국민들을, 동료 연구자들을 *, **로 아나보다.
관련 보도를 찾아 약 90분간 읽었다. 그로부터 내가 알게된 사실은 다음.
1. 6명의 시신을 찍은 19초의 동영상이 미국국가기록원(NARA)에 소장되어 있다.
2. 미중 연합군은 1944년 9월 14일에 텅충을 점령하였고, 미군이 15일에 작성한 보고서에는 함락 하루 전 "13일 밤, 그 도시에서 일본군은 한국 여성 30명을 총살했다(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는 기록이 있다.
3. 텅충 점령과 함께 포로가 된 사람 속에는 조선인 위안부 23명이 있었다.
강성현`정진성 교수는 이 세 가지 사실을 한 데 묶어 '당시 텅충에는 일본군에 의해 끌려온 조선인 위안부가 7~80여 명 있었는데, 일본군은 옥쇄를 명령하였다. 이에 불응한 30여명은 학살되었고, 23명이 살아남아 포로가 되었다'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위 세 가지는 단일한 자료로부터 나온 사실들이 아니며,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의문에 답하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위 주장은 강성현`정진성 교수가 상상력을 과도하게 발휘, 엮어 만든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1번 관련, 이 영상이 2번의 "총살"된 "30명의 한국인 여성"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투 중 발생한 무고한 민간일 수 있고, 군기가 서지 못했던 중국군의 함락후 폭행과 그후 살해로 희생된 사람일 수도 있다. 여하튼 2번과 연결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2번 관련이다. 위 세 가지 중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사실은 미군이 "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라는 기록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당 기록이 일본군이나 조선인 위안부 포로의 심문결과, 목격자의 증언, 풍문 등,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점령한지 바로 뒷날에 작성된 문서이므로, 체계적인 포로 심문 등 자세한 조사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 "학살"이 사실이라면, 미군이 대규모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전면적으로 조사하지 않고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급박한 전황? 화면에서 스쳐간 것으로는 문서의 내용을 알 수 없고, 그 전체를 찾아 읽을 수 없다(혹시 발견하신 분이나 관련 연구자께서는 알려주시면 대단히 고맙겠다).
3번 관련, 포로가 된 조선인 위안부 23명이 '총살'을 면하고 살아남은 자들이라는 근거가 무엇인지, 즉 2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해당 미군 기록을 통해 '한국인 위안부 30 여명을 총살하였고 살아남은 자가 23명'이라고 기록되어있는가? 그것이 없는 한, '30명 총살'設 ,그리고 '23명의 위안부 포로'라는 사실은 전혀 관계가 없다. 전자는 진위를 밝혀야할 "設"에 불과하며, 후자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례다.
요컨대, 1번과 3번은 2번의 미군 기록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그를 무리하게 주장했고, 언론은 어떠한 비판의식도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으로 부족해 일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크게 높여 덧붙였다. 동영상이 있다니 얼마나 주목받겠는가? 이로 인해 '한일관계 정상화'는 더욱 미루어질 것이다.
일부 위안부 연구자들의 "연구"나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유감, 한마디만 하자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소, Greg Kim and 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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