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수백 명 군함도 탈출? 시도조차 못 했을 것
정리=김성현 기자
입력 : 2017.08.04 03:01
징용 연구 정혜경 박사가 풀어주는 500만 관객 영화 '군함도' 궁금증
개봉 8일 만에 관객 510만명을 돌파한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는 일제 말기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징용을 당했던 일본 나가사키 남서쪽의 섬 하시마(端島)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45년 당시 조선인 500~800명이 이 섬의 지하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군함도'는 일본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는 조선인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탈출극이라는 허구를 뒤섞었다. 이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의 정확한 경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본제국과 조선인 노무자 공출'을 펴낸 강제 동원 연구자 정혜경〈사진〉 박사를 통해 궁금증을 정리했다. 정 박사는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11년간 조사과장으로 일했다.
①영화처럼 수백 명의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집단 탈출했다?
[X] "징용자들은 혹사와 굶주림, 질병에 시달렸고 탈출 시도가 빈번했다. 2차 대전 기간에는 도망자를 감시하기 위해 재향군인회원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섰다. 인근 섬으로 헤엄쳐 도망가다 익사한 경우도 많았고, 붙잡히면 가혹 행위가 뒤따랐다. 하지만 영화처럼 집단 탈출을 시도하거나 일본군과 무력 충돌했다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다. 영화 후반부는 상상력의 산물에 가깝다."
②군함도에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만 있었다?
[X] "강제징용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보면, 영화 '군함도'의 배경인 하시마 탄광에는 조선인 500~800명 외에도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들이 있었다. 1944년 6월 중국인 노동자 205명이 하시마 탄광에 들어왔고, 이듬해 8월까지 15명이 숨졌다는 현지 광업소 기록도 있다. 조선인 생존자들은 '하시마 탄광에 중국인뿐 아니라 미군 포로도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제국의 국민이기도 한 조선인을 국민이 아닌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했을까?]
③'군함도'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X] "하시마에서 석탄이 발견된 건 1810년쯤이다. 1870년대부터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됐다. 1916년에는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섰다. 하지만 해저 1000m의 석탄을 캐내는 '심해(深海) 탄광'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노동 환경이 열악한 것으로도 악명 높았다. 이 때문에 1920년대부터 하시마는 '군함도'와 '감옥섬'으로 불렸다."
④조선인 징용자들은 임금 착취에도 시달렸다?
[O] "1938년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인적·물적·자금의 삼중(三重) 착취 구조를 만들었다. 강제 동원 과정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은 기차 삯과 뱃삯, 밥값까지 빚을 짊어졌다. 작업장에 도착한 뒤에도 일본 기업들은 숙박비와 식비는 물론, 신발과 곡괭이, 이불에도 사용료를 매겼다. 이 빚은 1년 이상 일을 해야만 갚을 수 있었다. 쥐꼬리만 한 임금은 우편 저금이나 연금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착취당했다. 미수금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는 수단이기도 했다.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인은 이런 착취를 받지 않았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4/2017080400074.html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4/2017080400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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