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1

웹진 | 이 달의 책 -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웹진 | 이 달의 책 -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디지털사업팀_손군





통일인문학 구술총서 001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북한의 위협과 실상
요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과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이 비등점을 넘어설 듯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국내 외 뉴스들과 국방부의 발표는 김정은 체제와 북한의 언론보도 등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면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들은 정말 북한의 현실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북한의 현실 중 한 부분을 보여드릴 수 있는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책에는 주민들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 북한의 모습이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에 담겨 있습니다.








해제





분단트라우마
이 책에서는 '분단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 PTSD)'를 의미하는 정신의학적인 용어입니다.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와 상흔이 마땅히 치유받아야 할 대상임을 알리고자 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에 트라우마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정신과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되는 것과 같이 분단트라우마에 대한 접근 방식도 구술조사 - 생애담 구술을 경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탈북자
분단트라우마의 사례는 '월남자, 실향민, 월북자 가족, 양민학살지역민들, 비전향장기수, 생활구역에서 이념갈등을 겪은 사람들, 탈북자, 해외로 이산된 코리안디아스포라' 등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그 중 국내 누적 통계만 2만여 명 에 달하며, 가장 최근까지도 사선을 넘나드는 혹독한 공포를 체험한 집단인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 구술에 참여한 탈북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이 책에 실린 탈북자 세 사람은 1990년대 후반 탈북하여 중국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도피생활을 하다 국내로 들어온 이들이며, 모두 고난의 행군시기를 경험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1990년 중반 이후를 '고난의 행군시기'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시기에 탈북한 사람들은 극한의 굶주림을 이겨낼 수 없어 식량을 찾아 탈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편 '고난의 행군'이라는 명칭은 1981년 평양 문예출판사에서 간행된 장편소설(석윤기 作)의 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소설은 김일성이 항일활동을 하던 내용을 주제로 하며 그 중 100일 여 간 혹한과 굶주림을 견디며 행군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이 발생하여 약 33만 명의 주민들이 아사하자 이 장면을 상징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고자 구호로 채택하였습니다.
* 검색어 : 고난의 행군. 네이버 http://goo.gl/sLv1Q. 위키백과 : http://goo.gl/s9JSa *






구연에 참여한 탈북자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중년의 여성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서른이 되지 않은 청년 남성입니다. 각각의 입장에서 바라본 북한의 충격적인 실상이 그들의 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북한의 정치, 경제, 생활상, 문화, 교육 등 북한의 현실에 대한 증언






희망이 없는 북한의 경제난


그러니까 농사꾼은 농사하면은, 농사지어 북한에서는 못 사는 게, 내가 일을 많이 하면 내 앞에 차려지는 게 많아야 되잖아 … 근데 북한은 그게 보장이 안 되거든 … 금년에 수확이 암만 많아도 몇 백 키로(kg) 이상은 안 줘요 … 그러니까 사람들이 점점점점 ‘많이 해서 필요가 없구나- 내가 힘들일 필요가 없구나-.’이러니까 점점점점 자꾸 퇴보를 하는 거지. 그래서 저래요.



한영숙 씨는 북한의 경제난은 타개할 수도 없고, 발전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도 없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더 많이 노력한다고 하여도 사유재산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북한사람들은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식량난


우리 북한에는 화장실이라는 게 다 이런 색깔이야. 다 풀을 먹고 변을 봤기 때문에 … 이게 글쎄 이게 명언인가 뭔가 이게 뭔가 글쎄. 하루 세끼 다 굶었잖아. "아침은 이해하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거저 잔다.” … 그래 굶는 게 연속이었지. 뭐 그러나니까 탈북자가 이렇게. 탈북자라는 게 처음에 정치적 색깔 띠고 한국에 와서 잘 사고 이런 게 아니라는데. 이거 다 거짓말이야. 다 거 식량 때문에. 내가 오늘 밤 배가 고파서 다 두만강을 다 넘어온 거지.



또 그녀는 북한의 식량난이 비참할 정도라면서, 북한 사람들은 풀밖에 못 먹어서 대변을 봐도 풀색이 난다고 했습니다. 또 북한에는 ‘아침은 이해하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거저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루 세끼를 굶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김일성, 김정일만을 찬양하는 북한 사회



북한은 뭐 이렇게, 여기서 알아보고 싶은 게 뭐 전통이나 이런 거? 아이고- 전통이란 말조차가 없어요 … 오직 김일성이 김정일이, 노래도 김일성이 김정일이, 소설도 김일성이, 영화도 그래. 그 이거 뭐야 헤이그 밀사사건 있잖아요. 이준인지 허준인지, 어디에 가서 그 그때 배를 갈랐잖아요 … 이 사람이 배를 자르고도 자기가 이 달성할 임무를, 자기가 원한 걸 못 이루었잖아. 그 결국에는 배를 갈랐잖아. 이게 왜 이랬냐? 나라의 영도자가 없고, 영도자가 옳은 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거여. 이게 어디서부터 영도자가 생겼냐. 1911년 4월 15일 김일성이가 탄생하면서 새 영도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화가 이렇게 끝나요. 모든 걸 다, 안중근이가 이등박문이 쏘고 한 것도 민족의 영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래 … 그러니까 고저 김일성이가 민족의 태양이지 뭐. 민족의 태양이라고, 모든 말과 글과 노래와 그걸 다 거기다 갖다 붙여놔서, 전통이나 민속이나 민요가 그 나라엔 있을 래야 있을 수가 없어.



한영숙 씨는 북한에 전통문화 같은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오로지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문화만이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노래·영화 등 모든 것이 오직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죠.


전쟁에 대한 북한의 교육



우리는 전에 그 전쟁이라는 소리에 역겹고 지겹고 그렇지. 한국이 그냥 쳐들어오고 미국이 쳐들어오고 우리는 준비해야 되고, 뭐 사람들 정신을 고저 아예 그렇게 멕이지도 않고 고저 전쟁에다 훌떡 정신을 다 뺀다고 … 그런데 여기 와보니 전쟁은 자기네가 할려고 하지. 집 한 채 바로 쟀어? 길을 바로 닦아놨어? 철도가 하나 바로 있어? 이 전쟁을 바로 할라니까 저렇게 나라를 안 맨들어 놨지. 한국은 전쟁을 안 할라고 준비한 나라야. 이렇게 만들어놓고 왜 전쟁을 하겠냔 말이야. '와 살아보니까 알겠다. 전쟁은 제가 할라 그러면서 … 우리가, 이 몽땅 그 나라는, 역사가 뭐 저 몽땅 거짓말이야.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끝나는 건 그 나라라는데. 다 거짓말 교육을 받았지, 우리는. 하고 진실은 알래야 알 수가 없어. 다른 나라 방송을 들어요? 뭐 뉴스를 들어요? 영화를 봐요? 다른 나라 사람을 접촉하기를 해요? 딱 가다(가둬) 놓고는 제가 배워 준 대로만 세뇌교육을 하니까 여기 온 사람도 다 저 지경이라고. 무서운 나라야, 무서운 나라.


한영숙 씨는 북한에서는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을 받는다고 하면서, 전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지겹고 역겹기까지 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는 6·25 전쟁도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추동해서 일으켰고, 지금도 미국이나 남한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녀가 한국에 와서 보니 북한이야말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굶주림으로 인한 식인과 자식살해, 곳곳에 흩어진 짐승에 뜯어먹힌 시체들과 꽃제비들의 처참한 모습 등 차마 알기가 두렵고 안타까운 이야기







감옥 생활 - 사람 잡아먹은 사람들



그 집에는 아버지가 사람을 잡았지 뭐요. ‘오00’이라구 이름도 안 잊혀진다. 아버지가 사람을 잡아가지구 막내 아들하구 노친네하고 같이 먹었드라구요. 그런 집이 감방에가 들어왔드라구 … ‘그 노친네가 사람 먹은 노친네다.’ 이렇게 말은 못 하구, 왜 이러나 서래, 사람 잡아 먹구 들어 왔다는 거지, 아유- 그래요. 헌데 내가 남편이 죽었지 내가 죽게 됐는데. 누가 이 사람 잡아 먹구 들어 왔다구 그래서 이 사람이 대단해 보이질 않아, 내 눈에는. 그 뭐 죄인 같지두 않아. 다 똑같애. ‘너나 나나 동급이다. 나도 잡지 못해서 못 먹었지, 나도 사람고기라도 있으면 먹었을 판인데.’



탈북 실패 후 감옥에 수감되었던 한영숙 씨는 배고픔에 사람을 잡아먹고 감옥에 잡혀 온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극심한 배고픔에 굶주려있던 그녀에게 그들은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으로 비춰졌다고 합니다.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인 어머니


근데 이 여자는 감옥에 처음 들어오는데 눈이 막 눈이 막 희번덕- 희번덕하고 “흐억- 흐억.” … 알고 보니까 이 여자가 자기 딸을 기차에 태워가지고 가다가 지가 발로 차서 승강장에서 얘를 떨궜더라고. 자기도 떨어질라고, 죽을라고 … 근데 얘가 악- 하며 떨어지는 순간에 엄마가 정신이 들었는지, 그래 죽는다는 게 그렇게 힘든 모양이야. 엄마는 못 떨어지겠단 말야. 근데 그때 엄마가, 엄마니까 오죽했겠어요, 그 마음이. 그러니까 다음 역전에서 탁 서면서 … 이 아주머니가 내려가지고 막- 울면서 아이 떨어진 데 와 보니까 아이가 다리가 부러졌단 말이야, 4살짜리가, 배들배들 … 그게 기니까 울면서 막 기리니까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안고 병원에 가긴 갔어요. 갔는데 몇 시간만 죽었대, 야가.



한영숙 씨는 감옥에서 만난 두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들은 둘 다 자기 아이를 제 손으로 죽여 감옥에 들어온 여자들이었죠. 한 아주머니는 감옥에 들어올 때부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가난에 못 이겨 자기 아이를 기차에서 떨어뜨려 죽인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백 일도 안 된 아이를 가마솥에 넣어 죽여 감옥에 오게 되었더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여야 할 만큼 북한의 실상이 참혹한 것이죠.


꽃제비로 사는 삶과 시장의 모습



그러니까 거의 한 몇 년간 거지처럼 살다가, 거기에선 꽃제비라 불러요. 그런데 꽃제비란 말이 뭔진 모르는데 러시아말이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러시아 말로 꽃제비 하면 뭐 불량청소년 그런 의미가 있대요 … (굶주림으로 인한 방랑이) 90년도부턴가 시작돼갖고 다시, 그러니까 뭐 어른들도 집에서 먹을 거가 없으니까, 집에 있어서 굶기보다는 나가서 그냥 거지처럼 돌아다니는 게 낫다고 했고, 막 내보냈어요, 한 때 … 그러면 오징어는 껍데기가 있잖아요. 이렇게 쭉- 껍데기를 버려요. 우리는 그 바다 비린내 먹어보는 게 굉장히 그게 또 소원이거든요. 애들이 막 달려가서 주워 먹고. 그리고 사과 먹다 이렇게 딱 버렸는데, 시장이라는 게 막 사람이, 발이 많잖아요? 비가 오면 그게 굳지도 않고 막 질퍽질퍽해요, 물도 막 이렇게 막 버리고 하니까. 그 김에 흙탕물에 딱- 던져져갖고, 딱- 누가 밟아 갔는데, 딱- 먼저 집는 게 그게 임자에요. … 옛날에 제가 탈북하기 전에는요, 음식을 이렇게 먹으면(가리지 않고 태연히 음식 먹는 시늉을 하며) 그건 미친 사람이었어요. 음식을 이렇게 먹었어야 됐어요(숨겨서 먹는 시늉을 하며). 훔쳐가니까, 이렇게 … (어떤 친구는) 그냥 훔쳐서 이렇게 먹다가, 그냥 목마른데다가 찰떡을 먹어갖고 먹다가 죽었어요. 그래 또 애들이, 그러니까 굉장히 인심이 각박해져갖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야, 그래도 먹다가 죽었구나, 쟤는.” 하면서(웃음), 그때는 그러니까 눈물을 난다는 법이, 그런 걸 몰랐어요. 그냥 뭐 어르신들은 어휴- 불쌍해서 그러는데, 애들은 “야 그래도 쟤는 먹다가 죽었다.” 하면서 먹다가 죽었다고 행복하다는 거예요, 지금.


이승준 씨는 먹을 것을 찾아 일정한 거주지 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꽃제비라고 부른다고 말했습니다. 꽃제비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중국인이 버리거나 남긴 음식들을 주워 먹고 사는데, 시장 상인들은 꽃제비들이 음식을 훔쳐 갈까 봐 음식에 그물을 씌우고 판다고 합니다. 음식을 훔친 아이들은 그들을 잡으러 쫓아온 주인에게 맞으면서도 음식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승준 씨는 그렇게 버티며 맞다가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제와 감시와 간섭으로 점철된 북한의 통치에 대한 증언,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왜 혁명을 일으킬 수 없는지, 무엇이 북한 사회와 북한 정권을 지탱하게 하는지에 대한 대답





단속과 통제가 심한 북한 사회



“너네 왜 그렇게 300만이 굶어 죽으면서, 그 전쟁 때보다 더 많이 죽으면서 너네들이 가만히 앉아 있냐.”이 생각이 안나요? 나죠, 왜서 그런가? 우리도 인간이잖아요. 사람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왜 우리도 인간인데 아 일어나고 싶지 않겠어요 … 이게 살림하는 아파트라 하자. 그러면 한 개 반이란 말야. 반에 인민반장이라는 게 있어요 … 그러면 그 반장이라는 아줌마는 자 “이씨네 집 안에 숟가락 몇 개, 박씨네 집안이 저기 오늘은 어디에 행차 했구나, 또 주씨네 집안은 오늘 애들을 데리고 친정집에 갔구나.” 이걸 다 알아. 그걸 다 위에다 보고해요. 그러니까 꼼짝을 못하게 만들어 놨단 말이야 … 그 다음에 보위부라는 게 있어요. 그게 여기로 말하자면 저기 국정원이지 … 당을 옹호, 보위하는 … 한 50명 100명이 일어났는데, 그저 보위부가 순간에 딱 모여들어 몽땅 데려 가니까, 그러니까 꼼짝 못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고 사람들은 몽땅 다 고저 진짜이 쥐도 새도 모르게 몽땅 죽여 버린단 말이에요 … 공개 처형 하는 건 어떤 자들을 하는가. 우리처럼 남조선으로 뛰었는데, 거기에 또 줄을 해 주는 브로커가 있잖아, 그런 사람들. 그 선을 끊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을 저기, 그렇게 한단 말이에요.



이성숙 씨는 북한이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들고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북한의 심한 단속과 통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는 단속과 통제를 하기 위해 인민반장을 두어 자기 인민반 사람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상부에다가 보고한다고 합니다. 또 북한에는 보위부라는 것이 있는데,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신속하게 출동하여 단속과 통제를 하므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혁명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



북한은요, 거게 집들은 이런 집들이 아니에요 … 그러니까 옛날에 시골에서 살아봤는지 몰라도 누구네 집에 누가 왔다 가는 거 다 알아요. 북한은 그거 알게끔 돼 있어요 … “누구네 집에 안 보던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은 그날 저녁로 뭐이 붙어요, 미행이. 그래 와서, 인민반장이 와서 몇 번 들락날락 해요 … 북한에는 나갈 때, 다- 식구 “말조심해라. 말조심해라.”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 그 다음에 70년대·80년대 북한에는 너무나 세뇌교육을 했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진짜 자기네가 옳은 줄 알아. 세상보다 우리가 잘사는 줄 알아. 하고 오직 김일성이한테다가 우린 죽어도 충성해야 되는 줄 알아 … 그러니까 북한은 절-대, 절-대 들고 못 일어나. 저거는 이 외부가 들이쳐야 되지, 그 안에서는 절대 들고 못 일어나요.



상황이 어려운데도 왜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는지 물어보자, 한영숙 씨는 북한의 철두철미한 감시, 여행의 자유가 없는 통제 체계, 부부간에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 하는 상황과 고도의 세뇌교육을 받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공포정치


북한에는 어떤 정치를 하나하면은이, 이따만큼 가다가 이 동네면 동네, 이 아파트면 아파트에 사람이 사는데, 여기서 한 집씩 이렇게 몰래 새벽같이 실어와요. 감쪽같이 없어져. 그러면 그 집은 뭘 잘못해서 정치범인으로 간 거야. 그 집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근데 그 집에 다 붙잡아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무서워서리 … 야 이거 말조심해야 되겠다.’나 조심해야 되겠다.’이런 생각이 들면서 막 두려움이 생긴다는데. 그러니까 공포정치를 그카요. 그러니까 어떻게 들고 일어나나? 절대 못 들고 일어나지. 무서워. 우리 그런 데서 살다 왔어. 무서운 나라예요, 무서운 나라.



한영숙 씨는 북한의 공포정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북한에서는 밤중에 집안 전체가 붙잡혀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일을 목격할 때마다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또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생겨도 하소연 할 곳도 없다고 하는군요.





피를 말리는 탈북과정, 그리고 탈북 후의 도피생활에서 어떠한 참상을 겪었는지에 대한 증언






첫 번째 탈북 준비와 실패


두 집이 짜가지고 가는데, 경비대한테 돈을 줘야 경비대가 눈을 감잖아. 두만강 건너가는 경비대가 … 두만강 옆에 와서 지금 밭에 와서 떡 숨어있어. 이렇게 밭고랑에 와서 지금 엎대있는데 말이야. 일이 안 될라니까 또 그렇게 안 되더라구. 우리는 이 쫄짜한테다 돈을 줬단 말이야 … 쫄짜는 이런 모자 쓰는데(납작한 작은 모자를 그리며) 달빛에두, 이거 높은 사람은 이런 모자 쓰잖아(긴 모자의 높이를 표시하며). 이런 모자 쓴 놈이 왔다갔다. ‘어머나나 이게 뭐이가 이게 뭐이가 아- 이게 이상하다 이상하다.’… 밤에 그거 보니 사람인지 알면서도 기-절하겠더라구, 너무 무서워서 … “아이구야, 우리 오늘 못 가겠다야.” … 일이 안 될라니까, 보위원, 게 여기로 말하면 뭐이야. 그, 뭐, 경찰인지 뭔지.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가다 단속 했단 말이야.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한영숙 씨는 이웃과 함께 탈북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탈북을 위해서 경비대에게 뇌물을 주고 두만강을 건너려고 하였으나 뇌물을 받았던 군인이 보초근무를 서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은 국경을 수비하던 보위원에게 발각되어 구금됐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이 무엇을 꿈꾸며 탈출하였고, 이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탈북 후에 꿈꾸게 된 미래의 삶



나는 이 꿈 같은 거이 다른 꿈은 없는데, 여자들 우리 북한 여자들을 깨우는 일을, 이걸 하고 싶어 … 내가 아는 것만큼이래도 이걸, 우리 북한 여자들 한 사람이래도 심어주고 배워주고 그게 꿈이야 … 진짜 남편 사랑이 뭐인지, 부모사랑이 뭐인지, 뭐 이 애정이라는 게 없는 불쌍한 여자들한테, 들어가서 그 여자들 깨우쳐주는 일을 내가 하고 싶어요 … 나 그거 하고 싶어. 그거는 내가 해야 될 일인 거 같애 … 우리 북한 사람은 정말 시 한 구절을, 노래 한 구절을, 이게 마음에 없는 게 특징이야. 우리 북한 사람은 오직 꼭두각시, 이 목석 한 가지야. 딱 목석이야. 감정이 없이 살아요, 자기 감정대로 표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한테 가서 이 감정을 심어주는 일을 내가 하고 싶어. 느끼게 하고 싶어. 느낄 줄을 몰라, 우리 북한 사람들은. 첫째, 너무 이거 메말라서, 좋은 거 봐도 그렇고 뭐 고저 감정이 메말라 있지 뭐. 그래 나는 좀 그 감정을 있지 터치해 주는이, 그게 가장이야.
그래 우리 아들들 둘이가 다 나이 먹어도 공부하는 게 … 저 나 먹은 아들들을 공부시키니까. 지난날에 못한 한도 있지만, “앞으로 지금 나도 공부를 해야 되는데 나는 너무 늦었다. 너네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 북한에 들어가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지금 얼마큼이라도 배워야 되지, 그게 북한에 들어가면 다 이제 어떤 보석이 될지 모르는데, 지금 여기서 이거 안 배우고 어디 나가서 돈 벌고, 얼마 정도 번다, 이거 돈의 만족을 가진다는 건 너무나 그건 비참한 우리 탈북자 인생이다. 이건 우리 탈북자들하고 맞지 않은 인생이다.” 기래 내가, “공부 어쨌든 배워라. 들어가서 박사가 되고, 뭐 교수가 되고 총장이 되라는 거 아니다. 어디 가서 초등학교 선생을 해도 좋다. 자기 마음의 긍지감을 가지고 그 민족을 살린다는 거, 나라를 살린다는 거, 이 마음을 가지고 … 북한에 들어가면 너를 크게 대통령 후보로 추천은 안 해줘도 어디 가 초등학교 선생, 아담하게 고등학교 선생, 뭐 해도 설 자리가 있을 것 아니냐. 이걸 생각해야지.” 내 그러고 시켜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기를 꿈꾸는지 묻자, 한영숙 씨는 북한 여성들을 일깨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모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북한 여성들에게 따듯한 감정을 심어주고 싶은 것이 자신의 소망이라고 합니다. 또 통일의 날을 기다리며 그때가 오면 자신의 아이들도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공부에도 힘을 쏟고 있노라 말했습니다.







다음은 탈북자 세 사람의 증언을 주제마다 제목을 달아 분류한 목차입니다. 미처 소개글에 다 담지 못한 북한의 실상이 이처럼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영숙 첫 번째 이야기 (20100409)
<조사상황>∙19
1960년대 전후 북한의 민속문화 정책과 실상∙22
삼수갑산으로 추방된 이후 배운 노래들∙27
기독교 신자 추방으로 양강도 삼수갑산으로 이주한 사연∙29
자유롭게 이사할 수 없는 북한의 거주제도∙36
기독교 신자들에 대해 가졌던 원망과 이해 ∙38
강제추방 된 이후 고된 삼수갑산 생활 적응기∙40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 사연∙44
희망이 없는 북한의 경제난∙45
굶주림으로 아들과 이별한 가슴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48
첫 번째 탈북 준비와 실패∙49
감옥 생활 - 이웃의 죽음∙55
감옥 생활 - 남편의 죽음∙62
감옥 생활 - 사람 잡아먹은 사람들∙66
출소 이후 부령으로의 강제이주∙69
두 번째 탈북 기회와 준비 과정∙74
두만강을 건너던 이야기∙79
남한생활에 대한 생각과 남은 바람∙83


한영숙 두 번째 이야기 (20100414)
<조사상황>∙89
남한의 낮은 안보의식과 북한 지원정책에 대한 불만∙92
북한에 혁명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97
북한 사회의 획일성∙102
북한의 공포정치∙106
60년대 평양에서의 좋았던 시절∙107
낙후된 농산 정책과 식량부족∙109
북한의 결혼식 상차림∙111
삼계탕에 얽힌 슬픈 사연∙112
외부세계와 단절된 북한사회∙113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116
북한의 무속신앙∙119
평양에서의 초등학교 시절∙122
북한의 고된 일상과 남한에 와서 깨달은 여유∙129
북한의 출산 문화와 결혼 문화∙134
북한의 장례문화∙136
전통 민속 문화가 사라진 북한∙138
북한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종∙140
북한의 문화생활∙142
북한 여성의 출산∙145
저절로 생긴 북한의 장마당∙146
속옷을 못 입고 사는 북한주민들∙148


한영숙 세 번째 이야기 (20100421)
<조사상황>∙155
옆집에 살았던 지휘자 가족∙158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듣는 사람들∙162
빈곤했던 친척네 제사상∙166
염소기름으로 부쳐 먹었던 지짐이∙170
가난한 북한의 시골풍경∙172
노숙을 했던 경험과 길에서 만난 고향 소녀∙174
새롭게 이사 간 마을에서 만난 모자(母子)∙184
풀독이 올라 고생했던 옆집 가족∙190
어머니를 잃은 소년∙193
스카치테이프를 보고 놀랐던 탈북 여성∙196
남편 옆에서 새 남편과 첫날밤을 보낸 탈북 여성∙199
탈북 후 깨닫게 된 자기 자신∙205
탈북 여성들의 정절 관념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한 항변∙206
중국의 탈북자 북송조치에 대한 원한∙208
‘국가’에 대한 애절한 심정∙209
탈북자로서의 반공의식∙214
김일성, 김정일만을 찬양하는 북한 사회∙219
탈북 후에 꿈꾸게 된 미래의 삶∙222


한영숙 네 번째 이야기 (20100428)
<조사상황>∙227
나무에 묶어 놓았다가 잃어버린 아이∙230
북한 여성들의 비참한 처지∙231
탈북 학생의 증언∙233
기차역에서 목격한 죽음들∙235
돼지고기와 강냉이를 먹으면서 느꼈던 행복∙237
강냉이를 나눠먹지 못한 미안함∙238
가난했던 이웃집 사정∙240
1920년대의 소설과 비슷한 북한의 상황∙242
식량난∙244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인 어머니∙246
비참한 북한의 상황∙250
남한에 와서 부러웠던 점∙252
북한 사람들의 원한∙254
북한의 전력난과 물 부족∙256
고난의 행군 시기의 식량난∙259
탈북 후 중국에서의 삶∙261
새로운 문화를 몰라서 생겼던 실수들∙264
은행을 이용할 줄 몰라 어려움을 겪었던 일∙268
북한의 화폐 개혁∙270
전쟁에 대한 북한의 교육∙271
북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273
북한 사람들의 자아의식∙275
북한의 선거∙276
북한의 사회에 대한 그리움과 두만강을 넘는 이유∙278
북한의 소금 부족∙280
부족한 직물과 나무가 없는 북한의 산∙281
열악한 북한의 철도∙284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모습∙285


이성숙 첫 번째 이야기 (20100519)
<조사상황>∙291
탈북 경위∙294
단속으로 물건을 뺏기면서도 장사하러 다녔던 기억∙295
북한에 여자들이 많은 이유∙301
생필품이 모자랐던 북한의 일상생활∙302
평양에서 추방당한 이후의 삶∙305
고난의 행군 시절의 삶의 모습∙308
북한 사회에서 성분이 나뉘게 된 과정∙312
북한의 성분 구분∙316
단속과 통제가 심한 북한 사회∙318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320
물자가 부족한 북한∙322
자살조차도 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325
삶을 위협하는 굶주림∙327
기차역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던 기억∙329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335
북한의 문화 통제∙338


이성숙 두 번째 이야기 (20100526)
<조사상황>∙345
결혼문화에 대한 이야기∙347
기차로 돌아다니며 장사하던 이야기∙359
북한의 시장 시스템∙369
두부장사와 사진기사로 일했던 이야기∙375
구술자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386
중국으로의 탈출과정∙394
4년간의 중국생활∙400
중국 여성과 재혼한 탈북자 이야기∙412
남한으로의 탈출과정∙415


이성숙 세 번째 이야기 (20100707)
<조사상황>∙433
춘향전에 비유하여 식량난을 풍자하는 사람들∙435
체제 비판에 대한 정부의 통제∙438
결혼과 출신성분∙440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세력들∙443
할머니께 들은 옛이야기∙446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이야기∙450
거미 인생을 사는 북한의 엄마들∙455
배급 중단 이후 학교 수업과 근무에 성실하지 않은 교사들∙458
배급 중단으로 기초 생활을 지원받지 못하는 장애인∙461
전기·수도 사용이 풍요로운 남한 생활∙462
남한 생활에 남은 꿈과 바람∙464
생산율이 낮은 이유∙466
결혼이 어려운 북한의 여성과 탈북 한 남성들∙467
남한 생활 적응기∙471
식량난 시기의 생필품 공급상황∙473


이승준 첫 번째 이야기 (20100906)
<조사상황>∙479
이승준의 가족관계와 탈북 이후의 삶∙482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483
구치소에서 머리를 빡빡 민 이야기∙484
노동단련대에서의 고생∙485
심문받았던 기억∙489
온성으로의 이송과 강제북송 되는 탈북자들의 모습∙493
같이 수갑을 찼던 할아버지∙495
도 집결소에서 있었던 일∙498
탈북자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는 모습∙500
북한의 식량 배급제∙501
북한에서 장사했을 때의 기억∙504
나무하러 다니던 기억들∙505
일하기 싫어 꾀부리다가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508
능쟁이 풀에 중독됐던 일∙509
꽃제비 수용 시설에서의 기억∙511
장사하다가 도난당한 일∙513
꽃제비로 사는 삶과 시장의 모습∙514
누나와의 이별과 재회∙517
중국에서 만난 인신매매범∙519
중국에서의 생활∙523
남한에 오게 된 계기∙525
아버지에 대한 기억∙526
동생과의 이별∙531
남한에서 다시 시작한 공부∙532
남한에 와서 느낀 점들∙534


이승준 두 번째 이야기 (20101016)
<조사상황>∙539
인텔리였던 아버지∙542
처음으로 가보았던 평양∙548
시장의 풍경과 꽃제비∙551
물건을 훔치는 꽃제비들∙553
기차에서 식량을 훔치는 꽃제비들∙556
마을에 돌았던 전염병∙559
시장에서 팔았던 찐빵과 그에 얽힌 일화∙560
다양한 꽃제비의 유형∙561
노동단련대, 분뇨, 농촌동원과 관련된 기억들∙563
마을에 생겼던 장마당∙565
물건을 훔쳐서 팔았던 기억∙566
북한에 돌아오고 나서의 행적∙570
다시 중국으로 탈북∙574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576
중국으로 도강하기까지의 과정∙580
공장에서 만나게 된 할아버지∙582
탈북 후에 중국에서 했던 일∙584
몇 번에 걸친 탈북과 체포∙586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이유∙588
꽃제비 수용소에서 들은 가족 소식∙590
태국을 통해 남한으로 오게 된 과정∙592
아이들을 돌보면서 지냈던 일∙593
남한으로 오게 된 과정∙596
북한에서의 선교활동∙598
신앙처럼 떠받들어지는 김일성 부자∙601








연구단의 구술영상팀은 애초에 두 가지 의도로 탈북자들을 청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분단 이후 북한 사회의 구비문학이나 민속연행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의도였고, 다른 하나는 탈북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탈북자를 청해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첫 번째 의도는 단지 학문적 호기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겪었던 처참한 굶주림과 목숨을 건 도강, 피를 말리는 도피, 그리고 숱한 멸시의 이야기들은 다른 어떤 이야기조차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는 우리 남한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북한의 실상이 어떠한지 낱낱이 알려주는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 이 책에 담긴 탈북자들의 증언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우리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그리고 앞으로 다시 하나가 될 북한 주민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전자책으로 만들어진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이 책은 전자책으로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트레일러 영상을 소개합니다.











통일인문학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는 통일인문학 구술총서의 첫 번째 자료입니다. 통일인문학 연구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에서 통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인문학은 사회과학 차원의 통일 논의가 관념적이고 정치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소통, 치유, 통합'을 주요방법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인문정신으로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 책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그대로 옮겼으며 각 구연자의 생애담 구술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인상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수치상의 자료나 통계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자료는 다음 통일인문학총서 시리즈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통일인문학총서 시리즈는 네 개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1) 통일인문학 연구총서 : 학술연구과정의 성과들을 주제별로 묶음
2) 통일인문학 구술총서 : 분단과 통일 관련 구술조사 내용을 현장의 느낌을 살려 정리
3) 통일인문학 아카이브 총서 : 북한연구 관련 자료와 콘텐츠들을 정리하고 해제, 주해
4) 통일인문학 번역총서 : 남북한 연구에 도움이 되는 희귀 자료들을 현대어로 풀어냄



북한에 대한 연구와 조사, 그리고 통일인문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연구단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홈페이지 : http://tongil.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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