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l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은이) | 창비 |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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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권 규슈 편에서는 일본이 고대문화를 이룩하는 데 한반도 도래인이 전해준 문명의 영향,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 터를 잡고 눈부신 자기 문화를 만들어낸 감동적인 이야기를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답사한다. 2권 아스카·나라 편에서는 아스카와 나라 지역에 위치한 주요한 옛 절을 답사하면서 한반도와 일본문화의 친연성과 영향 관계, 그리고 자생적으로 꽃피운 일본문화의 미학을 돌아본다.
미술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조예가 깊은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일방적인 역사 인식이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쌍방적인 시각, 더 나아가 동아시아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시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 유홍준은 한반도가 일본문화에 끼친 영향뿐 아니라 그뒤에 일본 스스로 이룩한 일본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아끼지 않으면서 문화란 상호 교류하고 이동함으로써 더욱 발전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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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한반도로부터
일본답사기를 시작하면서
일방적 시각에서 쌍방적 시각으로
규슈 답사
자연관광과 문화관광의 어울림
제1부 북부 규슈
규슈 요시노가리
빛은 한반도로부터
히젠 나고야성과 현해탄
현해탄 바닷물은 아픈 역사를 감추고
가라쓰
일본의 관문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의 흔적들
아리타
도자의 신, 조선 도공 이삼평
아리타·이마리
비요(秘窯)의 마을엔 무연고 도공탑이
다케오·다자이후
그때 그런 일이 다 있었단 말인가
제2부 남부 규슈
가고시마
사쿠라지마의 화산재는 지금도 날리는데
미산 마을의 사쓰마야키
고향난망(故鄕難忘)
미야자키 남향촌
거기에 그곳이 있어 나는 간다
부록
답사기 독자를 위한 일본의 풍토와 고대사 이야기
답사 일정표와 안내지도
그들은 한반도로부터 받은 영향을 꼭 ‘한반도를 거쳐’ 대륙문화가 들어왔다는 식으로 서술하면서 그 의의를 축소 내지 변질시키곤 한다. 일본의 고대사회는 결국 중국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더 큰 문화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이야기이고 처음에 영향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한반도로부터였다. 일본인들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반도를 거쳐’ 들어왔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아버지 손을 거쳐 회사 돈이 들어왔다”고 할 것인지, 냉소를 금치 못할 때가 많다.-9쪽
- 송도둘리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미국문화이지 영국문화가 아니듯, 한반도의 도래인이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한국문화가 아니라 일본문화이다. 우리는 일본 고대문화를 이런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백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12쪽
- 송도둘리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이러한 결론은 일본과 한국, 양국이 최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탓에 어디에서도 인기를 끌 만한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양국의 지난 역사는 서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했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다. (…)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58쪽
- 송도둘리
임수정 (배우)
: 교수님의 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답사현장에 있는 것 같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그곳을 거닐면, 어느새 책 속의 활자들이 살아나 교수님 목소리로 들리고 나의 두 눈은 카메라 렌즈처럼 사진 속 문화유산을 바라본다. 때론 그곳의 냄새와 공기도 느끼며! 책 읽기의 재미를 넘는 감동에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에 남는 깨달음까지. 그곳이 국내든 일본이든 우리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면 함께 존재하는 답사기가 나는 참 고맙다.
민현식 (건축가)
: 일본 문화유산 답삿길에서도 유홍준은 우리 시대의 르네쌍스인답게 미술사가로서 지식 정보의 전달에 머물지 않고, 시적 상상력과 소설적 서사력 그리고 건축적 지혜를 발휘하여 판단하고 해석한다. 법륭사 서원가람 회랑의 오묘한 공간감이 다름 아닌 ‘창살의 디테일’에 비롯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라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아포리즘에 그는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다’로 화답하며, 우리에게 그곳의 시각적 리듬을 듣게 하고 인간적 체취를 맡게 한다.
이렇듯 유홍준 사유의 종착은 항상 ‘인간’이다. 더욱이 그 인간은 추상화된 이상형이라기보다 따뜻함이 넘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는 천년 전의 문화유산들이 ‘지금, 우리’ 앞에 생명을 가지고 다가서게 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과학콘서트》저자)
: 대중서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화려한 지식도, 쉽고 유려한 문장도 아니다. 바로 ‘핵심을 파고드는 통찰력’이다. 이 책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문서의 전범이다. 이 책이 지난 20년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그리고 이번 책도 여전히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비법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의 글은 미술, 역사, 풍토, 일본인의 문화적 습성 등을 깊이있으면서도 포괄적으로 고찰한, 이른바 학문간 융복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2013년 7월 25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북스 2013년 7월 25일자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7월 28일자
저자 :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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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석좌교수로 있으며, 가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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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빛은 한반도로부터 !
그 빛을 딛고 화려하게 피어난 일본문화의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출간!
유홍준의 새로운 안목이 일본문화의 핵심을 말한다.
1993년에 발간되어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20년 동안 33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문화기행서이다. 저자 유홍준이 이번에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정수’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다. 2013년 7월 출간되는 일본편은 1권 ‘규슈’ 편과 2권 ‘아스카·나라’ 편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한일 관계에서 주요한 주제였던 과거사 문제를 문화사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저자의 노력은 한일 양국이 문화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을 일본문화 속에서 찾는 데에서 시작한다.
1권 규슈 편 ‘빛은 한반도로부터’에서는 일본이 고대문화를 이룩하는 데 한반도 도래인이 전해준 문명의 영향,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 터를 잡고 눈부신 자기 문화를 만들어낸 감동적인 이야기를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답사한다. 2권 아스카·나라 편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는 아스카와 나라 지역에 위치한 주요한 옛 절을 답사하면서 한반도와 일본문화의 친연성과 영향 관계, 그리고 자생적으로 꽃피운 일본문화의 미학을 돌아본다.
미술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조예가 깊은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일방적인 역사 인식이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쌍방적인 시각, 더 나아가 동아시아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시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 유홍준은 한반도가 일본문화에 끼친 영향뿐 아니라 그뒤에 일본 스스로 이룩한 일본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아끼지 않으면서 문화란 상호 교류하고 이동함으로써 더욱 발전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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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ㅣ 2016-07-04 l 공감(0) ㅣ 댓글(0)
kasablanka ㅣ 2016-04-10 l 공감(0) ㅣ 댓글(0)
첩첩산중 ㅣ 2015-06-30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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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정은 일본규슈지방의 임난때 끌려가 정착한 조선인 피랍민들의 자취를 찾는 여정이다.그중에도 도자기를 구은 도공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우리 조상이 개척한 도자기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심지어 천황이나 영주가에 헌상한 도자기들은 금을 입힌 그것까지 있다. 밋밋한 조선백자나 전통한국도자기에 비할 바없이 사치스럽다.어떻게 고령토도 나지않는 일본이 세계최강의 도자기생산국이 되었을까?
심지어 아직까지 많은 외화벌이수단이라고 하는데 우리로서는 억울하기 짝이없다.
그들의 도자기가 너무 화려해 우리나라백자가 싱겁기까지하다. 명청대의 도자기보다 더 현혹적이고 값도 비싼 것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건 조선이라는 나라 당사자였다.분명 우리 조상들이 본토일본인보다 재주가 더 뛰어나고 학식도 있었으리라.삼국시대부터 문물을 전수해준만큼 일본은 조선의 문화를 동경했다.도자기 ,서예,의술,천문,주자학등등...
하지만 도공들은 조선에서 사회최하층 천민이었다. 그들을 끌고온 일본인들은 도공들을 사무라이신분에 편입시키고 대우를 해줘 도자기만 개발하게끔 배려했다.비록 그들이 우리문화재를 약탈하고 도공들을 끌고갔지만 기능공들을 대우할 줄 알았던 것이다.하지만 조선은 그들을 천대하며 대우하지않았다. 도자기외에도 세금과 여러 천역에 동원되어야하는 만큼 끌려온 이들을 데려오려 했을 때 오히려 도공들이 귀국을 거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조선정부의 치욕스런 실수다.유교가 노동을 천시하여 조선은 상공업발달을 할 수 없었고 근대화에 뒤진 결과 식민지가 되었다. 양반은 생업에 종사하지않는다는 불문율은 사서 어디에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도공이나 상공인들을 천시했나 모르겠다.
눈물을 뿌리며 피랍된 그들의 터전은 척박했다. 하지만 잇속에 밝은 일본 영주들은 그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도래인내지 피랍인들이란 딱지를 떼고 일본사회에 파고들어 성공한 것도 보면 조선인들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끌려간 조선인들이 사회적 천대를 받았다는 흔적은 에도시대들어 거의 찾을 수없다.그만큼 일본인들이 동화시키려 노력했고 기능공을 대우했다는 뜻이다.물론 도공들이나 주자학자들이 귀족들의 취향에 맞춰 생산을 해내기도 하고 그들이 통치에 필요한 학설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실용지식을 존중했다는 뜻이다.
청출어람 청어람,..조선인후예들은 일본에서 자신들의 예술을 더 꽃피웠다. 문화란 교류하며 발전한다고하는데 일본인은 섬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외래문화및 선진문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그들에대한 민족적감정이 안좋아도 얄미워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조선자신에 있었다.노동을 경멸하고 사농공상중 사에만 매달려 관리를 최고로 여긴 결과가 어떻던가는 두말않겠다.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려 인생을 허비하고 있으니...고질적인 유교의 뿌리가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이나 구미서구에서 젊은이가 그렇게 세월을 낭비하며 보내면 당장 손가락질 대상이다.일본도 사무라이들이라도 평화시에는 농사짓는 걸 당연시 여겼다.그들이 도자기외에도 화과자나 기타 손재주에 명인들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책을 읽으며 일본에 뿌리깊이 남은 조선인들의 자취를 음미하다 우리나라는 그런 건설적인 풍토가 언제 받아들여질까 생각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기 일본편Ⅰ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를 읽다)
나는 유홍준의 문장을 사랑한다. 그의 인문학적 교양과 지적 편력을 사랑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오기 전 고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유 교수의 미술사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라면 미술평론집도 구해 읽었다. 우선 그의 문장은 쉽다. 처음 평론책을 대하면 머리부터 아팠다. 복잡한 외국 학자들의 난해한 이론들을 끌어들여 설명하는데 유교수의 ‘정직한 관객’이나 ‘다시 현실의 지평에서’를 보면 일본강점기시대 작가나 광복 후 민중미술계열작가들의 평론에는 친근감마저 든다. 그래서 그런지 학자들은 그의 문장이 쉬운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학술 서적이 그렇게 쉬워서 되겠냐고. 그러나 쉽게 글을 써서 누구나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대중화 의 길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우리의 문화재를 설명한 글들을 보라. 누구나 쉽게 다가가 읽고 이해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특히 전통 건축용어에서 어려운 전문용어와 부딪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의문화답사기’를 여러 번 읽고 현장 답사를 한 적도 있다. 특히 답사기 1권을 읽고 강진에 들렀을 때 ‘다산초당’이나 ‘영랑생가’, 무위사 등을 답사하며 문화재 속에 배어있는 인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음에 감동을 느꼈다. 저자도 현장답사를 3~4회 이상 실시 한 다음 답사기로 옮겼다고 실토한다.
사실 우리는 이웃나라인 일본을 웃습게 여기고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어디서 그런 뱃장이 나왔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일본에게 역사상 14C 임진왜란과, 근현대의 일제침탈 36년 2번의 크나큰 피해를 입으면서 그들에게 저항해왔다. 이는 저도 모르게 핏줄로 이어진 감정이 아닐까. 우리 민족은 일본에게 싸워서 지면 안 된다는 결의가 배어있다. 특히 지금은 덜 하지만 스포츠경기에서 지면 안 된다는 것이 철칙처럼 되어있어 출전 선수가 겁에 질려 싸워 보지도 않고 긴장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쟁심리가 은연중 이제 일본인에 대해 우습게 아는 심리로 자라 자만심을 키운 건 아닌지. 그러나 이런 경쟁심리가 일본의 높은 기술과 경제를 바짝 추격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일본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쓸모없는 허장성세의 태도가 아닌가. 일본은 고우나 미우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아닌가. 가장 가까이 있는 일본을 모르고 세계로 나가겠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일본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현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라고 썼다. 탁견이다. 저자는 이런 콤플렉스의 색안경을 벗어던지자고 주장한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들을 위해서 이 책을 쓴다고 했다.
내가 소일의 중요한 일 중 세상과 소통하는수단으로 불러그를 중시 여기는데 그 중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올리는 풍정사진과 등산마니아로서 트랙킹 여정 중 일본의 명산과 이름난 곳을 자주 다녀와 소개하는 안나푸르나님의 안내는 상세하기가 등산, 트래킹 전문가들보다 더 세밀하다. 자주 대하는 일본의 기사 중 가장 부러운 것이 잘 정돈된 자연과 주변 환경이다. 마치 우리가 일본의 일상문화를 많이 따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우선 답사기를 들여다 보자. 일본편 1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규슈로 주제가 ‘빛은 한반도로부터’라는 2박3일의 여정이다. 2300년 전 벼농사를 갖고 규슈로 건너와 일본 열도에 야요이(彌生)시대를 개척해가는 도래인(渡來人)들을 증명할 박물관 토기를 위시한 유물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 이곳에 끌려와 일본에 도자기 혁명을 일으키고 세계도자시장을 재패한 아리타야끼(有田燒)를 연 이삼평(李參平?~1655) 도조(陶祖), 사쓰마야끼(薩摩燒)를 이어가느 심당길(沈當吉)의 후손 심수관(沈壽官), 처음은 도공으로 출발했으나 일본의 성(姓)을 사 현달한 박평의(朴平意) 후손 박무덕(東鄕茂德,1882~1950) 등 우리 도공들과 그 후손들의 수고로운 자취를 살펴보았다.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백제유민들이 수성과 대야성을 쌓고 나당연합군을 대비한 자취도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규슈는 인재(人才)의 산실이었다. 가고시마는 이런 일본을 이끈 인재들을 현창(顯彰)하는 것이 참 부러웠다. 규슈의 가고시마를 중심으로 ‘유신의 고향’이라 하여 1865년 15명의 젊은이들을 영국에 유학을 보내 선진문물을 배워 근대화의 역군이 된 인재들의 동상들, 유신의 삼걸의 한사람인 오쿠보 도시미치. 마지막 사무라이라고 칭송받는 사이고 다카모리 등의 소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큐슈 출신으로 일본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의 숭배는 넘치는 민주화이 이름으로 개인숭배를 배척하는 우리나라 풍토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런 유적은 우리 후손들에게 선각자들의 자취를 더듬어 본다는 교육적 뜻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한반도로부터 끊임없는 문명의 빛을 받아 고대국가로 가는 기틀을 마련한 일본의 큐슈지방의 유적을 더듬으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진실을 왜곡하려는 일본 상층부의 어리석음을 보며 이제 기대할 곳은 일본의 양심있는 국민들이 아닌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가까워진 이웃 국민과 국민 사이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 져 왜곡의 벽을 깨야하겠다.
일시 : 2014.5.1~ 2014.5.20
제목 :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 규슈편 1,2
작가 : 유홍준
청소년기에 저자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 국내편은 다양한 장소의 책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문화 유산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다. 근래들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역사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최근에 출간되어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국내 문화 유산 보다 더 무지한 일본 문화 유산을 답사기의 형식을 빌어 그들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일본을 욕하기 전에 그들을 알아야 안하고 했다. 조정래 선생님의 정글만리를 보고 중국에 대한 충격을 받은 이후 나는 저자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저자가 이야기한 임진왜란은 방어에 성공한 조선의 승리다 라는 저자의 의견에 대하여 신선한 사고의 전환이라고 느꼈다. 규슈는 왜구의 본고장이고 요즘 알게된 신장의 야망이라는 일본 게임에서 내가 선택한 시마즈 가문의 시마즈 요시히로가 임진왜란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책과 게임 그리고 역사에 보다 색다른 흥미를 갖게되었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이런 기회를 갖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앞으로 나의 할 일이라 생각된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읽은것 같기도 하고 안 읽은것 같기도 하다.꽤 오래전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 책이고 꽤 많은 편수로 나와 있다.어디선가 일본편이 나온걸 본적이 있고,한번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하던차에 팟캐스트 "책다방"에서 유홍준선생과 함께한 답사기 뒷이야기를 듣고 읽게 되었다.선생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서문에 잘 나와있고,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라고 한 말,"일방적 시각에서 쌍방적 시각으로"라고 서문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때로는 치우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던 일본을,차분히 일본속에 남겨진 우리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쌍방적 시각에서 재정립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것 같다.유선생의 말처럼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와 도래인들을 통해 발전된 문명을 받아들였지만,그후 일본도 독자적인 일본만의 문명을 만들어 갔다면 그것으로 인정을 해주자는 것이다.언제까지나 미개한 놈들을 우리가 가르쳐 주었다라는 식으로 폄하해서는 안될일이다.우리도 역시 중국을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우리의것으로 만들지 않았던가?규슈는 해류가 자연적으로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에서 흐르는 곳으로 초기 일본의 야요이시대를 열게한 벼농사기법도 한반도 도래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또한가지 백제와 가야와 왜의 관계이다.삼국시대가 아니라 오국시대라고 하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고구려,신라,백제,왜,가야.지금의 민족적 구분으로 재단할것이 아니라 고대의 정치역학관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고,현재 일본인들의 DNA를 조사해 보면 60~70%는 우리와 같은 혈통이라 한다.그전에도 도래가 이루어졌지만,백제가 멸망하면서,가야가 멸망하면서 대규모의 도래가 이루어졌고,그들은 우수한 문명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지배층이 되었다.일본말은 고구려,백제계통의 말일것이라는것에도 관심이 간다.우리가 쓰는 말은 통일신라이후 굳어진 말이고..,
임진왜란,정유재란때 끌려간 조선도공들의 삶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일본 근대화를 이끈 인물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곳,아름다운 풍광과 따뜻한 온천이 있는곳,이책을 들고 규슈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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