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7

[리뷰] 자비인가? 욕망인가? 영화 ‘내 마음의 고향’-민중의소리



[리뷰] 자비인가? 욕망인가? 영화 ‘내 마음의 고향’-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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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자비인가? 욕망인가? 영화 ‘내 마음의 고향’
이동권 기자 su@vop.co.kr
최종업데이트 2014-08-27


영화 내 마음의 고향의 한 장면ⓒ내 마음의 고향

느리다. 굼벵이처럼 우둔해서도, 베짱이처럼 태평해서도 아니다. 의도적으로 속도감을 줄인 것 같다. 느린 장단의 가락을 잡아주는 둔중한 징소리를 닮았다고나 할까.

찰가당 적막을 깨뜨리는 건, 엄마에게 털 부채를 만들어주기 위해 아이가 죽인 비둘기 한 마리.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찾겠다고, 산사를 떠나는 12살 아이에게 온갖 연민이 솟는다.

무겁게 눈이 감긴다.

영화 <내 마음의 고향>은 깨끗하다. 산사(山寺) 분위기에 젖어 한없이 고요해진다. 누구한테 들킬세라 모든 게 조용히 꿈틀거린다.

줄거리는 짐짓 위태롭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슬랑아슬랑하다. 수로를 따라 떨어지는 물소리, 바람을 타고 뒹구는 낙엽. 소나기 한 번 시원하게 내리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멋없고 꽉막힌 상황에서 찾아오는 근사한 평화. 이 영화가 주는 전반적인 느낌이다.

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은 다소 의아하다. 원작자인 월북작가 고 함세덕 선생의 의중이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불교영화라고 할지 모르겠다. 영화의 배경과 사상, 설정, 음악, 대사 모두 불교적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이 영화는 인간의 원초적 속성을 불교적 소재와 감성으로 그려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속세와 절연하지도 못했고, 현실과 동화되지도 못했다.

종교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진실로 구도하거나 인간을 위한 것, 둘 중 하나여야 한다. 해답 또한 현실에서 찾아야 하며, 구도는 구도자의 몫이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강요돼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야금야금 가슴을 옥죈다.

불교가 싫지 않았다.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려는 대자대비의 교리가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자비심이 느껴지지도,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았다.

특히 엄마를 향한 아이의 그리움을 무참히 꺾어버린 주지스님의 격노는 불교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지 스님은 아이까지 버리고 도망간 여인의 욕정을 끝내 용서하지 못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엄마를 근본도 안 된 여자라고 내쳤다. 그리고선 그 여인의 업을 아들에게 전가시켰고, 아들에게 불가에 귀의해 그 업을 풀도록 강요했다.

게다가 스님은 엄마에게 털 부채를 만들어 주기 위해 비둘기를 잡는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새 한마리의 죽음에 역정을 내는 주지 스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폭력과 살상은 생명의 고통에 동감해야만 사라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비둘기와 견주는 건 무리였다. 그것은 부처님과 같은 자비가 아니라 스님의 아집처럼 느껴졌다.

주지 스님의 일성은 현실과 담을 쌓았다. 국난이 일어나도, 그것은 인간사라고 외면할 태세다.

스님이 서울에서 온 손님을 위해 아랫사람을 닦달하는 모습도 불편했다. 절에 시주 좀 한다고 특급대우를 하는 모양새도 그랬고, 부잣집 딸이 공작 깃털로 만든 털 부채를 들고 절에 찾아와 아이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도 거북했다.

자식을 잃은 부잣집 딸의 슬픔이, 아이를 양자로 들이려는 마음으로 전이된 점도 진부하고 옛스러웠다. 아이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아이가 생모와 함께 살도록 도와줘야 했다. 그것이 인정이다. 막말로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 저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와 아이를 앞에 두고 진실을 감췄다.

죽은 자식의 극락왕생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부잣집 딸이, 엄마를 그리며 살아가는 아이의 슬픔보다 매우 특별한가?

결국 아이는 산사를 떠난다. 주지 스님과도, 서울에서 온 부잣집 딸과도, 산에 사는 사람과도 모두 등을 지고 속세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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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떠나겠는가? 모두 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신물이 나서겠지만, 아이는 거기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주지 스님의 자비, 부잣집 딸의 자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산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불교의 자비에 비추어, 매일 생선과 고기를 먹는 중생을 낮잡아 보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털 부채를 만들기 위해 잡은 비둘기는 어찌 봐야 할까.

아이는 스스로 구도자가 되겠다고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직 아이의 마음에는 어미에 대한 그리움과 산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마음의 고향>은 1949년에 발표된 불교영화 ‘마음의 고향’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고루하고 지루한 면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기 좋은 작품이다. 또 그 당시 사람들의 양식과 정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빠름만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정적이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면에서는 좋은 평가도 기대할 수 있겠다.

박영철 감독이 영화 <동학, 수운 최제우> 이후 새로운 극영화를 만들겠다고 얘기한지 2년 정도가 흘렀다. 그가 영화 <내 마음의 고향>을 들고 서울청소년국제영화제 '틴즈아이> 섹션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영화 <내 마음의 고향>은 27일 아리랑 시네센터에서 상영되며, 올해 11월에 전국에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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