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7

알라딘: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 퇴락한 반동기의 사상적 풍경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 퇴락한 반동기의 사상적 풍경

서경식 (지은이) | 한승동 (옮긴이) | 나무연필 |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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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324쪽 | 210*148mm (A5) | 426g | ISBN : 979118789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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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일본이란 나라는 조용하면서도 섬세하고 예의 바른 듯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지워내려 하며 보수화로 치닫는 보이기도 한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이 양가적인 이미지 가운데서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본다. 이번 책에서는 한일 양국 간에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각종 현안들을 조명하면서 동시에 왜 이렇게 일본이 보수화,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서경식의 진단에 의하면,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상적 반동기에 들어선다. 이는 단지 우파의 탓이라기보다는 일본 국민 다수에 침잠해 있는 ‘국민주의’적 심성을 우파들이 이용한 것이다. 여기서의 ‘국민주의’란,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파고드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을 ‘민주주의자’로서 도덕적 우위에 올려놓고 싶은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분열된 소망을 가리킨다.

즉, 과거의 잘못을 회피하고 그것을 지나간 일로 돌리면서도 양식 있고 선한 위치에 서고 싶은 심성이 사회적으로 발현되었고, 일본 정계의 다수파인 우파들이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2015년 말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바로 그러한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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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한국의 독자들에게
1장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다시 재일조선인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2장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지식인의 각성을 촉구한다: 와다 하루키 선생님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3장 피해자를 갈라서게 하는 자기 정당화에 대하여: 와다 하루키 선생님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4장 애매한 일본과 나: 마이너리티의 시선으로 본 근현대 일본의 풍경
5장 국가·고향·가족·개인: ‘패트리어티즘’을 생각한다
6장 유럽적 보편주의와 일본적 보편주의: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서
7장 타자에 대한 단편화된 인식에 대하여: 안보법제를 둘러싼 움직임을 중심으로
8장 헌법 9조를 지켜라: ‘조선병’ 환자의 독백
9장 일본인이 해부한 ‘닛뽄’의 민낯: 헨미 요의 『1★9★3★7』에 대한 응답
옮긴이의 글│주석│찾아보기



P.6 : ‘일본’은 근대의 시발점부터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이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최근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근대사의 짐인 식민지배의 유산을 올바르게 극복하...
P.36~37 : 199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나눔의 집’에 사는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일본에서도 공개됐습니다. 그것이 나카노의 영화관에서 상영됐을 때 우익이 방해를 하면서 스크린에 불을 끄는 소화제를 뿌렸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선 ...
P.80~81 : 좀더 큰 역사 속에서 살펴본다면,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동서 대립 구조의 종언과 함께 떠오른 사태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고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피해자들이 이름을 밝히며 나설 수 있게 됐고, 지원 운동도 활발...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7년 9월 2일자 '책의 향기/150자 맛보기'
한겨레 신문
- 한겨레신문 2017년 8월 31일자





저자 : 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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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1995년 마르코폴로상
최근작 : <서경식의 인문 기행>,<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치유의 인문학> … 총 47종 (모두보기)
소개 :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쿄게이자이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 예술인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승과 서준식의 구명운동을 벌였고, 1980년대 초부터는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실, 일본의 우경화,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 등을 화두로 글을 써왔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





역자 : 한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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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사회를 말하는 사회>,<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대한민국 걷어차기> … 총 33종 (모두보기)
소개 :
1957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1988년 《한겨레》 창간 때부터 현재까지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3년간 도쿄 특파원을 지냈다. 이후 국제부장, 문화부 선임기자, 논설위원 등을 거쳐 지금은 문화부에서 책과 출판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우익에 눈먼 미국』 『시대를 건너는 법』 『나의 서양음악 순례』 『디아스포라의 눈』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멜트다운』 『보수의 공모자들』 『폭력은 어디서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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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분야 : 여성학/젠더 16위 (브랜드 지수 4,489점)







우리는 지금의 ‘일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날카로운 소수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일본의 풍경

근대의 시발점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우리에게 어렵고 곤란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 알 수 있듯 식민지배라는 무거운 과거사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숙제이며, 재특회(在特会) 등의 세력이 거리에서 혐한론(嫌韓論)을 외치는 데서 알 수 있듯 일본 사회는 점점 극우 보수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서경식은 바로 그러한 ‘일본’의 과거와 현재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감성 풍부한 에세이스트 서경식과는 또 다른, 날카로운 ‘전투적 논객’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으로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왔기에, 자신이 그 내부에 있으면서 동시에 ‘일본’이라는 대상을 끊임없이 사유할 수밖에 없는 문제적 존재다. 이 책은 그러한 그가 오래전 과거처럼 여겨지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아시아에서 벌인 전쟁에서 패한 이후 일본이 어떤 흐름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사상적 반동기에 들어서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민족 중심주의를 넘어서 ‘보편’과 ‘연대’와 ‘평화’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을지를 탐색해본 작업이다.

과거의 ‘사실’을 외면하고 등 돌리는 일본의 현재
서경식의 진단에 의하면,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상적 반동기에 들어선다. 이는 단지 우파의 탓이라기보다는 일본 국민 다수에 침잠해 있는 ‘국민주의’적 심성을 우파들이 이용한 것이다. 여기서의 ‘국민주의’란,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파고드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을 ‘민주주의자’로서 도덕적 우위에 올려놓고 싶은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분열된 소망을 가리킨다. 즉, 과거의 잘못을 회피하고 그것을 지나간 일로 돌리면서도 양식 있고 선한 위치에 서고 싶은 심성이 사회적으로 발현되었고, 일본 정계의 다수파인 우파들이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2015년 말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바로 그러한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해결해야만 하는 과거란 과연 무엇일가.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일제강점의 역사가 될 것이고, 중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게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가 될 것이다. 40여 년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온 사람의 피로감이랄까. 이 뼈아픈 과거에 대한 서경식의 묘사에서는 다소 지친 기색도 엿보인다. 일본인으로서 전쟁의 열기가 타오르던 1937년의 일본을 해부하듯 묘사해나간 헨미 요(辺見庸)의 『1★9★3★7』을 소개하면서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전쟁, 학살, 차별 등에 대한 사실 인식을 독자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다시 주장할 것도 없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라는 사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일까. 적어도 어느 세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사실’의 유무가 아니라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 서 있으면서 거기에 등 돌리고 지나칠 수 있는 심성이다.“
물론 일본에도 한때 등 돌리고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던 시기가 있었다. 전쟁 시기의 와타나베 가즈오로부터 전후의 가토 슈이치, 오에 겐자부로로 이어지는 일본 휴머니즘의 가느다란 계보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에는 이들이 비록 소수파일지언정 일본의 과오를 직시하면서 성찰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대외 팽창과 침략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인 천황제에 대해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천황제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말들이 회자되곤 하던 시절이다. 서경식 또한 일본 사회에서 이들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성장한 지식인이다. 그러하기에 그에게 일본의 반동기는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반동기에 들어선 일본
그렇다면 이 반동기는 어떻게 태동된 것일까. 그 당시에 처음 존재를 드러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넓은 역사적인 시야로 본다면,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동서 냉전 구도의 종언과 함께 떠오른 사태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면서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피해자들이 이름을 밝히며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지원 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전까지 봉인돼 있던 일본의 전쟁범죄 문제가 표면에 떠오른 것이다.
반면에 당사국인 일본은 이 벡터가 역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동서 대립의 종언이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천박한 구호와 함께 진보적 리버럴파의 자기 해체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새로이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기 붕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던 사회당은 보수·우파인 자민당과의 연립을 받아들인다. 국가주의에 저항하며 히노마루(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해왔던 일본교원노조는 방침을 전환해 이를 용인한다. 이때 상투적으로 쓰인 말은 “시대는 변했다. 이젠 이데올로기 시대가 아니다”이다. 진보 세력이 스스로 이념과 이상을 내버리자 우파 세력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성채를 강화해나갔다.
이에 서경식이 냉철하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대상은 바로 일본의 ‘리버럴파’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나 우파를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일본 사회의 ‘리버럴’한 언설을 깊은 의미까지 파고들어 비판하는 일이다. (……) 내 생각으로는, 많은 경우 한국인들의 일본론은 이 지점에 약점이 있는 듯하다.” 서경식이 말하는 ‘리버럴파’는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사회당·총평(總評,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계 그룹, 신문을 예로 든다면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과 그 독자층 정도다.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은 예전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호칭과 거의 겹친다. 이들은 확신범적 국가주의자는 아니고 아시아 민족들과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관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지만, 식민지 책임 문제에 대한 인식은 결여돼 있거나 부족하다. 서경식은 이들이 취하는 애매한 태도가 관성적으로 고착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자성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2~3장의 두 글이 일본의 대표적인 리버럴파 지식인인 ‘와다 하루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은 서경식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경식은 1980년대 초의 어느 날, 와다 하루키와 도쿄의 긴자 거리에서 마주친다. 어디 가시는지 묻자 답변은 이러했다. “스키야바시 공원에 가서 시위를 할 겁니다.” 당시는 5·18민주화운동 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군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현해탄 건너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일본인들이 공원에 모여 이런 구호를 외쳤다.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 와다 하루키 역시 번화한 긴자 거리를 지나 바로 그 자리에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서경식은 바로 그 와다 하루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의 입장을 묻고 있다. 이들은 극심한 반동기를 경유하면서 결국 다른 입장으로 조우하게 된 셈이다.
서경식은 이념과 이상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민주화를 쟁취한 한국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둘 원칙을 포기하면서 보수파 및 관료들과 타협해간 일본의 진보 세력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 선언한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한일 간의 엇박자와 갈등 심화도 일본 리버럴파의 퇴행적 변절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일본 리버럴파가 양국 간 갈등을 주도적으로 조성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일본의 극우 반동적 퇴락을 저지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민중 연대를 진작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일본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서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되고 있지만 총체적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일본의 현재에 대한 서경식의 묘사를 살펴보자. 즉, 이 반동기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2012년 일본의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었을 때, 많은 시민들이 도쿄의 아키하바라 역 앞에서 연설하던 아베 신조 총재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며 반중(反中)·혐한·재일 외국인 배척 구호를 외쳤다. 그야말로 1930년대의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광경이 연출된 셈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일본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도쿄의 도심에서는 “조선인을 죽여라!” 같은 헤이트 스피치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재특회 같은 모임을 중심으로 집회를 여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조선학교를 습격하기까지 했다. 한 여성 만화가는 난민이나 재일 외국인이 일본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속임수로 복지를 누리면서 안락하게 살고 있다며 증오를 부채질하는 만화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일본 정계의 상황도 살펴보자. 2015년 9월에는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법제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일본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이어서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 의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교전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헌법 9조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권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은 묻지도 해결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원전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며 전 세계를 향해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이것이 과거를 잊은 채 ‘자국민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반동기 일본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출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서경식은 이라크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에드워드 사이드가 한 말을 소개한다. 사이드가 죽기 7개월 전에 인터뷰에서 했던, 일종의 유언이라 할 만한 말이다. “지금 현재 제국주의자들을 이토록 제멋대로 날뛰게 만든 원인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사이드는 이렇게 답한다. “강력하게 조직되고, 많은 사람들을 확실하게 동원할 수 있는 저항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 그와 함께 지식계급 전반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중요한 목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중요한 목표란 에메 세제르(Aime-Fernand Cesaire)가 말했듯이 자유와 해방과 계몽을 추구하는 모든 민족들이 모이는 승리의 모임입니다.”
서경식은 희미해 보이지만 ‘보편적 가치’를 향한 가능성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찾고 있다. 강대국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왜곡된 보편주의를 정의인 양 펼쳐가는 세상에서 이를 넘어선 보편주의가 과연 가능할까? 서경식은 그 좁디좁은 출구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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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좋은 책. 헨미 요의 새 발견.
whoeverjamesis ㅣ 2017-10-10 l 공감(0) ㅣ 댓글(0)



서경식 선생님의 고민 깊이가 더해졌다. 나 또한 일본에 대한 생각도 고민이 더해졌다.
초록민들레 ㅣ 2017-10-07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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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와 서경식의 차이는 ‘사고의 유연함‘? 철학본색 ㅣ 2017-09-23 ㅣ 공감(13) ㅣ 댓글 (0)













1. 유연함, 유연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애매함은 정치인의 미덕일 수는 있어도 '지식인'의 미덕이 될 순 없다. 정치인이 현실적 상황에 맞춰 적당한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해,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에서는 그 반대로 말하면서 생기는 모순과 애매함은 정치인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란 타협의 기술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정치인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내 의견을 다른 의견과 ‘타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애매함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인에게 애매함이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가 지식인이라면 일상에서의 다른 경우에서라면 몰라도, 대문자 '비판'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 지식인이 비판을 해야 하는 대상에 대해서 유연한, 혹은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 니체에게 붙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은 그가 비판의 명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니체에게 도대체 어떤 애매함이 있는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알테지만, 데리다의 해체 일반 전략도 비판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번역상 야기되는 문제가 있을지언정) 데리다의 비판은 결코 난해하지 않고, 애매함과도 거리가 멀다. 데리다의 해체전략은 명료하다. 어쩌면 지식인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전회’를 들어 발전하는 지식인이라면 유연성을 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사유 자체가 유도하는 자기 전개로 인해 발생하는 사유의 전회는 있을지언정 '현실적' 이유로, '정략적' 이유로, 정치인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유연성을 갖게 되는 경우는 없다. 후기 하이데거의 전회는 사유의 도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발생적 현상학으로의 전회는 후설 자신에게는 발전이었고 사유 자체의 전회가 아니었다.

2. 지식인은 현실을 옹호하거나, 현실 자체의 불가피한 한계 때문에, 부당한 현실 자체를 당위로 삼는 사람이 아니다. 이청준은 <지배와 해방>(1977)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물음에 이정훈이라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조금 긴 인용이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소설로써 고발하는 것, 의롭지 못한 일을 증언하는 것, 우리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해 오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비인간적인 제도와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것들을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하는 것,소위 새로운 영혼의 영토를 획득해 나가고 획득된 영토를 수호해 나가려는 데 기여하는 모든 문학적 노력이 종국에는 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스럽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삶의 진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깊고 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을 가장 삶다운 삶으로 돌아가 살게 하는 옳은 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 한 사람은 우리의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제도와 문물과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삶이 그 억누름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삶,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의 질서입니다. 이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의롭지 못한 현실을 불가피한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정치인의 역할이다. 지식인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만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인의 역할은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진리와 현실적 부당성을 적절히 타협해내는 정치인의 유연함과 애매함을 버리고 진리를 거울삼아 현실이라는 무게가 만들어내는 거짓된 당위를 철저히 비판하기로 한 자다. 그러니까, “당신이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라는 말 다음에 “그건 결론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자는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 듣기 좋은 말, 힐링을 위한 말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말일 수는 있어도 지식인의 말이 아니다. 지식인은 그보다 더 어려운 말을 꺼내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이 전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니지요”라고 말이다. 이처럼 옳고 그름, 오래된 진리에 매달리는 사람은 보통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인기가 없고 외롭지만 지식인이 옳음, 진리, 진실, 자유의 자리에 서서, 손해를 보고 고립을 자초한다고 해도 권력에 대해 해야 할 말을 할 수 없다면 그는 좁은 전공분야에 자리한 전문가일 뿐이다.




3. 위안부 합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이런 긴 이야기를 썼다. 현실적으로 일본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지게 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이번 합의를 뒤집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일본 국민들의 정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정치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늘 그런 ‘현실적으로’라는 식의 클리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지식인이 아니다. 운동을 해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또 현실적인 이유로 이 문제가 안고 있는 물러설 수 없는 ‘진실’까지 양보했다면 그건 정치일 수는 있어도 결코 ‘비판’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2017)에서 서경식이 와다 하루키를 비판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런데 박유하는 와다 하루키에 대한 서경식의 옳지 않은 일을 두고 옳지 않은 일이라고 시종일관 말하는 것을 두고 사고의 경직이라고, 운동 논리라고 한다. 이런 폄훼하는 식의 이야기는 정치인이라면 지식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지식인이 지식인에게 할 수 있는 비판으로서는 성립될 수 없다. 지식인이 지식인에게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지식인이 받아들이는 옳음, 진리의 결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어야지 그 사고의 '시종일관'을 향한 것이어선 안된다. 지식인은 완고하다.









4. 박유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경식 책의 출간 보도에 맞춰 이렇게 쓴다.

“냉전붕괴이후 일본의 진보좌파들은, 곧바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40년전 학생운동시절의 급진/온건파의 싸움이 있다. 90년대 이후에도, 급진파는 오래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에만 집착해 왔고, 온건파는 눈앞에 놓인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필요하면 그때까지의 생각을 수정했다. 와다 선생이나 우에노 선생과 서경식 교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고, 그런 식의 태도의 차이를 만든 건 내가 보기엔 사고의 유연성이다.”

덧붙여 이런 말도 썼다.

“와다 교수의 선택이 가장 옳았는지 여부는 얼마든지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와다 교수는 늘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위안부할머니와 모두를 위한 최선이 뭔지 늘 고민해 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와다 교수를 비난했던 이들은 이질적인 의견에는 귀를 닫았고,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지금의 북한처럼. ” (강조는 인용자)



학생운동에서라면 온건파와 급진파로 얼마든지 나뉘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급진파 운동권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그리고 그런 식의 태도 때문에 언제나 온건파가 현실정치에 더 잘 적응했고, 더 쉽게 뿌리내렸다. 나는 와다 하루키나 우에노 치즈코를 지식인이 아니라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만 분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정치인’과 같은 전략을 갖는 것을 얼마든지 칭찬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데 와다 하루키는 '지식인' 중의 '지식인'으로 존경 받는 학자가 아닌가. 지식인 와다는 비판해야 할 것에 대해 현실을 등지고 진리에 입각해 비판하고 있는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도대체 와다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에 있는 리버럴 지식인들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왜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이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누구인가? 거기에는 일본정부도 포함된 것인가? 와다는 위안부할머니와 일본정부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왔던 것인가? 와다와 박유하는 이 문제 해결의 최선은 위안부할머니들의 시종일관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인가? 그것이 피해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불가역적 합의 혹은 그저 돈이었던 것인가?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준 자가 자신의 소송이 서경식, 정영환과 같은 이들이 구조적 폭력을 용인하는 사실 때문이라고 믿는 것을 ‘지적 퇴락’이라는 말 외에 다른 무엇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제거욕망”으로 박유하는 생각한다고 썼는데, 여기에서 5공 시절 안기부가 즐겨 쓰던 방식의 지식인 죽이기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묘한 도치, 해괴한 이어붙이기의 방식은 정치인의 것이라기보다 공안의 방식이 아니던가. 내가 가져온 인용구의 마지막 문구, '지금의 북한처럼'이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말은 왜 붙여둔 것일까? 이런 식의 배치를 통해 어떤 의미 효과를 기대했던 것일까? 재일'교포'라는 말과 '북한'을 나란히 위치시켜, 보통의 사람들이 이를 보고 기묘하게 오해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로, 그런 악마적인 방식으로 이어붙이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내가 너무 지나친 것일까? 공안은 우리 상상보다 언제나 더 지나쳤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5.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일본인을 ‘애매한’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고, 그러한 고립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침략이 행해졌다”고 썼다. 이런 말을 오에가 쓴 것을 보니 박유하는 오에에게도 퍽 사고가 유연하지 않다고 할 것 같다. 오에에게도 '지적퇴락'이라고 박유하는 쓸 것인가? 자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자신의 소송 외에는 어떤 폭력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사고가 '유연하신' 존재인지라 '당신은 애매한 존재'라고 밖에 돌려줄 말이 없다.




"단언컨대, 이들은 서경식교수 정도나 그 주변 인물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볍게 다루어져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말도 박유하가 같은 글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박유하의 언설과 달리 서경식은 공개서한에서 와다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서경식이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을 비판할 때도 결코 가볍게 다룬 적이 없다. 그건 박유하가 재일조선인 지식인의 습관이라고 했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확인 없이 옮겨 쓰는 P 본인의 오래된 습관'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왜 비판은 사랑과 존경으로 하는 것임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지식인이 공화국에 대한 존경이 없었다면 목숨을 걸고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겠는가? 와다에 대한 존경이 없다면 비판이 있겠는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꾸할 가치가 없는 법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박유하에 대해서 대꾸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녀에 대한 일말의 존경은 있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지식인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대문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은 없다. 일본 리버럴을 비판했다고 가볍게 다뤘다고 한다면, 일본 리버럴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는가. 하는 말마다 실수를 하는데, 그녀의 기사단은 그녀 역시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어서 비판하면 몰아세우기 바쁜가보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비판을 결의하기까지의 고뇌의 무게와 용기를 생각하기 전에 그 누군가를 ‘가볍게 대한다’고 생각했다면 비판이라는 것이 뭔지를 모르거나, 정치인이 경박스럽게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다는 증거다. 참으로 공안적 지식인다운 경박한 왜곡이라고 할밖에.======


6 ‘일본’은 근대의 시발점부터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이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최근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근대사의 짐인 식민지배의 유산을 올바르게 극복하기 위해, 또한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나 우파를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일본 사회의 ‘리버럴’한 언설을 깊은 의미까지 파고들어 비판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본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도 없고, 그 문제점을 극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많은 경우 한국인들의 일본론은 이 지점에 약점이 있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보았다.



36~37 199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나눔의 집’에 사는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일본에서도 공개됐습니다. 그것이 나카노의 영화관에서 상영됐을 때 우익이 방해를 하면서 스크린에 불을 끄는 소화제를 뿌렸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발언을 했습니다만, 대부분이 예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대한 폭거라고만 얘기했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 일본 국가의 식민지배 책임과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주장이 공격당했다는, 그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말만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공허한 주체입니다. 그 주체의 공허함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불러들였다고 봅니다.
이 공허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위해 연대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합니다. 분명 그래야지요. 하지만 그들은 자기 나라의 식민주의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와 연대할 수 있습니다.



80~81 좀더 큰 역사 속에서 살펴본다면,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동서 대립 구조의 종언과 함께 떠오른 사태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고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피해자들이 이름을 밝히며 나설 수 있게 됐고, 지원 운동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때까지 봉인돼 있던 일본의 전쟁범죄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이 벡터가 역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동서 대립 시대의 종언이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천박한 구호와 함께 진보적 리버럴 세력의 자기 해체라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사회당·총평 블록 자체가 ‘55년체제’라 불린 구체제에 의존해온 것이긴 하지만, 그런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롭게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기 붕괴의 길을 택한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사회당은 소선거구제를 수용하고, 자민당과의 연립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일관되게 국가주의에 저항해온 일본교원노조는 방침을 전환해 학교 행사 시 히노마루 게양, 기미가요 제창을 용인했습니다.
그때 항상 주고받은 상투어가 “시대는 변했다. 이젠 이데올로기 시대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진보 세력이 스스로 탈이데올로기라 칭하면서 이념이나 이상을 내버렸을 때 우파 세력은 오히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성채를 강화하고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152~153 재특회 등의 주장은 단지 인권침해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며, 그 밑바탕에는 식민지배 책임과 전쟁 책임을 부인하려는 머조리티의 욕망이라는 광범한 토양이 깔려 있습니다.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11만 명 이상의 일본 시민들이 극우 배외주의자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전후 한때 그 욕망은 부분적이고 형식적으로 봉인됐지만, 일단 봉인이 풀리자 ‘본심’이 풀려나왔습니다.
이런 우파·보수파의 ‘본심’에 대항해야 할 세력으로서의 리버럴파는 중간 지대에 안주하면서 시시각각 악화되는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며 방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내면화된 국민주의와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또한 쉽게 ‘애매한 일본’ 품에 안겨 제어장치 없이 시류에 떠밀려갈 것입니다.



201 타자에 대한 개인의 자발적인 헌신을 기대해도 좋다고 단언할 근거가 내게는 없다. 개인의 자발성에 맡겨두면 자연스레 세계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할 근거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위에서부터’의 이데올로기나 규범으로 정하는 순간, 개인의 자발적인 행위는 권력에 의해 횡령당하고 이용당한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런 위험성에 최대한 민감하게 대처하려고 하는 것만이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길이다.
인류사의 현 단계에서 우리는 아직 국가와의 연줄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국가는 당분간 우리의 세계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래도 국가의 전횡과 폭력을 막고, 인간 사회를 더 좋게 바꿔나가려면 개인의 존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 다양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통해 국가를 견제해가는 수밖에 없다.



249~250 나는 2016년 3월에 강연 등을 위해 코스타리카를 방문했다. 코스타리카는 작은 나라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대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헌법상으로는 무력(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나라지만, 그 규정은 현행 헌법 공포 뒤 몇 년 만에 형해화했다. 그러나 설령 내용 없는 원칙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 원칙조차 팽개쳐버린 뒤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 불안과 공포가, 형해화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평화주의를 유지시켜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자위대가 헌법 위반이라면 헌법을 바꿔 정식 군대로 만들자는 주장이 총리를 비롯해 주요 정치가들 입에서 공공연히 튀어나오게 됐다.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들에게 “지금 세계적으로 비무장 국가는 명실공히 이 나라밖에 없네요”라며 얘기를 건넸더니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앞으로도 어떻게든 비무장 원칙을 지켜가겠다고 답했다. 전 세계에 군사주의와 배외주의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언제까지 이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까. 현대에 이렇게 무장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지구상에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상상해본다. 희귀 동물의 절멸은 생태계의 파멸적 결과를 예고하는 것인데 이 작은 나라가 그 이상과 평화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거기에 인류 전체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 국민은 헌법 9조를 지키면서 코스타리카 사람들과 연대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 평화주의를 보급해야 한다. 그것은 일본 국민이 자국의 전쟁으로 인한 모든 피해자와 사망자들에 대해 짊어지고 있는 채무이며 엄중한 사명이다.



269~270 타국을 침공해 비전투원을 포함한 타자를 대랑 학살했다는 사실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 있을까. 국가 정책으로 타민족 여성들에게 대규모로 계획적인 성적 착취를 자행했다는 사실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 있을까. 전자에 대해 희생자 수를 운운하면서 책임을 부정하려는 사람들, 후자에 대해 국가에 법적 책임은 없으며, 책임은 업자들에게 있다는 따위의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부끄럽지 않은 것일까? 자신의 아버지, 상사나 동료, 이웃 사람이나 벗이 그런 행위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가담했거나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치욕감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치욕감 따위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원칙적인 감정’을 이미 저버렸다. ‘국제 연대’의 기초가 돼야 할 부끄러운 감정 자체가 없어졌거나 애초부터 그런 것 따위는 나눠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얘기해봤자 그들은 이제 와서 새삼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인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말해봤자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파괴돼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국제 연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먼저 이 ‘원칙적인 감정’을 되살려야 한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문학’이 떠맡아야 할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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