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9

[RFA 초대석] 평양 만수대창작사 방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

[RFA 초대석] 평양 만수대창작사 방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


[RFA 초대석] 평양 만수대창작사 방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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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대 창작사 인민예술가 문정웅화백의 창작실에서
만수대 창작사 인민예술가 문정웅화백의 창작실에서
사진-문범강 교수 제공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지난 가을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했던 미국 미술계 중진화가 문범강 교수가 최근 워싱턴에서 북조선 선전화와 조선화에 대한 영상물을 소개하고 특별 강연을 했습니다. 미국의 명문 조지타운대학교 소강당에서 열린 이 강연회에는 북조선의 예술과 북-미 문화교류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반영이나 하듯이 미국인 교수, 학생, 미술가, 국무부 관계자 그리고 지역 한인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 대학교의 미술과 교수인 문 화백은 강연에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선전 선동목적만을 추구하는 이른바 북조선의 획일적인 주체미술의 한계와 외부세계와 단절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북조선 산수화에 나타난 작가 개인들의 독특한 개성을 발견해 서양화가로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문범강 교수를 만나 북조선 미술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지난해 구구절 북조선 창건일을 기해 북한에 다녀오셨는데요.

문범강 교수: 네. 제가 시각예술가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3년전 중국 청나라 황후를 모태로 해 제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전시회가 지난 해 아메리칸유니버시티 뮤지엄에서 있었는데요, 그런 큰 나라에 숨겨진 에너지에 대해 개인작가로서 제가 작품을 한 게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차단된 사회에 숨겨진 에너지가 뭘까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전: 그럼 문 교수께서 조지타운 대에 몸담고 있는 화가란 걸 그쪽에서도 알았습니까?

문 교수: 물론입니다.

전: 북한화단의 유명한 화가들에 대한 면식 있었습니까?

문 교수: 신동훈 씨라고 북한 미술 전문가가 계십니다.

전: 워싱턴 인근에 살면서 북한미술품을 다루는 화상으로 알고 있는데요.

문 교수: 그렇습니다. 일반적 화상이라고 말씀 드리기에는 지나온 발자취가 깊고 지난 23년동안 북한 미술에 관심을 두고 평양을 거의 70회 방문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이분을 통해 북한 미술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습니다.

전: 몇 년 전이었습니까?

문 교수: 최소 10년 이상 됩니다.

전: 그럼 그 이전에도 북 선전화 조선화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를 하셨습니까?

문 교수: 그 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신 선생을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이지만 북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갖게 됐습니다. 특히 평양을 방문한 뒤에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전: 특히 조선화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문 교수: 북한의 조선화는 한국에서는 한국화로 대체되고 있는데, 역사적 미술사적으로 보면 흔히 동양화라고 부릅니다. 동양화는 먹, 색채와 다양한 붓을 사용해 화선지에 표현하는 그림입니다. 북에서는 전통적인 동양화를 조선화라고 이름 붙여 자기들 고유한 방법으로 지난 60년동안 발전시킨 독특한 장르입니다.

전: 아까 본인을 시각예술가라고 소개하셨는데 본인의 전공은 어떤 분야입니까?

문 교수: 지금까지 여러 예술 매체 표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지금은 회화가로 페인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로서의 영역을 넓혀 자유로운 표현을 하고자 계속 도전 중입니다.

전: 지금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무엇입니까?

문 교수: 제가 가르치는 과목은 전부 페인팅, 즉 회화입니다.

전: 북조선에서는 그걸 뭐라고 합니까?

문 교수: 북조선에서는 회화라고 하지 않고 조선화 혹은 유화라고 합니다. 저는 유화뿐 아니라 아크릴릭화, 드로잉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화와 아크릴릭화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 드로잉이라면 조선말로는?

문 교수: 한국말로 표현하면 소묘라고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드로잉이라고 말합니다.

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조선화에 대한 강의도 하십니까?

문 교수: 아직까지는 그런 강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분야는 제 전문분야가 아닙니다. 먹과 물과 색깔을 가지고 화선지라는 독특한 종이 위에 표현하는 것이라서 제가 해 온 매체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앞으로는 특별한 전문가를 초청해서 소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 이번에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북한 인민들과 예술에 대해 특별강연을 하셨는데 저도 가 봤습니다. 300여석이 넘는 좌석이 꽉 차도록 미국인들이 많이 왔고 질문도 하던데요, 강연 처음에 조선우표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조선우표를 예술적 측면에서 생각하신 겁니까?

문 교수: 조선우표가 제게 특별한 재미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평양 방문 시 조선우표사 라고 기억되는데 거기를 들러 우표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흥미위주로 희귀품 수집차원에서 많이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과연 그 우표들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 분석해 봤습니다. 그 결과 우표 하나하나가 북한에서 내세우는 사회 정책, 인민들을 계도하는 정책, 노동과 사회주의를 고취시키는 정책이 잘 드러난 하나의 작은 형태의 선전화라고 판단했습니다. 좀 더 연구를 해 봤더니 우표에 나오는 그림과 일반 프로파간다 포스트라는 선전화 또 거리에 장식된 선전화의 이미지와 동일한 이미지가 상당히 많았고 거기에는 슬로건, 구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시각 이미지와 함께 구호들이 강력하게 어필되고 있는데 저는 그걸 작은 형태의 선전화로 분류한 것입니다.

전: 강연에서 보여 주신 한 우표에 ‘미제는 함부로 날뛰지 말라.’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인민군 총대로 맞고 있는 미군의 손톱이 늑대손톱처럼 나와 있던데요 그 설명을 듣는 청중들이 다소 웃음 짓는 반응을 보였었습니다. 그 역시 ‘미제국주의’에 대한 프로파간다적인 측면에서 나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문 교수: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북한에서는 미국인을 승냥이라고 배웁니다. 늑대라는 말이죠. 한 엄마가 어린 아이 손을 잡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미국놈 승냥이’ 라는 노래더군요. 아이와 함께 그 구절을 부르며 걸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북한에서는 타도하고자 하는 국가가 몇이 있는데요, 그 첫 번째 대상이 미국이고요 그 다음이 일본이라고 합니다. 36년 억압받은 역사적 배경에서인지 일본이 가장 적대시 하는 국가의 하나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나름대로 연구해 본 결과 놀랍게도 우리 남한하고는 정치적으로 대립돼 있는 가운데서도 우표나 선전화, 더 나아가서는 조선화를 통해 남한에 대한 특별한 적개심이나 분노를 나타낸 그림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한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나 학생운동 같은 것은 작품이나 선전을 통해 많이 반영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전: 만수대창작사도 방문하셨죠?

문 교수: 그렇습니다.

전: 거기서 보신 미술품들이 판매된다고 하셨는데, 한 점당 100달러라고 들었습니다. 풍경화와 김일성 초상화 모두 판매가 됩니까?

문 교수: 주로 풍경화나 일반 인민들의 모습을 담은 생활의 아름다움이나 안락함 등을 강조한 그런 그림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지도자가 들어있는 그림은 거의 판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를 다룬 그림은 특별관리하면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차원에서 공공연하게 판매하는 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그런데 강연에서 김일성 주석은 ‘인민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던데 무슨 의미입니까?

문 교수: 김일성 주석은 미술과 일반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 미술에 나타나는 형식은 사실 소련의 소셜리스트 리얼리즘,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계승한 것입니다. 그런데 소셜리스트 리얼리즘이란 노동자와 사회하급계층을 위한 대표적인 표현양식입니다. 이 체제에서는 노동자와 하급계층을 위해 어려운 그림보다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어야 하고 그 그림을 통해 사회주의 이념을 교육하고 선전할 수 있다고 해서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김일성도 소련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사실주의 철학이나 방향을 따라 ‘인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은 그려선 안 된다’라는 지도철학을 낸 것 같습니다.

전: 그러니까 구소련 스탈린 시대에서처럼 지도자에 대한 선전선동을 대내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림들이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라는 의미겠군요.

문 교수: 맞습니다.

전: 조선화는 왜 화선지에만 그려야 합니까?

문 교수: 그것이 재미있고도 복잡한 상황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저 스스로도 ‘왜 굳이 그렇게 얇은 화선지에 그려야만 하는가?’ 를 생각해 봤었습니다. 원래 유화나 아크릴릭화는 캔버스, 리넨같이 두텁고 질기고 오래 보전되는 매체에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더듬어 봐 알아낸 바에 따르면 다른 사회주의 체제도 그렇겠지만 북한은 내셔날리즘 즉 국수주의가 무척 강한 나라입니다. 더불어 본인들의 자부심과 자신들이 세운 사회주의가 최고라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이런 걸 바탕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매체인 붓과 화선지와 먹에 집착한 듯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화선지도 본인들만의 전통적 방법을 개발해 닥나무껍질로 만든 종이를 만들어 쓰고 있고 물감도 처음에는 소련에서 수입해 들여다 쓰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자신들이 만든 것을 쓰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전량을 자체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국수적인 사상이 조선화를 고집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 김씨 일가, 그러니까 김일성 주석이라든가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의 얼굴에는 같은 테마가 있다고 강연에서 설명하셨습니다. 이를테면 얼굴에는 기쁨과 혁명적인 기상이 항상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북한에서는 ‘스무 명의 북한 화가가 그린 것이라도 그 그림들은 거의 같다……하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즉 북한이 아닌 일반 자유세계의 화가들은 개인적 표현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비교하셨습니다.

문 교수: 네. 맞습니다. 우선 친숙한 서방세계 작가들의 환경을 보면 이쪽은 작가적인 독특성, 자유로움, 기발한 아이디어 등을 중시하고 가치 있는 예술의 표현 방법 또는 재료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무궁무진한 자유를 누리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의 상황은 그렇질 않습니다. 그곳 화가들은 어릴 때부터 세뇌교육과 당이나 지도자에 대한 오직 충성이란 사상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림도 그런 식으로 나옵니다. 중구난방이란 말처럼 그림을 여러 가지 다른 표현으로 하면 인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또 너무 개인적인 표현을 허용하면 당의 정책을 반영하는 작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미술교육을 철저하게 한 방향으로만 지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작가들이 다른 그림을 그렸는데도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많은 무수한 작가가 왜 필요한가? 화가 백 명 정도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텐 데’라는 비판적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들의 교육과 당의 정책을 배경으로 인민이 알아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그림들은 다 같이 곱고 표현이 부드럽습니다. 전쟁이나 혁명사상을 고취하는 그림에서조차도 그 기법은 상당히 곱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전: 북한에서 공훈예술가들이 외부에 나가 보면 외부의 자유로운 다양한 화법에 대해 알 텐 데, 본인들이 예술가로서 개인적인 표현을 하고 싶은 욕망이 없을까요?

문 교수: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60년동안 폐쇄된 사회에서 한 방향으로만 집중적으로 문화와 교육이 연결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재미있는 것은 외부에 나갔다 온 고위층 화가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국가적 사업을 위해 다녀온 화가들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들이 써 놓은 일지나 개인적인 시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우리가 이렇게 충성하면서 우리 식으로 표현 하는 게 더 낫다. 저렇게 복잡하게 표현해서야 어떻게 생활할 수 있겠는가’라는 식이었습니다. 우리 서구 쪽의 시각으로는 ‘북한 화가들이 왜 그렇게 생각할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 사람들로서는 그게 더 당연하고 더 편하고 더 자긍심을 느끼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물론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북한 화가들의 그런 생각이 좀 더 많이 균형적인 시각으로 바뀌겠지만요.

전: 저도 과거 탈북자 화가 두 서너 명과 인터뷰 회견을 해 봤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남한 사회에 와서 그 많은 화법과 자기들이 접해보지 못한 그림들의 개념을 보고는 ‘너무 혼돈스러웠다, 너무 힘들었다,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다’ 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소위 북한의 공훈화가라는 사람들을 만나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문 교수: 네. 이번 평양 방문에서 만수대창작사를 들러 공훈예술가 한 작가와 인민예술가 한 작가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 어떤 분들이었습니까?

문 교수: 인민예술가는 문정웅 화백이라고 산수화를 그리는 분이고 김철이라는 조선화 화가는 호랑이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고 있더군요.

전: 이런 화가들의 그림 중 선전화 조선화는 이념적인 게 많겠지만 풍물화 풍경화처럼 이념이 다소 배제됐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림들을 예술적인 가치로 따질 때 어느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런 것을 나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가품이 될 수 있겠습니까?

문 교수: 재미있는 질문인데요. 저도 그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런 획일적인 사회에서 어떤 그림이 나올 수 있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강연에서 보여드린 바대로 의외로 풍경화 쪽에서 상당히 독특하고 특이한 표현을 하는 작가들이 많았습니다.

전: 어떤 점에서 특이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문 교수: 형상이 들어있는 그림에서는, 이를테면 군인 농민 지도자 등의 사람 형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거의 동일시 돼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렸는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곱고 아름답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수화- 북조선에서는 풍경화라고 하는데요- 이것을 보면 화가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화가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제가 강연에서 소개한 네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내심 놀랐습니다.
이 사람들의 작품을 보면 첫 눈에 ‘아 이 작품은 누구의 것이다, 저 작품은 어느 작가의 것이다’가 확연히 구분이 될 정도로 작가적인 독특한 체취와 표현 방법이 놀랍게도 발전되고 있습니다.
제가 소개한 이런 작가들은 북한에서 이를 테면 국보급의 가치를 두는 인민예술가들입니다. 이들이 한창 나이 젊은 때는 주제화 이념화 그리고 지도자나 전쟁이나 혁명을 표현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는 연로해 지니까 당국에서는 이들의 국가에 대한 노력과 기여한 공을 참작해 ‘이제는 여생을 너희가 그리고 싶은 산수화를 마음대로 표현해서 그려라’ 하는 어떤 묵인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법을 구사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은 그렇게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사회입니다.
그리고 투자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 봤습니다. 이 산수화들을 보면 작품성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전통적인 발묵법 몰골법 구륵법 등 동양화 표현방식을 잘 응용하면서도 나름대로 개성이 강한 작품을 잘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근래 미술품 경매를 통해 북한 미술 작품들이 수십만 불에 낙찰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품성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의 가치는 향후 작품의 재투자, 재테크 방향에서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북한 산수화의 경우 어떤 점에서는 우리 서구세계에서 봐도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면서도 전통을 지키는 작품성이 뛰어나고 참신한 작품이 많습니다. 향후 이런 작품들의 가격이 어떻게 될 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수집을 해서 가정에 두고 싶은 그런 우수한 작품이 많습니다.

전: 아까 김 씨 일가의 얼굴에는 어떤 테마가 있다, 이를 테면 기쁨 환희 혁명의 기상 등 지도자가 지녀야 할 테마가 그것인데요 이제 3대세습에 따라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3대 지도자가 초상화에 많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북한에 가셨을 때 김정은 초상화를 보셨는지, 보셨다면 거기에도 같은 테마가 들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문 교수: 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당시 정치상황은 김정은 후계자를 지명한 상황이었고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세 사람만이 국가지도자로서 작품의 대상이 돼 있었고 김정은 후계자는 한 번도 예술작품에 등장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그러면 앞으로 지도자 김정은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있어 북조선 화단에서는 그의 영상 이미지에 대해 고민을 할 것 같습니까?

문 교수: 제가 짐작하기에 지금까지와 특별히 다른 방향이나 기법을 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고유한 기법 테크닉이 새 지도자에게도 적용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지난 가을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했던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의 미술과 교수 문범강 화가를 만나 북한의 선전화와 조선화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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