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

나는 왜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3)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3) - 에큐메니안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3)한국 교회 에큐메니즘의 전개와 李信 신학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 승인 2018.11.10 19:54
댓글0
icon트위터
icon페이스북


한국적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과 함께 하는 믿음의 ‘저항’(誠)에 대하여

앞에서 들었던 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에 대한 비교연구에서 이신은 키에르케로르는 인간을 주로 개체적인 차원에서 철저히 영원 앞에서 선 ‘단독자’로서 그렸던 반면 본회퍼는 그와 달리 인간을 하나님 앞에 있는 다른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의 ‘사회성’ 차원에서 보았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이 차이란 어느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고, 각자가 자신의 시대가 요구하는 신앙적 주체성과 창조성을 나름대로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고 밝힌다.(미주 1)

해방 후 한국 정치·사회의 격동의 시간들과 더불어 살펴보았을 때 이신의 삶과 사고는 우선적으로는 키에르케고르의 그것과 더 잘 상관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나는 이신의 그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깊은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의 고독은 바로 ‘교회’, 그것도 당시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그에 대한 의식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던 ‘한국적’ 교회를 위한 것이었고, 그 운동을 통해서 바로 한국인의 손으로 기독교회의 본래적 순수성과 역동성을 회복하려는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막 식민지의 처지에서 벗어나서 전대미문의 동족상잔을 겪고 난 한국 교회가 어떻게 그러한 ‘신앙적 주체성’을 말하고,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준 서양 교회도 벗어나지 못하는 뿌리 깊은 교파와 교권의 갈등을 변방의 한 미약한 나라의 교회로서 극복하겠다고 하였을까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는 거기에 온 믿음을 걸었다. 그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지극한 ‘동시성’(contemporaneity)이었고, ‘역동성’(dynamism)이었으며, 그리스도 신앙의 主인 그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이고 내면적인 만남을 통한 주체성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저해하는 장애들에 맞서기를 원했고, 그 운동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일로 보았으며, 그리스도 당시의 초대교회로의 ‘환원운동’으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은 그의 삶과 신학의 또 다른 기표였다.(미주 2)

나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의 이러한 저항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렴풋이 알았다. 그가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우리 가족은 명륜동 꼭대기의 무허가촌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신 상황에서 언니와 나는 당시 집에서 비교적 가까웠던 혜화동의 ‘혜성교회(감리교?)’나 명륜동의 ‘명륜동중앙교회’(예장)로 주일학교를 다녔다. 어려서 교단이나 교파의 차이라는 것을 잘 몰랐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러한 교회들을 “교파교회”라고 불렀고, 당시의 상황으로 그곳에 다니기는 했지만 진짜 우리 교회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교회들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우리 집이 속한 교회보다도 훨씬 더 화려하고 부자로 보였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소외감을 느꼈고, 주변인으로서 박탈감을 느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오시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정형편을 조사하는 통신란에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라고 적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을 잘 몰랐고, 그것은 목회자의 자녀 중에서도 다시 한 번 더 외진 변방의 존재임을 밝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리스도의 교회 소속이라는 것 때문에 그는 1960년대 미국 밴드빌트 대학교(Vandebilt University)에서 공부한 다른 동료들(고범서, 박봉배, 서광선 박사 등)이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에 적을 둘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나 신학교에서도 어려움을 당하여 변변한 교회나 학교에 소속됨이 없이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는 군소 신학교를 전전하며 강사생활을 하면서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그 가운데서도 틈만 나면 가난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배움을 주곤 했다.

그러한 신앙적 저항의 모형을 그는 초대교회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초대교회 신앙의 원형을 이신은 신구약 중간기의 ‘묵시문학’(Apocalyptic) 전통에서 만났다. “묵시문학은 모든 기독교 신학의 모체였다”라고 선언한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aesemann)의 언술과 더불어 시작하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전위묵시문학 현상: 묵시문학 해석을 위한 현상학적 자료들(The Phenomenon of Avant-Garde-Apocalyptic: Phenomenological Resources for the Interpretation of Apocalyptic(1971.8) 」은 “‘저항문학’으로서의 묵시문학” 연구를 통해서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선언이 수행할 역동적인 역할의 탈환 가능성”을 탐색하려 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원시 기독교 신학의 배경으로서 유대 묵시문학이 기독교의 발단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그 연구를 통해서 기독교 선언의 “원초적인 상”(primordial image)을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미주 3)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유대 묵시문학적 의식은 신구약 중간기의 하시드 운동이나 마카비 저항, 또는 에세네 운동 등에서 나타난 대로 특히 헬레니즘이나 바벨로니아 이원론의 영향 아래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꿈꾸며 종말론적 신적 중재자를 염원하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의 의식이다. 그것은 “한계상황”의 경험이며, 항상 어떤 것을 지향하는 “지향적 경험”(intentional experience)이다. 대표적 유대 묵시문학서 다니엘서(B. C. 165년), 에녹서(B.C. 164년경 이후), 희년서(B.C.150년경), 무녀의 신탁서(B.C.150년 이후)나 쿰란문서 등에서 나타난 묵시문학적 의식을 이신은 다름과 같이 밝힌다.
“묵시문학자의 의식은 역사의식과 초월의식으로 분열된 의식이었다. 역사의식에서 묵시문학자들은 ‘한계상황’을 경험했다. ‘한계상황’에 이른다는 것은 이 저자들이 궁극적 위기를 체험하는 것은 물론이요 근원으로 향하는 만물의 운동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전통을 따름이 아니라 그 전통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통을 재해석하고 그 근원을 추적하기 원한다.”(미주 4)


이신이 이 논문을 쓴 시기로부터 반세기가 되어가는 오늘은 국내외적으로 이 묵시문학에 대한 연구와 유대교에 대한 탐구가 훨씬 더 전개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저항문학과 유대 공동체의 신관과 메시아 의식이 기독교 신앙의 형성과 원래 형상의 구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가 더욱 드러나고 있지만, 사실 이신이 이 논문을 쓸 때만 해도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미주 5) 이후 더욱 활발해진 영미권에서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이 신구약 중간기에 대한 이해를 크게 신장시켰고, 특히 나는 여성신학자 로즈메리 류터의 『신앙과 형제 살인-반유대주의의 신학적 뿌리』라는 책을 통해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기독교의 반(反)유대주의적 뿌리가 어떻게 이미 신약성서 자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교부시대를 거쳐 기독교의 전 역사를 관통하면서 20세기의 홀로코스트까지 지속되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밝혀준다. 서구 문명에서의 홀로코스트의 등장은 바로 그 오랜 역사의 논리적 귀결이었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복음을 빙자해서”, 그리고 이번에는 그 복음을 다시 “이데올로기적 보편주의”와 “에큐메니칼 제국”의 보편종교로 만든 결과라고 세차게 비판한다.(미주 6) 류터는 이렇게 기독교 신앙이 그 본래의 태생과 출생의 토대를 억압하고 잃어버리고 스스로가 거대한 제국주의적 종교로 전락해서 행해온 악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볼 때 기독교 신앙과 반유대주의의 진면목을 진지하게 대면시키는 일이 매우 긴요함을 강조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의 치명적인 왜곡된 이원론과 분리가 있었는데, 이 왜곡되고 아전인수식으로 도용된 분리와 대립이 지금까지 “기독교의 신학적 성숙을 지연”시켜오는 주범이었고, 바로 거기에 기독교 정체성의 핵심이 들어있으며, 그 왜곡이 “기독교적 자아확인의 한 표현”으로 실행되어져 왔다고 밝힌다.(미주 7)

류터는 반유대교적 이원주의를 극복하는 일을 “기독교의 신학 재건을 위한 본질적인 작업”이라고 밝히면서 거기에 “심판과 약속의 분리”, “특수주의와 보편주의의 분리”, “문자와 영의 분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모든 기독교적 사고의 중심에 놓여있는 우상숭배적 “기독론”, “종말론적 사건의 역사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에 따르면 기독교는 원래 유대적 하나님 신앙이 고대 제국의 이데올로기적 보편주의에 맞서서 자신들의 특수한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특수의 투쟁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번에는 자신들의 기독교 계시와 교회만을 유일한 보편성으로 주장하면서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상호배타적인 양자택일이 아닌 다양하게 적용되는 “양면적 관계”였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미주 8) 거기서 서양 기독교 역사의 특징인 “선교와 제국주의의 결합”이 나왔고, 21세기 오늘날은 한국의 기독교회가 국내에서뿐 아니라 아프리카 등지의 해외 선교지에서 그와 유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겠다.



류터의 이해에 따르면 기독교의 반유대교적 해석은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던 ‘변증법적 언어’를 모두 역사적인 이원론의 언어로 변환시켰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필로가 사용하던 문자와 영의 구분의 언어를 유대교는 모두 ‘옛 인간’과 ‘세속적 인간’을 가리키는 문자의 존재로, 기독교는 그와 대조적으로 ‘새 것’이며, ‘종말론적’ 영적 존재로 파악하는 이원론의 언어로 사용하면서 그러한 비난이 유대교의 지속적인 역사적 정체성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서 기독교 자체 내에서의 ‘그리스도’ 이해에 있어서도 결국 가현설(假現說)이거나 아니면 역사적 예수와 몸을 우상숭배적으로 신격화하는 성육신 이해 사이를 불안정하게 오가는 무능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것은 “문자와 영의 해결되지 않는 긴장을 알고 있는 생명의 길”이(미주 9) 아니라 다시 세계의 어느 종교보다도 더 많은 제도와 법규(문자)를 산출하는 교회가 되었거나(가톨릭교회), 지난 세기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 등에서 드러난 대로 반(反)생명적인 서구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양상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모두는 기독교의 잘못된 역사주의, “종말론적인 것(영)의 부조리한 역사화(문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미주 10)

나는 이신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이 지금까지 살펴본 류터의 “기독교의 반유대교적 신화에 대한 신학적 비평”과 유사한 관점을 많이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둘 다 모두 기독교의 원형적 근거를 유대교적 진실 속에서 찾는 것도 같고, 자신들이 대면하고 있는 현존의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매우 관념적으로 뼈다귀처럼 말라있는 것을 목도하고서 다시 그 본래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도 유사하다. 물론 이신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은 류터처럼 보다 명시적으로 기독교 밖의 타문화와 이웃종교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교파와 교권을 넘어서 본래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가자고 하고, 다시 신약성서 시대의 ‘침례’와 ‘성만찬’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세상에 대한 배타적인 기독교 중심주의와 성서적 근본주의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자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신은 기독교 신앙의 원형이 담겨있다고 보는 유대 묵시문학이 신구약 중간기의 근동 지역에서의 “제설혼합주의적” 영지주의와도 상호 연관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또한 그는 서구 제국주의적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가 아닌 ‘한국적’ 그리스도의 교회를 줄기차게 주창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그의 ‘그리스도’ 이해나 ‘교회’ 이해가 류터가 지적한 대로 영과 종말론의 왜곡된 역사화가 아니라, 오히려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보편에 저항하는 또 하나의 특수와 변방의 용기 있는 항거라고 보아야 함을 밝혀준다.

이신은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은 그의 겸비라는 행위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히 언술한다. 그의 그리스도 이해는 결코 왜곡된 실체주의적 이원론의 그것이 아니고 그것을 한없이 뛰어넘어서 원래 예수가 보여주었던 믿음의 역동성과 창조성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그래서 “나사렛의 목수” 예수가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는 말을 (그분은) 제일 싫어한다”고 언표한다. 그 스스로도 “아무에게도 매인 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을 노예로 다루지 않”았고, “나는 너희들의 친구”라고 말하며, “나를 믿어 달라”고 하기보다는 “내 속을 좀 알아 달라”고 요청하신다고 밝힌다.(미주 11)

이 언술을 나는 이신이 믿는 자의 본래적 인격성과 존엄성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 그 ‘믿음’(“믿어 달라”)이라는 것도 철회하고 오히려 ‘앎’(“알아 달라”)을 요청했다고 해석하고자 한다. 믿음보다 앎을 요청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넓게 포용할 수 있고, 이것으로써 기독교 신학에서 종종 드러나는 믿음과 행위, 신앙과 이성, 믿음과 율법(지식) 등의 이원주의를 잘 벗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는 그가 지향한 ‘한국적’ 신학이 그 ‘불이적’(不二的) 사고의 특징을 그 자신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도 보고자 한다.

그는 슐리얼리즘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것은 1924년 서구에서 앙드레 브레통(Andre Breton)이 선언했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먼 옛날에 동양의 지자들에 의해서 먼저 인식된 것이었다고도 언술한다. 그래서 그것은 동양적 언어로 “무위불언무형무성”(無爲不言無形無聲)의 가르침이고,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도라고도 표현하면서 귀한 것에는 동양과 서양을 갈라놓을 필요가 없고, 다만 그 참뜻을 바로 깨달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미주 12) 그가 1974년 동역자들과 더불어 선포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에 보면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와 미국 교회의 환원운동과의 차이를 두 가지로 들고 있다. 그 중 첫째는 미국 교회가 개체 교회의 독립성만 너무 강조하는 것에 반해서 한국 교회는 개체교회들 간의 공동체성과 유기적 통일성을 보다 강화하려는 것이고, 둘째, 미국의 환원운동이 초대 교회의 의전적 방식을 강조한 나머지 신앙의 내면성을 결한 반면 한국 교회는 신앙의 외면적 형식과 더불어 그 내용과 영감적 측면을 함께 통합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힌다.(미주 13) 여기에서도 이신의 한국적 불이(不二)의 사고가 잘 드러난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말씀(영원)을 현실(시간)에서 이루려고 했고, 죽기까지 둘로 나누어진 분리와 분열을 하나 되게 하려고 분투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그의 “예수님은 죽기까지”라는 한 짧은 단상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난다.
“죽기까지 아름답게 산다는 것, 죽기까지 정의롭게 산다는 것, 죽기까지 진실 되게 산다는 것, 더더군다나 죽기까지 남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죽는 것이 아니요 영원한 삶인 것이요 또 영원한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인 것이다.”(미주 14)


이신에 따르면 묵시록(黙示錄)이 참으로 어려운 책 중에서도 더욱 어려운 이유는 “병든 시간” 안에서 “병든 영원”을 치유해 보려는 “부단한 투쟁”의 “패러독스(Paradox)”를 엮어 보이는 책이기 때문이다.(미주 15) 거기서의 투쟁과 저항은 “필사적”(必死的)이고 “필생적”(必生的)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바로 그렇게 필사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영원한 삶”이고, 부활이고, 예수는 바로 그렇게 죽기까지, “더더군다나 죽기까지 남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신뢰(“성실성”)의 그루터기”가 된다고 밝힌다.(미주 16) 이신은 여기서는 다시 “인격에는 죽음이란 없다”라고 말한다. “사람을 인격적인 주체자로 볼 때 인간은 불사(不死)다”라고 선언한다.

그는 말하기를 “부활은 이 인격적 실존의 영원성을 믿는 신앙에만 확실한 것으로 비로소 부각되어 올라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누구나 할 것 없이 착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는 법이다”라는 말로도 표현한다.(미주 17) 이렇게 그는 사람은 팔, 다리 등의 객체적인 존재로 죽는 것이지 인격으로 죽는 것은 없다고 하다가 다시 그 반대가 진정으로 우리 삶과 죽음의 진실을 일러주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 믿음과 인격, 그리스도와 하나님, 삶과 죽음, 부활 등은 어떤 고정된 이데올로기적 실체가 되거나, 앞에서 살펴본 류터의 표현대로 하면 종말론적인 것을 어떤 유일한 보편으로 역사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잘못된 역사화와 이원론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하며, 그래서 이제 신학의 문제는 “해석학적 문제”(hermeneutic problem)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점점 더 “슐리얼리즘의 신학”으로 명명하면서 그것은 한 마디로 “영靈의 신학”이라고 밝힌다.

이신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베르댜예프의 언어로 보면, “보편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구체적이며 충실한 것”이며, “보편과 단독과의 대치는 올바른 것이 못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미주 18) 그는 “객체적(客體的)인 것의 환각(幻覺)”을 말하며, “소리, 언어, 목소리”의 구분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가지고 “보편은 객체 속에 있는 하나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인격적인 것은 타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미주 19) 그러므로 참된 믿음과 인격은 결코 자아 속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오늘 우리 세대도 그 어느 시대보다도 극심하게 빠져있는 왜곡된 자아중심주의와 물질주의적 부르주아 노예성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베르댜예프의 관찰에 따르면 잘못된 자아주의는 인간의 이중적 예속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먼저 자기의 경직된 자아성에 대한 예속이고, 그 다음은 밖의 세계가 휘두르는 전형화된 세계의 강제력에 대한 전적 예속이다. 자아주의에 빠진 사람은 그래서 항상 실제로는 오히려 나 아닌 밖의 시선만을 의식하고, ‘타자인 나’를 알지 못하고, 진정한 ‘당신’을 알지 못하며, “나에게서 나가는 자유”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일갈한다.(미주 20) 그렇게 자아중심적 인간은 오히려 세계와의 관계에서 철저히 그 객체적 척도에 좌우되며, 그래서 그는 단지 “추상”을 사랑할 뿐이지 “살아있는 궤적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미주 21)

나는 오늘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시대의 많은 진보적 사고가들도 빠져있는 이러한 자아중심주의의 병을 보고서 이신이 예수를 “주시는 자”, “남을 위한 존재”(being for others), “죽기까지 남을 사랑하다 돌아가신 분”으로 파악한 것은 여전히 큰 의미와 도전이 됨을 본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을 통한 그의 저항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바로 그렇게 ‘죽기까지’ 타자를 위해 사는 삶이고, ‘겸비’와 ‘익명’이며, 그처럼 자신을 비우면서 전체주의적으로 보편적 일반성을 주장하는 세력에 맞서서 또 하나의 소수자의 ‘특수’(인격)를 드러내려는 일이었다고 이해한다. 만약 그러한 소수자와 변방의 특수자의 지속적인 침노와 저항이 없을 때 세상은 온통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소굴로 변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0세기 서구 전체주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자인 한나 아렌트가 현대인들의 깊은 병을 “세계소외”(world-alienation)로 지적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신의 목소리는 그렇게 현대 물질주의와 자아에의 노예성에 빠진 현대 문명에 대한 단호하고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였으며, “회고주의적 (보수)의 노예 종교로 전락한 기독교의 현상태”를 깨려는 자유로운 인격자의 사자후였다고 말할 수 있다.(미주 22)

▲ 니콜라스 A. 베드댜예프 ⓒGetty Image


미주
(미주 1)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196쪽.
(미주 2) 이은선, 1992년 머리말 “고독과 저항의 신학자 이신”,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28쪽.
(미주 3)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47쪽.
(미주 4) 같은 책, 101쪽.
(미주 5) 김판임, 『쿰란공동체와 초기 그리스도교』, 서울: 바블리카 아카데미, 2008.
(미주 6) 로즈메리 류터, 『신앙과 형제 살인-반유대주의의 신학적 뿌리』, 장춘식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1, 326쪽 이하.
(미주 7) 같은 책, 321쪽.
(미주 8) 같은 책, 330쪽.
(미주 9) 같은 책, 337쪽.
(미주 10) 같은 책, 344쪽.
(미주 11) 이신, “나사렛의 한 목수상(木手像)-새 그리스도로지”, 『李信 詩集 돌의 소리』, 65-66쪽.
(미주 12)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225쪽.
(미주 13) 같은 책, 358쪽 이하.
(미주 14) 이신, “예수님은 죽기까지”, 『李信 詩集 돌의 소리』, 162쪽.
(미주 15) 이신, “병든 영원(永遠)”, 같은 책, 129쪽.
(미주 16)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00쪽 이하.
(미주 17) 이신, “인격”, “부활(復活)이 의미하는 것”, “누구나 할 것 없이 착하게”, 『李信 詩集 돌의 소리』, 135, 137, 164쪽.
(미주 18)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49쪽.
(미주 19) 이신, 『李信 詩集 돌의소리』, 140,156쪽;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50, 55쪽.
(미주 20)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55쪽.
(미주 21) 같은 책, 56쪽.
(미주 22) 이경, “시집을 펴내며”, 『李信 詩集 돌의 소리』, 10쪽.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leeus@sejong.ac.kr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