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3

1902 강주영 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하다(1,2,3)



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하다(1)

- 닭 울음소리 같이 듣는 마을에서 ‘개벽파 선언’을 들으며

by소걸음Feb 14. 2019

- 강주영 |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운영위원




[필자 주] “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하다”의 연재 글은 최근 개벽파 선언에 즈음하여 <개벽신문> 편집부의 요청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에 개벽파 선언을 들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반가운 천둥소리였다. 이병한, 조성환 등의 개벽파 선언은 역사의 금기였던 개벽을 현실로 호출하는 담론일 뿐 아니라, 고장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필자 역시 <용담유사>의 다시 개벽을 현실의 실천적 문제로 고심하던 차였다. 담론의 차원을 넘는 실천의 문제로 개벽마을을 생각해 왔다. 개벽마을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연재 글이 개벽파 선언에 대한 논의와 함께 현실의 실천적 문제를 같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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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적 근대'든 '동학적 근대'든 또는 '토착적 근대'든 먹고 사는 게 최고인 사람들에게 근대는 무엇인가? 동학은, 그리고 서학은 무엇인가? 동서의 균형은 무엇인가? 동은, 서는 무엇인가? 동이면 어떻고 서면 어떤가? 30여 년 비정규직 하루살이 목수인 나에게 개화, 개벽 나아가 이성과 영성은 밥을 주고 걱정을 덜고 행복을 줄 수 있는가? 갑질을 당하는 노동노예들에게 유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이나, 동학의 수심정기(守心正氣) 수양은 너무 고상하지 않은가?



하늘을 가린 미세먼지, 기후 온난화, 말라 버린 강물 때문에 환경단체에 후원금을 내고, 인간에 의한 지구 약탈을 가끔씩 고민하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건설 현장에서 먼지를 내며 노동을 한다. 가끔씩 ‘동학(천도교) 교당’에서 청수봉전하고, 심고를 하고, 수심정기하며 영성을 고양하기도 하지만, 삶은 지겨운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주 옛날에 사냥을 나가 거대한 매머드 한 마리를 잡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몇 달은 노래하고 춤추며 먹고 살았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는 오늘날에는 캄캄한 밤에도 에너지를 써 가며 노동을 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덜 일하고 더 즐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류는 도대체 무엇을개화하고, 개벽하고, 발전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교회, 성당, 교당, 법당, 절, 성전, 무당, 정화수, 신목 등 갖가지 방법으로 잠시 속세를 벗어나 영성을 고양하지만, 근대의 인간들은 여전히 돈벌이 노동을 해야 한다. 성과 속, 동과 서, 옛과 오늘의 ‘대합창, 대합장’을 말하지만 미셀 푸코가 열렬히 환영했던 이란 혁명은 이란 인민을 행복하게 개벽했는가?



인간은 여전히 인간과 자연을 약탈한다. 화성에 우주선을 보낼 돈이면 마실 물 없는 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줄 수 있고, 굶주림을 벗어나게 하고, 지구를 덜 약탈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는 근대 이전의 사회에 비해 물질을 개벽했다고는 하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수탈은 더 확대된 것은 아닐까? 근대 이전이 지역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문명이었다면 근대는 전 지구적 약탈 문명이다. 세계화라고는 하지만 영성의 세계화가 아니라 지구 약탈의 세계화이고 돈의 세계화이다.







근대 이전에도 비단길이라는 세계화가 있었고, 몽골의 세계화도 있었다. 봉건적인 군현제를 없앤 중앙집권적 국가도 있었다. 공화국가냐? 왕정국가이냐? 그러면 정도전이 구상했던 신권국가는, 경국대전이라는 헌법을 가진 조선은 왕정국가인가? 입헌군주제 국가인가? 상소가 일상적이었던 언론의 국가, 과거제를 통해서 공무원을 뽑았던 조선은 근대국가인가? 근대 이전 국가인가? 아니 근대라는 말이 필요한 것인가? 근대의 기점이 무엇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필요한 것인가?



근대는 세습왕의 머리를 잘랐지만 자본왕을 세웠다. 근대는 노비를 해방했지만, 공장의 노예 노동을 만들었다. 근대는 물질을 개벽했다고는 하나 지구를 뒤흔드는 약탈이 시작됐다. 근대는 이전 사회에 비해 더 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있다. 전쟁뿐 아니라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사망을 생각해 보라. 인간의 소비는 얼마나 더 쾌락적이어야 하는가? 그 쾌락의 대가로 얼마나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가? 근대 이전에 쾌락은 마을에서 공물로 주어졌고 쾌락의 대가로 돈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근대는 국민국가를 세웠지만 공화마을을 사라지게 하였다. 근대의 특징을 자본의 경계를 가진 국민국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국민국가=공화국가가 근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을은 수천 년 전부터 마을 자체로 공화국이었다.



법률적으로 갯벌은 공유수면으로 국가의 국유토지이다. 그러나 연안의 어민들은 스스로의 자치규약을 통해 갯벌을 자치관리를 해 왔다. 갯벌의 노동 사회는 수천 년 동안 공화마을이었다. 갯벌의 주민들은 서로 경쟁하지도 않고 배제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공평무사하게 불만 없이 갯벌을 지켜 왔고, 어촌계라는 공화마을을 아버지의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이어 왔다. 하딩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은 생기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성과 속은 분리되지도 않았고 분리할 수도 없었다. 갯벌은 그 자체로 성이면서 속이었다. 성과 속의 분리는 갯벌이 돈벌이 노동으로 변하면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성과 속의 분리를 근대의 특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많다.



이전 사회에서는 신분제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지배 세력은 두레를 침범하지 못했다. 연구에 의하면 지주라 하더라도 농사짓는 이들의 변경 같은 것은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김동진에 따르면 소작인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나온 말이라고 하며, 조선은 소작제가 아니라 병작반수제라고 해야 옳다고 한다). 마을은 그 자체가 판관이었다. 말세에 지배세력의 부당한 사형(私刑)이 있었지만, 멍석말이는 마을이 판관이 되어 마을의 부도덕한 이와 범죄자를 징치하는 마을사법, 자치사법이었다.



오늘날은 범죄자의 살아온 내막을 전혀 모르는 고시 출신의 얼굴도 모르는 직업 판관에게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국가 이데올로기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 권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제사를 빼고 말한다면 교회와 성당의 기도, 이슬람의 예배, 무당의 굿, 마을의 제사, 가문의 제사들은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확인하고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는 영성의 고양은 아니었을까?



향교, 서원, 객사에서 사대부나 양반들이 지내는 삭망례의 제사는 지배계급의 지위를 공공히 하는 인(人)들의 기제였을 것이다. 백중날의 제사, 두레의 풍년제, 성황당의 제사들은 노동하는 민(民)들의 영성 고양이었다. 영성을 고양하고 풍물을 치며 한껏 놀았다. 죽은 이의 장례 판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는 진도의 다시래기 풍습은 마을의 영성이었다. 북을 때리고 장구를 치며 피리를 불며 사람이 온다. 개벽이 온다. 동학 식으로 말하면 한세상 사람의 한울로 살다가, 이제껏 자신이 먹어 왔고 의존해 왔던 다른 한울로 기화하는 것이니 이 어찌 축하할 일이 아니겠는가? 장례와 축제와 놀이는 구분되지 않았다.



그런데 제사에는 다른 의미가 있다. 양반 지배계급의 통치를 유지하는 삭망례든, 마을의 풍년제든, 조상신을 섬기는 제사든 제사가 있는 마을은 굶주리지 않았다. 전 나라에 흉년이 들었다면 모를까, 말세가 아닌 평세의 시대에 제사 음식은 마을의 공물이었다. 아무리 자신밖에 모르는 구두쇠라고 해도 제사 음식을 이웃과 나누지 않고는 마을에서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의 제사야 청수 한 그릇이었을지 모르나 부자는 제사를 통해서, 마을의 공동제사를 통해서 노비이든, 몰락한 선비이든 마을의 인민들은 굶주리지 않았다. 국가복지가 아닌마을의 자치복지였다.



벽에 놓고 제사를 하든[向壁設位], 우리를 향해 놓고 제사를 하든[向我設位] 제사는 오늘날 사라지거나 명절 스트레스로 이야기되고 있다. 명절 스트레스라니? 하기는 마을이 사라지고 아파트의 갇힌 공간에서 서로서로의 한울님이 감응하는 향아설위를 한들 이웃이 사라진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명절이나 제사는 마을을 지키는 핵심적인 풍습인데 오늘날은 그저 가족의 유대를 확인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다시 개벽이 있다면 돈벌이 노동은 즐거운 일의 놀이로, 전 지구적 약탈 쾌락적 소비문명은 지구와 상생하는 문명으로, 약육강식의 계약 관계는 상호부조하는 유대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 개벽이 이성으로 되는 것인가? 아니면 영성으로 되는 것인가? ‘성속의 합작’으로 되는 것인가? 여전히 계급투쟁이어야 하는가?



모심과 살림의 한살림 운동처럼 대안의 모범을 통해서인가? 동학이 경인, 경천, 경물의 삼경이나, 날마다 다른 이의 하늘과 나의 하늘이 서로 기화하는 이천식천의 개벽적 생각을 제시하였다 해서 신동학이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편리하다. 인식론이냐? 존재론이냐? 수양론이냐? 이런 것을 떠나서 지구에는 어디에나 동학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동학만이 독보적이고 독창적이며 전 인류적 대안의 사고, 대안의 영성일까?



‘개벽국가’라는 말도 있다. 국가를 어떤 강역의 자연과 사회의 덩어리(복합계? 유기체?)라고 한다면 모를까, 학계에서 통치체제로 말하는 국가라고 한다면 개벽국가라는 말은 불과 얼음처럼 형용모순이다. 국가의 본질은 폭력이고 권력일 뿐이다. 개벽국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각적 근대’를 말한다. 동학을 두고 “문명적 각성을 예리하게 품은 자각적 근대”라고 표현하는데 동의한다. 그런데 근대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는가? “자각적 다시 개벽”이라고 하면 안 되는가? 동학은 근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천하를 사유한 것이다. ‘근대’라는 단

어를 어떤 용어로 사용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필자는 근대를 쉽게 생각한다. 지금 사는 세상이다. 지금 사는 세상은 돈(화폐)이 왕인 세상이다. ‘세계체제론’이나 ‘지구체제론’를 말하지만 지금 있는 근대는 돈의 세계체제이고 돈의 지구체제이다. 돈의 지구체제를 벗어나는 다른 지구 체제는 무엇인가? 그런데 여기서 지구체제론이라는 그런 것이 필요할까? 어떤 것이 어떤 ‘론’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를 꿰는 실이 필요할 텐데 그런 실이 꼭 필요한가? 돈과 탐욕으로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자본과 국가에게는, 또는 사회주의 혁명을 전파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세계체제론이나 지구체제론이 필요하겠지만 천하는 한 줄에 꿸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닭 울음소리 같이 듣는 마을에서 돈으로 사는 쾌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즐거움을 주고 마을이 굶주림을 없애고 ‘나는 철수입니다.’, ‘I am a boy’와 같은 개인이 아니라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 황….”을 몇 달이고 암송하다가 문득 그 나름의 우주의 리(理), 우주의 도(道)를 깨우치는 글방 도령의 교육이면 족하다. 마을의 영성을 고양하는 제사가 부활하면 족하다.



관혼상제는 마을의 영성을 고양하는 마을의 리와 도를 생성하고, 마을을 자자손손 이어주는, 요새 말로 하면 지속가능한 마을의 원리였다. 오늘날 관혼상제는 장례식장, 결혼식장처럼 영리기업과 거래하는 상품이 되고 말았다. 관혼상제의 마을로의 귀환이야말로 성과 속의 합장이고 영성의 고양이고 지구체제이다. 관혼상제의 현대적 부활은 무엇이야 하는가?



마을이 천하이고 마을이 지구이다. 모든 마을을 꿰뚫는 그 어떤 지구적 ‘리’나 ‘도’를 찾을 필요도 없다. 돌멩이도 하늘이고 사람도 하늘이고 벼도 하늘이다.



닭 울음소리 같이 듣는 마을에서 서로를 하늘로 만드는 관혼상제, 관광 상품이 아닌 마을 축제의 현대적 부활이야말로 마을에서 천하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하루 살기가 버거운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에게 시리아 난민을 같이 걱정하자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나,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개벽마을이, 대동마을이 생긴다면 마을에서 시리아 난민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마을은 국가를 매개하지 않고서도 천하를 품게 된다. 만인과 만물이 접속하는, 사물에도 지능이 부여되는 시대가 아닌가?



선한 의도라고 하더라도 ‘인류세’, ‘신인간’, ‘네오휴먼’, ‘개벽인’ 같은 단어들은 어디인가 미안하지만 찜찜하다. 에두르지 않고 말한다면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호방함이 넘쳐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기조차 하였다. 근대를 통째로 부정했던 니체는 근대를 낳았던 계몽주의를 부정하고, 계몽주의를 부정하니 계몽주의를 낳았던 르네상스를 부정하게 된다. 이제 새로운 인간이 필요해진다.



어린아이의 영성을 가진 자유의지의 초인? 니체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찌는 니체를 잘 써먹었다. 다윈의 선한 의도의 진화론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자들은 약육강식의 경쟁적 진화를 끄집어내어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 우리는 문명이고 너희는 야만이다. 그래서 조선의 얼이 있는 전주 경기전 10m 앞에 시건방지게도 서학의 성당이 건축되었다. 벌이 꽃가루를 나르는 만물의 상호부조가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창한 이는 아나키즘의 아버지라는 크로포트킨이었다. 그의 근대는 다윈의 후예들이나 레닌과 달랐다. 동학의 유무상자(有無相資) 천하가 실현되지 않은 것처럼,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천하도 실현되지 않았다.



만인만물의 본성이 선한 것이라면 만인만민이 한울이라면 그것이 그것이게 하는 이천식천의 마을, 그래서 그것이 그것이게 하라. Let it be. 냅싸 둬. 천하를 바라보는 닭 울음소리 같이 듣는 개벽마을을 생각한다. 조선, 러시아, 중국이 만나는 훈춘의 방천에서 새벽닭이 울면 조중러 삼국이 같이 깬다는 말을 듣고 개벽마을의 닭 울음소리에 천하가 깨는 생각을 했다. 전봉준이 기포를 말하니 손화중이 답하기를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얼마나 많은 토론이 오고 갔겠는가? 전봉준 접주의 길과 해월 신사의 길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되다른 것인가?



개벽파 선언을 두 손을 들어 환영한다. 새로운 고비원주(高飛遠走)를 꿈꾼다. 개벽마을이 천하를 품는 꿈을 꾼다. 개벽마을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말해 볼까 한다. 초야의 헐거운 목수에게 지면을 준 <개벽신문>에 고마움을 드린다.


*글의 성격상 인용 단어나, 인용 문장의 저자를 밝히지는 않았다. 대개는 이병한의 것이다.



**필자 강주영은 전주 동학명기념관 운영위원이며 자칭 천도교 예비도인이라고 한다. 만인만물을 모시는 한살림집을 짓지 못하고 먹고 사느라 돈 받고 상품 집을 짓는 목수의 삶을 고비원주의 기간으로 위안하며 지낸다. 아직은 술자리에서 어쩌다 이야기를 나누는 실체 없는 모임이지만 개벽마을을 꿈꾸는 전주 대동계 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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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하다(2)

-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개벽 유전자


by소걸음Mar 08. 2019
강 주 영 |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운영위원

- [이 글은 <개벽신문> 82호(2019.2/3합병)에 게재되었습니다]



1. 개벽의 유전자


전주 한옥마을 왕의 뜰 경기전에는 와룡매가 피고, 마을민들의 골목 동문길, 저문 하늘에는 막걸리 냄새가 퍼졌다. 왕의 뜰과 골목길의 경계에서 봄이 오고 있다. 해토머리 섬진강을 거슬러 마을과 마을을 지나고 들과 산을 넘어 온 봄은 개벽 바람꽃을 타고 오고 있다. 이병한, 조성환, 박길수 등이 근대 자본 개화세를 지나 개벽세를 피우고자 한다.



필자가 사는 전주 한옥마을과 인근 도로명이 감영로, 동문길, 태조로, 은행로, 충경로이다. 길들은 왕으로만 통하고 있었다. 개벽세가 이 길로 오겠는가?



마을민들에게로 가는 "전봉준로", "김개남로(좁은 소로길에 있다)", "동학로", "입성로", "집강로" 등은 없다. 이 길들에서 동학혁명은 단지 추모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왕조의 본향답다. 그러면 전주는 왕의 도시인가? 동학혁명에서 가져와 민의 도시라 하지 않았던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 청년 시절에 동경대전을 읽었다. 뭘 알아서 읽은 게 아니었다. 읽어야 될 것 같아서 그냥 읽었다. 그러다가 마르크스를 만나서 그만두었다. 치기로 읽어서 배운 것도 마음에 새겨진 것도 없다. 정읍이 고향이니까! 필자의 본적이 손화중 선생과 같은 정읍 음생골 지척이니까! 고등학교 주춧돌이 보천교 십일전궁에서 가져온 것이라 하니까. 보천교의 본산 입암산을 늘 보았다. 호남 삼신산의 하나라는 고부 두승산도 늘 보고 살았다. 살던 마을에서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그 풍경을 한 토막 옮겨 본다.



정읍시 이평에서 배들평이라고 부르는 들 동쪽 정우면의 60년대 말~70년대 초였다. 외가 사랑방에서 어른들의 구라(?), 뻥(?)을 들었다. 배들평 서쪽은 전녹두 생가가 있는 조소리와 만석보가 있다.



“명숙 선생이(전봉준, 봉준은 암호명 내지는 군호라 한다.) 여기로 해서 원평 김덕명이나 칠보 최경선을 만나러 갔을 게야.”

“울 할아버지가 난(동학혁명)에 나가셨다던데.”

“울 할배는 전녹두 전령을 하셨다네.”

“야, 이눔아 뻥치지 마라. 언제는 호위무사를 하셨다더니”



뻥이었든 구라였든 상관없다. 그런 이야기가 술추렴의 호롱불 밑에서 전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신동엽문학관의 김형수 시인은 필자에게 말했다.

“큰 뻥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초라한가?”

그 큰 뻥이 어찌 ‘개벽’이 아니겠는가? 근대에 부합하고, 성장에 눌리고, 내면으로 숨고, 상품으로 기획되는 문학에 큰 뻥이 생겨야 한다는 말 아니겠는가?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개벽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이 비록 ‘개벽’이라는 말을 의식하지 않을지라도.



욕설에 이런 말이 있다.

“야이 천지개벽할 놈아.”

큰 구라를 튼다는 말이겠다. 뻥을 치게 놔둬야 한다. 상상력의 보물이다.



어릴 때 모래 놀이를 하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지금 생각하니 개벽하자는 말이다. 고장 나고 쓸모없게 된 근대를 개벽하자는 말로 바꿔도 좋겠다. 두꺼비는 독사의 뱃속에서 자란다지 않던가? 참으로 개벽 정신의 유전자가 끈질기다. 이것을 어찌 국민교육 학교에서 배우겠는가? 동무가 있었다. 동무들과 어울리는 것에서부터 개벽이다. 오늘의 마을에 동무가 있는가? 사람의 유대가 자라는 동무! 그 많던 동무들은 품을 팔러 어디로들 갔나?



70년대 중반이었나? 정읍에서 동학혁명기념제가 열렸다. 학생들이 일본군으로 꾸미고 행진하고, 동학군이 정읍에 입성하였다. 전투가 벌어졌다. 온 마을 사람들이 행사 주무대였던 농고 운동장에 가마솥을 걸었다. 국밥이 끓고, 어른들은 풍물을 치고 술을 마셨다. 북을 때리고, 장고를 치며, 징을 울리며 여기 사람이 온다. 개벽이 온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윗뜸, 아랫뜸 패가 갈려 싸움을 벌렸다. 말리지 않았다. 한풀이의 방식이고 이튿날이면 화햇술을 마실 테니까! 그것은 해원상생이었다. 온 정읍이 시끌벅적 왁자지껄했다.



이일로 행사 관계자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던가? 관선군수는 목이 나고. 향아설위 제사로서의 동학혁명기념제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황토현에서 하는 기념제는 동학혁명기념제가 아니다. 해원상생 개벽의 향아설위 제사가 아니다.



올해 5월 11일은 황토현 승전일을 동학혁명국가기념일로 제정한 첫날이다. 기념식이 해원상생 개벽의 향아설위 제사가 될까? 애국가 부르고 축사하고 공연하고 끝나는 기념식이 될까? 아마도 제사가 아닌 기념식이리라.



내 유년의 기억에 또렷하게 자리 잡은 일들이 개벽의 유전자였음을 깨달은 것은 50이 다 되어서였다. 정확히는 혁명에서 개벽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을은 개벽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어릴 때의 마을에는 개벽이 있었다. 신동엽은 서사시 <금강>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

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다는 기억 속에

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시인의 말처럼 이제 개벽화가 무성하게 꽃필 것인가?






2. 동학혁명 첫 국가기념일과 삼일혁명 백주년에 개벽마을 천하를 생각한다


1860년 동학의 창시와 1894년 동학혁명은 중화제국에 속한 조선이 독립하는 깃발이었다. 동학이 위대하게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수탈에 맞선 민중혁명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리 좁게 볼 수 없다. 고려의 몽골제국과 조선의 중화제국으로부터의 새로운 천하의 길, 천년의 기획이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친 천년 동안의 회심의 기획이었다. 새로운 천하였다. 말 그대로 다시개벽의 시작이었다.



동학은 서구의 근대국민국가를 받아들인 일본과 다른 행보였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화제국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던 조선 사대부의 소중화주의나, 대청제국의 중화세계와도 달랐다. 동아시아에서 중화세계는 중국과는 다른 서로 별개의 것이다. 조선은 중국이 아니지만 중화제국의 일원이었다. 문화적 속국이니 정치적 속국이니 하는 것은 공맹을 중국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유대의 속국이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동학은 유학의 조선인민화이기도 한 것이다. 서구와 다른 개벽천하의 시작이었다.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의 나라를 자처하는 사무라이의 국가 일본은 중화세계 밖에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 이념을 받아들이고 수립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은 서구 근대 국민국가의 동아시아적 침략이었다.



해방된 조선은 남과 북 모두 서구 근대화의 길을 따라갔다. 남은 미국 자본주의이고 하나는 서구적 소련 사회주의였다. 북이 주체사상으로 자기 길을 간다고는 하나 중소와 미일의 포위 속에서 나온 자구책이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정치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오천년 역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이라 한 것은 동학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세계였다. 양반도 상놈도 카스트도 없는 세계, 오늘로 말하면 전태일도 이재용도 없는 대동(大同)세계이다. 흰 옷 입은 조선이 아니었다. 동학은 천하 보편성을 가진 위대한 기획이었다.



동학은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송여립 등등 훌륭한 몇 장군의 복기가 아니다. 천하대동의 얼굴로서 복원되어야 한다. 돈벌이 관광의 기획이어서는 좁다. 전라도의 동학이어서도 좁다. 동학은 전봉준과 전태일이 만나고 천하인을 만나는 21세기 새 천년의 기획이어야 한다. 전쟁과 폭력이 없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도 남자와 여자도 없는 국가와 국민도 없고 개벽 자치민이 있는대동의 개벽세계여야 한다.



동학혁명 국가 기념 첫해이고 삼일혁명 백 주년이다. 개화세로부터 언제 독립하여 다시개벽의 바람꽃을 피워 개벽세로 갈 것인가? 유학의 향교와 서원이 동학의 ‘접’(接)으로 개벽했다. 사대부와 선비의 천하가 무지렁이 민중의 시천주(侍天主)로 개벽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베 짜는 아낙이, 코흘리개가, 천한 노비가 하늘이라니, 겸상에서 진지를 나누다니, 청상과부를 개가하라니, 부인을 공경하라니…. 공감하니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향교와 서원을 뛰어 넘었다. 접과 접이 ‘장소의 혼’으로 삼천리 곳곳으로 연결되었다. 천하대란의 시대였다. 동방의 공공재 천하, 사대와 사소로서 공존하던 천하체계를 일본이 대동아공영으로 바꿔치기 했다. 왕도가 아닌 패도였다.



개화당이 있었다.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었다. 동을 접고 서에 홀렸다. 조급했다. 동도로 서기를 접하지 않았다. 무능하고 게으른 개화당들이 일본의 접을 만들었다. 청과 공존한 조선처럼 일본과도 공존할 줄 알았다. 하니 무식하고 게으른 것이다. 오늘의 개화당은 미국의 접을 만들고 일본의 접을 지키고 있다.



유학을 진화시키지 못한 정체된 유인들이 천하무인 천하체계를 잊고 사리의 권력에 빠졌다. 위정척사였다. 위정이 조선을 사랑하고 약탈자 서학을 척사함이 그럴듯하나, 과연 고이면 썩으니, 동학을 위정하지 않고 척사했다.



시천주, 인내천! 상하와 남녀가 어찌 대등하지 않으리. 천하에 경계에 있으리오. 거기에 있음으로서 어울려 존재하는 것이다. 민족으로 나뉘고 민족으로 자결하고 자강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인으로 자결하고 자강하는 것이다. 다만 천하를 교란하는 반천하를 반하는 것이다. 가물치, 쏘가리, 붕어의 조선 하천 생태계에 침투한 포식자 블루길과 베스를 거부한 것이다. 천하를 잊고 권력에 탐닉한 모리배를 격퇴하려 한 것이다.



반외세 반봉건이 맞는 말이다. 허나 부족하다. 드러난 형세만을 보는 것이다. 천하를 민족으로서 근대국가로서 쪼개려 한 것이 아니다. 근대 민족국가의 자강과 자각의 투쟁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 천하 일가의 투쟁이다. 동학인들은 민족인이기 전에 천하인이다. 시천주에 어찌 피부색과 말의 다름, 남녀노소가 작동하겠는가. 모두가 천하인 것을. 패도로서 천하를 교란하는 천하교란자에 대응한 것이다. 일본 민족국가에 대응한 것이 저들과 같은 조선 민족국가였던 것인가. 포식자들의 헛-세계화로 사멸해가는 민족국가라면 저 동학의 혼은 그 수명이 159년도 못 된다는 것인가? 헛-세계화에 대응하는 진세계화로 오늘의 동학을 다시 새겨야 하는 까닭이다. 저 서구의 논리는 패도의 헛-세계로 자본의 십자군일 뿐이다. 민주 교조, 자유 교조, 사회 교조, 민족 교조에 맞서 다시 신동학을 호출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근대는 천하대란 춘추전국시대였다. 개화, 위정척사, 동학, 서학이 대립하고 공진하지 못했다. 오늘의 민주파와 성장파는 개벽을 척사하고 자본을 위정한다. 서구로부터 이식된 근대 개화의 터전에서 개화파의 좌파는 사회주의와 민주파로 우파는 반공수구 자유주의로 분단되었다. 2개의 주권국가가 탄생하였으나 보국안민의 광복은 오지 않았다. 고금의 분단 속에서 천하체계의 민(民)이 하늘인 민본(民本)의 의(義)가 단독자 개인의 리(利)를 다투는 자유민주교조로 변질되고 있다.



천하공물(天下公物)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천하무외관(天下無外觀)은 자본독재와 인민독재에 시달린다. 천하공물, 천하는 너와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인데 어찌 국가로서 경계를 다투며, 상하와 빈자와 부자로서 나뉠 것인가. 천하무외, 천하의 안과 밖이 없는데 인간이 자연을 수탈하고 자본과 시장이 민을 침탈하는 것인가?



어찌 혁명의 법칙으로 민을 종속시켜 혁명의 속도전, 물질개벽만의 사회, 인민독재를 만든다는 것인가? 삶의 부침이 어찌 혁명의 과학으로 판단되는 것인가? 서학의 천주(天主)천하와,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천하가 같은 것일진대 어찌 동과 서과 공명하고 공진하지 못하겠는가? 다만 서학의 십자군교도들이 근대 백여 년을 전쟁과 침탈로 새겼을 따름이다. 민본 없는 욕망자 개인의 질서화인 민주교도들이 중심 없는 투표 기술인 민주로서 역사의 종언을 외친다. 자유교도들이 천하와 나를 대동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자유의지를 시장자유로 대체하여 역사의 종언을 노래한다. 당을 천명의 구현체로 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 사회주의로 역사의 종언을 노래한다.



자유교도, 사회교도들에 대안은 없다. ‘다른 백년’은 없다. 자유교도의 대한 민국과 백두혈통 주체교도들이 통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고백해야 한다.



오로지 남은 것은 희미해지는 민족뿐이다. 서울과 평양이 정반합하여 진화해야 한다. 평양이 삼성시가 되는 것은 통일이 아니다. 정치와 권력의 분점 형식에 불과한 연방국가는 잠자는 내전이다. 하여 오래된 천하체계를 호출한다. 서구의 연방이란 것도 천하체계에서 다만 그 형식을 빌려간 것이다.



다른 백년의 기획이 필요하다. 민본 없는 민주의 허상을 경계한다. 천명을 거스르는 시장의 자유를 불용한다. 당이 천명의 소유자라는 인민독재를 불용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삼일혁명 백 주년에 ‘다른 백년’을 생각한다. 전라도 한, 슬픈 애상이 아닌 개벽이 좌절된 다시 ‘개벽의 그리움’이 한이다. 정여립의 천하 공물과 그대가 나이고 하늘인 것의 인내천의 전봉준, 하여 전라도 전주, 장소의 혼으로서 개벽을 호출한다.



무릇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배우고 행하는 것이 개벽의 출발이다. 민주에 머물지 않고 민본의 천하를 추구하는 것이 개벽이다. 민심이 천심이고 민심이 있는 곳이 천하이다. 그 민심의 천하 실체를 찾고자 한다. 아직은 안개이다. 하지만 서로 모여 놀고, 배우고, 행하면 다른 백년의 기획이 가능하며 통일의 실체도 분명해지리라.



하여 우리는 장소의 혼으로서 마을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시장의 단위 시민도, 국가의 국민도, 자유교도도, 민주교도도, 사회교도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 교도도 아니다. 다만 다름을 인정하되 다름의 교도가 아니고 열린 개벽이고자 한다. 시민도 국민도 아닌 개벽마을 자치민이다. 자치민이되 천하를 품는 천하민이다.



마을과 마을을 연대한다. 연대된 마을들이 헛-세계화가 아닌 진-세계화의 천하 마을들과 교류하고 협력한다. 불통의 동서고금을 소통의 동서고금으로 한다.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을 벗어나 자각하고 자강하는 마을 천하를 품는다. 한나라 안에서 이 마을과 저 마을은 다를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보수 마을이 있고 진보 마을이 있다. 원하는 그것이 그것이게 한다. 국가에 의해 표준화된 복사 마을을 거절한다. 근대 천하대란의 난세에서 다른 백년의 기획으로 경향각지에서 백가쟁명하기를 기대한다.



* 이 글...<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한다(2)>는 이병한의 <<반전시대>>, <<유라시아 견문 1>>을 읽은 독후감으로 2018년 2월 22일에 써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이후에 출간된 <<유라시아 견문 2>><유라시아 견문 3>>, 조성환의 <<한국근대의 탄생-개화에서 개벽으로>> 들과, 최근의 개벽 담론을 접하고서 일부 수정한 것이다. 박길수는 흔히 삼일운동으로 부르는 1919년의 일을 ‘삼일혁명’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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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하다(3) - 마을에 묻는 질문과 개벽의 항산항심체

by소걸음Apr 13. 2019

강 주 영 | 전주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운영위원


1. 개벽꽃 피는 마을

눈 밝은 이들이 아시아가 일어선다고 하고, 동서가 반전한다고들 하는데 한적한 소도시 마을에 사는 목수에게 무엇이 일어서고 반전한다는 것인지 궁리에 궁리를 더하여도 눈앞은 깜깜하기만 하였다.

만국병마(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와 괴질운수(용담유사, 안심가)에 모든 문이 활짝 열리고 군산복합체와 투기금융자본에 세계는 이미 하나의 시장이 되었는데 아시아의 일어섬 같은 소리는 현실감이 없었다. 일어섬과 반전이 아시아의 서구적 경제 성장이 아니라, 고장 난 근대 문명의 전환을 동에서 이끌 것이라는 선학들의 속말을 모르지는 않았다.



동서가 반전(자리바꿈이 아니라 이병한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의 대합창/합장)하면 약육강식의 경쟁이 사라지는가? 입시지옥과 헬조선이 사라지고, 부부 중 하나만 일해도 가족이 행복한 시대가 된다는 것인가? 횡포한 개인의 합법적 권력에 지나지 않는 국가가 어느날 개과천선하여 약자들의 호민관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마을이 국가보다도 위에 있어 마을 민회가 국가의 최고 권력이 되어 국가는 마을 권력의 연합체가 되는가? 한해륙(韓海陸, 이윤선, <남도인문학> -한반도가 아니라 바다를 포함한 한해륙이 맞다고 본다)의 분단을 끝낼 통일이 평양이 삼성시가 되는 게 아니라, 서울과 평양이 먼저 온 인류의 미래가 된다는 것인가?



마을에서 국가, 아시아, 동양과 서양은 너무 멀었다. 국가를 매개하지 않고 마을에서 천하(天下)를 품을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가졌다. 천하가 실재하는 지구나 우주 공간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모시고 살리는 리(理)나 영성(靈性)의 공간이라면, 리와 영성이 관념이나 혹은 도덕이 아닌 실재로서 드러난 마을의 조성 원리인 향약으로서, 도시 마을 단위의 노동생산체로 구현된다면… 그런 리와 영성을 가진 마을이라면 실재하는 자연 지리 공간인 천하로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 리와 영성은 아시아의 것이로구나? 그 리와영성으로 만국병마 괴질운수까지 치료하는 것이 반전이고 일어섬이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동서의 반전은 비관적인 인류세를 멈추고, 만인만물이 오손도손 평화롭고 행복하게 되는, 동학식으로 말하면 경천(敬天), 경인(京人), 경물(敬物)의 삼경세(三敬世) 문명으로의 ‘다시개벽’(용담유사 안심가)은 아닐는지!



이제 그때가 되었다는 것인가? 어느 시일(侍日 - 천도교의 예배) 날이었다. 용담유사의 ‘다시개벽’이라는 말이 문득 눈에 번쩍 띄었다. 그냥 종교적인 말이거나 무극대도(無極大道)를 깨우친 수운이나 해월같이 높고 깊으신 분들이나 하시는 말씀으로 밀쳐놓고 있었다. 르네상스나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라 ‘다시개벽’이구나. ‘아! 맞다. 이 말이 있었지!’



용담유사 안심가의‘십이제국(온 세상의)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라는 문장이 현실감 있는 말로 밀려왔다. 그날 일기장에 ‘닭울음소리 같이 듣는 개벽꽃 피는 마을’이라 적었다. 닭 울음소리 함께 들을 만한 인간적 유대의 공간…. 마을에서 새기고 되새기고 또 물었다. 지금이 개벽운수의 그때입니까? 해월이 답했다.



23. 問曰「何是顯道乎」 神師曰「山皆變黑 路皆布錦之時也 萬國交易之時也」

묻기를「어느 때에 현도가 되겠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산이 다 검게 변하고 길에 다 비단을 펼 때요, 만국과 교역할 때이니라.」

24. 問曰 「何時如斯乎」神師曰 「時有其時 勿爲心急 不待自然來矣 萬國兵馬 我國疆土內 到來而後退之時也」

묻기를 「어느 때에 이같이 되겠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때는 그 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이니라.」

- 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편



평민들이 헐벗음을 벗어나 나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산이 우거지고, 길에다 비단을 깔 정도가 되고, 모든 나라가 서로 통상을 할 정도로 물자가 풍부하고, 서로를 침략하지 않고 평화로울 때가 개벽운수라!



원불교 개교 표어가“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가 아니던가? 만국병마의 괴질운수 세계화가 물러가기는커녕 여전한데 지금이 개벽운수의 그때라고 보아도 되는 것인가? 어디인가에서 고비원주(高飛遠走)하는 개벽파들이 마을과 나라와 천하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인가? 모든 준비에는 끝이 없으니 모자라도 일어설 때인 개벽운수의 시절이 된 것인가?


2. 마을에 던지는 질문






도시에 마을이 있는가?(이 글에서 마을은 도시 마을을 말한다. 농촌 마을은 논의의 밖에 있다.) 있다면 마을은 무엇인가? ‘마을 만들기’는 무엇인가?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마을 공동체’는 또 무엇인가? ‘마을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다. 공화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이 그 어떤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 개벽운수인가? 마을을 만든다면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들의 정치는 마을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국가가 있는데 마을공화국이라니? 공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을과 공장은 어떻게 되는가? 마을공화국이라면 그 마을에는 무산자, 유산자 하는 계급이 없는가? 마을공화국 운동은 계급투쟁을 포기하는 것인가?



공장에서 프롤레타리아로 일하고 마을에 돌아오면 그는 마을민인가? 마을의 하숙생인가? 마을에 먹고 사는 것이 없는데 마을공화국이 되는가? 마을은 국가의 축소판인가? 도시 마을이라는 말이 가능한가? 도시 마을은 하숙촌이지 않은가? 하숙촌이 생활공동체가 되는 게 가능한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때로 이런 질문이 필요한가도 의심이 된다. 마을에 먹고 살 것이 있어야 마을 만들기든 마을공화국이든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마을 만들기는, 혹은 마을 공화국은 마을이라는 생산체(?)가 시장에 진입하여 경쟁하는 시장 단위인가? 아니라면국가 단위의 시장과 독립된 마을 생산체가 가능한가? 마을은 기업과 경쟁하는 관계인가? 공장, 사무실, 가게와 경쟁하라는 것인가? 마을 공화국은 대한민주공화국의 정치 주체로서 결국 마을과 마을의 연합으로서 국가를 이루자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운동인가?



개벽이든, 혁명이든, 문명 전환이든 그것들의 주체는 결국 사람일 텐데, 사람들의 단위는 공장(사무실 포함)인가? 마을인가? 마을은 노동 해방을 할 수 있는가? 노동 해방은 무엇인가? 노동 해방은 일을 안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노동 해방은 부불노동-잉여가치의 수탈을 없애는 것뿐 아니라 나의 자아와 일이 각지불이(各知不移)한 상태이다. 하늘의 이치(일단 그런 게 있다고 하자. 여기서는 모시는 삶의 인격화로 하늘 또는 한울님을 쓴다)를 실현하는 즉 시천주(侍天主)하는 삶이 옮겨지지 않는, 즉 시천주를 거스르는 것들에 대한 투쟁이 ‘불이’라면 각지불이한 마을이 곧 개벽 마을일 것이다.



그런데 시천주와 각지불이를 모르는 마을의 코흘리개와 애기 엄마와 종이 상자 수레를 끄는 노파들에게도 개벽 마을이 가능해야만이 개벽마을이라 할 것이다. 각지불이한 삶, 다른 말로 공공(公共)한 삶이 마을 자체로 가능해야 마을 공화국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당신 공공하도록 근대의 경쟁하는 이성을 던지고 공공하는 영성으로 개벽하시오.” 이렇게 계몽할 수는 없지 않는가? 공공하라고, 일부러 서로 공공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여기서 던지는 질문들은 오늘 이글에서는 답하지 못 한다. 오늘은 마을공유지, 마을작업장에 관한 내용으로 질문에 대한 논의의 길을 열어 본다.


3. 마을의 항산항심체







마을이 항상 생산하고 그로써 마을민을 항상 안민하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의 마을을 생각해 본다. 실재하는 항산항심체가 없다면 마을 공화국은 뜬구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도시 마을의 일정 구획마다 마을 주민이 자유로이 어떤 용도로도 사용 가능한 마을공유지를 생각해본다. 마을공유지가 있으면 비싼 임대료도 원주민 추방(gentrification)도 없다. 경쟁과 배제도 없다. 부동산 공화국도 약해진다. 국가복지가 아닌 마을 자치복지가 가능하다.



민법에서는 262조 수인의 소유는 공유로 271조에서는 수인이 조합체로 소유할 때는 합유로 275조는 법인이 아닌 사단의 사원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할 때에는 총유로 하고 있다. 민법대로라면 마을사단을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 정확히는 마을은 소유권의 주체로 성립되어 있지 않다. 마을총유를 별도의 사단을 형성하지 않아도 주민등록상 마을 주민이면 마을 총유지, 총유건물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마을공동체기본법>을 제정하고 마을총유를 명기하고, 민법의 총유를 개혁하여 마을총유를 넣어야 한다.



마을총유지는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항산항심(恒産恒心)하고 유무상자(有無相資)하는 삶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지금도 갯벌은 어촌계 등을 통해 마을 총유지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 전통 마을에서 마을 총유는 훌륭히 관리되어 마을의 공동 이익에 기여했다. 갯벌, 공동 보메기 하던 농업 수로, 마을의 하수처리장인 마을 연못, 마을 저수지, 공동 우물, 방앗간, 마을 마당, 마을 공동 논과 밭, 마을 정자, 서원, 향교 등… 이를 자치 관리하던 마을 향약, 대동계, 촌계, 두레 등 개인이나 단체에 지원되는 자금을 마을공동체의 총유자산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내쫓김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모시는 살림이다. 도시 자치자급경제의 토대가 된다. 운영은 마을민회가 한다. 마을총유자산이 있으니 마을민회가 활성화될 것이다. 갈등도 있겠지만 마을이 항산항심하고 유무상자하는 길로 갈수 있을 것이다.



도시 마을 공유지에 주민 총유자산으로 마을작업장(초소형 공장, micro factory, 공장이 주는 어감을 피하기 위해 마을작업장으로 쓴다)을 만들자.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일하는 사람들이다. 마을 작업장은 자치자급소농두레체(연합)의 도시 마을형이다. 기술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첨단이지만 초소형 공장(micro factory)이 마을에 들어설 수 있다. 집중집적된 거대 산업단지에서 유연분산화된 마을으로의 귀환이다. 관념에 고정된 대형 조립화 라인, 포디이즘을 버리자. 일터가 마을에 생긴다면 이산가족이 될 필요가 없다. 가족공동체가 부활할 뿐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부활한다. 공동체가 부활하면 보육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을작업장은 주주의 것이 아닌 마을 주민의 총유자산이기에 마을에서 삶의 모든 것이 순환한다. 장거리 출퇴근도 사라진다.



미국의 로컬모터스는 동네 카센터 규모에서 3D출력기와 부품으로 자동차를 조립 생산한다. 이 로컬모터스는 한국에도 진출을 시도한다고 한다. 디자인은 전 세계의 인터넷 유저들과 공동으로 한다. 개벽적이다. 과거의 수공업장에 첨단 기술과 네트워크가 결합된 것이다. 3D 출력기로 차체를 만들고 부품은 기존 자동차 회사에서 사와 만드는 마을작업장이다.



로컬모터스는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지만, 우리는 이 개념을 마을의 생필품을 자급하는 마을 작업장으로 생각해 보자. 기술의 민중적 소유이다.



전주에 이런 마이크로 팩토리(micro factory)를 이 마을, 저 마을 한 100개쯤 만들면 어떨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도시 재생 사업비 50조 원을 전국 3509개 읍면동으로 나누면 읍면동마다 약 142억이다. 읍면동마다 142억원을 들인 마을작업장 3,509개를 만들면 어떨까? 필자는 개벽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도시재생 사업은 건물주만 좋아지는 사업으로 비판적으로 본다. 3509개의 마을작업장에서 직접 10명을 고용한다면 전국에서 35,090명이 고용된다. 연관 유발 효과는 더 클 것이다. 투자 10억당 몇 명하는 산업연관에 의한 고용유발계수로 전산업평균 15명을 적용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70억이면(설비투자를 70억 건물비를 72억으로 본다면) 95명이다. 도시 마을 한 곳을 활성화시키기 충분하다. 전국적으로는 약 33만 명이다.



동학의 유무상자 정신이다. 이 마을작업장은 마을의 총유자산이기에 마을에서 윤리적으로 소비될 수 있다. 마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윤리적 소비망을 건설할 수 있다. 대기업과 경쟁이 되겠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마을작업장은 대기업이 가져간 마을 경제를 탈환해오는 것이자, 마을의 순환경제이다. 일방적으로 대기업에 뺏기던 부를 국가의 조세나 복지 정책이 아닌 스스로 탈환하고 재분배하는 일이다. 가구, 소금, 된장, 침구류, 자동차, 드론, 컴퓨터, 교구, 학교급식, 의복, 신발 등 대기업이 하는 모든 품목이 가능하다. 공장의 가구가 아닌 마을 목수의 가구, 공장의 구두가 아닌 마을의 수제화, 공장의 식품이 아닌 마을의 손맛으로 만드는 식품… 로컬모터스 예처럼 자동차나 드론도 가능하다. 부품은 외지의 기업들이 생산한 것을 사오면 된다. 자치자급 가능한 물품은 마을작업장만 만들어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협, 도농직거래, 공정무역, 공정여행 등 윤리적 소비가 확대되는 경향이 바탕이 된다.



마을 총유자산으로서의 도시 마을 두레인 마을작업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자연적으로 마을민회가 활성화될 수 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마을민회를 하자고 하면 어렵다. 하지만 눈앞의 생산과 분배를 두고 마을민회를 하자고 하면 쉬울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전통마을의 대동계나 촌계, 동학의 포와 접이 현대적으로 다시개벽되는 것이다. 투표가 아닌 마을을 직접 운영하는 민주주의가 된다. 시장의 식민인 시민(市民)이 아니라 서로 모시는 시민(侍民)이 된다. 천하의 마을들과 연대한다. 인터넷을 통한 교역망과 설계 기능 결합은 곧 마을이 천하와 연결되는 일이다. 이제 마을이 천하를 품는다. 상호의존적인 완전한 마을공화국이 실현되는 계기가 된다. 거대산단이 아니라 마을작업장이 미래이다.



마을작업장은 모시고 나누는 개벽경제의 시작이다. 마을작업장을 매개로 하여 다른 경제들도 활성화된다. 소비만 하는 마을이 아니라 생산이 있는 마을이라서 소매자영업도 활성화될 계기를 가진다. 이제 도시 마을 작업장 노동공동체와 농촌의 노동공동체 소농두레(연합체)가 연대하면 된다. 마을민회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이천식천 유무상자하는 연대이다. 마을마다 특성이 다르다.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스스로 자치자급하는 좋은 삶이다. 자치자급이란 홀로 농사를 지어 사는 삶이 아니라 타인을 수탈하지 않는 상호부조하는 삶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할 권리’가 아니라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국가에 요구하지 않고, 전복 탈취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다.



마을공유지, 마을작업장은 민중의 직접 소유권과 마을권력을 세우는 직접민주주의이다. 지역의 노동, 생산, 소비, 교환을 바꾸는 비자본주의 호혜경제의 시작이다. 마을 개벽학당, 마을총유와 마을작업장, 소농두레(연합체)에서부터 개벽은 시작된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개벽 유전자

- 개벽마을에서 천하를 생각하다 (2) | 강 주 영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운영위원 - [이 글은 <개벽신문> 82호(2019.2/3합병)에 게재되었습니다] 1. 개벽의 유전자 전주 한옥마을 왕의 뜰 경기전에는 와룡매가 피고, 마을민들의 골목 동문길, 저문 하늘에는 막걸리 냄새가 퍼졌다. 왕의 뜰과 골목길의 경계에서 봄이 오고 있다. 해토머리 섬진강을 거슬러 마을과 마을을 지나고 들과 산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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