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5

알라딘: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불안과 화해의 시대론



알라딘: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불안과 화해의 시대론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불안과 화해의 시대론
강상중,우치다 타츠루 (지은이),노수경 (옮긴이)사계절2018-12-24




7.6100자평(3)리뷰(2)


종이책 페이지수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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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불안과 화해의 시대론. 1950년 전후 일본에서 태어나 근대화 과정을 성찰하며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한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처음으로 만났다.

근대화의 그늘과 세계의 오늘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역사의 비극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인류에게 ‘처참과 고난, 비탄과 번민, 죽음과 질병 같은 비극을 통해 숙연해지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경고한다. 두 지성의 날카롭지만 섬세한 대화 속에서 독자들은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불안의 이유를 발견하고, 그것과 화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불안과 화해의 시대론 5
들어가며 범람하는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9

서장 세계는 ‘최종 전쟁’으로 향하는가
파리 동시다발 테러사건 19 | 냉전의 시작과 1차 세계대전 20 | 평화의 100년, 발전의 200년 22 | 서구를 지배하는 자유 이데올로기 23 | 자유에 대한 반역?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쟁론』 27 | 프랑스에 만연한 저주 28 | 9?11 이후 증가한 테러 31

1장 액상화하는 국민국가와 테러리즘
기회를 박탈당한 이민계 청년들 37 | 극심한 식민지 수탈과 그로 인한 빚 41 | 패전국으로서 자아비판을 하지 않았기에 48 | 면면히 이어지는 프랑스 극우주의 57 | 미국에도 등장한 극우 대통령 후보 64 | 패전의 르상티망 75 | 액상화하는 국민국가 -역사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84 | 글로벌화의 귀결, 난민 86 | 개헌안 속의 신자유주의 89

2장 의사전시체제를 사는 우리
일상으로 들이닥친 전쟁, 테러리즘 97 | 전쟁을 원리가 아닌 숫자로 본다면 101 | 의사전시체제를 사는 우리 107 | 돈보다 목숨이 소중하다 110

3장 제국의 재편과 코뮌형 공동체의 활성화
국민국가의 해체와 세계의 제국화 119 | 제국 재편의 코스몰로지와 종교 122 | 코뮌형 연합체를 기축으로 131 | 난민에게 소속감을 주는 공동체의 지원 142

4장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의 기민사상
메이지 150년, 일본 총리의 야망 157 | 폐허가 된 탄광과 대지진 직후의 원전 159 | ‘인간기둥’이 지탱하던 근대의 동력 166 | 근대 150년의 성장과 그늘 169 | 미국의 근대 산업을 지탱해온 노예노동 174 | 미국 모델의 오류 176 | 미국의 성공, 인류의 불행 184 | 삐걱거리는 대국, 휘둘리는 소국 186 | 미국 모델의 약화 189

5장 싱가포르화하는 일본
일본의 싱가포르화 199 | 향토를 파괴하는 독재자 204 | 싱가포르의 그늘을 그리는 젊은 영화인들 211 | 진행되는 싱가포르화 213 | 성장신화, 리버럴리스트의 약점 216 | 정상경제와 미래 218 | 전후 민주주의라는 허상 226 | 앵글로색슨 리버럴리스트의 행방 231 |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 235 | 통일 독일의 안정성 240

6장 불쾌한 시대의 폭주를 막기 위하여
미국의 정체는 언제 시작될까 249 |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기 251 | 일본에 숨어 있는 위험한 반미 르상티망 254 | 3차 세계대전의 전망-터키 아니면 한반도? 263 | 70년 평화에 질린 혐오감의 만연 269 | 체제의 붕괴를 바라는 위정자들 274 | 역사에서 불쾌한 시대의 결말을 배우다 280 | 철수와 축소만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284 | 귀향의 딜레마-이시마키 출신자의 질문 288 | 싱가포르와 승자 건축 문화 ?고시마 유스케光嶋裕介(건축가, 가이후칸 설계자)의 질문 292 | 강한 자를 위한 건축은 후세에 남지 않아 294 | 약자를 환영하는 공공건축 297

마치며 300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서론이 길어질 듯한데 이 책의 토대가 되는 제 나름의 문제의식을 먼저 개진해볼까 합니다.




P. 11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이 ‘이제 두 번 다시는Never again’이라고 굳게 맹세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 맹세와 함께 전후가 시작되었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염원이 역사를 움직였다. 하지만 살육은 결코 멈출 줄 몰랐으며 전 세계에서 크고 작은 비극이 일어났다... 더보기
P. 27 중동 지역에 자유를 기본 원리로 삼은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 부흥주의’의 기치를 내건 국가가 등장하면서 중동은 격동의 시대로 빠져듭니다. 걸프전이 그 시작점입니다. (중략) 국경을 초월한 테러와 유럽을 향한 난민의 행렬 등 ‘서구’를 토대로 한 근대 자체가 동요하는 동시에 자유의 원리를 ‘국시’로 삼은 국가들마저 자유를 부정하는 ... 더보기
P. 49~50 지성은 타자의 결점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혀에서 나온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성은 자기가 범한 죄과와 실패의 유래를, 또한 그 진행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정됩니다. 어느 지식인이 자신의 실패를 명확하고 분명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의 지성은 다른 문제에서도 적절하게 기능할 가능... 더보기
P. 80 미국은 건국 때부터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걸었으니, 아마도 자유무역이 국시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이지요. 그래서 자유무역, 관세 장벽 폐지, 시장 개방을 집요하게 주장합니다. (중략) 관세 장벽은 그 자체로 ‘악’이며, 시장 폐쇄 자체가 악이라는 믿음이 미국 건국의 원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_우... 더보기
P. 105 ‘전쟁을 어떻게 억지할까’라는 논의는 (중략) ‘전쟁을 없앨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을지 궁리해보자’는 ‘정도의 문제’로 관점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이치에 맞지 않을까 하고요. 전쟁은 근절시킬 수 없습니다. 테러도 근절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적으로 생각해서는 ... 더보기
P. 139 글로벌화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주도하고 있을 뿐, 실체는 로컬한 운동입니다. ‘글로벌 지향’은 미국의 고질병이에요. 자국의 표준을 세계의 표준으로 만들려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지향’이라고 보긴 힘들지요. 앞으로 미국이 쇠락하여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희박해지면 글로벌화를 주도하는 나라가 없어... 더보기
P. 173 근대의 성장의 그늘에는 항상 기민이 있었습니다. (중략) ‘일본은 석탄에서 석유 에너지로 산업의 근간을 전환하면서 고통을 겼었지만, 그걸 극복하고 발전했습니다’ 따위의 성공신화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옛날이야기가 아니에요. 오늘날 도래한 격차사회에서 사회 밖으로 튕겨져 나간 청년들, 죽을 정도로 일을 시키는 소위 ‘블랙기업’... 더보기
P. 176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직후인 1901년에 텍사스 스핀들탑에서 석유가 발견됩니다. 노예노동이라는 값싼 에너지원을 잃자마자 이번에는 ‘공짜나 다름없는 에너지원’인 석유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 내연기관을 바탕으로 한 산업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미국의 산업은 노예노동과 석유라는 저렴한 ... 더보기
P. 252~253 더 높은 수준, 그러니까 통치 형태를 공유하거나 정교분리의 원칙을 공유하자, 또는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을 공유하자는 주장은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거기까지 요구하지 않고 딱 이 정도까지만 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표준을 제정하는 힘을 잃어감에 따라 ... 더보기
P. 276 세계대전은 ‘메이지체제로부터의 탈각’이었습니다. 1930년대, 1940년대의 대일본제국의 전쟁지도부가 메이지체제를 파괴했습니다. 체제의 중추에 자리하며 법외 권력을 행사하던 메이지체제의 수혜자들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체제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돌진했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메이지유신 이후 70년에 걸쳐 쌓아올린 것들을 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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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상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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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폐품 수집상으로 일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학교를 다니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와세다대학에 다니던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나는 해방되었다”라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사회 진출이 어려워 대학원에서 유예 기간을 갖던 중 은사의 권고로 독일 유학을 떠났다. 뉘른베르크대학에서 베버와 푸코, 사... 더보기


최근작 : <위험하지 않은 몰락>,<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 고민하는 힘 세트 - 전2권>,<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 총 34종 (모두보기)
인터뷰 : 고민, 다들 하고 있습니까? - 2009.05.06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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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문학부 불문학과 졸업 후 도쿄도립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전공은 프랑스 현대사상, 무도론, 교육론, 영화론 등으로 고베여학원대학 에서 퇴직 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현재는 고베에서 합기도와 철학 등을 익히는 마을 무도관 ‘가이후칸(凱風館)’을 열어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하류지향》, 《스승은 있다》, 《어른 없는 사회》, 《속국 민주주의론》(공저) 등이 있으며 《일본변경론》으로 제3회 이타미주조 상을 받았다.


최근작 : <사쿠라 진다>,<소통하는 신체>,<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 총 199종 (모두보기)

노수경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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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구원의 미술관』, 『마음의 힘』, 『마음』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불안과 화해의 시대론
1950년 전후 일본에서 태어나 근대화 과정을 성찰하며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한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처음으로 만났다. 두 사람은 『위험하지 않은 몰락』에서 근대화의 그늘과 세계의 오늘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역사의 비극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인류에게 ‘처참과 고난, 비탄과 번민, 죽음과 질병 같은 비극을 통해 숙연해지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경고한다. 두 지성의 날카롭지만 섬세한 대화 속에서 독자들은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불안의 이유를 발견하고, 그것과 화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근대의 아이들이다
인류는 근대를 거치며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상 위에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근대의 횃불은 시민혁명을 잉태했고 헌법 아래에서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국가를 출현시켰으며, 또한 찬란히 빛나는 이성의 힘은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 안에서 태어난 근대의 아이들인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구가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굳건할 것만 같았던 근대는 이제 종언을 고하는 중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 테러가 침입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소용돌이치는 오늘날, 근대를 지탱해온 국민국가체제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전 세계는 최종 전쟁 단계에 돌입했다.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류의 역사는 ‘21세기의 야만’을 넘어 다시 한 번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는 이 책에서 근대의 침몰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하며, 세계가 조금 더 안전하게 다음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세계최종전쟁’ 단계로의 돌입

세계의 역사는 근대의 정통을 자처하는 혁명의 나라와 독립혁명의 나라를 모범으로 삼아 전개된다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통’은 혁명이라는 특정한 원리와 원칙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국가라는 뜻이며, 한마디로 자유를 근본 원리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_강상중, 24~26쪽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초 위에 건국된 미국과 프랑스는 사상과 문물의 종주를 자부하며 역사를 전진시켰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두 나라가 테러리즘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근대의 아이러니다. 『위험하지 않은 몰락』은 이 도착적 상황의 원인을 추적한다.
강상중에 따르면, 냉전이 끝나고 ‘근대’가 세계의 기준이 되어 전 세계가 미국과 프랑스를 본받아 자유를 원리로 하는 국가, 사회, 제도를 만들기 시작하던 순간 중동에 ‘이슬람 부흥’을 기치로 내건 국가들이 출현하면서 ‘유일하고 순수한 근대 모델’의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과 프랑스는 중동의 혼란을 수습하고 세계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과 갈등은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초래했고, 이때 피해자가 된 중동 사람들의 심상에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자리 잡는다. 강상중은 여기에서 현재 서구 대도시의 일상생활 속으로 침입한 테러리즘의 기원을 찾는다.

새로운 야만의 출현, 전 세계적 우경화
세계는 20세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며 전체주의라는 환상의 위험을 통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프랑스 ‘국민전선’의 대약진, 일본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등 전 세계에서 우경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 현상을 ‘21세기 새로운 야만’의 징조로 경고한다.
그에 따르면 17세기 이후 근대 세계는 ‘국민국가’라는 공통 조건하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 국민국가체제라는 모델에 따라 세계는 제도와 문화를 획일화하고 경제성장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마침내 ‘자본과 시장’이 지상의 원리가 되는 시점에 이르자, 국민국가체제는 더 이상 경제성장의 조건이 될 수 없게 되었다. 자본과 시장은 각 국가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기를 원하는 반면, 국가는 자본과 시장을 국경 안에서 보호하고 운용하고자 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국가와 시장의 갈등에서 마침내 시장이 승리했고, 여기에 대한 반발로 자국의 국경에 높은 담장을 치자는 ‘우경화’ 현상이 다시 대두했다는 분석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현재 일본의 정치 상황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는 아베 총리가 원하는 일본은 북한과 싱가포르를 합친 나라라고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시민에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강권적 지배 국가인 북한을 모델로,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목표가 오로지 성장에 매몰되어 사회의 모든 제도가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설계된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고 있다. 두 모델 사이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 모델이며, 극우 전체국가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사회주의의 승리로 향하는 과정에 자본주의의 발전을 포함시켰던 마르크스의 계획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불안한 시대에 빙의되었는가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인이 시대의 불안한 분위기에 ‘빙의’되어 있다고 우려한다. 언론은 북한은 별거 아니라며 전쟁을 종용하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제대로 수습하지 않은 채 지방 경제를 말살시키더니 결국 헌법을 뜯어고쳐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 과정에 집권 자민당이 설정한 경제성장 모델이 있다고 분석한다.

공화적 합의 형성의 절차나 분권 시스템으로는 이 속도를 유지할 수 없어요.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권한을 총리관저에 집중시키고 사법부와 입법부가 행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_우치다 타츠루, 200쪽

전 국민이 도시에서 임노동을 하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입해야 하는 구조를 갖추면 GDP가 어느 정도 유지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임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_우치다 타츠루, 206쪽

침몰을 막을 열쇠는 관용과 환대의 정신
이 책에서 두 지식인의 대화는 위험을 분석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21세기의 야만을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 무한히 확장되던 두 사람의 사고는 한 곳에서 동시에 멈춘다.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이다.
전후 독일은 세계의 그 어느 국가보다 전쟁 책임을 치열하게 반성했고, 그 반성적 사고 위에 새로운 국가의 초석을 세웠다.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책무를 지는 것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독일은, 아예 헌법에 ‘난민 수용’ 조항을 명문화시켰다. 윤리적 부채 의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독일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나아가 강상중은 독일의 반성과 윤리적 부채 의식이 동?서독 통일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설명한다. 세계대전을 겪으며 타자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교훈을 전 국민이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이슬람 공동체의 ‘자카트 문화’를 오늘날의 위기를 잠재울 수 있는 또 다른 열쇠로 제시한다. ‘우리가 양보하면 그쪽도 양보하라’ 같은 평등주의 논리가 아니라 내가 먼저 양보하는 관용의 자세가 공생과 화해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언제 물과 식량 없이 황야를 헤매게 될지 모릅니다. (중략) 착한 사람을 만나면 살아남고 구두쇠를 만나면 죽는다는 건 곤란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막에서 천막을 발견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황야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언제나 타자와 공유한다는 도덕이 신체화되었습니다. _우치다 타츠루, 126쪽

작은 공동체에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두 사람은 작은 공동체 단위로 세계가 재구축될 것이라고 말하며 독자를 안심시킨다.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성장 모델이 힘을 잃고 국민국가체제가 액상화됨에 따라 세계는 이슬람권, 유럽권, 유교권 등 몇 개의 단위로 광역화되는 동시에 그에 대한 보완으로 작은 지역 단위의 공동체가 재구축된다는 예상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지역화 과정에서 ‘정상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7만 년 전부터 인간은 경제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대부분의 시기 동안 한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산의 형태와 교환의 형태가 거의 바뀌지 않는 정상경제였습니다. 1년간 몇 퍼센트 성장을 했는지 같은 수치를 산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구경한 적도 없으니까요. (중략)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입할 때는 몹시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서비스도, 상호부조적 공동체의 내부에서는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대가는 다른 기회에 다른 형태로 누군가의 ‘좀 부탁드릴게요’에 응하는 것으로 치러집니다. _우치다 타츠루, 219쪽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는 초고속 화폐경제 시스템의 반대편에 교역 중심의 호혜적 경제 시스템을 위치시킨다. 성격이 전혀 다른 경제활동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다양한 공동체가 각자의 역사 배경과 지리 조건에 기반하여 최선의 모델을 결정하는 미래. 인류의 새로운 역사는 두 사람이 가리킨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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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모델˝이라며 자본주의를 비판하는데, 끊임없이 페달을 밟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게 생명. ˝내가 보는 세상만이 진실, 네가 보는 건 환상이라는 생각은 혼자 하고 모름지기 인간은, 인간 사회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자제하라˝가르치면서 왜 이러심?
madwife 2019-02-17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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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강상중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다. 그동안은 어딘가 따분한 저자라는 인상이었다. 프랑스의 극우주의, 영국이 제국을 해체하면서도 연착륙에 성공한 점, 미국 모델의 예외성, 일본의 싱가포르화 등등 논제들이 참신하고 둘의 케미가 괜찮다.
술래 2019-07-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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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얇은 책 속에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 녹아 있다. 두 사람은 지성이 몰락하고 반지성이 대두하는 현재의 기원을 찾고, 미래의 변화를 예상해보며, 그 변화에 조금 더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2019-03-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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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위험하지 않은 몰락


일본의 재일 한국인으로서, 비판적 지식인이자 세이가쿠인 대학 총장을 거쳐 현재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중인 강상중 교수와 일본내에서 프랑스 철학의 권위자이자 더불어 국내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반지성주의’에 관한 연구서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 교수의 오늘날의 대표적인 세계문제인 난민, 미국 주도의 글로벌화, 테러리즘 및 일본의 개헌 움직임과 국내 문제에 관한 대담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을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16년 출간된 것인데요. 2016년 미국 대선 전에 출판된것으로 추측됩니다.

책의 구성은 서장을 비롯해 총 7장의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난민 문제를 비롯한 국민국가의 액상화,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즘 및 테러리즘 등은 서로 따로 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문제로서 연관되어 있는데요. 약간의 요점이 필요하다면 미국의 정치경제질서를 세계에 투영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이중적으로 난민과 그로인한 테러리즘을 불러일으켰다는 논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약간의 추측을 해본다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가 나치에 부역 했던 비시 괴뢰 정권의 과오를 프랑스인들이 제대로 자기 반성을 하지 않고 프랑스가 UN의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파시즘에 부역했던 불가리아, 크로아티아와 같은 국가들이 대전 말에 태세를 전환시켰던 것처럼 각국이 전쟁의 부역을 해소하지 않고 얼굴을 들고 다닌 이유 등의 만연한 도덕성 결여가 우드로 윌슨의 이 ‘국민국가주의’의 불완전함을 가증시킨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기원은 베스트팔렌 체제까지 그 개연성을 끌고 갈 수 있는데, 아마도 이 점에 대해서 헨리 키신저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앞의 드골의 프랑스가 사과와 반성없이 연합국의 얼굴을 쓰고 세계 무대에 등장한 것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우치다 타츠루 교수의 언급에 속으로 “당신의 일본은 어떠했는지 아는가”가 문득 떠올랐는데요. 사실 뒤에 일본이 미국의 속국에 지나지 않는 자기 비하와 희화화로 부채를 대신하고 있지만 딱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일본의 리버럴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전후 체제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우치다 교수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대동아공영과 관련하여 “일본이 아시아에 나쁜짓을 했다”는 문장이 나오기는 했지만, “태평양전쟁 하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1942년 당시 일본 정부가 미국과 강화를 맺었으면 아마도 남방 영토는 상실했을테지만 대만, 한반도, 만주의 북방 영토는 보전했을 것”이라는 예측은 교묘하게 감춰진 이중성이라고 느꼈습니다. 저 표현의 문장은 문맥상 상당히 교묘해서 단순한 역사적 가설 내지는 과거의 가능성 정도로 치부하기엔 저 같은 한국인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현재 일본의 아베를 비롯한 정치권의 극우주의가 친미를 기반으로 한다면, 평화 헌법의 개헌을 주장하는 국수주의자들이 미국의 그늘을 떨쳐내려 하지만 소수이고, 그 반대의 리버럴과 좌파가 있지만 일본의 좌파는 한줌도 안되는 세력이고 다수의 리버럴은 이 역사 문제와 전후 체제에 대해 너무나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 리버럴한 일본 지식인들 역시 앞선 프랑스의 비시 괴뢰 정부에 대한 자기 비판을 제대로 하지 않는 태도와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내에서 불고있는 이 ‘전후 체제의 탈각’이 단순히 극우들의 정치 운동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본래라면 과거 전범 국가였던 국가가 미국의 개입으로 전후를 종식시키고 남은 유산인 평화 헌법의 개헌을 비롯한 전방위적인 탈각을 정상적인 사고라면 아주 역겨운 일이라고 말해야 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우치다 교수는 이 평화 헌법으로 인한 평화 체제가 70년간 일본에 평화를 가져다 줬는데 아베의 개헌 시도는 이런 평화를 종식시키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물론 요시다 독트린을 비롯한 한반도의 전쟁이 일본 부흥의 기초가 되었지만 한국 전쟁의 이득을 분명 적잖이 받은 일본 지식인이 미국이 서쪽으로의 전쟁만 일으킨다는 인식의 한반도 전쟁을 집어 넣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성찰적 비판이라는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의 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우리는 미국에 진 것이지, 아시아에 진 것이 아니다”라는 일갈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겠죠.

물론 현재의 세계 상황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은 대체로 받아들일 만 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자신들의 경제 발전을 위해 받아들인 이슬람 이민들에 대한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배척은 이중적이다 라는 것도 충분히 공감되고, 이 이슬람 청년들에 의한 국내적 요인의 테러 행위를 일전에 미국 언론인의 “슬럼 지역의 꿈과 희망을 잃은 소외된 이슬람 청년의 아노미적 현상”은 바로 이 점을 짚은 것입니다. 여기에다 “오른손으로 난민을 만들어내면서, 왼손으로 난민을 되돌려 보낸다”는 표현도 이것들과 일맥상통합니다. 따라서 뭔가 거창한 이슬람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종차별에 따른 사회문제인 것이죠. 아마도 그런 해결책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철회하고 공적으로도 종교에 대한 관용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판단은 설득력이 있는데요. 다만 공화주의의 원칙인 정교분리의 원칙을 무조건 적으로 해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죠. 이처럼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극우주의 운동은 국민국가의 개념적 상실 또는 액상화의 결과일 겁니다. 이 양자가 어느것이 우선인지는 약간 미묘하지만 이러한 과정에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기조가 주입됨으로써 더욱 파편화로 나아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전체를 짚어보면, 오늘날의 세계가 얼마나 ‘야만의 시기’인지 자의로 깨닫게 됩니다. 극우와 포퓰리즘의 문제, 즉 역겨운 배외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세계 패권 정치의 전면에 선 것과 일본의 3. 11 지진과 함께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과 그 안전을 지탱하기 위해 지금도 국가의 강요에 의해 투입되고 있는 하청의 ‘인간기둥들’, 과 “자국의 실패를 꼽아보고 규명하는 일은 항상 심각한 방해를 받게 마련이다.”는 뼈아픈 고백은 지금도 많은 실패 국가들에게 들어맞는 수사입니다. 위의 트럼프에 당선으로 인한 백악관이 과거 먼로주의에 의거한 미국 일국주의 가능성을 짚어낸 것은 통찰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시아에 있는 지식인들이 유럽의 난민과 극우주의의 발로에 대해서는 유럽의 지식인들과는 달리 꽤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점이겠죠. 현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타자화가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끝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과거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준하는 지역 질서로 중동 지역에 수니파 벨트가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현재 미국, 중국, 이란 등이 나서서 이를 제지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일대일로가 티베트와 관련 영토 문제와 관련되어 보입니다.

글 중간에 제가 한국인의 입장으로 약간 격앙의 감정으로 2차대전과 이후 전후체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다소 비판을 가했는데요. 이 점을 제외한다면 특히 강상중 교수는 후쿠시마에 손수 취재를 나설 정도로 실천적인 지식인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우치다 교수 역시 일전의 반지성주의와 관련된 일본의 현실 상황을 비판적으로 서술한 바가 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의 현실 인식은 꽤 설득력이 있고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문제들에 대해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꽤 훌륭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냉전의 종식으로 더 많은 자유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세계에 기대했겠지만 오히려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 곳곳에 발생하고 있으니 이 점을 역사의 변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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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18-12-3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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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을 응시해야 할 때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지금 모든 국가, 세대를 넘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와 재일 한국인 2세 강상중은 불안한 시대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위험하지 않게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그러나 과감하게 제시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세기 전쟁의 야만 상태를 극복하고 문명을 이어온 세계가 다시 21세기의 야만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테러와 포퓰리즘이라는 야만은 전방과 후방이라는 구분도 없이 늘 드러나고 있다.

명확한 정답은 어디에도 없지만 학대받는 이들, 쫒겨난 사람들,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며 측은지심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

국가체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공동체를 만들어 손을 내밀고 함께 세상을 건너갈 수 있는 디딤돌이 많아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든 몰락하고 추락할 수 있지만 디딤돌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그것을 발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발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책이 반갑다.



사회의 호스트이자 그 사회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으며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먼저 타자에 대해 관용과 환대를 보여야 합니다. (45p)

이 말은 프랑스의 테러 사태에 대한 것이지만 모든 사회에 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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