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7

알라딘: 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은이)역사비평사2010-02-05

327쪽152

책소개

조선시대가 지닌 힘과 오해에 관해 올바른 의미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반성의 지점을 제공하는 역사교양서. 문치주의, 대동법, 실록, 강상(헌법) 등 500년 시스템을 유지한 '힘'과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근대 이후의 왜곡된 역사관으로 인해 굴절된 조선성리학, 광해군, 당쟁, 단종 등에 대한 편견과 왜곡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은 우리의 과거를 밝혀주는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한갓 머나먼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선을 다루며, 조선시대의 정신과 인물들을 미화하고 있다. 조선 500년 왕조를 이끈 역동성은 그것대로 온전히 인정해주고, 편견과 억측으로 인해 왜곡된 조선에 관한 오해들은 제자리로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에는 몇 가지 중심축이 있다고 알려준다. 또한, 공식적인 법과 사적인 도덕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던 조선사회 시스템의 힘을 엿볼 수 있으며, 법과 규범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게 읽힐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1장 문치주의의 꽃
역사의 쓰임새 ㅣ 제도사는 재미없다? ㅣ 왕정은 '전제적'인가 ㅣ 정치제도의 두 유형 ㅣ 겸직의 의미 ㅣ 문한관서의 구조 ㅣ 경연, 성경을 공부하는 자리 ㅣ 어떤 이상주의 ㅣ 서연, 세살 버릇 여든까지 ㅣ 경연의 조직 ㅣ 주무관서 홍문관 ㅣ 성인 만들기 ㅣ 세습과 시험의 공존 ㅣ 교과서, 몸의 훈련 ㅣ 경연의 한 모습 ㅣ 전쟁 중에도

2장 실록, 그 돌덩이 같은 저력
실록 맛보기 ㅣ 실록의 탄생과 진화 ㅣ 죽음과 역사 ㅣ 배제와 비장 ㅣ 선입견의 재음미 ㅣ 상상의 추체험 ㅣ 실록청의궤 ㅣ 편찬 프로세스 ㅣ 풀리지 않는 의문 ㅣ 세초와 상전 ㅣ 실록과 정통성

3장 헌법과 강상
트랙터와 호미 ㅣ 진화와 적응 ㅣ 『경국대전』, 대전에서 편고까지 ㅣ 『경국대전』과 정부조직법 ㅣ 헌법과 역사성 ㅣ 거주 이전의 자유 ㅣ 예치와 법치 ㅣ 전환에 대한 어떤 해석 ㅣ 헌법과 경 ㅣ 강상이란 말 ㅣ 누군가는 가슴 뜨끔할 본의 ㅣ 어리석은 아들 ㅣ 답답한 이유 ㅣ 강상의 회복 ㅣ 예의 자기화

4장 대동법, 혁신하는 시스템
오래된 궁금증 ㅣ 둘 다 공론입니다 ㅣ 외삼촌의 숭어 ㅣ 공물 변통의 두 방향 ㅣ 연산군에서 율곡으로 ㅣ 실은 200년 ㅣ 왜곡된 대동법 추진 주체 ㅣ 광해군과 방납커넥션 ㅣ 좌절된 대동법 시행 ㅣ 가타가이의 웃음 ㅣ 다시 시작된 대동법 논의 ㅣ 삼도 대동청의 실패 ㅣ 비전과 여건의 마련 ㅣ 호서대동법 ㅣ 구조의 재조정 ㅣ 그럼 우리도 ㅣ 연해에서 신군으로 ㅣ 공안개정론의 아쉬움 ㅣ 긴 여정과 기억

5장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
태동기의 현실 ㅣ 유가 르네상스 ㅣ 재역전의 기획 ㅣ 유한자의 두려움 ㅣ 안티노미 ㅣ 사상의 구체성 ㅣ 학문 센터의 이동 ㅣ 조정에서 쫓겨나고 ㅣ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ㅣ 이젠 끝장인가보다 ㅣ 퇴율의 대비 ㅣ 전습록 독후감 ㅣ 딛고 선 땅이 다르기에 ㅣ 훈련된 인격이 필요하다 ㅣ 일찍 일어나기 ㅣ 체계성과 문제의식, 농담 하나 ㅣ 사단칠정논쟁 ㅣ 시냅스와 경 ㅣ 논쟁, 긴장의 힘 ㅣ 주리와 주기 ㅣ 사문난적에 대한 오해 ㅣ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6장 부활하는 광해군
혹세무민 ㅣ 왕대비 교서 ㅣ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임금'이 되다 ㅣ 형, 임해군 ㅣ 동생, 영창대군 ㅣ 어머니, 인목대비 ㅣ 짓고 또 짓고, 끝없는 궁궐 공사 ㅣ 국방비를 초과하는 공사비용 ㅣ 거두고 또 거두고 ㅣ 대명 관계 ㅣ 소심한 제국 ㅣ 강홍립에게 내린 지시 ㅣ 기회주의 외교 ㅣ 사료의 왜곡, 해석의 왜곡 ㅣ 내정과 외교 ㅣ 몰개념성 ㅣ 왜곡과 축소 ㅣ 결과론과 패배주의 ㅣ 식민주의 프레임 ㅣ 내면화와 미래 ㅣ 사대와 사소 ㅣ 광해군을 제자리로

7장 당쟁과 기에 대한 오해
거울과 대화 ㅣ 부정적 접근과 불임의 논법 ㅣ 적극적 접근의 전망 ㅣ 질투의 화신 선조는 못 말려 ㅣ 점입가경 ㅣ 또 다른 희생자 , 선조 ㅣ 사라진 침략과 전쟁 ㅣ 불쌍한 전근대 ㅣ 기철학과 주기론 ㅣ 가상의 팥쥐를 만들고 ㅣ 부활! ㅣ 왜 조심해야 하는가

8장 역사 바로 세우기 - 단종과 사육신
청령포 단상 ㅣ 궁금해진 상식, 노산군과 단종 ㅣ 반성의 실마리 ㅣ 연도, 그 시간 구획 ㅣ 합수부장과 9사단장 ㅣ 선위의 명분 ㅣ 그 어려운 첫걸음 ㅣ 찬탈은 간신을 낳고 ㅣ 중종반정 이후 ㅣ 거스를 수 없는 대의 ㅣ 끊이지 않는 문제제기 ㅣ 군에서 대군으로 ㅣ '단종'으로 '충신'으로 ㅣ 냄비근성은 유전자가 아니다 ㅣ 고운 님 여의옵고

에필로그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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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항녕, 조선의힘, 문치주의, 근대주의, 식민주의 - 붉은구름
추천글
광해군이 뜨게 된 까닭 - 장정일 (소설가, 시인) 
친 노무현이면 콩쥐, 친 이명박이면 팥쥐?!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불편한 조선시대를 다시 보게 하다 _ 김영수_
- 경기문화재단 
“조선시대를 다시 읽는다!” 조선시대에 대한 기존의 오해, 왜곡, 무지 혹은 부정적 시각을 전면적으로 반론하고, 오백 년 왕조를 이끈 조선의 저력을 재평가한 책이다. 문치주의, 실록, 강상, 대동법 등에 나타나는 조선의 힘을 재발견하는 한편, 근대 이후의 왜곡된 역사관으로 인해 굴절된 광해군, 당쟁, 단종 등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0년 2월 13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0년 2월 13일자
책 읽는 의사, 의사들의 책 
 - '책 읽는 의사, 의사들의 책' 제22기 선정도서
저자 및 역자소개
오항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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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으며, 2018~2019년 중국 연변대학교 역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사관제도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과 한국사상사연구소에서 사서삼경 등 고전학을 공부했다. 국가기록원 전문위원과 팀장을 지냈고, 인권연대 운영위원과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을 맡고 있다. 기록과 인간, 조선 문명, 기억과 시간 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호모 히스토리쿠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조선의 힘』, 『기록한다는 것』, 『밀양 인디언』,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 등이 있고, 역서로 『사통(史通)』, 『대학연의(大學衍義)』, 『국역 영종대왕실록청의궤(英宗大王實錄廳儀軌)』, 『문곡집(文谷集)』, 『존재집(存齋集)』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후대가 판단케 하라>,<실록이란 무엇인가>,<간신> … 총 36종 (모두보기)
프레시안광해군은 조선의 이명박? l 2011-03-08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故)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를 존경한다. 진심이다. 하지만 고인을 존경하는 것과 그분이 남긴 말과 글 전체를 지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고인이 남긴 글 가운데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알함브라 궁전의 정밀시계와 '추노'의 시대, 과연 부끄럽습니까"고인의 삶을 구어체로 정리한 <대화>를 보면, 고인의...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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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역사비평 133호>,<동아시아를 발견하다>,<알프 뤼트케의 일상사 연구와 '아집'>등 총 219종
대표분야 : 역사 9위 (브랜드 지수 287,41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선의 두 얼굴, 찬란하거나 혹은 일그러졌거나

조선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조선이란 시대는 때로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기념되지만, 때로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조선은 우리의 과거를 밝혀주는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때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한갓 머나먼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출판물이 앞 다투어 조선을 다루며, 조선시대의 정신과 인물들을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은 여전히 ‘전근대’, ‘망국’, ‘낡은 것’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부끄러운 과거의 초상일 뿐이다.
이 기묘한 양면적 얼굴에 드리운 찬란함과 일그러짐, 그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조선 500년의 힘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는 것이 바로 이 책 <조선의 힘>에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선시대가 지닌 힘과 오해에 관해 올바른 의미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반성의 지점을 제공하는 역사교양서가 될 것이다.


조선의 힘 VS 조선에 대한 오해 : 있는 그대로 성찰하기

이 책 <조선의 힘>이 가장 강조하는 점은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다시 읽기, 혹은 기존의 조선시대 인식에서 벗어나 조선을 다르게 보기이다. 한마디로 조선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정확하게 나눠서 살펴봄으로써, 조선에 대한 무지와 왜곡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무엇보다 조선 500년 왕조를 이끈 역동성은 그것대로 온전히 인정해주고, 편견과 억측으로 인해 왜곡된 조선에 관한 오해들은 그것대로 제자리를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조선은 무력적 통치보다는 언제나 문화적 다스림을 중시하고, 역사적 정당성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실록을 기록했다. 또한 국가의 법과 개인의 도덕률을 조화시키려고 했고, 백성들에게 가정 절박한 민생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 시스템을 혁신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런 조선의 저력을 이제 다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근대는 모두 잘못된 과거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과거를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단지 옛날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이 폄하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조선에 관해 왜곡된 역사적 해석과 평가도 반드시 경계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조선의 역동성을 읽는 일도, 조선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힘 : 문치주의, 실록, 강상, 대동법이 지닌 저력

조선이 지닌 역동성을 발견하는 일은 조선이라는 두터운 지층을 탐사하는 일이다. 이는 우리의 과거가 쌓아온 역사적 사실들을 복기하는 일이자,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긍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닌 문화적 유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결코 제 얼굴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우선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에는 몇 가지 중심축이 있다고 강조한다.
1장 <문치주의의 꽃>은 조선의 제도와 사상을 이끈 핵심에 문치주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치주의는 특히 왕의 교육을 담당한 경연經筵, 역사적·정치적 사건에 대한 비평과 탄핵을 맡은 언관言官, 그리고 정확한 역사기록을 맡은 사관史官이 중심이 되었다. 조선은 무력과 폭압의 유혹을 떨치고 왕조를 문명적인 방법으로 대대로 전수하고 유지하기 위해, 글과 교육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나의 제도가 얼마나 책임성이 있는가는, 그 권한과 권력의 ‘관리 방법’에 달려 있다. 문치 즉 문화적인 다스림이 그 어떠한 무력적 통치보다 강하다는 것을 조선은 잘 알았다. 제도와 사상의 만남, 권력과 문화의 긴장, 바로 그 균형 속에서 조선은 유지되었다.
2장 <실록, 그 돌덩이 같은 저력>은 위의 문치주의 3대 ‘트로이카’ 중 사관들이 남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역사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다. 실상 <실록>이라는 기록은 조선시대의 유산 가운데 가장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상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제작 과정이나 의미에 관해서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실록은 하나의 시스템에 어떻게 역사적 긴장과 사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문화적 인프라이다. 조선이 왜 그토록 실록이라는 기록과 그것을 편찬하는 데 막대한 힘을 들였는지에 대해 상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했다. 역사라는 거울의 힘을 통해 자기시대를 반성하고자 했던 조선의 실록 정신은 오늘날의 한국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점이기도 하다. 실록 없이 조선 문명은 결코 생각할 수 없다.
3장 <헌법과 강상>과 4장 <대동법, 혁신하는 시스템>은 조선이라는 커다란 문명이 법률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를 어떤 구조와 체제 속에서 해결하고자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은 오늘날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정부를 조직했다. 그것이 바로 법치法治이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일상적 삶에 관해서는 <사서四書>라는 유교경전을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의 규범을 잡아나갔다. 이것이 바로 예치禮治이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법과 사적인 도덕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던 조선사회 시스템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은 법과 규범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게 읽힐 것이다.
‘대동법’은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골치 아픈 민생문제, 특히 세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한 정책이었다. 현실과 괴리된 세금 부과에 신음하는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 이는 오늘날 정부가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200년에 걸친 조선의 대동법 추진 과정은 과연 국정 시스템의 혁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대동법 추진 주체에 대한 기존의 오해를 바로잡고, 이른바 ‘국가정책’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조선에 대한 오해 : 조선 성리학, 광해군, 당쟁, 단종(과 사육신)

5장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은 조선의 정신을 관통하고 있는 성리학에 대한 글이다. 성리학 혹은 주자학은 종종 조선을 망국에 이르게 만든 원흉으로 지탄받곤 한다. 주로 공리공론만 일삼으며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 학문으로 오해받고 있지만, 저자가 발견한 성리학은 ‘중용中庸과 민民’을 키워드로 하는 매우 일상적인 학문이었다. 거기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가득하고, 퇴계나 율곡을 위시한 우리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낳은 모태 정신이 있다. 비록 후대에 이르러 당리당략에 의해 왜곡된 적도 있지만, 그 기본 정신의 소중함은 지금의 철학이나 사상에 비해서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이 책은 성리학의 일상성에 주목하면서, 조선 사상사의 정통과 이단, 조선 성리학과 양명학, 성리학과 실학 등 기존 조선사상사의 논의 중에서 다시 성찰해야 할 과제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6장 <부활하는 광해군>은 광해군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다루었다. 특히 6장과 7장은 조선에 대한 전도된 표상의 사례들을 다루는 데 중점을 두었다. 흔히 실용주의 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하는 광해군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저자는 경악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광해군을 띄우기 위해 동원된 사실과 논리의 왜곡이 너무나 심각했다는 것이다. 사료의 잘못된 해석, 그에 따른 아전인수 격인 주장 등을 통해 광해군 원래의 실체는 사라지고 훌륭한 임금으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비록 관심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생긴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관점의 차이가 사실과 논리의 왜곡에 의해 빚어졌다는 점은 통렬히 비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거와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광해군 시대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을 규정하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7장 <당쟁과 기에 대한 오해>는 6장의 연장에서 사실과 논리에 왜곡과 오류가 있는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선악을 단순하게 나누는 ‘콩쥐/팥쥐’ 구도와 무척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이 빚어내는 무수한 편견과 왜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식민주의에 기반한 당쟁 비판, 주자학을 통섭하지 못한 주리?주기론 등도 단순한 이분법이 낳은 폐해들이라 할 수 있다. 부록으론 한겨례 신문에 실렸던 ‘이덕일과의 논쟁’ 두 편을 함께 덧붙였다.
8장 <역사 바로세우기 _ 단종과 사육신>에서는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을 다뤘는데, 이 시기는 다름 아닌 장희빈과, 서인(노론)과 남인이 엎치락뒤치락했다던 환국換局이 등장하는 숙종 때였다. 점차 ‘망해가는’ 것으로 치부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식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200년이 훨씬 더 걸린 이 쾌거는 ‘옳은 것’을 공인하기 위한 조선 지식인들의 긴 여정으로서, 사실에 기초한 역사의 복원을 이뤄낸 기념비적 사건이기도 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흔히 ‘냄비근성’이라 하여 쉽게 과거를 잊는 성향이, 결코 우리들의 유전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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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이란 세계사에도 찾기드문 긴 역사를 가진 조선, 그리고 숨겨진 힘을 조명  구매
서향 2010-05-2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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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그 저력은 세간에 흔히 알려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구매
아하스페르츠 2010-05-03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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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객관적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다.  구매
거북이 2015-11-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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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을 통해 광해군에 대한 연민의 맘을 거두게한 책입니다.  구매
twowon0408 2013-06-1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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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조선 접근에 좋은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구매
비밀 2015-05-2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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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 제목과도 같이 500년을 운영해온 조선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긍정의 글을 담고 있다.  단순히 찬양의 글은 아닌 듯 하다.  여태껏 조선은 전근대적, 근대적 사회로의 변환의 실패등과 같이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 보고 있었다.  아마 일제의 국권강탈을 당했던 나라여서 그런 것일테지.  하지만 한 나라가 500년이상 버티고 왔었다는 것.  그것은 분명 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버티게 한 긍정적으로 바라볼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책은 답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조선史에 대한 나의 편견(?)을 반성하게 되었다.  후반 챕터에 가서는 이덕일 소장에 대한 비판이 많아 지는데, 아무래도 저자에게 더 신뢰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갈대와도 같다. 솔직히 내가 1차사료를 따져볼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어떠한 역사학에 대한 일말에 지식도 없지만,  이덕일 소장에 대한 비판(유사역사학자라는)을 보면서 <역시 내가 의심하던 부분에 대한>공감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해군에 대한 요즈음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은 아니라 더 나아가지만;;;)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마디로 광해군의 외교는 실용주의 외교가 아니라 기회주의 외교였을 뿐이고, 그것은 내치의 문제때문이였다는 것.   좀 더 저자가 이에 대해서 따로 독립된 저작을 통해서 만났으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더 듣고 싶은 이야기인데.   이때문에 광해군에 대한 오해도 좀 걷어 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p.s 내용은 상당히 유익했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종이에서 나는 화학냄새는 최악이였다.  기관지가 안좋아서 내내 기침을 했다.  아토피라던가 민감한 병들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이 책을 보지 말란 소린지?...  이제 앞으로 출판사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고려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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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2-20 공감(6)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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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 보는 정통 역사 시론 새창으로 보기 구매

오랜만에 만나보는 정통 역사 시론이네요.
서점에서 구입해서 하룻밤에 다 읽었을 정도로 역사이야기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요즘 텔레비젼에서 사극이 붐을 이루면서 여러 시대의 이야기들을 드라마화하고 있지만, 대부분 역사적인 소재만 도입해서 흥미위주로 만들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조선에 대한 저자의 약간은 과도할 정도의 예찬을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지만 기존의 조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문제의식이 논쟁거리를 던져주는 점이 새롭게 여겨집니다.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이덕일,한승동,한명기 등 나름 '한가닥'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의문에 이분들이 어떻게 답할지 흥미진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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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우물 2010-02-09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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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콘텍스트... 새창으로 보기 구매
술술 읽혀대는 우리 역사관련 책들을 읽으면 다분히 사건 위주였던 기억이 난다. 사건 위주가 아니라면 역시나 인물 위주이다. 대부분의 조선사는 실록을 참고로 만들어질테니 인물(특히 왕..) 위주로 책 내는 것이 용이할 것이다.  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단조롭게 풀어나가는 책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의 연관성 그러니까 역사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논리적 구도를 읽어내기란 상당히 어렵다. 이러한 구도를 모른다면 조선의 역사는 알아도 조선에 대해서 알기는 쉽지 않다. 사건이나 인물을 텍스트라 한다면 텍스트를 가리키고 있는 모든 것들은 콘텍스트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콘텍스트가 생략 되어 있다. 역사 읽기란 텍스트를 읽는다기보다는 콘텍스트를 읽는 것에 가깝다. 콘텍스트는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 과거 이곳 저곳을 훑어 놓은 것이다.

콘텍스트를 읽는다는 것. 이것은 문학 읽기와도 닮았다. 책속에 들어있는 텍스트로 된 여러 조합들을 건져내다 보면 어느덧 결말에 닿아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문학 속 인물을 그려보는 것 만으로 책읽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어내는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결말에 닿아있다'라는 의미는 가령 소설 속 주인공이 해피 엔딩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결말이 (주인공을 벗어나 나 자신에, 혹은 우리 사회에) 지금도 유효한가 아닌가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도 그렇다. 조선시대에 이미 결과로써 드러난 몇가지 결론들이 지금은 형태를 바꾸어 다시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얼마전에 읽은 오항녕의 '조선의 힘'이라는 책과 비교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렸을때 읽었던 하나의 문장을 예로 든다. 물론 이 문장은 내 임의대로 꽤 축약시켜 놓은 것이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내쫓은 후, 왕위를 차지하였으며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 했던 여러 신하들을 고문하여 죽였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아내와 딸은 모두 노비로 만들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유정난'으로 부른다. 이게 텍스트이자  콘텍스트의 실마리이다.

첫번째 콘텍스트는 바로 노비에 대한 것들이다. '조선의 힘' 첫 장이 조선의 문치주의에 대한 이야기인데 노비제도는 문치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로 볼 수 있다. 문치주의는 단순히 문을 숭상하고 기리려는 정책이 아니다. 문치주의는 바로 관료정치 특히 조선시대 택군을 실현시켰던 신하들의 권력의 무게에 의미를 둔다. 문치주의의 꽃인 '경연'은 왕과 신하들이 모여 옛 문장이나 성현의 말씀을 서로서로 물으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이 왕을 교육시킨다는 의미가 크다. 신하들이 왕을 교육시킨다는 것. 이것을 좀 더 넓게 보면 조선의 왕은 신하들이 꿈꾸는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이사쯤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왕은 신하들이 누릴 수 있는 이권에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없다. 이권을 줄이기 위해 명령을 해도 그 명령을 받는 사람 자체가 또한 관료이기 때문이다. 물론 왕 자신도 더불어 꽤 많은 혜택을 보는 것도 사실이다. 신하들의 이권이 커지게 되다보면 관료주의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 관료주의는 바로 (고려때의) 귀족주의를 극복한 조선의 정치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귀족주의를 가장한 관료주의는 노비제도를 타파할 수 없는 것이다. 노비야 말로 욕심에 물든 관료주의를 지탱한 거대한 자원이다. 그러니까 법제적으로 양천제(양인층과 천민층만을 구별한 제도)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반상제(양반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가 더욱 더 치밀해져가고(이 치밀함으로 인해 결국엔 노비의 숫자가 줄어들게 만들긴 하지만), 이것이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적 모습의 영양분을 제공한다. 노비제도는 결국 조선이 망할 무렵에 가서야 조금씩 혁파된다. 영조(노비 쫓는 기관인 '노비추쇄관 폐지' 그리고 '노비종모법' 시행)와 정조(노비 쫓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 노비추쇄법 폐지)를 지나 순조때에 이르러서야 공노비가 폐지되고, 고종때에는 노비세습법이 폐지가 되며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갑오개혁(고종, 1894)으로 공,사노비의 해방이 이제서야 법제적화 되었다. 갑오개혁도 사실 개혁을 요구해오는 일제에 내정간섭을 위한 빌미를 주지 않기위해 스스로 개혁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을 뿐 절반은 어쩔 수 없는 타의적인 개혁이었다. 결국 문치주의는 양지에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또한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책에서는 문치주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 맞는 말이다. 나의 경우에 그림자인 노비제도를 적었지만, '조선의 힘'에는 '실록'이라는 엄청 밝은 부분이 들어가 있다. 어쨌든 문치주의가 가진 그 양면성이 조선을 풍부하지만 누구에게는 가혹한 그런 나라로 만들었다. 심지어 신하인 그들 자신에게조차도 가혹함을 맛보게 했으니 말이다.

다시 윗 문장으로 가서 두번째 콘텍스트를 정해본다. 그것은 '단종'과 관련한 것들이 다. 단종은 세종의 손자이자 세종의 아들인 문종의 아들이며, 수양대군인 세조의 조카이다. '조선의 힘' 마지막 장인 8장이 단종과 사육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몰랐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먼저 단종은 폐위되었으므로 왕이 죽은 뒤에 받는 '묘호(종이나 조로 끝나는...)' 를 받을 수 없다. 연산군이나 광해군도 묘호가 없다. 그렇다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기전에는 뭐라 불리웠을까. 바로 '노산군'으로 불리었다. 또 재밌는 것은 '연산군'에 들어있는 '산' 그리고 '광해군'에 들어있는 '해'와 같은 글자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다. '노산군'에도 '산'이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언제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제대로 된 '묘호'를 받게 되었을까? 물론 사육신과 생육신의 명예회복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8장에 들어있는 이야기이다. 정답은 바로 숙종 24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단종이 영월땅에서 어린나이에 단명을 한 이후 243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자그만치 강산이 24번이나 바뀐 뒤에 말이다. 그만큼 조선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 모든 것이 기억되고 문제로서 제기되는 이러한 사항이 바로 또 다른 문치주의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덧붙여서 '정종(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의 묘호도 숙종때에 받았다.

세번째 콘텍스트는 '세조'와 관련한 것들이다. 이는 두번째 콘텍스트인 '단종'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세조는 누구나 알다시피 세종의 아들이다. 세종은 누구인가. 집현전을 설치한 대왕이다. 그렇다면 집현전은 어떤 곳인가. 이게 가장 중요한데, 집현전 학자들이 아닌 집현전이라는 공간을 제시한 것은 바로 세조의 일터였다는 의미에 무게를 두고 싶어서이다. 바로 이곳에서 세조는 아니 수양대군은 야망을 꾸었다. 세종은 학문을 중요시했던 왕인데 그의 아들들 그러니까 세자로 지명되지 않은 여러 대군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재능들을 국가를 위해 쓰라고 공부도 시키고 일도 시킨것이다. 그럭저럭 평생동안 놀고 먹는 만고땡이 될 수 있는 대군들을 말이다. 세종 자신은 어떤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아비인 태종을 위해, 백성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도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만이 재능을 펼칠 수 있음을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그런 세종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재능을 펼쳐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수양대군은 야망을 펼치고 싶어했다는 것이 후에 비극으로 나타났지만 말이다. 결국 세조는 집현전을 통해 정치 세력을 키우는 일을 하게 된다. 신하들에게 평판도 높아지고 말이다. 얼마뒤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조카인 단종에게 선양받지만 찬탈과 크게 다를바 없다.  집현전은 바로 혁파된다. 자신이 부정한 음모를 꾸몄던 곳을 놔둘 수는 없는 일. 결국 집현전은 혁파되고 수양과 관계되어있지 않은 수많은 집현전 학자들 또한 죽음을 당하거나 쫓겨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공신들이 훈구파라는 이름으로 등장을 하게 되었다. 이 훈구파는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였는데 즉, 노비 만들기의 재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농민을 노비로 바꾸는데 일등 공신이다. 이는 다시 첫번째 콘텍스트인 '노비'를 돌아보게 한다.

재밌는 것은 세조가 훈구파를 불러들였다면 임진왜란 당시의 왕이었던 선조는 또한 사림의 시대를 시작한 왕이었다. 정확히는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등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사림과 훈구의 반목속에 다시 '단종'이 등장하니 그것은 김종직의 '조의제문' 이 실록에서 발견된 일 때문이다. 다시 첫번째 콘텍스트에서 등장한 문치주의의 꽃 '실록'이 엄청나게 어두운 그림자로써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면 안될 실록을 본 것이다. 누가? 연산군이. 결국 무오사화로 연결됨으로써 훈구파는 엄청난 정치적 학습을 하게된다. 맘에 안들면 왕의 이름으로 처단할 수 있다는. 결국 이런 학습을 너도나도 하게 되었고. 그 뒤에 쭉쭉 이름만 다른 사화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후에 가서는 왕도 학습하게 된다. 그 왕이 바로 숙종인데 사림이 계속 분화된 여러 갈래를 요리조리 바꿔 타가며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였다. 왕이 타지 않은 갈래에 있는 신하들은 환국이라는 이름하에 저세상 사람들이 되어갔고 말이다. 서인이라든지 남인 동인 결국 이런 갈래길의 중심에는 왕이 있었다.

'정종'과 '단종'의 묘호를 올린 숙종때에 일어난 것 중에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를 뒤흔들만한 것은 대동법의 시행이다. 이것마저 풀어쓰면 너무 길어질까봐 쓰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광해군때 처음으로 시도된 대동법이 그 뒤 100여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숙종때부터 다시 꿈틀거리며 시행되니 그 유명한 '상평통보'가 시중에 쫙 깔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이는 조선의 경제 구조를 뒤흔들게 되었고 이는 (도망)노비들이나 (도망)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게된 또 하나의 동인이다.

리뷰로 쓴다는 것이 너무나 길어져 리뷰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후딱 정리해본다.

사실 또 다른 콘텍스트로는 사화속에서 살아남은 사림이 자신들의 이상적인 학문으로 선택한 '성리학과 관계된 것들' 이 있다. 이는 중국과는 또 다른 성리학으로 조선땅에서 전개가 된다. 웃긴것은 '이황' 때문이기도 하며 덕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양명학이 중국땅에선 활개를 치지만 조선땅에선 활개를 치지 않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다른 왕과 달리 다른 시각(조선을 다시 왕의 나라로 만들려는)으로 자신의 위치(왕이긴 하지만 서울 말고 다른 곳(화성)에서 새로이 시작하려는)를 보게 된 정조는 새로운 세력을 물색하게 되었고 후에 이들은 실학이라는 바탕을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조의 급격한 개혁은 정조의 죽음 이후로 위정자들에 의해 자취가 지워지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세도정치로 이뤄지게 된다.

보는 입장에서 역사란 재밌다. 양반의 위선을 한 몸으로 느낀 '이하응'은 결국 자신이 살고자 세도정치를 이용하게 되었고, 세도정치로 인하여 자신은 왕이 될 수 없었지만 결국 세도정치로 인하여 자신의 아들은 왕이 된다. 이하응이 바로 '흥선대원군'이며 아들이 바로 '고종'이다.

다시 앞에서 언급한 문장을 써본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내쫓은 후, 왕위를 차지하였으며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 했던 여러 신하들을 고문하여 죽였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아내와 딸은 모두 노비로 만들었다."

이 한 문장속에 얼마나 많은 콘텍스트들이 숨어 있는지 나도 '조선의 힘'을 읽으면서 놀랐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전에 읽었던 여러 조선 관련 내용들이 내 머릿속에서 번뜩이며 되살아났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들이 많은지라 다시금 책을 펼쳐들고 좀 더 정확히 리뷰를 쓸 수는 없었지만 내가 적어간 내용이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거란 생각이다.

다시 윗 문장을 살펴보면 가장 드러나지 않고 잘 숨어있는 콘텍스트는 바로 재밌게도 텍스트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저 문장속에서 꼭꼭 숨어있는 단어가 바로 '실록'이라는 의미이다. 실록은 기록이니까 말 그대로 텍스트로 말한 것 뿐이다. 수양대군의 조카인 단종이 죽은 뒤에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묘호를 받기까지 243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243년 동안 신하들은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실록은 조선인들에게도 단순히 역사책이 아니다. 문치주의이기도 했지만 실록 자체가 거대한 국가의 통치 과제다. 그들이 실록을 뒤져가며 현재와 끊임없이 비교해가며 뭔가를 끄집어 내고 있었다는 것.

그것은 마치 이것과 같다.

조선은 기록되기 위해 존재했다라는 것. 기록되지 못하면 조선은 그것으로 끝일 뿐.
(재밌는 것은 그렇게 기록된 실록을 왕들은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정조는 왕들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기를 기록한다. 그것이 '일성록'이다. '일성록'은 실록보다 더 직접적인 기록이다.)

역사를 생각하면 독일의 과학자 '베게너'가 주장한 '대륙이동설' 이 생각이 난다. 어제와 비교한 오늘을 보면 변화는 없는 듯 보이지만 무수한 시간이 지난뒤에 보면 거대한 땅 덩어리, 대륙은 엄청난 물리적 변화를 겪어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 땅이 그 땅이다. 위치만 바뀌어있을 뿐 여전한 그 땅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어제와 오늘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한참 지난 뒤에 보면 엄청난 제도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가 지난 뒤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사람일이라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의 사람이나 오늘날의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것 없다.

PS>
1. 글이 너무 길어졌다. 글 줄이는 것도 능력이라고 위에 열거한 콘텍스트 관련 내용을 빼려다 아쉽기도 해서 집어넣었다. 그래서 글이 지루한 티가 난다. 그럼에도 다시 간략히 이 책 '조선의 힘'에 대한 감상을 적어본다.

이 책은 조선이라는 텍스트를 가리키는 몇가지 콘텍스트를 이야기한다. 그 첫번째가 문치주의이며 다음이 실록, 그리고 다음이 법제화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그 다음의 대동법이나 성리학까지 모두 조선을 이루는 제도와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에 단종을 내세우며 역사바로 세우기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세종이 문치주의를 이상향으로 국가 건설에 시동을 걸었지만 그 문치주의를 이어받을 문종과 단종이 왕이 되고 얼마 안되어 죽게된다. 개인적으로 문종의 이른 죽음은 조선의 방향을 크게 틀게 되는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문종은 자신의 이상국을 실현하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책을 보았는가. 모든 지식을 익히고 그래서 책을 덮은 그 순간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쨌든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함으로써 조선은 이성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리셋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조선의 제도사와 끝까지 맞물려있다. 또한 저자(오항녕)가 주장하는 콘텍스트가 다른 이(이덕일)의 콘텍스트와 어떻게 다른지 예전 한겨례에서 설전했던 글이 부록같이 포함되어 있다. 노론사관과 관련한 이야기인데 몇가지 사안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개혁이란 것은 꽤 흥미로운 것이다. 훈구파가 여러 사화를 통해 그 얼마나 많은 사림파들의 피를 흘리게하였는가. 수많은 사림파들의 죽음에도 결국 사림들은 정치적 승리를 이끈다. 숙종 때에 사림파 서인의 노론이 결국은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림들을 죽였던 훈구파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갔는가? 결국은 시간이 흘러가며 훈구파도 사림파화 되어 간 것이다. 훈구들도 시간이 흘러가며 사림화가 되어 갔지만 그 전에는 훈구파에게 사림파는 숙적이었다. 훈구파들은 운명을 이겨 보려 했던 것. 나이를 못속인다고 하지만 역사에서는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개혁이란 그 시간이 되기 이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이뤄내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 개혁이란 것도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안에선 또 다르게 읽힌다.

2.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성삼문을 비롯한 단종 복위파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었다. 단종 복위파의 가족들 또한 죽음을 당했는데 세조는 그들의 아내와 딸들만은 노비로 만들어 다른 공신들에게 성노리개로 주었다. 성삼문의 아내와 딸 또한 마찬가지로 이름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른 공신들의 성노리개로 주었다 한다. 이 내용을 읽었을때 나에게는 꽤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세조가 더 재수없는 왕으로 문종과 단종은 자신의 능력을 펴보지도 못한 비운의 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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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10-04-1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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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새창으로 보기
우리는 조선시대에 쓰여진 수많은 기록들을 통해 눈으로 보고 체험하지 못한 그 시대를 생생하게 그릴수 있다. 그리고 후대의 기록을 통해서도 어떤 사회였는지를 알수 있게 되는데, 한가지 유념해야 할건 쓰여진 기록이 모두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할까 라는 것이다. 역사는 대부분 강자의 시선으로 쓰여졌기에 권력의 힘에 압박받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의 사람이 쓰지 않는 이상 한가지의 사건이 기록한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히기도 한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잘못된 이미지가 만들어져 마치 사실인양 굳어지기도 한다. 한번 박힌 잘못된 인식은 웬만해선 올바르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이 절실한데, 안타깝게도 파급력이 큰 영상미디어 매체와 역사 전문가들의 편향된 글들을 통해 왜곡되고 미화되거나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확대 재생산 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흔히 조선시대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는게 사실이다. 서양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근대화에 늦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많은 부분에서 성장을 이루었지만 보수적이고 답답한 정책때문에 현대인의 기준에선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런데 과연 기 가까이 지난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더 성장한 사회체제를 갖추었다고 말할수 있을까. 근대로의 전환이 늦어졌다고 조선시대가 실패한 거라고 말할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조선시대를 왜곡으로 점철된 관점으로 본것은 아닐까 따져봐야 하겠다

저자는 '사대주의에 찌들었다'고 세뇌당한 조선시대를 피해 자꾸 고대로 돌아가려는 심리에 대해서도 꼬집어 말한다. 그 부분에선 나도 평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왠지 조선하면 식민지의 아픈 과거와 부패한 관리들이 떠오르지만 고구려, 고려하면 진취적이고 자랑스러운 기분이 든다.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도 공원 한복판에 광개토대왕비를 세워놓고 고구려 마케팅을 하고있다. 그 모습이 촌스럽긴 하지만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가 조선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역사를 대하는게 한정되고 편견된 시선으로 보았구나 싶어 반성이 됐다. 알게모르게 우리는 근대를 '선'으로, 조선과 전통을 '악'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식민주의와 근대주의를 합쳐 '범식민주의'라 부르는 저자의 말이 수긍이 간다.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남들과 같이 조선은 이렇다라고 단정지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공부할때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와 통념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과거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왜 저렇게까지밖에 못할까 안타깝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선 그게 최선이었다는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국민들의 투표로 왕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의 정점인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것 같지만 그런 우려스러운 일들이 많이 없었던건 독특한 정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기위해선 조선의 정치제도를 알아야 하는데 경연,언관,사관제도가 그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경언은 경전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토론을 하는 것인데 임진왜란때 피신하면서도 열었다고 할만큼 중요한 일 이었다. 그리고 장차 국왕이 될 왕자를 교육시키는 서연제도는 교육을 넘어서 군주가 가져야 할 이상적 인격을 길러주는 것으로 경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의 헌법으로 알고있는 '경국대전' 또한 현대의 헌법과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런 비교를 하지 않고 조선의 헌법 이라고 칭하면 당연히 구멍이 숭숭 뚫리고 국민의 기본권마저 보장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조선시대를 봉건, 낡고 각종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 등으로 못을 미리 박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식에 역사 전문가들의 흥미위주의 글과 마치 진실인양 왜곡된 주장을 사실로 적은 책을 읽으며 이런 편견을 부채질 하고 있다. 물론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이 모두 같아야 한다는건 아니다. 새로 발견된 사료를 통해 얻어진 주장은 역사를 이해하는데 더 풍성하고 활발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1만큼의 사실을 근거로 10배로 뻥튀기해 부풀리고, 그마저도 왜곡한다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관점도 바뀌고 해석도 달라지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엔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적어도 사실을 왜곡하지는 말 것. 둘째,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서 얘기 할 것. 이것만 지킨다면 왜곡된 이미지가 널리 퍼지지는 못할 것이다. 한 나라가 무려 500년간 이어져온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런면에서 조선은 확실히 힘이 있었고 위태로울순 있지만 잘 짜여진 사회시스템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힘과 한계를 제대로 알자는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인데 미화하지도 왜곡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파악하기 위해 사료를 들추고 증거를 내밀며 독자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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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기 2010-12-2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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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역동적인 힘 새창으로 보기
 

 Scene #1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조선이란 시대는 때로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기념되지만, 때로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조선은 우리의 과거를 밝혀주는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때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머나먼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기묘한 양면적 얼굴에 드리운 찬란함과 일그러짐, 그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조선 500년 왕조를 이끈 역동성은 그것대로 온전히 인정해주고, 편견과 억측으로 인해 왜곡된 조선에 관한 오해들은 그것대로 제자리를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머릿속 조선의 표상도 정말로 그 당시 조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사극에서 보았던 조선의 궁궐 모습부터 일본 게임기에 대해 열광하며 동시에 느끼는 묘한 열등감까지 오늘날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표상은 사실 별 볼 일 없는 가장 작은 나라로, 현재의 우리나라 모습과 가장 가깝지만 그마저 조금 더 약하고 간섭 받았고 경직되어 있는 사회라는 인상이다.

 

 

 

 Scene #2  조선을 움직인 역동성 

 

우리들은 500년 왕조를 이끈 조선의 저력을 무시한 채, 조선이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조선시대에 ‘봉건’ 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물론 여기서 봉건이란 신분적 억압, 부자유, 당쟁으로 대표되는 악(惡)의 이미지로, 근대가 기술의 발달, 사회적 인권신장,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선(善)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상해를 입는다면 그 사람에게 운이 없다고 하지 실패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러한 일을 예견하거나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근대’라는 미래를 예견하고 기대를 했을까?

 

우리가 조선을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다. 근대주의는 일제 식민사관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광복 이후에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근대주의에 빠져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무력적 통치보다는 언제나 문화적 다스림을 중시하고, 역사적 정당성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실록을 기록했다. 또한 국가의 법과 개인의 도덕률을 조화시키려고 했고, 백성들에게 가정 절박한 민생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 시스템을 혁신하려고 했다.

 

우선, 대동법을 들여다보자. 대동법은 오늘날의 세금문제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세금 부과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실시한 대동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혁신적인 방안이었다.

 

대동법은 폐단을 극복하면서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오히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시 대동법 추진 과정을 통해 국정 시스템의 개혁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대동법 추진 주체에 대한 기존의 오해를 바로잡고, 위정자들이 세우는 ‘국가정책’이란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런 조선의 저력을 이제 다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근대는 모두 잘못된 과거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과거를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단지 옛날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이 폄하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조선에 관해 왜곡된 역사적 해석과 평가도 반드시 경계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조선의 역동성을 읽는 일도, 조선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Scene #3  부끄러운 과거의 초상은 없다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에는 몇 가지 중심축이 있다. 조선이 지닌 역동성을 발견하는 일은 조선이라는 두터운 지층을 탐사하는 일이다. 이는 우리의 과거가 쌓아온 역사적 사실들을 복기하는 일이자,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긍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닌 문화적 유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결코 제 얼굴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 너무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다음 고민은 그렇다면 왜 그 동안 조선 문명의 역동성을 잘 모르고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는지의 문제이다.

 

역사의식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살지 못했던 시대, 살 수 없는 시대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형성된다는 저자의 말에서 보듯,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를 위해 조선을 끌어들이지 않았나 싶다.

 

마치 전설처럼 남아있는 고구려의 기개를 이어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당파싸움과 사대주의로 물든 조선은 우리의 현실과 시간적으로 가까운 업보이기에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자기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줄은 알아도 역사 속에서 희망을 끌어올리는 제대로 된 성찰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국가 단위에서 논하기 전에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데, 잘못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될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즉, 훗날 전혀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실록이 왕의 승하 후 편찬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 알았을 때에는 나 역시 실록에 대해서 ‘그럼 그렇지, 왜곡도 되고 그랬겠지’ 라며 체념하는 부정적인 관점을 가졌다. 하지만 실록의 복잡한 편찬 과정을 알게 되니, 장소 문제와 관직 체계부터 시작한 여러 상황을 통해 조선의 실록편찬 과정이 깊이를 지닌 최선의 선택이었고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뿐 아니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는 점을 알면서 무릎을 치게 되었다.

 

역사적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대충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가능한 자세하게 그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것은 현재와 현재의 소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선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한 저자의 견해가 신선하고 많은 깨달음을 주었지만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다른 이유를 뒤집어 씌워 정적을 제거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역사에서 빈번했는데도 불구하고, 윤휴의 죽음에 대해서는 성리학의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너무 예외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에 대해 성찰하는 힘과 시각을 얻은 것 같아서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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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04-09 공감(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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