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댓글만 달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트만 누르고 굳이 우는 이모티콘은 누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오늘이 4시간 정도 남은 지금,
기어이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1.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불법(불량은 아니었뜸)써클 선배 언니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건네주었다. 읽어보라고, 읽고 사람 좀 되라고.^^;
그때 읽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힘차고 선명한 언어와 주장에 마음이 시원해졌다가도 이건 너무 단순한 논리 아냐,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지. 하고 나름 유보하면서 읽었던가. 게다가 자주고름과 옥색치마는 그닥 내가 좋아하는 패션도 아니었다.
사람되라고 책까지 줬는데도 읽고 나서 별 변화가 없는 나를 보며 선배언니는 통탄했지만, 그 책은 오래오래 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화한 게 예수님이었다면 그 책은 백기완이라는 분이 말씀으로 화한 듯했다. 너무너무 좋거나 그런 건 아닌데 계속 나를 붙잡는, 왠지 이 책을 좋아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
글자가 이렇게 강렬한 힘으로 휘몰아치면서 나아갈 수도 있구나, 싶었다.
*서점에는 92년에 이 책이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선배언니에게 88년에 이 책을 받아보았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언니는 대체 어디서 그 책을 구한 거지?
2.
두 번째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
겨울방학 직전이었을 거다. 페북 보니 많은 분들이 87년 대선, 92년 대선을 추억하는데 알고 보니 같은 자리에서 많이들 있었군요.
보라매공원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을 보면서. . .과연 이렇게 민중후보를 추대하는 게 맞는 걸까, 3당 합당까지 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냅둬도 되는 건가, 나는 지금 내 정파에 매몰되어 상황을 잘못 판단하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막상 표를 찍으러 갔을 때는 (물론 선배들의 주장에 휘둘린 것도 있겠지만^^;) 투표용지에 줄줄이 올라온 이름 중 백기완의 표가 너무 적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부디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인민전선이 만들어지기를(다들 민중정당을 주장했는데, 이제 와 고백컨대 나는 속으로 그건 잘 안 될 거 같았어요. 미안해요 L형, L형. 난 무늬만 p*였어요.^^;) 다른 정치적 형국이 열리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 밖에도 여러 번 뵈었다. 집회장에서. 나중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부를 성토하는 자리에서. 물론, 그런 일로 꽁깃꽁깃하게 삐져서 오늘 아무 글도 안쓰려 했다는 게 아니다.
내가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할수록,
공부하고 사유할수록,
실천하고 살아갈수록,
어쩐지 백기완 선생님과는 다른 길로 자꾸자꾸 멀어졌다.
그리고 그 점은 후회할 일이 아니라 나의 성장이었다. 그렇게 생각된다.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나는 지금의 내가 훨씬 믿음직스럽다.
언제부턴가 선생님이 뉴스에 나오시면(백선생님 뿐만 아니라 다른 원로분들도)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많았다.
그랬던 마음을 퉁치고
이제 와 돌아가셨다고 해서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셨습니다, 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쓰고 있지?
.
.
.
.
.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백기완을.
그 모든 변화와 그 모든 실망과 그 모든 시간들이 한 번 더 지나간다 해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남자를.
백기완 선생님,
장산곶매의 날개로 천국까지 훨훨 날아가세요.
가시다가 이것저것 좀 마음에 안 드는 규칙들이 있더라도 그냥 따라가주세요. 중간에 길도 없는데 방향 틀거나 도로 내려오시지 말고요.-_-; 우주는 . . . 너무 넓잖아요. 이번만큼은 그냥 천사들이 하자는 대로 좀 해주세요. . .
고마웠습니다.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나의 백기완.
당신이야말로 이 땅의 청춘, 만인의 청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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