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고국땅 밟지 못하고 타계
기자명 김치관 기자
입력 2021.02.16 15:07
수정 2021.02.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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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망명해서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정경모 선생이 16일 타계했다. 2014년 11월 자택에서 만난 사진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시대의 불침번’이자 ‘정치적 망명객’ 정경모 선생이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1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타계했다. 향년 97세.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고국의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지원하며 한 평생을 바쳤다.
미국 유학시절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맥아더 사령부(GHQ)에 소환돼 문익환, 박형규 등과 함께 근무했고 휴전회담 당시 통역업무를 맡은 바 있고,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해 4.2공동선언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으로 망명한 고인은 <씨알의 힘>을 발간하는 등 독자노선을 걸으며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지원했고, 오랫동안 요코하마에 거주했다.
2014년 11월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 배우와 요코하마 자택에서 만났을 당시 이듬해 4.2공동선언 기념행사를 준비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며, 한일고대사를 정리하고 있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2014년 11월 문익환 목사의 자녀들이 일본 요코하마 자택을 방문해 정경모 선생 내외를 만났다. 왼쪽부터 정경모 선생의 부인 지요코 여사, 정경모 선생, 문익환 목사의 맏딸 문영금, 3남 문성근. [자료사진 - 통일뉴스]고인의 부음을 접한 문성근 씨는 “그동안 치매를 앓으셔서 필생의 작업인 한일고대사를 마무리하지 못하셨다”며 “80%이상은 썼다고 들었는데 마무리를 못해 후학들에 의해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지...”라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제일 죄송한 것은 귀국하고 싶어하셨는데 못해드린 것”이라며 “유일하게 남은 정치적 망명자셨는데 국정원은 어떤 형태로든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당신은 조사받을 생각이 없으셔서 접점이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하고 “코로나로 인해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 2010)은 독특한 그의 화법과 파란만장하고 대쪽같은 생애를 잘 드러낸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이 책에서 “나는 이제 이국땅의 망명객으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데,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스스로가 걸어온 인생길에 대해서 여한은 없소이다”라고 밝혔다.
임재경 선생은 “역사의 불침번은 수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건만 우리 당대에는 역사의 불침번 수가 아주 적었다”며 “나라 안에 역사의 불침번 활동이 극도로 제약되었을 때 이 일을 나라 밖에서 어렵사리 해낸 이가 일본에 거주하는 정경모다”라고 썼다.
일본에서 활발한 문필활동을 펼친 고인은 『ある韓国人のこころ- 朝鮮統一の夜明けに』[어느 한국인의 마음-조선통일의 새벽에](朝日新聞社, 1972)를 시발로 많은 일어책과 자서전 『찢겨진 산하』(거름, 1992) 등을 저술했고, 브루스 커밍스의 『조선전쟁의 기원』과 황석영의 『장길산』 등을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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